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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소중한 기억(대만)

글 / 대만대법제자

【명혜망 2006년 3월 10일】 사부님께서는 1992년 우주 대법을 일반인들에게 공개하셨다. 1995년 4월 파룬따파(法輪大法)가 공식적으로 대만에 전해졌고, 나는 1995년 10월말에 대법을 얻는 행운을 가졌다.

* 베이징에서 열린 국제 심득교류회에 참석하다

1996년 10월 말, 나는 대만 수련생 20여 명과 함께 5박6일 간의 국제심득교류회에 참석하기 위해 베이징으로 갔다. 그때 사부님에 대한 인상이 매우 깊었고 또한 잊을 수 없는 단체 법공부(나중에 대만에서도 같은 형식으로 법공부를 했다)에 처음으로 참석했다. 그 전에 수련을 한 이후 한 번도 사부님을 직접 뵐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책에 있는 사부님의 사진만 보았을 뿐인데, 내가 처음 사부님 사진을 뵈었을 때의 인상은 매우 자상하게 보이셨다.

북경 심득교류회에 갔을 당시 모두들 법공부가 깊지 않았기 때문에 내심으로는 수련이란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도대체 좋은 것인지 아니면 나쁜 것인지? 몰랐다. 우리는 또한 이 한 부의 법이 도대체 正인지 아니면 邪인지 우리 스스로 조사하고 있었다. 사부님께서는 《중국 법륜공》에서 말씀하셨다,

“우리는 당신들에게 그처럼 많은 것을 주지만, 당신에게서 한 푼의 돈도 받지 않는다.”

나는 사회에서 말하는 正과 邪와는 완전히 같지 않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흔히 재물을 모으고 색을 밝히며 진실을 말하지 않는 그런 것을 우리는 삿되다고 말한다. 그러나 사부님께서 법에서 말씀하신 것은 우리더러 수련하여 반본귀진하는 것을 포함하여 어떻게 사람이 되고 어떻게 일을 처리하는가에 있어 확실히 가장 바른 것이었다.

법을 얻은 초기에 우리는 단지 5가지 공법만 연마할 줄 알았지 어떻게 닦아야 하는지도 몰랐다. 끊임없는 법공부를 통해 우리는 점차적으로 수련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북경에 갈 때, 사실 우리는 사부님을 뵙기를 바라는 마음을 갖고 갔다. 도착한 후 우리 중 한 사람이 연구회 수련생에게 우리가 사부님을 뵐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그들은 사부님께서는 중국에 계시지 않는다고 알려주었다. 이 말을 듣고 우리는 곧 사부님을 만나 뵈려는 마음을 내려놓았고, 현지 수련생들이 우리에게 배치해준 심득교류 활동에 참가했으며 집도 방문했다.

*처음으로 단체 법공부에 참가

처음 북경에 왔을 때, 비행기에서 내려 보니 북경 수련생들은 두터운 옷을 입고 있었다. 그들은 우리가 북경의 추운 날씨에 적응하지 못하여 혹여 동상이라도 걸릴까 우려하여 이미 여벌의 옷을 챙겨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을 처음 보는 순간 나는 마치 우리가 전부터 알고 지냈던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가족보다도 더 친밀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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팡쩌쉬안(方澤軒) 레스토랑 옆 뜰에서의 단체 법공부와 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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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교(華僑) 호텔 회의실에서의 단체 법학습과 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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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대사(戒臺寺) 연공

북경에 도착한 둘째 날과 셋째 날에는 모두 심득교류회에 참석했는데 단지 회의장만 변경되었다. 돌아오기 전 이틀 전에 연구회에서 모든 사람들을 집합시켜 함께 법공부와 교류를 진행했다. 그것은 내가 수련을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참가한 독서회(讀書會)였다. 우리가 돌아오려고 할 때 연구회에서 대만 수련생들을 위해 준비해 온 《전법륜》, 파룬 배지, 법신상, 현수막과 다른 자료들을 준비해 주었다. 우리더러 대만에 가져가서 파룬궁을 널리 알리는데 사용하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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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베이징에서 열린 국제 法輪大法 심득교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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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베이징에서 열린 국제 法輪大法 심득교류회

북경에 있으면서, 우리는 연속 며칠동안 연구회 임원들을 포함하여, 사부님께서 일찍이 강의에서 이름을 언급하셨던 여러 수련생들을 만났고 계속해서 몇 사람을 더 만났다. 당시 나는 그들을 숭배하는 심태가 생겼다(나중에 법공부를 통해 이런 마음들이 점차 제거되었다). 그들은 모두 매우 친절하고 상냥했으며 마치 한 가족처럼 너와 나의 구별이 없었다. 한번은 어느 북경 수련생이 말했다. “당신들 대만에서 온 공우(功友)들은 많은 동작을 부정확하게 합니다.” 그리고는 이 때문에 우리의 동작을 시정해주기 위한 시간을 따로 마련해주기도 했다. 북경에 머물던 며칠 동안, 모두들 아주 즐겁게 지냈다. 마지막 날 연구회 임원이 말했다. 내일 당신들이 대만으로 돌아가야 하니 마지막 저녁은 모두들 지단 공원 안에 있는 팡쩌쉬안 식당에서 같이하자고 했다.

당시 들리는 바에 의하면 북경에서 간혹 대법을 간섭하고 교란한 일부 사건이 발생했다고 하는데 만찬 때 밖에 있던 사람이 와서 길에 많은 공안들이 깔렸다고 말했다. 식사를 하면서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번 여행은 모든 것이 다 좋은데 단지 사부님을 뵙지 못하는 것이 유감이구나.’

그런데 대략 7시에서 8시경, 갑자기 우뢰 같은 박수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사부님께서 긴 외투를 입으시고 우뚝 서 계셨다. 사부님께서는 아주 젊게 보이셨으며 체격이 건장함에도 피부는 아주 섬세하셨고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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팡쩌쉬안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던 도중 박수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리니 사부님께서 계셨다

* 하루 아침에 사부님을 친견하다

우리는 레스토랑의 앞과 뒤 두 군데 홀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사부님께서는 중간에서 걸어오셨다. 나는 마침 그날 복도와 가까운 자리에 앉아있었다. 일부 수련생들이 사부님과 악수하는 것을 보고, 나도 아무 생각 없이 즉시 일어났다. 나는 아주 흥분한 상태에서 말했다, “사부님, 당신께선 너무나 노고가 크셨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나와 악수를 하시면서 말씀하셨다, “좋아, 좋아, 좋아.” 그 순간 나는 매우 격동됨을 느꼈고 다른 수련생들 역시 줄곧 박수를 치고 있었다. 나는 줄곧 사부님의 손을 놓고 싶지 않았는데 당시에는 이것이 불경(不敬)하거나 실례라는 등의 문제는 생각지도 못했다. 잠시 후 사부님께서는 옆에 있는 홀로 걸어가셨고, 식사를 끝낸 수련생들과 이야기를 나누시면서 여러분들이 식사를 다 끝낸 후 다시 오시어 말씀을 하시겠다고 하셨다. 우리는 10분도 안 되어 식사를 끝내고 재빨리 테이블과 의자들을 정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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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 좋게 사부님의 설법을 직접 듣다

연구회 수련생이 중국대륙 수련생들에게 앞자리 열 줄은 해외 수련생들에게 양보하라고 알렸기에 우리는 사부님과 가까이 앉아 설법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사부님께서는 앞에 서신 채 오버코트를 옆에 내려놓고 설법을 시작하셨다. 사부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발음이 정확하고 음성이 부드러웠으며 듣기에 아주 편안했다. 또한 마치 식구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처럼 친절하게 들렸는데 그날저녁 사부님께서는 약 한두 시간을 말씀하셨다.

다음 날 대만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우리 몇몇 수련생들이 함께 모여 사부님께서 하신 말씀을 기억해 내려고 애썼지만, 아무도 완전히 기억해내지 못했다. 이것은 우리가 처음으로 사부님의 설법을 들은 것이었지만 우리는 사부님의 설법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모르고 있었다. 우리가 북경에 가기 전에는 《정진요지》마저도 모두 북경 수련생들이 우리에게 한편씩 전달해주었고, 우리는 이를 다시 복사하여 매 수련생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러나 나를 포함한 일부 수련생들은 사부님의 경문을 소중히 여기지 않았고 읽은 후 아무 데나 놓아두었다. 그런데 이번 북경 여행을 한 이후 우리는 비로소 대법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다. 법공부와 연공을 포함하여 이전보다 더욱 소중히 여기고 더 중시하게 되었다. 대만에 돌아온 후 우리는 단체법학습 등, 북경제자들이 교류하는 형식을 따랐고 대만에서도 서서히 발전시켜 나갔다.

*사부님께서 대만에 오시어 설법하시다

이듬 해 사부님께서 대만에 오셨다. 당시 나는 갑자기 회의 통지를 받았고 모두들 저녁 6시 무렵 대만 텔레비전 방송 회의실에 도착했다. 그때까지는 아무 일도 없었지만 8시가 좀 넘어 사부님께서 걸어 들어오시자 모두들 너무 기뻐 다 함께 일어나 우뢰와 같은 박수를 쳤다. 그것이 우리가 타이페이에서 사부님을 처음으로 뵌 것이었다. 그날 저녁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한 차례 설법을 해주셨고 우리는 설법이 끝난 후 각지 수련생들과 새벽 2시까지 서로 연락을 했다.

다음 날인 1997년 11월 16일, 사부님께서 타이페이 시 싼싱(三興) 초등학교에 직접 오시어 설법을 하셨는데, 약 1,000명이 참석했다. 나흘 후인 11월 20일 오후, 사부님께서는 타이중 시에 있는 국립 우펑 농공 직업학교에서 또 한 번 설법을 해주셨는데 약 4, 5백 명의 수련생들이 참석했다. 사부님께서는 아주 늦도록, 저녁 7시까지 말씀해 주셨다. 우리는 또 사부님과 저녁식사를 하는 영광을 가졌다. 다음 날 우리는 사부님을 배웅하러 공항에 갔다. 공항에서 출국하시는 길에 사부님께서는 시간을 이용해 동행했던 수련행들에게 설법을 해주셨다. 그때 나는 사부님께서 하신 말씀에 대해 알 듯 모를 듯했다.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설법해주시는 동안, 한 수련생이 카메라를 들고 사부님과 사진을 찍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사부님께서 보시고는 주동적으로 우리 다 함께 사진을 찍자고 하셨다. 아울러 빛이 비교적 잘 드는 좋은 장소를 선택해주셨다.

뒤돌아 자신이 법을 얻은 과정을 생각해보니, 내가 수련을 시작한 처음에 반신반의하던 것에서부터 견정하게 수련하게 된 지금에 이르기까지 10년이 넘게 흘렀다. 나는 내가 금생에 사부님을 따라, 이 우주대법을 얻을 수 있었다는 것에 대해 너무나 행운하다는 것을 깊이 느낀다. 대법은 나의 관념과 가정생활을 바꾸어놓았으며 또한 내게 건강한 신체를 주었다. 지난 몇 년 동안 나는 늘 사부님의 은혜를 기억하면서, 매일 매일 법공부와 연공을 하고 사부님께서 요구하신 세 가지 일을 잘하기 위해 최선을 다 하고 있다. 아울러 사부님을 도와 정법을 하겠다는 사전(史前)의 서원(誓願)을 잊지 않고 있다.

원문위치: http://minghui.ca/mh/articles/2006/3/10/122426.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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