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중국화북지구대법제자
[명혜망 2005년 11월 3일] 2004년 2월말, 나는 사악들에게 납치되어 간수소에 갇힌지 한달 뒤에 3년 노동교양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사부님께서 나의 신체에 일부 병적 상태를 연화시켜 주심으로써 노교소에 보내지 못하게 했다. 그러자 사악은 나를 세뇌반으로 보냈다. 7일 후 나는 사부님의 가지와 동수들의 정념의 도움으로 정정당당하게 세뇌반에서 나왔으며, 2년동안 밖에서 떠돌이 생왈을 하다가 돌아오지 못하던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집으로 돌아오니 주위 일체가 익숙하면서도 낯설었다. 그러나 집을 떠나 밖에 있었던 환경에 비하면 감각적으로 비교적 느슨해진 편이다. 집에 온 지 한달쯤 되었을 때 갑자기 어떤 동수가 또 붙잡혀 들어갔다는 소식이 들려 왔다. 그 동수는 나와 마찬가지로 간수소에서 보증금을 받고는 집에서 병치료할 수 있도록 나온 것이었는데, 그녀는 나보다 한달가량 먼저 나왔을 뿐이었다.
이 소식을 듣게 된 동수들은 저마다 나를 보고 “밖에 나가서 피하세요. 들리는 말에 의하면 당신들과 같은 이런 정황은 신체가 좋아진 후 모두 붙잡아 간다고 해요.”라고 했다. 이 사람도 말하고 저 사람도 말하며 여러 사람이 모두 이렇게 말하니 내 마음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법을 학습해도 머리에 들어가지 않았고 발정념을 해도 마음이 조용해지지 않았으며 머리속은 온통 나가서 피해야 하는가 아니면 피하지 않아야 하는가? 피한다면 어디로 가겠는가 ? 하는 생각뿐이었다. 그 며칠동안은 정말로 긴장해서 갈피를 잡지 못했다.
내가 어떻게 된 영문인가? 나는 나자신에게 이렇게 물어 보았다. 정법수련을 하는 몇 년동안 , 더욱이 집을 떠나 밖에 있을 때에도 나는 이런 감각이 없었다. 그런데 집에서 초인종소리와 문두드리는 소리를 무서워했으며 밖으로 나가면 늘 다른 사람이 미행하고 있다고 의심했다. 두려움, 나는 불시에 이것이 바로 두려워하는 마음이고 이 일체가 바로 두려워 하는 표현임을 느꼈다. 무엇이 두렵단 말인가? 나는 나 자신에게 묻기 시작했다. 나는 죽는 것이 무서운가? 무섭지 않다. 나의 머리속에는 종래로 죽는다는 이 개념이 없었다. 노교소에 들어가는 것이 무서운가? 간수소에서 나와 같은 정황이면 기필코 판결을 받거나 혹은 노동교양을 받는다고 누구나 인정하는 정황하에서도 나는 마음이 동한 적이 없었다. 다만 이후에 어떠하든지 간수소에 들어 온 이상 사부님께서 우리들에게 말씀하신 세 가지 일을 하자, 일체는 사부님의 배치에 맡기자 라는 생각만 했을 뿐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무엇을 두려워 하고 있는가? 이렇게 무섭다면 아예 나가서 피하자. 라고 생각했지만 또 그렇게는 하기 싫었다.
나는 또 이렇게 집을 떠나면 다시 돌아올 수 없을까봐 두려웠다. 그것은 집을 떠나 밖에 있는 것이 어떠한 것인가를 알기 때문이었다. 정신에서부터 전반생활에서까지 모두 고통스러운 것이었다.(비록 그 당시에는 느끼지 못했지만) 나는 내가 이렇게 두려워하는 마음의 뿌리는 바로 안락을 추구하고 다시는 집안에서의 이런 안일하고 편안한 환경을 잃어 버리기 싫어하는 것임을 느끼기 시작했다.
한동안 나는 아침에 점점 늦게 일어났으며 5시에 일어나 발정념하고 연공을 하던데로부터, 후에는 6시 발정념을 하고 또 누워서 7시까지, 마지막에는 8시까지 잤는데 나 자신도 놀랄지경이었다. 나도 연공인이란 말인가? 나는 이것이 바로 안일을 구하는 마음이라는 것을 알았다. 과거에 모두 무서워하지 않던 일들이 지금에 와서 어찌하여 모두 무서운가? 다시 붙잡히는 것이 무섭고 집을 떠나는 것이 무서운 것으로 근본적으로 이렇듯 상대적으로 편안하고 안일한 환경을 잃어 버리는 것이 무서운 것이었다.
나는 자신에게 물었다. 수련의 대문에 들어선 그날부터 편안함과 안일은 더는 나에게 속하지 않는데 지금은 무엇때문에 도리어 그것들에 집착한단 말인가? 이 뿌리를 찾은 후 나의 마음은 또 법으로 돌아왔고 마음은 삽시간에 많이 편안해 졌다. 법학습을 해도 마음이 조용해질 수 있었다. 사부님께서는 《2002년 미국 필라델피아법회에서의 설법》에서 우리들에게 이런 한 가지 도리를 알려 주셨다. “하나의 생명의 선택은 그 자신에 의해 결정되며 역사상에서 그가 어떠한 소원을 빌었든 결정적인 순간에는 여전히 그 자신에 의해서 결정된다.” 그렇다, 사부님께서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여전히 나 자신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나는 무엇때문에 내 마음대로 결정하지 못하는가? 나는 무엇때문에 사악을 두려워하는가? 사악들에게 다시 붙잡혀 가는 것을 두려워하는 이것이 구함이 아닌가? 사부님께서 나를 도우시어 구하여 내왔으니, 내 마음이 바르고 구하지 않는 이상 나를 다시 들어 가게 할 생각이 없으실 것이다. 두려워하는 마음의 근원을 찾고 법리를 깨닫자 근 한주일 동안 나를 고달프게 하던 두려운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없어졌다. 나는 어디로 가지 않고 정정당당하게 집에서 세 가지 일을 잘하려고 마음먹었다. 나는 일념(정념)의 힘이 산을 박살내는 듯한 미묘한 감수를 체험했고 사악은 다시는 나를 움직일 수 없음을 알았다.
나는 진작부터 이 한단락의 경력을 쓸 생각이 있었지만 언제나 “나자신은 누락이 있고 잘 하지 못하여 붙잡히고 박해를 받았다. 그런 정정당당하게 온정하게 세 가지 일을 하는 동수와 비긴다면 아직도 멀고도 먼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 역시 이러한 정황도 보았는바 마귀소굴에서 나온 많은 동수들은 모두 이런 두려움이 있는 것으로서 어떤 사람은 법에서 제고하여 두려워하는 마음의 속박을 돌파하고 사악도 정말로 움직이지 못하고 또 움직이려도 하지 않지만 어떤 사람들은 법에서 제고하지 않고 오직 사람의 방법을 써 (예를 들면 동수들과 연계하지 않고 대법의 일을 하지 않거나 적게 한다) 자기가 다시 박해를 받지 않도록 보호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동수에 대해 사악은 놓으려 하지 않고 늘 교란하고 있고 어떤 사람은 아예 또 붙잡혀 들어가며 어떤 사람은 인위적으로 자신을 봉페함으로써 마지막에는 점점 정법노정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지금 이 교류회 기회를 빌어서 나의 약간한 체험을 써 동수들과 교류하려 한다.
층차의 제한이 있기에 적절하지 못한 곳이 있으면 동수들이 자비롭게 지적해 주기를 바란다.
(제2기 대륙대법제자 수련심득서면 교류대회 교류문장)
문장 완성: 2005년 10월 28일
문장 발표: 2005년 11월 03일
문장 갱신: 2005년 11월 02일 13:36:17
문장 분류: 【수련마당】
원문 위치: http://search.minghui.org/mh/articles/2005/11/3/11336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