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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시간: 사부님을 따라 설법을 듣던 날들

【명혜망 2006년 8월 2일】

1993년 12월 나는 마침내 북경 동방건강박람회에서 처음으로 사부님을 뵈었다. 한순간 나는 생각했다. ‘전에 어디서 뵈었지?’ 사부님은 매우 친절하셨고 너무나 친숙하게 느껴졌다.

당시 사부님께서는 진한 남색 양복을 입으셨는데 마치 30대처럼 아주 젊게 보이셨다. 사람들에게 서명해주실 때도 단정하고 장중하면서도 우아했다. 한 줄은 사부님께서 병을 치료해주시기를 기다리고 있었고, 다른 한 줄은 사부님의 서명을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당시 나는 책이 없어, 내 차례가 왔을 때 사부님께 흰 종이를 내밀어 잘 펼쳤다. 사부님께서는 서명을 쓰신 다음 내게 돌려주셨다. 박람회 일꾼이자, 사부님 곁에 서 있던 몸이 마른 한 부인이 내게 말했다. “집에 가서 잘 보관하세요.” 나는 그러겠다고 말했지만 떠나고 싶지 않아서 부근을 돌아보았다.

나는 法輪功(파룬궁) 부스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빽빽이 차 있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근처 다른 부스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고 더 멀리 있는 부스에는 더 적었다. 나는 사람들이 주변에 서서 학습반 일정을 읽고 있는 것을 보았다. 나도 가서 등록했다. 노수련생이 내게 사부님의 강의 티켓을 주었다. 다음날 나는 강의가 열리는 한 작은 강당으로 갔다. 그곳에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자리가 부족했다. 많은 사람들이 강당 뒤에 서서 사부님의 강의를 들었다. 사부님께서 강의를 끝내시고 단상에서 내려오시자, 많은 수련생들이 사부님 주위에 서서 책을 들고 사부님께서 서명해주실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음날 나는 보고회를 들으러 또 강당에 갔다.

1994년 1월 천진시에서 열린 학습반에 참가했다. 처음 참가하는 사람은 회비가 50위안이었고 노수련생은 25위안이었다. 사업일꾼들이 수련생들의 숙소를 배정해주었는데, 음식과 생활비가 아주 싸고 편리했다. 나는 학습반이 시작되기도 전에 신체가 청리되는 상태에 있었는데 심한 감기처럼 고열이 났다. 학습반이 끝날 때 쯤에야 비로소 멈췄다.

사부님께서 강의를 하시는 동안, 내 근처에 앉아있던 일부 수련생들은 사부님 뒤에 法輪世界(파룬세계)의 정교한 고대 정자 누각을 보았는데 이런 장면들은 사진에도 찍혔다. 어떤 수련생들은 기분이 상쾌하고 마음을 신선하게 해주는 꽃향기를 맡기도 했다. 또 어떤 사람은 사부님 한편에 석가모니부처가 있고 다른 편에 노자가 앉아있는 것을 보았다. 일부는 사부님께서 때로 고대 도사와 같은 모습을 하고 계신 것을 보기도 했다.

학습반에서 사람들이 잃어버린 돈과 물품들은 모두 주인에게 되돌아왔다. 이런 물품들은 수련생들이 발견하면 사업일꾼들에게 인계한 다음 주인에게 알려 잃어버린 물건을 찾게 했다. 나도 지갑을 잃었다가 되찾았다. 물건을 잃고 찾는 것에서, 수련생들의 마음이 순정해지고 그들의 경지가 제고됨이 체현된 것을 볼 수 있었다.

나는 학습반이 끝난 후 많은 수련생들을 만났다. 어떤 수련생들은 자신들이 체험한 거대한 육체적 변화에 대해 이야기해주었고 일부는 천목이 열렸을 때의 느낌을, 일부는 공능으로 무엇을 보았다고 이야기했다. 한 수련생은 꿈에 중국 지도를 보았는데, 法輪功(파룬궁)이 중국 전역에 전파될 것임을 알려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어느 날, 학습반이 열리기 전 우리 몇 사람은 사부님께서 들어가시는 길이 단 하나뿐이었기 때문에, 그곳에 기다렸다가 사부님과 사진을 찍기로 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사부님께서는 나타나지 않으셨다. 거의 강의 시간이 다 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강당으로 달려갔다. 사부님께서는 이미 단상 위에 서 계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우리가 사부님과 사진을 찍기 위해 너무 집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천진의 겨울은 어디를 가든 사람들에게 불결한 인상을 주었다. 사부님께서는 옅은 푸른색 오리털코트를 입고 계셨는데 군중 속에서 단정하고 깔끔해 보이셨다. 그곳에는 많은 신수련생들이 있어, 모두들 사부님과 단체사진을 찍으려고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부님을 초청했다. 수련생들이 사진을 찍기 위해 그룹을 만드는 동안 사부님께서는 수련생들 주위를 이쪽저쪽 밀려다니셨어도, 늘 매우 조용하셨다.

천진 학습반이 끝난 후, 우리 일행 다섯 명은 기차를 타고 산동성 동영(東營)으로 가기로 했다. 마침 설이 다가오고 있었지만 우리는 북경으로 돌아가지 않고, 간리(墾利)현으로 가서 사부님을 기다리기로 한 것이다. 동행한 한 노부인은 천목이 열려 수련하고 있었는데 신체 감각이 아주 예민했다. 그녀는 많은 것들을 볼 수 있었지만 이야기는 별로 하지 않았다. 그녀는 사부님의 법신께서 기차 앞에 앉아계시고, 우리 다섯 명은 사실 사부님의 호주머니 속에 앉아 있다고 말해주었다. 그녀는 사부님께서 그녀더러 우리를 잘 인도하라고 하셨다고 말했는데 매 정거정마다 사부님께 가서 보고를 드렸다.

간리현 초대소에 도착해 우리는 3층에 방을 얻었다. 설이 막 지났고, 사부님 일가족 3분과 사업일꾼들이 모두 도착해 1층에 투숙했다. 사부님께서는 간리에서 직장인들을 위한 저녁 학습반을 여셨다. 사부님께서는 수행원들에게 오전에 모두 함께 건물 앞에 모여 연공동작을 지도해주라고 당부하셨다. 그 기간에, 사부님께서는 대경(大慶)시에 가셔서 보고회를 한 차례 하셨는데, 우리도 사부님을 따라 다녀왔다.

어느 날, 우리 몇 사람이 황하(黃河)대교에 가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아직 정원을 떠나기 전에, 우리는 사부님께서 우리를 향해 빠르게 걸어오시는 것을 보았다. 우리는 사부님께 허스로 예를 표시했다. 사부님께서는 답례하시면서 옆에 있던 한 노인과 무언가 말씀하셨다. 사부님께서는 손에 붉은 종이를 들고 계셨다. 그 남자는 이것은 학습반 일정을 적을 종이라고 말했다. 나중에, 한 젊은 수련생이 사부님께서 방안에서 글씨를 쓰시는 것을 보았다. 그날 저녁 강당에 일정이 붙여졌는데, 사부님께서 쓰신 해서(楷書)였다.

어느 날 밤 11시경, 우리는 연공을 하지 않고 잠자리에 들었다. 한 꼬마제자가 천장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우리가 “무엇을 보고 있니?” 라고 묻자, 그는 사부님의 거대한 법신께서 건물 옥상에 앉아 연공을 하고 계신다고 했다. 우리는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연공하라고 점화해주신 것임을 깨달았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강의에 열중하고 필기하지 말며 아무것도 녹음하지 말라고 하셨다. 우리 몇 명은 앞줄에 앉아 있었다. 한 노년 수련생이 강의를 녹음하려고 했지만 하지 못했다. 그는 나와 같은 젊은 사람은 이렇게 하는 것이 허용될 것이라 생각하고 내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손에 녹음기를 들고 사부님과 바로 맞은편 줄에 앉아있었다. 물론 나는 아무것도 녹음하지 못했다. 나중에 우리는 포기했는데 사부님께서 우리를 염려하시어 강의에 열중할 것을 바라고 계심을 깨달았다.

한 농민부부가 백혈병을 앓고 있던 11세의 딸을 데리고 천진 학습반에 참석했었다. 처음에는 부모가 아이를 업고 왔다. 사부님께서 그녀의 신체를 조절해주신 후 소녀의 상태가 아주 호전되었다. 이번에 간리 학습반에 참가한 동안에 그녀는 주위를 뛰어다닐 수 있었고 사부님 따님을 포함한 다른 아이들과 놀고 있었다. 그녀의 입술은 흰색에서 붉게 변했고, 뺨도 마찬가지였다. 아이 엄마는 사부님께 정말로 감사를 드렸고 우리에게 이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마다 눈물을 흘렸다.

우리 모두 사부님과 대화를 하고 싶어 했다. 어느 날, 우리는 사업일꾼들과 상의해 사부님을 모시기로 했다. 우리는 재빨리 방을 청소하고 몇 가지 과일을 샀다. 곧, 사부님께서 오셨다. 사부님께서는 앉으시면서 둘러싸고 앉아 있던 우리를 향해 미소를 지으셨다. 일부 수련생들은 사부님께서 말씀하시는 동안 밖에 서 있었다. 사부님과 맞은편에 앉아 있던 한 여인은 사부님께 연공하면서 자신이 느낀 감수를 열정적으로 말씀드렸다.

나는 모든 사람들이 사부님 앞에 서면 마치 아빠와 함께 한 어린아이처럼 되는 것을 발견했지만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사부님의 강대한 에너지 마당 안에 앉아서, 우리는 너무도 행복하고 편안했으며 사상이 순정(純淨)해졌다. 정말이지 사부님 곁에 있으면 그 어떤 가족보다도 더 가깝게 느껴졌다. 우리는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고 모든 것을 망각했으며 행복함을 느꼈다. 사부님께서는 모두들 잘 수련하라고 고무 격려해주셨다.

좌담회가 끝난 후 우리는 사부님과 함께 단체사진을 찍었다. 한 소년이 문을 뛰쳐나가 자신이 만든 法輪(파룬) 그림을 가져 와서는 사부님 옆에 기대섰다. 사부님과 가진 이 좌담회는 우리에게 영원히 소중한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수련생들은 식당에서 식사를 해결했는데, 사부님과 사업일꾼들도 그곳에서 식사했다. 그 이후 우리는 음식을 낭비하지 않도록 더 주의했고 남은 음식은 늘 싸가지고 간다.

마지막 강의를 끝내신 다음 날, 사부님께서는 건물 앞에서 우리와 단체 사진을 찍으셨다. 간리학습반에 참가한 수련생들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북경 수련생들은 사부님과 단체사진을 찍은 후, 개인적으로 몇 명씩 소그룹을 이뤄 사부님과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사부님께서는 미소를 지으시며 우리를 기다리셨다. 오후에, 우리는 사부님께 작별인사를 드렸다. 사부님과 사업일꾼들이 차에 오르자 수련생들은 허스로 인사하며 사부님께서 떠나시는 것을 보았다. 앞에 언급했던 소년이 아주 멀리까지 차량을 뒤따라갔다. 아이 엄마가 사부님께서 아이의 신발을 가리키시는 것을 보았는데 신발이 벗겨져있었다. 아이는 그제야 차를 따라가는 것을 멈췄다.

국내에서 열린 사부님의 매 학습반은 내 기억에 늘 교란을 받았던 것 같다, 특히 1994년 상반기 이전의 학습반이 그랬다. 때로는 강당에서 아이들이 갑자기 울거나, 때로는 밖에서 금속이 서로 부딪치는 것 같은 잡음이 들렸으며, 또는 자동차 경적소리가 들렸다. 때로는 다른 의도를 품고 학습반에 참가하는 일부 사람들이 있었다. 사부님께서는 늘 교란을 제거하셨고 우리가 순조롭게 강의를 들을 수 있게 해주셨다.

나는 1994년 6월에 나는 정주(鄭州) 학습반에 참가했다. 처음에는 아주 작고, 낡고 초라한, 콘크리트 바닥으로 된 강당에서 학습반이 열렸다. 콘크리트 좌석이 강당 둘레에 만들어져 있었다. 나무로 된 테이블은 사부님께서 사용하셨다. 이튿날, 사부님께서는 오전과 오후 두 번에 걸쳐 강의를 하셨다. 나는 이것이 수련생들의 비용을 줄여주시려는 사부님의 배려라고 생각했다. 그날 밖에서는 계속 이슬비가 내렸다. 오후 1시 30분경, 사부님께서 동물부체에 대해 말씀하고 계셨는데, 갑자기 하늘이 검게 변하더니, 큰 우박과 빗방울이 지붕을 덮은 석면 타일을 내리쳤고 창문도 후려쳤다. 일부 지붕에 물이 샜고 갑자기 전기가 나갔다. 장내는 아주 어두웠다. 강단 앞에서 사부님과 몇 미터 떨어지지 않은 곳에 앉아있던 사람들도 사부님을 잘 뵐 수 없었지만, 사부님께서는 강의를 계속하셨다.

잠시 후 강단 탁상 바로 위의 지붕이 새면서 물이 탁상 위로 쏟아졌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과거 석가모니가 강의할 때 돌풍이 불어 촛불이 꺼졌지만, 그의 제자는 누구도 움직이지 않았다.” 우리는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것임을 알았다. 우리는 조용히 앉아서 사부님께서 교란하고 있는 마귀들을 어떻게 처리하시는지 바라보았다. 사부님께서는 한 동안 조용히 앉아 계셨고 강의 전에 수련생이 갖다 드린 생수병의 물을 드셨다. 사부님께서는 보통 강의 중간에 물을 드시지 않으신다. 그 다음 탁자 위에 올라가 앉으셨다. 한 동안 대수인을 하셨고 동작을 끝내시면서 병 안에 무엇인가를 집어 넣으셨다. 그 후 강의가 다시 계속되었다. 사부님께서는 강의가 그것들과 관련되자 이 마귀들이 문제를 일으킨 것이라고 간단히 말씀하셨다. 전기도 즉시 들어왔고 비는 거의 오지 않을 정도로 줄었다.

다음날, 우리는 새로 지은 정주(鄭州) 체육관으로 자리를 옮겨 강의를 들었다. 많은 사람들로 찬 스타디움의 장면은 매우 웅대했다. 나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어제 그렇게 작은 강당에 들어갈 수 있었다는데 놀랐다.

어느 화창한 날 사부님께서는 수련생들과 밖에 서 계셨다. 사부님께선 몸에서 광채가 났고 미소는 무한한 신뢰로 충만했다. 먼 곳을 바라보셨는데 표정이 아주 온화하고 상서로웠다. 나는 사부님께 다가가 가까이서 보았다. 사부님의 얼굴은 아주 부드러웠고 안색이 매우 고와 마치 얼굴에서 빛을 발하는 것 같았다. 아주 또렷하고 완전하게 보이셨다. 나는 사부님께서 이렇게 많은 수련생들이 성장한 데 대해 기쁨을 느끼셨을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호텔에 자리를 잡은 후, 어느 날 한 호텔 직원이 우리에게 우리가 오기 전에 키가 큰 중년 남자가 한 무리의 사람들을 이끌고 와서 호텔을 둘러보았다고 알려주었다. 우리는 그의 인물 묘사를 통해 틀림없이 사부님께서 우리의 안전을 위해 친히 이곳에 오시어 에너지 마당을 청리하신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우리는 아주 감동했다!

나는 제남(濟南) 학습반에서 다시 사부님을 뵈었다(어쩌면 정주 학습반 이전이었을지도 모른다). 사부님께서는 분명히 수척해 보이셨고 종종 얼굴이 심각하고 무겁게 보이셨다. 그분은 약간 피로해 보이셨고 갈색 재킷을 입고 계셨다. 당시 내가 들은 바로 사부님께서는 굉장한 압력을 받고 계셨고 아주 힘든 고초를 겪으셨다고 한다.

나는 법을 얻은 후 두 차례 아주 위험한 사고를 당했다. 두 번 모두 사부님께서 돌봐주셨기 때문에 안전했다. 첫 번째는 내가 정신을 다른데 팔고 길을 걷고 있었다. 갑자기 누군가가 소리를 지르는 것을 들었다. “죽고 싶어요?” 내가 올려다 보니, 1cm 굵기의 쇠 파이프가 내 앞으로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건축 노동자들이 막 근처에서 쇠 파이프를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대법을 얻어 수련하지 않았더라면 그 쇠 파이프가 나를 꿰뚫었을지도 모른다. 두 번째는, 자전거를 타고 가고 있는데 내 앞 아주 먼 곳에 큰 나무토막을 실은 트럭이 가는 것이 보였다. 그런데 별안간 내가 그 나무토막을 친 것이다. 나중에 나는 트럭이 서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자전거에서 떨어졌는데, 다행히 내가 헬멧을 쓰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얼굴이 변형되었을 것이다. 나는 단지 약간 어지러움을 느꼈고 머리를 약간 흔들자 곧 괜찮아졌다. 사실 내가 모르는 난(難)을 사부님께서 나를 위해 얼마나 해결해주셨는지 나는 모른다.

내가 알던 한 동수에게 세 살 된 딸이 있었다. 한 번은 사부님께서 만년필로 소녀의 얼굴 눈썹 가운데를 가볍게 건드리자, 어린아이의 천목이 열렸다. 그녀는 종종 그녀의 엄마에게 수련에 정진하라고 촉구한다.

나는 1994년 장춘 오전 학습반에 참가했다. 우리는 또 저녁 반에도 참가하고 싶었지만 표가 다 팔렸다. 우리는 강의장소인 명방궁 주변을 거닐며 떠나고 싶지 않았다. 사부님께서 강의를 시작하신 후 우리는 사부님 말씀을 듣기 위해 문틈에 귀를 댔다. 곧 사업일꾼 한 명이 나오더니 우리에게, “들어오세요!” 라고 말했다. 사부님께서는 너무나도 친절하셨다!

학습반이 끝난 후, 사부님께서는 각지에서 온 수련생들과 사진을 찍으셨다. 갑자기 나는 사람들이 손뼉을 치는 것을 들었다. 누군가 내게 한 노년 부인이 휠체어에서 일어설 수 있었다고 말해주었다.

사실 사부님께서는 직접 학습반에 참가한 몇몇 수련생들의 병을 치료해주셨고 때로는 그들이 알지 못하게 고쳐주셨다. 그런 예는 수없이 많다. 내 주변에서 늘 함께 다니던 두 아주머니가 있었는데 일 년 내내 침대에 누워있었다. 그녀들이 법공부를 하고 연공하자 곧 회복되었다. 그녀들은 지금 정상인들보다 더 건강하며 사부님을 따라 여러 차례 학습반에 참가했다. 가족들도 그녀들이 대법의 혜택을 받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 자신도 연공을 시작한 후, 가슴앓이 및 월경불순이 사라졌다. 나는 갈수록 좋아졌고 정력이 충만해졌다.

내 기억에 장춘 마지막 강의에서 사부님께서는 “당신들은 장래의 주력군(主力軍)입니다.”라고 말씀하셨다.

사부님께서는 일찍이 수련생들이 늘 학습반만 따라다녀선 안 되며 집에 돌아가 착실하게 수련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당시 진수(眞修)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고 최선을 다해 사부님의 모든 학습반에 참가하리라 생각했다. 얼마 후 나는 광주 학습반에 갔다. 광주 학습반에서는 때로 강의가 끝난 후 호텔에 돌아가서도, 사부님의 에너지 마당이 너무 강해서 배고픔을 전혀 몰랐다. 나는 사부님과 따님이 광주뿐 아니라 제남에서 라면으로 식사하시는 것을 보았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사부님께서 1994년 한 해 동안 아주 빨리 노쇠해지셨다고 느낀다. 모두 중생을 위해 감당하셨던 것이다!

매번 학습반에 참가하는 과정 중에 나 자신도 상상하지 못한 곤란들이 많이 있었지만 사부님께서는 모두 무형 중에 아주 세부적인 것까지도 세밀하게 배치해주셨다. 그분은 내가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는 것까지 포함하여, 많은 문제들을 해결해주셨다. 예를 들면 정주 학습반이 끝났을 때, 나는 제 시간에 기차표를 사지 못했다. 나는 기차가 막 출발하기 직전에 역으로 달려갔다. 나는 한 사람이 창구에서 표 한 장을 반납하는 것을 보고 그에게서 표를 샀다. 내가 기차에 탔을 때 나의 좌석은 내가 아는 수련생들 바로 가운데 있었다.

또 내가 윈칭(雲靑) 기차역에 서서 어디다 숙소를 잡을지 걱정하고 있을 때, 버스 뒤 창문으로부터 아는 사람이 손을 흔드는 것이 보였다. 내가 처음 학습반에 참가하기 위해 다른 도시에 갔을 때, 나는 어디에 머물 것인지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학습 전에 한 수련생이 오토바이를 타고 와서 내게 호텔 찾는 것을 도와주었다. 경제상태가 아주 빠듯했지만, 나는 늘 학습반에 필요한 돈을 마련할 수 있었다. 다른 사람에게 돈을 빌릴 경우에도, 돌아온 후 곧 돈을 갚을 수 있었다.

연공장에서 자료를 배포될 때 나는 늘 그것을 받을 수 있었고 내가 듣고 싶을 때 테이프를 언제든지 곧 빌릴 수 있었다. 초상적인 대법이 나를 용해하여 그곳에 받아들였는데 정말로 신기했다.

막 법을 얻었을 그 때를 회상해보면, 나는 사부님의 보호와 동수들의 도움에 비할 수 없는 행복을 느낀다! 이 글은 내가 경험한 것의 10분의 1도 표현하지 못한다. 나는 사부님의 거대한 감당과 자비하신 구도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스스로 더욱 잘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이 글을 쓴 이유는 나 자신을 격려함과 아울러 여러분들과 함께 나눠 동수들이 모두 잘하라고 격려하기 위해서이다.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6/8/2/134585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