베이징 대법제자 퉁샤오(通曉)
[명혜망 2006년 10월 18일]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동수님들 안녕하십니까!
저는 지난 97년, “우연”하게 대법을 얻었습니다. 밤 새워 “전법륜”을 한 번 다 읽은 저는 격동되어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마치 꿈에서 깨어난 듯, 그동안 살아오면서 해결하지 못했던 수많은 문제들이 순식간에 해결되는 것 같았고, 저는 이제부터 다시는 대법과 떨어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목마른 사람이 물을 마시듯 시간만 나면 전법륜을 읽었습니다. 끼니를 중시해 먹는 저였지만 그때부터는 점심에 찐 만두 몇 개를 사서 먹거나 간단히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대충 때우고 집에 돌아가 전법륜을 읽었고, 저녁이 되면 또 동수들과 함께 단체 법공부를 했습니다. 매일 이처럼 전법륜에 빠져 있었는데 마치 모든 속박에서 벗어난 것 같았고 몸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저의 수련을 격려하기 위해 “꿈”에서 원신(元神)이 신체를 이탈해 비승(飛昇)하는 과정을 선명하게 보여주셨고 가벼운 물체지만, 운반공도 체험하게 해주셨습니다. 수련한지 얼마 안 됐지만 저는 전법륜에 쓰여 있는 것처럼 몸이 가볍고 길을 걸어도 날아다니는 것 같은 미묘한 상태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가장 잊을 수 없는 것은, 사부님께서 저에게 신체를 청리해 준 것이었습니다. 한 번은 제가 침대에 누워 잠이 들었는데 사부님께서 저의 등 뒤에서 저를 당신 손 위에 받들어 올리는 것이었습니다. 뒤에 계셔서 볼 수는 없었지만 저는 사부님이라는 것을 직감으로 알았고 아무런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 순간 저는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사부님의 한숨소리를 들어야 했습니다.
저는 그 한숨 속에, 집으로 돌아가려는 한 생명에 대한 사부님의 거대한 자비를 느꼈을 뿐만 아니라 사부님께서 업력 투성인 생명들을 위해 얼마나 많은 대가를 지불하고 계시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저는 미혹 속에서 진리를 어기고 지은 업력 때문에 부끄러웠고 사부님의 자비로운 구도에 감격했습니다.
사부님의 그 한숨소리를 떠올릴 때마다 저는 지금도 눈물을 흘릴 것 같고, 사부님의 은혜에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저의 모든 것은 사부님께서 주셨고 우리가 무엇을 하든 사실 모두 사부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저는 정진실수(實修)하여 마음을 닦고 언제 어디서나 사부님의 말씀을 잘 듣는 것만이 자신이 진정으로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이것으로 사부님의 은혜에 보답하려고 생각합니다.
1.사부님의 말씀을 따르고, 개인 수련을 잘해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사람의 전반 수련과정은 바로 부단히 사람의 집착심을 제거하는 과정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최후로 원만하기 전까지 끊임없이 자신을 잘 수련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이것이 근본 문제라고 인식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대법을 위해 무엇을 하든, 얼마만큼 하든 모두 속인이 대법일을 하는 것으로, 공덕을 쌓고 복을 얻는데 그칠 뿐 원만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사부님의 자비로운 구도를 저버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최후의 개오(開悟) 전까지 자신을 항상 수련인으로 간주하여 끊임없이 자신을 수련하고 끊임없이 자신을 제고하는 것은 진수제자들에 대한 사부님의 가장 기본적인 요구입니다. 때문에 이렇게 여러 해가 지났지만 저는 부단히 자신을 제고하고 법공부를 많이 했으며 법을 많이 외웠습니다. 현재 저는 전법륜을 네 번째 외우고 있습니다. 또한 자신의 언행에서 부단히 대법에 부합되지 않는 부분을 찾고 집착심과 수련에 영향 주는 관념을 발견하면 배척하고 제거하여 그것들을 따라 나쁜 일을 하지 않도록 노력했습니다.
물론 언제나 잘 구별해 낸 것은 아니지만 사부님께서는 항상 저에게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때마다 모순이 생기게 하시거나 다른 사람의 모순을 저에게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만약 오성이 좋아, 모순이 나타난 진정한 원인을 즉시 알아차리면 자신의 아직 제거되지 못한 마음을 억제, 제거할 수 있는데 저는 이것이 사부님께서 제자들에게 요구한, 정진하는 상태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이렇다 하지만 실제 관을 넘을 때면 그래도 잘 넘기지 못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저는 잘하든 못하든 모두 수련 과정중의 표현 상태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잘 넘기지 못했다 해서 두려하는 마음, 집착이 생겨서는 안 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방임하고 수련하지 않아서도 안 됩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반드시 자신을 엄격하게 요구하라고 하셨습니다.
예를 하나 들겠습니다. 법을 얻기 전에 저는 성격이 좋지 않아 자주 화를 내면서 크게 떠들었습니다. 그리하여 직장 동료들은 “당신은 다 좋지만 성격이 좋지 않다. 이 때문에 당신은 큰 손해를 볼 것이다.”라고 저에게 말하곤 했습니다. 저도 그때 고쳐보려 했지만 실제 상황에 부딪치면 자신을 통제할 수 없어 폭발했고 상대가 누구든 상관없이 한바탕 했답니다. 그러나 대법을 얻어 사부님의 법리의 지도가 있게 되면서부터 저는 점차 다른 사람을 위해 생각할 줄 알고 포용할 줄 아는 사람으로 되었습니다. 사부님께서 “수련은 자신이 하나 공은 사부님께 있다”고 하시지 않습니까?
사부님께서는 <선(善)에 대해 조금 말한다>에서 “선은 부동한 층차, 부동한 공간에서의 우주 특성의 표현이며 대각자들의 기본 본성이다. 때문에 한 수련자는 반드시 선을 수련해야 하며, 진.선.인 우주특성에 동화되어야 한다.”라고 하셨고, <무엇이 참음인가>에서 “참음은 심성을 제고하는 관건이다. 화를 내고, 억울해 하며, 눈물을 머금고 참는 것은 여러 가지를 고려하는데 집착한 속인의 참음에 불과하다. 전혀 화를 내지 않고 억울함을 느끼지 않는 것이야말로 수련자의 참음이다.”라고 하셨습니다.
또 <불성과 마성>에서, 사부님께서는 마성의 실질과 수련자에 대한 마성의 위해(危害)에 대해 알려주셨습니다. “사람은 불성과 동시에 마성도 존재한다. 사람이 도덕의 규범과 제약을 벗어나 한 일이 바로 마성이다. 그러나 부처를 수련한다는 것은 바로 당신의 마성을 제거하고 불성을 충실히 하는 것이다.”, “사람의 불성은 선(善)인바, 자비,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며 고통을 참을 수 있는 것으로 표현된다. 사람의 마성은 악(惡)인바, 살생, 도독질과 강탈, 이기심, 사념(邪念), 모순을 일으키는 것, 모함날조, 질투, 악독, 발광, 게으름, 윤리 파괴 등으로 표현된다.”, “수련자가 마성을 제거하지 않는다면 공이 크게 혼란해져 공을 얻을 수 없거나 마도(魔道)에 들어가게 된다.”
화를 잘 낸다는 것은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발광이라는 마성에 포함돼 있습니다. 때문에 그것을 수련해 제거하지 않는다면 절대 원만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저는 어떻게 해야만 모순 속에서 심성을 지키고 화를 내지 않음으로써 제고할 수 있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의 “심성제고”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한 연공인으로서 모순이 갑자기 생기면 어떻게 할 것인가? 평소에 늘 자비로운 마음, 상화한 심태를 유지한다면 문제에 부딪쳤을 때 잘할 수 있다. 왜냐하면 완충의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늘 자비롭고 다른 사람에게 선하게 대하며 언제나 다른 사람을 고려하고 문제에 부딪쳤을 때 우선 다른 사람이 이 일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지 생각한다면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정말 이러했습니다. 모순이 갑자기 생겼을 때, 그 순간 정말 자신이 수련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생각할 수 있고, 정말 사부님의 요구에 따라 한다면 심성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하루는, 회사 로비에서 거래처 업무원이 갑자기 절차상 일이 잘못됐다며 저에게 트집을 잡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기억을 잘못한 것을 모르고 저에게 크게 화를 내는 것이었습니다. 떠드는 소리에 주변에 있던 회사 직원들이 모두 이 쪽을 바라보았습니다. 이전 같으면 저는 화를 참지 못해 진작 그와 한바탕 했을 것이었지만 당시 저는 첫 일념에 “관이 왔구나, 심성을 지켜야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그가 아무리 소리 질러도 웃는 얼굴로 그에게 화를 내지 말라고 권하는 한편, 어떻게 된 일인지 해석해줬습니다. 나중에 그의 동료가 그를 억지로 데리고 나갔고 다시 돌아와 저에게 “그 사람은 머리에 문제가 있으니 식견을 같이 하지 말라”며 위로해 주었습니다. 저는 웃으면서 마음 속으로 ‘일거사득(一擧四得)’을 떠올렸고, 그에게 감사드려도 부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저와 같이 있었던 같은 부서 여자 동료는 놀라서 울상을 짓고 있었는데, 사람들은 저의 이러한 큰 변화를 놀랍게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 직장 동료들은 제가 대법을 수련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이번 일로 인해 저의 부서는 연말에 회사로부터 선진부서로 선발되었습니다.
이것은 관을 잘 넘긴 사례지만 잘 넘기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심지어 수련기간이 거의 10년째인 지금도 작은 일 때문에 화를 내기도 합니다. 가끔은 정말 이런 마성을 철저히 제거하지 못해 고민하고 화를 낸 뒤에는 또 자신에게 화를 냈고 그러면 대법책을 들고 사부님을 마주하기 부끄러워 그대로 자버리기도 했습니다. 나중에 끊임없는 법공부를 통해 이것이 바로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배치한 수련형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사부님께서는 일찍 98년의 일부 설법, <북미 제1기 법회에서의 설법>, <장춘 보도원회의에서의 설법>, <싱가폴 법회에서의 설법>등에서 이 방면의 법리를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렇게 인식합니다. 우리가 속인 중에서 수련하기 때문에 더 빠른 제고를 위해서, 또 수련된 부분이 다시 오염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표준에 도달한 부분은 즉시 격리되고 남은, 수련되지 않은 부분에는 여전히 속인 마음이 있습니다. 이처럼 부단히 수련하고 부단히 격리되기 때문에 마치 언제나 자신이 제고되지 않거나 심지어 예전보다 못하다는 느낌이 드는 것입니다.
이러한 형식의 좋은 점에 대해 사부님께서는 최근 발표한 <미국 수도법회에서의 설법>에서 우리에게 매우 명확하게 제시해 주셨습니다. “이러한 수련은 이미 수련된 그 부분이 다시 오염되지 않도록 보장하고, 또한 미혹된 환경 속에서 진상을 보지 못하지만 수련을 계속하도록 보장했으며, 대법제자가 더욱 큰 과위를 얻도록 보장했다. 동시에, 이 시기에 신의 그 일면의 충격으로 인간 세상에 변화가 생기지 않도록 보장했다.” 사부님께서 이처럼 각계 중생을 구도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하셨는데 우리가 잘 수련하지 않는다면 정말 사부님께 부끄럽고 자신에게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2.진상을 널리 알려 세인을 구도해야 한다
만약 사악한 낡은 세력이 중공과 장쩌민 집단을 이용해 대법과 대법제자에 대한 박해를 발동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처음처럼 대법을 널리 전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익을 얻게 했을 것입니다. 이 또한 사부님께서 바라는 바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박해는 발생했고, 그것들은 극히 저질적인 수단으로 대법제자들을 대하는 동시에 악독한 거짓말로 대법과 자비롭고 위대한 사부님을 모함했습니다. 때문에 대법의 좋은 점을 직접 체험한 대법제자들은 보고만 있을 수 없었고 “사부님과 대법의 결백함을 되돌리는 것”이 우리가 처음에 진상을 알리는 동력이었습니다.
나중에 사부님께서는 이번 사악한 박해를 제지하고 거짓말에 속아 넘어간 미혹된 중생들이 법정인간시기에 도태되지 않도록 진상을 알려 중생을 구도하는 역사적 사명과 책임을 짊어져야 한다고 우리에게 이야기하셨습니다. 특히 <9평>이 발표되고 사부님의 경문 <세간을 향해 법륜을 돌리다>가 발표되면서 ‘천멸(天滅)중공’의 변화가 발생했고 진상을 알려 중공 조직에서 탈퇴하게 함으로써 세인들이 재난에서 벗어나게 하는 일은 매우 시급하게 되었습니다.
박해가 시작되자 저는 대법을 위해 3차례 베이징에 항의하러 갔다는 이유로 악당에 의해 불법 구류되었고 직장에서 쫓겨났습니다. 당시 직장 동료들은 “회사를 위해 그처럼 공헌을 많이 한 사람을 항의하러 갔다는 이유로 내보내다니, 말이 되는가?”라고 했습니다. 사악은 바로 명예와 경제상에서 우리를 무너뜨리려 했던 것이나, 나에게는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원래 가정 조건이 좋아 돈은 문제가 안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또 “대법을 수련하는 사람들은 다 인정이 없고, 집을 돌보지 않으며 직장도 찾지 않는다.”는 등 루머를 퍼뜨렸습니다. 때문에 저는 실제 행동으로 이러한 거짓말을 부정하려 마음먹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어른과 자녀들을 잘 돌볼 수 있으면서도 법공부, 진상 시간이 충족한 일자리를 찾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가정 자료실을 성립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우습지만, 처음에는 닦아버리지 못한 두려운 마음 때문에 저는 복사 기능이 있는 팩스 한 대만 구입했고, “누가 와서 조사해도 꼬투리를 잡을 것이 없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작다고 우습게 봤지만 그것만으로도 매일 진상자료 몇 십 개씩 복사해낼 수 있었습니다. 여름에 저는 속옷 허리 부분에 천을 덧대어 주머니처럼 만든 다음 한 장짜리 전단지 6-7장을 잘 접어서 넣고 그 위에 헐렁한 T셔츠를 입고 나갔습니다. 봄, 가을, 겨울에는 코트나 오리털잠바 안쪽에 큰 주머니를 만들어 놓았는데, 외관상으로는 전혀 진상자료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는 퇴근해 집으로 돌아가거나 친척집을 찾아가는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채소, 과일 같은 것을 좀 사들고 자연스럽게 사람들을 따라 아파트 단지를 드나들었고 심지어 경비가 매우 심한 부대 가족들의 거주 지역, 공안, 언론사, 대학교 숙소 등에도 거침없이 드나들었습니다.
물론 이건 초기의 진상 경험이었습니다. 대법제자들이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해 부단히 진상을 알리면서 사람들도 진상자료를 거의 모두 한 번씩은 받아봤고 현재 베이징의 경우, 곳곳에 무인카메라를 설치해 감시를 강화하고 있기 때문에 예전의 경험은 이미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무리를 지어 전국 각지에서 온 농민들을 길거리에서 보았을 때, 저는 그들이 베이징에 온 목적이 생계를 위해서가 아니라 진상을 알고 고향에 돌아가 전해주기 위해서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사부님께서는 연분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가 아무리 편벽한 농촌에 살고 있더라도 절대 놓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제가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은 바로 이 일이 저와 관련된다는 것을 의미하며 저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하여 저는 전술을 바꿔, 농민공들이 많은 길거리, 공사장, 골목, 외곽 마을 등에서 진상을 알리기로 했습니다.
심성의 제고에 따라 저는 갈수록 성숙해졌고 평온해졌으며 컴퓨터 기술도 제고됐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칼라프린터기와 DVD 리라이터를 새로 장만하게 됐고 컴퓨터에서 다운 받아 편집을 거친 뒤 인쇄, 복사한 후, 최종 자료를 제작하기까지 혼자서 다 해낼 수 있었습니다. 진상자료도 점차 풍부해져 한 장짜리 전단지도 칼라 표지를 갖춘 멋진 소책자로 변신했고 때로는 진상 CD까지 같이 넣었으며 내용도 더 전면적이고 풍부해졌습니다. 게다가 겉에 지퍼식 비닐 봉투까지 씌워 더 깔끔하고 보기 좋고 귀중해 보였습니다. 이밖에 호신부나 칼라 스티커, “9평”도 진상자료와 함께 넣었습니다.
일반 속인들이 만든 것과는 달리, 우리 대법제자들이 만든 진상자료는 하나하나가 모두 악을 제거하는 법보이며 하나하나가 모두 중생을 구도하는 법기이기 때문에, 이 공간에서 작용을 일으킬 뿐만 아니라 기타 각 공간에서도 모두 위력이 있습니다. 매일 만들어낸 진상자료의 법력(法力)이 더 맹위를 떨치게 하기 위해 저는 진상자료를 만든 후 공손하게 사부님 법상 앞에 놓고 향을 피우고 절을 하면서 사부님께서 가지해 주셔서 더 많은 중생이 구도될 수 있게 해달라고 빌었습니다. 그런 다음 모자를 쓰고 장갑을 끼고 자전거를 타면 자신 있게 출발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매번 출발하기 전에 모두 목적지를 정해놓고 대법제자인 어머니와 함께 먼저 발정념을 하여 그 지역의 나쁜 생명체들, 경비를 보거나 잠복해 있는 사람들이 잠시 모두 나오지 말도록 하고 모든 감시카메라들이 찍어내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나가서 진상자료를 돌리면 어머니는 집에서 매 시각마다 혹은 반시간에 한 번씩 제가 무사히 돌아올 때까지 발정념해주었습니다. 몇 년 동안 어머니와 저는 줄곧 이렇게 서로 협조하여 매 번 모두 순조롭게 진상자료를 배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하루, 제가 길가에 세워진 승용차 운전석에 자료를 던져 넣고 있을 때, 한 차량이 몰래 저를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그 차량 곁을 지나자 차에서 미리 내린 한 사람이 갑자기 저의 자전거를 붙잡아 세웠습니다. 저는 사복 경찰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깜짝 놀랐지만 즉시 마음을 진정시켰습니다. 제가 눈을 크게 뜨고 “뭐하는 겁니까?”라고 큰 소리로 말하자 그 사람은 어찌된 영문인지 바로 손을 놓고는 저를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한 채 주눅이 든 목소리로 “가보세요.”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저를 도와 주시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제가 정념이 충족했기 때문에 사부님께서 순식간에 그 사람의 몸에 있는 나쁜 것들을 제거했던 것입니다. 그날 저는 그 사람이 미행할까봐 계획했던 노선에 따라 가지 않고 근처에 있는 한 마을로 꺾어들어가 진상자료를 다 배포하고는 집에 돌아갔습니다.
저는 저의 집을 중심으로 사면팔방으로 뻗어나가면서 매우 넓은 지역에 진상자료를 배포했습니다. 오늘은 동쪽에, 내일은 서쪽에, 이날은 남쪽에, 저날은 북쪽으로.
이런 식으로 방향을 자주 바꿔 누구도 저의 행동 규칙을 알 수 없게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엄동설한이나 찌는 듯한 무더위에나 모두 계획에 따라 진상을 계속했습니다.
한 번은 지도를 펼쳐봤는데, 박해가 지속된 7년 동안, 제가 베이징 절반 지역을 모두 다녀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순간, “여의 진리를 지니고 와 소탈하게 사해를 거니네. 법리를 세간에 널리 전하고 중생을 태운 법선은 떠나간다네.”라는 <홍음> 중의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가 한 일에 대해 과시심, 환희심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지만 공은 사부님께 있다.”(<전법륜>)라는 이치를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단지 육체 다리를 이용해 좀 뛰어다녔을 뿐이고 일체는 모두 사부님의 순서 있는 배치인바, 그것이 대법의 한 입자인 저를 통해 표현되었을 따름입니다. 만약 제가 노력하지 않고 요구에 도달하지 못하면 오히려 죄를 짓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기뻐할 것이 뭐가 있고 과시할 것은 또 뭐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한 가지, 진상 과정에 점차 두려워하는 마음과 의심하는 마음을 제거해 버렸다는 것은 가히 고무적이었습니다.
전에 이 두 가지 마음은 저로 놓고 말하면 정말 뿌리 깊은 집착이었습니다. 속인 때에도 그 때문에 고생했는데, 수련 후, 특히 박해가 발생한 뒤에는 이 두 가지 마음이 더 강렬하게 나오면서 저의 수련과 중생 구도를 엄중하게 교란했습니다.
처음 진상을 시작할 무렵에는 경찰차를 멀리서 보기만 해도 놀라서 즉시 도망갔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저는 의심하는 마음이 나오면 사부님의 경문 <도법(道法)>을 외우면서 법리로 그것들을 타파했고 다시는 도망가지 않고 용감하게 직면했습니다. 이렇게 한 결과 효과가 매우 좋았습니다.
두려운 마음이 나오면 저는 “나의 모든 것은 사부님께서 주신 것이므로 나는 잃어버릴까봐 두려워할 권리마저 없다. 육신 혹은 인간 세상의 안락을 잃을까봐 두려워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영원히 여기서 사람이 되는데 그치겠다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면 두려울 것이 뭐가 있겠는가? 좋은 일을 하는데도 두렵단 말인가?”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몸과 마음이 가벼워졌고 “대각자는 고생을 두려워하지 않나니, 의지는 금강으로 만들어졌네. 생사에 집착이 없으면 정법의 길 당당하게 걸으리.”(<홍음2>-“정념정행”)와 같은 경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두 가지 마음은 지금도 가끔씩 튀어나오지만 이미 매우 약해졌음을 느낄 수 있고 전보다 쉽게 통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다 해서 박해 중에서 안전문제를 전혀 고려하지 않아도 될까요? 인터넷 사이트에서 저는 동수들이 이 문제를 토론하는 것을 자주 보았습니다. 저는 이 문제에 대해 이렇게 생각합니다. 사부님께서 여러 설법 중에서 우리들에게 안전문제를 주의하라고 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사부님의 말씀에 따라야 하며 엉뚱한 생각으로 자신이 괜찮게 수련했고 그 마음이 없기 때문에 제멋대로 해도 된다고 하면 안 됩니다. 제자가 사부님의 말을 듣지 않아서야 되겠습니까?
또한 사부님께서는 설법 중에서 여러 번 우리들에게 최대한 속인의 상태에 부합되어 수련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신처럼 행할 수 없는 현재의 상황에서, 속인들처럼 전적으로 안전 조치에 의거할 수는 없지만 극단으로 나아가지 말아야 하며 마음을 반드시 바르게 가져야 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 우선 우리가 수련자라는 것을 생각해야 하고 우리의 안전은 사부님의 가지와 보호로부터 오며 우리의 정념정행에서 온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표면적인 안전조치는 대법을 수호하고 각계 중생을 구도하기 위해서이며 더 큰 위덕을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기점이 다르다면 결과도 다르게 됩니다. 때문에 박해를 반대하는 이 몇 해 동안 저는 전면적으로 상황을 고려하여 항상 안전에 주의를 돌려왔습니다. 예를 들면, 핸드폰을 여러 개 갖추고 컴퓨터에 방화벽을 설치하며 진상자료를 제작하고 배포할 때 장갑을 끼며 자료를 제작하고 남은 쓰레기를 집과 멀리 떨어진 곳에 버리고 집에 돌아갈 때마다 미행하는 사람이 있는지 살피는 등입니다. 몰론, 속인의 이 복잡한 환경에서 수련하기 때문에 충분히 고려하지 못하는 것도 있겠지만 우리가 안전문제를 귀찮게 여기지 않고 할 수 있는데까지 신경을 쓴다면 잘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상은 제가 대법을 수호하고 법을 실증하는 과정에 얻은 두 가지 체험입니다. 전면적으로 이야기하려면 아마 책 한 권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사실 우리 매 한 진수 제자들이 겪은 일들은 이미 역사적인 장거로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한 막의 극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우리는 계속 경험과 교훈으로부터 부족한 점을 찾아내야 하며 최후인 신의 길을 꾸준히 잘 걸어감으로써, 원만하여 사부님을 따라 돌아가야 합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문장완성 : 2006년 10월 1일
문장발표 : 2006년 10월 18일
원문위치 : 원문위치:http://search.minghui.org/mh/articles/2006/10/18/13976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