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대륙 대법제자
【명혜망 2006년 7월 3일】나는 어린 시절부터 나는 독서를 즐겼다. 소녀시절 에는 손에 들어오는 책이면 닥치는 대로 다 읽었다. 15세인가 16세였을 때 내가 이해하지도 못하는 ‘자치통감’까지도 읽었다. 시골로 보내진 후 건강이 나빠졌다. 당시 사람들은 여전히 무료진료소를 찾았기 때문에 나도 도시로 돌아오자 매 병원을 찾아다녔고 조상에게서 물려받았다는 고인들의 민간비법 등을 포함한 모든 것을 시도해보았다. 심지어 무당에게 간 적도 있다. 최후에는 나 자신이 중의학을 공부하게 되었고 ‘본초강목(本草綱目), ‘황제내경(黃帝內經)’도 공부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딸의 알레르기를 고쳤는데, 그것은 내가 사는 성(省) 수도의 유명하다는 양방병원과 한방병원에서도 고치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나 자신의 병은 여전히 고치지 못했다. 그러자 나는 기공을 시도해보았다. 각종 유명하다는 기공을 거의 전부 섭렵해보았지만, 효과가 없었다.
마치 우연처럼 1994년 나는 내가 사는 도시에서 사부님의 학습반에 참가하게 되었다. 처음 세 강의를 들은 후, 내 인생에서 풀지 못했던 난제들, 그리고 여러 책들을 읽는 동안 축적되었던, 모든 의문들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마치 갑자기 내 마음의 문이 활짝 열린 것 처럼 마음이 아주 넓고 환해짐을 느꼈고 아주 많은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실제로 첫 두 학습반에서 나는 잠을 잤다. 하지만 나의 귀는 아무것도 놓치지 않았고 사부님께서 강의를 끝내시면 나도 잠에서 깨어났다. 나는 부끄러웠고, 이것은 아주 예의가 바르지 못한 것이라 생각했다. 나중에 사부님의 말씀을 듣고 나서야 이것은 사부님께서 나의 머리를 청리해주신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섯 째 학습반의 마지막 날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병이 없는 상태가 어떤 것인지 우리가 강당을 나간 다음 알게 될 거라고 말씀하셨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너무 힘이 나서 자전거도 타고 싶지 않았다. 내내 어린 시절 이후로 느껴보지 못했던 일종 경쾌함을 느끼면서 자전거를 옆에서 밀며 걸었다. 발걸음도 아주 가벼워 걷는 것이 즐거웠다. 나는 점점 더 빨리 걸었다. 나중에 자전거에 올라탔을 때는, 마치 전혀 페달을 밟을 필요도 없는 것 같았다. 언덕이었는데도 자전거는 그냥 혼자서 위로 굴러 올라갔다. 나는 너무도 격동되었다. 나는 내가 찾았다는 것을 알았고 이를 대단히 소중히 여겼다.
1994년 말, 나는 사부님께서 광주(廣州)에서 마지막 학습반을 여신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생각했다. ‘나는 가야한다. 사부님께서 우리 도시에 오셨기 때문에 나는 그런 소중한 법을 너무 쉽게 얻었다. 바로 내가 법을 찾고자 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나는 광주로 가야한다.’ 사실 나는 정말로 내가 얼마나 법을 보배처럼 생각하고 존중하는지 보여주고 싶었고, 또한 수련하려는 나의 결심을 보여주고 싶었다. 광주로 가는 길에, 전에 내가 앓았던 병들이 다시 나타나는 것처럼 보였다. 때로는 서있을 수조차 없었다. 그러나 사부님께 도움을 청하자, 나는 곧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내가 사부님의 학습반에 들어가서야, 이것은 사부님께서 내가 도착하기도 전에 이미 우리의 신체를 조정해주기 시작하셨다는 것을 알았다.
어느 날 학습반이 시작되기 전, 사부님께서는 우리가 앉아 있는 바로 20미터 떨어진 곳에서 한 직원과 말씀을 나누고 계셨다. 그런 다음 우리 곁을 지나가셨다. 사부님께서는 친절하게 웃으시며 우리를 바라보셨다. 대여섯 차례 사부님의 학습반에 참가했다는 한 노수련생이 존경의 표시로 두 손을 마주하고 허스(合十) 자세로 사부님께 인사를 드렸다. 나는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멍하니 사부님을 바라보고 있는 사이에 사부님께서는 고개를 끄덕여 그녀의 인사에 미소로 답하셨다. 사부님께서 지나가신 후에야 나는 갑자기 “깨어났다.” 그리고 크게 후회했다. ‘나는 왜 사부님께 인사를 드리지 않았는가?’ 나는 즉시 두 손을 포갠 채 사부님의 등 뒤에 대고 허스 자세를 취하고 “사부님, 안녕하십니까!”라고 속으로 조용히 말했다. 갑자기 사부님께서 뒤를 돌아보시더니 내게 미소를 지으시며 고개를 끄덕이셨다. 나는 마음속으로 한 차례 격동이 일어났는데, 정말이지 말로는 표현할 방법이 없다.
나는 사부님께서 한 번 쳐다보신 것으로 다음 날 아침 내게 기적이 일어나리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나는 어릴 때부터 책을 너무 많이 읽어 시력이 좋지 않았다. 1.5에서 0.5~0.6으로 나빠졌고 거기다 난시까지 있었다. 나는 사부님의 학습반에 참가하기 전에, 한 쪽은 150도 그리고 다른 한쪽은 300도 그리고 난시가 각각 150도인 안경을 맞추었다.
그 날 아침에 잠을 깬 후, 나는 평소 습관대로 베개 옆에 놓아두었던 안경을 집어 들었는데, 왼쪽 안경알의 가운데가 깨져있는 것을 발견했다. 어쩌다 이런 일이 발생했는가 생각하고 있는데, 사부님의 학습반을 열 번이나 참석했다는 한 동수의 어린 딸이 내게 말했다. “사부님께서는 당신이 안경을 쓰는 것을 원하지 않으세요.” 아무리 쓰고 싶어도 가운데 금이 간 안경을 쓸 수는 없었다.
어린 소녀의 말을 반신반의하면서, 나는 안경을 호주머니에 넣고 아래로 내려갔다. 나는 맡겨둔 물건을 찾기 위해 호텔 데스크로 갔다. 우선 호주머니에서 영수증을 꺼내기 전에 안경이 필요했다. 안경을 꺼냈는데, 오른쪽 안경알 가운데도 금이 가 있는 것을 보고 나서 나는 아연해지고 말았다. 내가 위층에서 걸어 내려오는데 단 5분도 걸리지 않았고, 안경에 금이 갈만큼 누구와 심하게 부딪친 것도 아닌데 어째서 다른 쪽 안경까지 금이 갔을까? 이때에야 나는 이것은 사부님께서 내게 안경을 쓰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틀림없다는 확신이 왔다. 달리 이야기하면, 내 시력이 정상으로 돌아왔고 이제 안경이 필요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검사를 통해 내 시력이 정말 정상으로 돌아왔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이렇게 해서 나는 오랫동안 써왔던 안경을 벗어버렸다.
사부님의 학습반에서 나는 대법이 진실하다는 것을 경험했다. 나는 또한 불법(佛法)의 무변(無邊)함도 느꼈다. 7년의 박해 동안, 내가 사부님의 학습반에 참가했던 경험을 되새길 때마다 나는 더욱더 견정해졌다. 7년이라는 박해 속에서 가족에 대한 정, 모든 것을 잃는 어려움, 그리고 박해로 죽을 수도 있는 상황도 있었지만 그 어떤 것도 사부님과 대법에 대한 나의 믿음을 흔들지 못했다.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6/7/3/13206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