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대륙대법제자
[명혜망 2005년 11월 1일] (앞 문장에 이어서) 돌아온 후 나는 또 한 차례 간고한 선택을 해야 하는 동시에, 공안 악경들도 나에 대하여 날조하였다. 그러나 나를 잘 알고 있는 많은 동수들은 그래도 나를 비교적 신임하였으며, 또 나에게 자신을 내려놓고 앞으로 계속 나아가라고 격려해 주었다. 잔혹한 박해를 받은 것은 낡은 세력이 강요한 것이지만, 그러나 나 자신에게도 아주 큰 누락이 있었기에 사악한테 박해 받을 구실을 준 것이다. 계속 잘못하다간 사악한테 박해 받을지도……. 나 자신이 마땅히 감당해야 할 책임 앞에서 나는 물러나려고만 했다. 또 자신에게 그럴만한 구실을 찾았는데, 무엇을 한들 법을 실증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무엇 때문에 늘 내가 “모험”과 책임을 짊어져야 한단 말인가? 라는 것이었다. 이 문제가 나에게는 피하기 어려운 문제였으며 이렇게 되어 나는 모순 속에서 배회하게 되었다. 사람의 마음은 나로 하여금 이 책임을 지기 싫게 하였다. 그러나 명백한 일면은 오히려 나로 하여금 자신은 정법시기의 한 대법제자라는 것을 생각하게 했다. 이 때 나는 사부님께서 거대한 자비고도(慈悲苦度)를 주시고 있는 것이 생각났으며, 나를 구속하고 있던 모든 나쁜 물질들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사부님과 대법이 나에게 부여한 신의 일면이 살아났고, 대법제자의 정념이 일체 바르지 못한 요소를 해체했다.
이번의 정체적으로 박해를 받은 교훈으로부터, 우리는 한 지역의 법을 실증하는 환경의 좋고 나쁨과, 자료점의 안정은, 진상을 똑바로 알리고 중생을 구도하는데 대하여 극히 중요한 작용을 한다는 것을 인식했다. 자료점의 안정은 또 아주 큰 정도에서 자료를 만드는 대법제자의 수련 상태에 달렸다. 이것은 자료를 만드는 대법제자가 우선 하나의 심성이 높은 착실하게 수련하는 사람이어야 했으며, 동시에 정법의 기점에서 자료점을 안정하게 운영할 수 있도록 수호 할 수 있어야 했다. 문제를 인식한 후 우리는 고유의 관념과 사람의 인식을 전변하기 시작했으며, 다시는 매개 대법제자가 법을 실증하는 가운데서의 항목을 중요시 하지 않고, 한 동수를 봄에 있어서 그 동수 심성의 진실한 표현만 보았다. 자료점의 동수를 선택할 때 다시는 속인이 일을 하는 능력과 기술 수준 등을 자료점 인원의 표준으로 삼지 않았으며, 모두들 법공부를 하고 마음을 닦는 것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다.
자료점이 안정된 후 대법 진상자료가 현지에서는 기본적인 공급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그러나 우리는 이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인식했다. 명혜에서 자료점은 각 지역에서 꽃처럼 피어나야 한다고 요구하였는데, 나의 이해로는 안전 방면의 문제뿐만이 아니며 더욱 광범위한 뜻은 더욱 많은 동수들이 걸어 나와 정체 속에 들어와 법을 실증하는데 참여하는 동시에 일체 인연이 있는 사람을 구하는데 있다.
우리는 처음에 이 문제에 관하여 동수와 교류했으며 이와 동시에 주변 지역에서 가정 자료점을 만들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이 기간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모든 정력을 다해 각 항목 대법 일을 잘하려고 노력했다. 이 과정속의 허다한 일들은 참조가 근본 없었으며 모두 모색하면서 부단히 바로 잡았다. 내 자신이 받은 압력과 짊어진 책임을 종래로 다른 사람과 얘기해 본적이 없으며, 그 속의 간고함과 고초는 아마 나 자신밖에 모를 것이다.
현지에서 법을 실증하는 환경이 좋아지고 참여하는 사람 수가 많아짐에 따라 많은 수련인 사이의 심성 마찰이 생기기 시작했다. 나는 수련인 이라면 마땅히 모순 속에서 자신을 찾고, 법공부를 잘해야 한다고 의식했다. 또 동수와 협력하는 중에 자신의 집착을 없애 버리고, 대법 일을 하는 가운데서 개인의 요소를 되도록 넣지 않았으며 기점을 바르게 하고 되도록이면 정체를 고려했다. 때문에 나는 자신이 지금까지 한 일체가 내가 할 수 있는 것만큼 다 했다고 여겼다.
그 이후, 정법 일을 하는 가운데서 우리는 그 지역에서 교류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였으며 봉폐 되었던 동수들 사이를 열어 놓았다. 우리는 또 사부님의 매 한 차례의 설법과 명혜편집부 문장들을 진지하게 교류하면서 제때에 정체 협력하여 사부님의 정법노정을 따랐다. 이 과정에서, 나와 일부 수련생이 적극적으로 참여 하였으며, 많은 동수들이 우리의 표현을 보고 걸어 나와 우리와 협력하여 공동으로 법을 실증하였다. 그 기간에 동수들은 허다한 일들을 나와 의논하였으며 내가 건의를 제기하기를 바랐다. 그 때 당시 동수들에게 제기했던 매개 건의들은 모두 내가 법으로 가늠한 후 비로소 제기한 것이다. 시간이 흐르자 일부 동수들은 나에게 의지하였는데 나도 내가 모르는 사이에 무슨 일이든 다른 사람을 도와 방법을 대주었다. 그런데 일부 일들은 내가 사실정황을 모르는 것들이었다. 후에 이 원인으로 많은 모순을 초래했다.
사부님께서는 설법 중에서 한 차례 또 한 차례 “협조인”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지만 나는 종래로 이 명사를 나 자신과 연결해 본적이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자신이 대법제자가 응당해야 할 일을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었는데 허다한 동수들이 나를 협조인으로 여긴 것이었다. 그들이 나를 협조인이라고 할 때, 나의 일념은 곧 저촉되었으며 즉시 “나는 협조인이 아닙니다. 기실 우리 매개인은 모두 마땅히 협조인이어야 합니다.”라고 해석했다. 왜냐하면 내가 보아왔던 허다한 협조일을 하는 동수들은, 시작에는 모두 법을 스승으로 모셨으나 점차적으로 현지 동수들이 의지하고 숭배하는 대상으로 되었기 때문이다. 그 기간에 자신의 일사일념을 잘 파악하지 못함으로 하여, 저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을 수련생 위에 올려놓고, 다른 동수의 의견을 들으려 하지 않고 자신의 집착을 무한히 크게 만들어, 마지막에는 사악이 구실을 찾아 박해하기 까지 한다. 과거 나의 주위엔 이러한 동수들이 아주 많았다. 그러했기 때문에 실패를 되풀이하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사악이 중점적으로 박해하는 대상이 되지 않기 위하여, 나는 나를 “협조인”이라는 문제를 견결히 반대하고 회피했다.
비록 내가 자신을 협조인이라고 승인을 안 하지만 그러나 여러 가지 항목의 대법 일들을 여전히 모두 하고 있었고, 다만 “이름”을 달지 않길 바랄 뿐이었다. 그러나 일부 수련생들은 여전히 나를 협조인으로 여겼다. 내가 평소 대법 일을 할 때 자신의 관념과 인식을 많이 강조하면서 동수들도 나와 같은 생각을 갖기를 요구하며, 어떤 때엔 그 표현이 아주 고집스럽다. 나의 문제를 보아낸 동수들은 많은 의견을 나에게 제기하였으며 나는 듣고 나서 될수록 안으로 찾았다. 그러나 동수들 사이엔 여전히 부동한 생각이 많았다. 특히 돌출했던 표현은 내가 다른 동수의 의견을 조용한 마음으로 받아 들이지 못하였으며 늘 해석하면서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다.
어떤 동수들은 정체를 고려해 일부 일들을 그들 자신들이 느끼건대, 내가 능히 접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동수들에게 말하여, 그들이 나와 말하게끔 했다. 후에 이 동수들이 나와 교류할 때 나는 이미 부동한 정도에서 이 문제를 인식했었고, 또 다른 동수들과의 협조 중에서 최선을 다해 자신을 개변하고 있었다. 바로 이렇게 나의 마음의 용량은 날마다 증가되어 갔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개변은 사부님과 대법이 수련인에 대한 요구와 비교하면 거리가 너무나도 멀다고 생각 됐다. 후에 나는 그 한 단락 시간, 내가 최선을 다했던 표현들이 다만 사람과 자신의 과거와 비교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거의 매 한 단락 시간 마다 “손을 떼고 하지 않으려”고 했다. 왜냐하면 나의 마음속에는 이미 그렇게 많은 수련생의 부동한 생각을 담을 수 없었기 때문이며, 뿐만 아니라 나의 “몸과 마음도 피로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한가지만은 아주 뚜렷했다. 바로 대법제자는 어떠한 정황 하에서도 뒷걸음쳐서는 안 되며, 문제에 봉착했을 때 피해서 가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한 동수가 나와 깊은 “원한”을 쌓아 모순이 아주 돌출했었는데 내가 평소에 모든 방법을 대어 그와 소통하려 했지만 거의 효과를 보지 못했다. 나는 거의 “절망”했으며 어떠한 방법도 이 모순을 풀 것 같지 못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느 날 내가 한창 법공부를 하고 있을 때 갑자기 ‘대법제자사이엔 풀지 못할 원한이 없다.’는 일념이 나온 동시에 또 “자비는 천지의 봄마저 녹일 수 있고”(《홍음(2)》)가 생각났다. 여기까지 생각한 나는 그 즉시 자전거를 타고 그 동수네 집으로 가서 그에게 성실하게 사과하였다. 처음에 그는 정서가 매우 격동되면서 마음속의 말을 꺼냈다. 그 이전에 그와 매번 대화할 때마다 나는 날카롭게 맞서곤 했다. 왜냐하면 나는 도리가 있으면 말 못할 것도 없다고 여겼기에, 마지막에는 서로 소통할 수 없을 지경에 까지 이른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줄곧 조용히 듣고만 있으면서 아무 말도 안했다. 몇 시간이 지나 갔지만 그는 여전히 정서를 안정시키지 못했다. 그때서야 나는 문제의 엄중성을 깨달았다. 나의 평소의 “독단주의”와 자기견해만 내세우는 고집스러움은 그에게 엄중한 상처를 주었던 것이다…… .
나는 사부님께 ‘저는 대법제자 입니다. 오늘 이 모순을 꼭 해결하려고 합니다. 사부님께서 도와주세요.’ 라고 빌기 시작했다. 내가 철저하게 마음의 온정을 가져온 후 한참 지나서 그는 갑자기 다른 사람으로 변한 것처럼 자신을 찾기 시작했다. 우리의 담화는 원활해지기 시작했다. 그 사이에 나는 진짜 마음의 용량이 넓어지고 있음을 느꼈으며 법리상의 의식도 제고됨을 느꼈다. 거처로 돌아온 후 기쁜 마음으로 《나는 명혜학교의 훌륭한 학생이다》를 불렀다. (대법제자가 명혜학교의 어린친구들을 위해 지은 노래이다) 동시에 수련의 신기함과 현묘함을 느꼈다.
이튿날 내가 어제 저녁의 기쁨을 간직한 채, 동수를 찾아가 정체적으로 법에 협조하는 일을 가서 하려고 할 때, 예상 밖의 일이 발생했다. 두 외지의 동수가 우리 지역의 기타 협조인을 만나 한차례 소규모 교류회를 연 것이었다. 주요내용은 나의 집착에 관한 것이었는데, 법에 대해 책임지고 동수에 대해 책임지는데 입각하여, 또 동시에 동수들이 나에게 “냉정”하게 대할 것을 건의 하였다. …… 이 소식은 나의 어제의 기쁨을 극점에로 떨어지게 했다. 나의 마음은 더는 감당해 낼 수가 없었다. ‘나는 앞에서 일체 방식을 이용해 법을 실증하고 있는데, 당신들은 이해는 못해줄 망정 뒤에서 이러쿵 저러쿵 하다니….’
당시 나의 마음은 불만으로 가득 찼다. 기실 매번 사악이 나를 박해하려 했어도 나를 이 정체에서 떠나게 하지 못했는데, 동수들 간의 “너그럽지 못함”은 나를 더는 참을 수 없게 하였다. 나는 법을 실증하는 일을 타향에 가서 하기로 결심을 하고 이틀 동안 침대에 누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동수들이 찾아와서 무엇을 하자고 했으나 격렬한 사상 투쟁이 있으므로 나는 가지 않았다. 그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내가 냉정해진 이후 조용한 마음으로 법공부를 하고 안으로 찾으니 결국엔 다 나 자신의 문제였다. 만일 평소에 법공부를 많이 하고, 법에서 인식을 제고하면서 순정한 마음으로 대법을 실증했더라면, 모든 일을 수련으로 간주하고 개인의 느낌을 덜 고려했더라면, 만약 좋은 말만 듣기 좋아하는 마음이 없고 능히 동수의 의견을 받아 들였더라면, 아마 동수들이 나를 “냉각”하게 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협조하는 일을 해오던 한 단락 시간을 되새겨 보면, 대법일은 적지 않게 했지만 협조인을 하느냐 하는 이 문제에서 나의 심성은 실질적인 제고를 가져오지 못했으며, 어떠한 외래 요소도 내가 법을 실증하는 일을 교란할 수 있었다. 이 일이 있은 후 나는 다시는 회피하지 않고 협조인 이 문제를 진지하게 사고하기 시작하였다. 협조인은 속인중의 지도자가 아니며 대법 속에서도 다만 보통 수련자일 뿐이다. 협조인은 연계인, 모집인, 의무적으로 여러분을 위해 복무하는 사람이다. 내가 왜 협조인을 하는 것을 그렇게 두려워하는가? 그 원인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의 사상 심처 깊은 곳에 여전히 낡은 세력을 승인하는 요소가 있었던 것이다. 협조인을 하면 모험이 크고 또 사악이 중점적으로 박해하는 상대가 될 수 있다고 여겼다. 다른 한 면으로는 자신이 책임을 제대로 지지 못할 것 같았고, 협조인을 하지 않으면 얼마를 하고 싶으면 얼마를 할 수 있었으므로 그렇게 큰 압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낡은 세력을 묵인하는 – 이 법리상에서 뚜렷하지 못한 인식과 자신이 책임을 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심을 찾은 후 다시는 전처럼 그렇게 피동적으로 하지 않았으며, 자아를 내려놓고 자신의 책임을 다하였으며 주동적으로 법을 실증하는 일을 협조하였다. 왜냐하면 나의 마음속에는 이미 견정한 일념 – 모두들 나를 뭐라고 부르든지, 협조인을 하던 안하던 그건 중요치 않다. 나는 자신이 정법시기 대법제자의 책임을 다할 것이다 라는 것이 나왔기 때문이다.
* 협조하는 일을 하는 가운데서 자아를 실증하는 마음을 수련해 버리고 대법에 원융하다
그 뒤의 시간에 여러분들은 정체적으로 협력하여 사부님의 정법노정을 바싹 따랐다. 2003년 11월에 발표된 《현지의 민중을 향하여 현지의 사악을 폭로하자》란 사부님의 평론이 나온 후 여러 차례의 교류를 거쳐 우리는 집중적으로 현지 민중을 향해 몇몇 악경과 악인을 폭로하였다. 그 뿐만 아니라 또 각 지역, 가도, 파출소 등 곳을 상대로 그곳에 관한 진상자료를 제작하였는데 사악을 진섭했을 뿐만 아니라, 또 무수히 많은 세인들로 하여금 대법의 진상을 알게 하였다.
2004년 8월 8일, 명혜편집부에서 “제1기 대륙 대법제자 수련심득 서면교류 대회” 원고 모집공고가 발표된 후, 우리는 5년 이래 법회가 대륙 대법제자 서로간의 소통을 더욱 원활하게 할 수 있고, 서로 거울로 삼으며 자신의 부족한 점을 찾고, 사부님의 정법 노정을 따라 금후의 정법 수련 중에서 더욱 용맹정진 할 것이라는 것을 인식했다. 동시에 우리는 또 주동적으로 원고 모집 광고에 참여하는 이 자체가 바로 우리 매개 대법제자의 가장 좋은 대법 실증 과정이라는 것을 인식하였다.
여러 차례 교류를 통해 더욱 많은 현지 대법제자들은 : 법을 실증하는 만나기 어려운 기연을 소중히 여기는 동시에, 또 이것은 사악을 전면적으로 폭로하고, 심도 깊고 세밀하게 진상을 알리며, 대법을 실증하는 속에서 자신의 부족한 점을 찾고, 세인들에게 대법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한 차례의 좋은 기회라는 것을 인식하였다.
여러 차례의 교류를 거친 후, 더욱 많은 현지의 대법제자들이 인식하였다 – 얻기 어려운 법을 실증하는 기연을 소중히 여겨야 하며, 동시에 이것은 전면적으로 사악을 폭로하고, 깊게 자세히 진상을 똑똑히 알리는 것이며, 수련중에서 자신의 부족한 점을 찾고, 세인들을 향해 대법의 아름다움을 펼쳐 보이는 한 차례 기회라는 것을 말이다.
현지의 많은 대법제자들이 투고에 참여하였는데 연세가 많은 어떤 대법제자들은 허다한 곤란을 극복하고 자신이 5년간 법을 실증해 온 경력을 써냈다. 사람을 매우 감동시킨 것은 많은 노 대법제자의 법회 교류원고가 다만 몇 백 글자라는 점이다. 이러한 원고가 수백 개나 된다. 법회 원고를 마감한 후에도 많은 동수들이 여전히 심득 체험을 써내어 명혜망에 보냈다. 후에 《명혜특간》,《정견주간》에 우리 지역 대법 제자가 쓴 심득체험이 발표되었다.
2004년 8월 11일 명혜편집부에서 《더 많은 대륙 동수들의 혹형 시연 자료 제공을 자신의 책임으로 생각할 것을 건의》란 글이 발표 된 후, 우리는 해외 동수와의 차이를 찾았으며 자신의 책임을 인식하였다. 사부님께서는 대륙 대법제자는 반 박해의 주체라고 알려 주셨다. 그러나 사실상 반 박해, 사악 폭로, 진상을 알리는 가운데서 해외 대법제자들이 반 박해하는 혹형전 이 항목에서 이미 우리를 앞섰다. 기실 혹형 박해는 진실하게 우리의 몸에서 발생되는 것이지만, 혹형 시연을 통해 직접적으로 사악의 잔혹한 박해를 폭로해 낼 수 있었으며, 또한 세인들로 하여금 이번 박해의 사악한 정도을 알게 할 수 있었다. 혹형전시의 의의와 우리 자신이 마땅히 책임져야 할 것을 인식한 후, 나와 많은 대법제자들은 혹형전시를 하였다.
《구평》이 발표됨으로써 더욱 많은 세인들이 중공의 사악한 본질을 알고 중공의 사악한 각종 조직을 이탈하고 있다. 새로운 정법형세 하에서 어떻게 세인들을 《구평》을 알게 하여 3퇴를 함과 동시에, 그 생명으로 하여금 미래에 악당이 해체될 때 도태되지 않게 하는가 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것이다. 우리는 여러 번 정체적으로 협력하여 많은 공공장소에 대표성을 띠는 직장인들의 3퇴 성명을 선택하여 붙임으로써 《구평》을 전파하는 아주 좋은 작용을 일으켰다.
현지 정법 사업이 세밀하고도 심도가 깊어짐에 따라 협조인의 정법 중에서의 역할이 아주 돌출하였다. 우리는 또 각종 방식을 이용하여 진상을 알리고 중생을 구도하였다. 여러분들의 정체적인 협력으로 이 지역에서는 대법을 실증하는 형세가 점차 양성 순환으로 가고 있었다. 바로 이처럼 특수한 환경 속에서 나는 한 협조인으로서 또 생각지 못했던 집착이 많이 나왔다. 돌출한 표현이라면 정체적인 배합의 모두가 거의 매번마다 내가 구체적인 생각과 방법을 꺼내면, 여러분들이 원융하고 완미하게 하는데 이것은 이미 기본상에서 관례가 돼 버렸다. 그러나 나는 나도 모르게 자아의 인식에 아주 집착함을 양성하였다. 다른 동수들이 다른 의견을 제기 하였을 때, 나는 선의적으로 이해하거나 상대방의 입장에서 문제를 사고하지 않았고, 그들이 보충하고 원용한다고 인식하지 않았으며, 도리어 과격하게 상대방이 무서운 마음이 있다고 이해하고, 법을 실증하는 것을 저애한다고 여겼다……. 천천히 나는 우리와 정체적으로 협조하면서 법을 실증하는 분들이 늘 그 몇 분이라는 것을 점차 발견하게 되었고, 또 더욱 많은 동수들은 진정으로 참여해 들어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 차례 교류 중에서 한 동수가 그 지역의 이런 비정상적인 현상을 선의적으로 제기하였다. 그는 형상적인 예를 하나 들면서 말하기를, 우리의 정체는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는데, 한쪽은 부글부글 끓는 물이고, 즉 다시 말해 열 분자이고, 다른 한쪽은 아무 감각이 없는 물인데 두 가지 물은 근본적으로 용합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우리의 사고를 불러 일으켰다. 왜 그 많은 동수들이 참여해 들어오지 못했을까? 내 생각엔 이것은 협조인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것 같았다. 내가 나를 돌이켜 봤을 때 입으로는 늘 법을 실증하는 것을 첫자리에 놓았고, 대법의 일도 적지 않게 했으며, 또 자신의 심성이 괜찮다고 여기면서 무엇이나 다 다른 사람을 생각했다고 말했지만, 그러나 실제적으로 협조해야 할 때엔 도리어 법리에서 인식한 자신의 인식과 자신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항목을 집착하면서, 정체적인 제고와 정체적인 승화의 의의를 홀시하였다.
나는 사부님께서 《 아태지역 수련생 회의에서의 설법 》에서 하신 한 문제를 반복적으로 보았다.
문: 불학회의 책임자라고 해서 수련생 위에 있을 수 있습니까? 수련생은 의견을 제기할 수 없으며 주요책임자는 패거리를 짓습니다.
사부: “……책임자, 사실 나는 책임자를 또 단지 이렇게 부를 뿐인데 무엇을 책임지는가? 대법에 대하여 책임지는가? 당신이 정말로 감당할 수 있는가? 사실 우리는 단지 한 명의 연락인일뿐이고, 여러분을 위하여 봉사하는 사람이고 권력이 없으며 권위가 없다. 여러분을 잘 협조시키는 이것이 바로 당신들이 사부를 도와 사람 표면에서 일으킬 수 있는 가장 좋은 작용이다.
…… 만약 사부를 도와 이 한 지역의 수련생들을 잘 이끌 수 없다면, 그건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당신들은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아는가? 모든 대법제자들을 나는 모두 버릴 수 없다. 매 사람마다 모두 나의 가족인데 당신들이 어찌 나의 가족을 다른 눈으로 대할 수 있단 말인가? …….
…… 이렇게 많은 한 무리 수련생들을 자신이 잘 이끌지 못했으므로 책임이 아주 중대한 바, 이 문제를 보아야 한다. 나 이 사부로서는 한 명의 제자도 빠뜨릴 수 없다. 나는 당신들에게 알려주겠다. 이러하기 때문에 책임자로 놓고 말하면 당신은 제자들을 나한테서 한명이라도 떨어 뜨려서는 안 된다.”
바로 내가 진정으로 마음을 조용히 하고 대법으로 자신을 비춰보았을 때, 사부님의 홍대한 자비를 나는 말로 표현 할 수 없었으며 가책으로 인한 눈물은 그 순간 더는 참지 못하고 눈시울을 적셨다. 과거에는 아마 모두가 나의 집착과 관념 때문에 더욱 많은 대법제자들이 정체 속으로 들어 올 수 있는 것을 저애했을 것이다. 내가 스스로 여겼던 법에 대해 책임지고, 정체에 대해 책임지며, 동수에 대해 책임지는 등, 다른 사람들을 생각했던 모든 것들도, 다만 자기 자신이 이미 형성해 놓은 관념과 틀 속에서 가늠했던 것이었으며, 입장을 바꿔 놓고 상대방을 생각하고 다른 사람을 선의적으로 관용, 이해하지 않았으며, 또 여러분들을 협조하여 각자의 환경 속에서 대법을 실증하는 일을 착실하게 하지 못하였다. 만일 여러분들과 법을 실증하는 일을 계속 잘 못한다면 그러면 정말 사부님과 대법을 볼 면목이 없을 것이며, 정법시기 대법제자의 신성한 칭호에 부끄러울 것이다.
이 전에 왜 그렇게 많은 모순과 오해가 생겼으며 왜 더 많은 동수들이 정체 속으로 들어오지 못했는가? 이 일체의 근본 원인이 바로 내 자신이 진정으로 법을 잘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며, 수시로 자신의 일사일념을 깨끗이 하지 못했기 때문이며, 대법 일을 하는 가운데서 자신을 제때에 바로 잡지 못하고 대법 일을 얼마만큼 했는가를 첫자리에 놓음으로써 수련의 실질인 “사람의 전반 수련과정은 바로 끊임없이 사람의 집착심을 제거하는 과정이다” “심성이 얼마 높으면 공은 얼마 높다”(《전법륜》)는 것을 홀시하였기 때문이다. 나는 이 실질적인 문제를 인식하였으며 내심으로부터 진정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 대법 중에서 그 어느 항목을 하든, 협조인도 좋고 기술인도 좋고, 진상자료를 배포하는 것도 좋고…… 기실 모두가 다 대법정체 속에서 빠뜨릴 수 없는 부분이며, 등급이 없고, 경중이 없다. 오로지 서로가 원융하게 협조를 잘하여야만 비로소 대법의 정체적인 위력을 펼칠 수 있다.
그 때로부터 나는 자신의 고유적인 인식을 개변하기 시작했으며 진정으로 착실하게 각 항목의 법을 실증하는 기초 일을 잘하게 되었다. 우리는 교류를 하고 나서 여러 차례 소형의 법회를 열었으며 또 주제도 확립하였다. 예를 들면 – 1, 어떻게 법공부를 더 많이 하고 법공부를 잘할 것인가 2, 안전을 확보하는 전제하에서 이지적이고 영활하게 소형의 법공부팀을 건립하는 것 3, 법공부 팀이 정법 중에서의 작용과 진정으로 할 수 있는 것을 토론 4, 발정념의 질을 중시하며, 발정념의 시간을 늘인다 5, 어떻게 사부님이 배치한 길을 걸을 것이며 철저하게 낡은 세력의 일체 배치를 부정할 것인가 6, 어떻게 방향을 잃어버린 이전의 우리의 동수를 찾아 올 것인가 7, 정체적인 협력 속에서 어떻게 정체적으로 제고하고, 정체적으로 승화하며, 동수지간에 나타나는 모순이 발생할 때 어떻게 너그럽게 이해 할 것이며 어떻게 감옥 속의 동수를 구해 낼 것인가 등 8, 어떻게 《9평》을 추진하고, 세인들을 인도해 3퇴를 할 것인가 등을 교류하였다.
바로 우리가 매 차례 법회의 주제를 확정한 후, 개인의 감수를 많이 말하던 것과 개인의 인식을 과분하게 강조하던 현상이 많이 줄어들었고, 사람마다 자신을 찾으면서 일정한 정도에서 그래도 정체적인 각도에 서서 문제를 사고 할 수 있었다. 이렇게 하다 보니 법회는 더욱더 순정해졌고 효과도 더욱더 좋아졌으며 걸어 나와 법을 실증하는데 참여하는 수도 점점 많아 졌다. 어느 날 한 연세가 드신 동수 한 분이 나와 몇몇 협조일을 맞고 있는 동수들을 보더니, 자신이 깊은 감촉을 받았다며 – 우리가 끝내 실제적인 일을 했군요 라고 했다.
모 감옥에 박해를 엄중하게 받은 대법제자가 있는데 과거 우리가 여러 면의 방법을 대여 구원활동을 벌여 왔지만 감옥에선 여전히 사람을 내 놓으려 하지 않았다. 마지막에 그 대법제자가 박해로 인해 생명위험이 있게 되자 가족들이 이 소식을 알고 사람을 요구했다. 우리 현지 대법제자들도 적극적으로 협력하여 범위를 넓히고 여러 차례 현지에서 교류를 하였으며, 그 대법제자의 실제상황과 붙잡힌 후 엄중하게 박해 받은 정황을 교류회에 참가한 동수들에게 상세하게 알려주었다.
2005년 9월 그의 가족이 가서 사람을 요구하게 되었는데, 우리 현 지역 대법제자 40여명이 감옥 부근에서 근거리 발정념을 하였고, 더욱 많은 대법제자들도 자발적으로 두세 명씩 모여서 발정념으로 사악을 제거하는 것으로 감옥의 동수를 가지해주었다. 바로 그의 가족이 감옥 문 앞에 많은 현지 대법제자가 감옥을 등지고 입장 발정념을 하여 사악을 제거하는 장관을 목격한 그 당시, 격동되어 그 자리에서 눈물을 흘렸다. 그는 대법제자의 손을 꼭 붙잡고 – 오늘에야 비로소 대법제자를 진정으로 요해하게 되었습니다…… 라고 말하였다. 그날 사악이 비록 즉시 사람을 풀어주지 않았지만 사악의 기염이 크게 줄어들었다. 그 박해를 심하게 받은 대법제자의 가족들도 대법 진상을 요해하기 시작하였다. 이 이후로 현지의 많은 대법제자들은 매일 자발적으로 감옥 부근에 가서 근거리 발정념을 하였으며, 기타 조건이 되는 대법제자들은 모두 매일 집에서 정각 발정념으로 사악한 요소를 제거하였다.
이번 일을 통해 우리는 정체 협조의 힘의 거대함을 인식하였으며 이와 동시에 자신의 부족한 점을 찾았다. 우리 협조하는 일을 하는 동수는 반드시 부동한 의견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러한 의견을 들었을 때, 아주 가능하게 우리가 문제를 처리하는 면에서 대법과 비춰보면 편차가 생겼을 수 있으며, 우리는 아마 아직 모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기실 우리 개인의 능력이 얼마나 강하든지, 대법 속에서 얼마나 많은 일을 했든지, 개개인의 “시야”를 법의 인식으로 보면 여전히 국한성이 아주 크다. 더욱 많은 동수들이 걸어 나올 수 없는 것이 아니라, 흔히 보게 되면 우리 협조일을 하는 동수가 잘 못했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법을 실증하는 매 일마다 능히 모두 내심으로 자세하게 동수와 교류를 하고, 그들로 하여금 매 사건의 이유를 자세히 요해하게 한다면 여러분들은 모두 자신의 환경에서 매 한가지 대법 일을 정념으로 가지했을 것이다.
내가 생각하건대 한 협조인으로서의 역할은, 자신의 하나의 생각을 여러분들에게 내놓아 여러분들이 따라서 다 같이 하는 것이 아니며, 여러분들을 협조해 한 가지 일을 해나가는 것도 아니다. 협조인은 여러분들이 어떻게 법공부를 잘할 것인가를 협조하는 것이며, 자신과 여러분이 공동으로 법에서 인식을 제고하여, 진정한 수련환경을 형성하는 것이며, 각자의 환경 속에서 자신의 법을 실증하는 길을 걸어 나가는 것이다.
기실 현재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모두 마땅히 기점을 바로 해야 하며, 일체를 대법을 실증하고, 진상을 똑바로 알리며, 중생을 구도하는 것을 근본목적으로 하여야 한다. 정체제고, 정체승화에 불리한 일체요소는 모두 마땅히 즉시 바로잡아야 하며, 자아를 실증하려는 마음을 버리고 정체에 협력하여 대법을 원용해야 한다.(다음에 계속하여)
문장완성:2005년 10월 14일
문장발표:2005년 11월 01일
문장갱신:2005년 11월 01일 18:59:19
문장분류:[수련마당]
문장위치:http://minghui.ca/mh/articles/2005/11/1/112437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