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대만대법제자
【명혜망 2006년 2월 20일】1997년 11월,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께서 대만에 오셨다. 대만 대법제자들은 운이 좋아 사부님께서 타이베이 싼싱(三星) 초등학교와 타이중 우펑(武峰) 농공학교에서 각각 하신 두 차례의 설법을 직접 들을 수 있었다. 당시 대만 대법제자들은 약 2천여 명에 불과했지만 9년 동안 널리 전해져 지금은 이미 보수적인 통계를 잡더라도 이미 4,5십만 명이 파룬궁을 수련하고 있다. 이중 많은 사람들은 그 두 차례의 설법에서 법을 얻었다. 지금 당시의 몇 가지 일들을 회억해보면 사부님께서 중생을 위해 치르신 무사(無私)한 감당과 고심한 배치를 더욱 깨달을 수 있다.
1997년 11월 17일 사부님과 타이베이 수련생이 찍은 사진
사부님께서는 모든 일을 조용하게 처리하신다. 그때 일부 아태지역 수련생들은 모두 사부님의 행적을 알고는 사부님을 따라와 설법을 듣고자 했다. 어떤 홍콩 동수는 꿈에 많은 상서로운 구름과 신선들이 모두 대만으로 가는 것을 보고는 전화로 사부님께서 대만에 가시지 않았는지 물었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사부님께서는 금요일 저녁에 대만에 도착하셨는데 수련생들에게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하여 많은 사람들은 사부님께서 도착하셨다는 소식을 몰랐다. 사부님께서는 대만에 도착하시자마자 일부 노(老)수련생들에게 설법을 하셨다. 사부님께서는 회의장 커튼을 예로 들어 상하로 비유하시면서 정법의 의의를 설명하셨다. 우리는 그때 처음으로 사부님께서 자신이 정법을 하기위해 오셨다는 말씀을 들었다.
하루를 사이에 두고 사부님께서는 싼싱(三星)초등학교에서 설법을 하시기로 했다. 이 결정이 임시로 내려진 까닭에 모두들 집에 돌아가서 밤새도록 전화연락을 통해 한 명 한 명의 수련생들에게 이 소식을 알렸다. 이렇게 당신이 몇 명에게 알리고 나도 몇 명에게 알려 그날 법회장소에는 약 2천명의 수련생들이 설법을 들으러왔다. 설법을 마치시자 사부님께서는 강단에서 내려오시어 수련생들의 손을 하나하나 잡아주셨다. 많은 수련생들이 통지를 받지 못했으므로 여러 사람들의 요구로 사부님께서는 타이중 우펑 농공학교에서 한 차례 설법을 더 해주시기로 하셨다.
타이중에서 두 번째 설법을 하실 때는 약 칠-팔백 명이 참가했다. 어떤 수련생이 회억하면서 한 말에 따르면 당시 그녀는 온몸이 병투성이였는데, 그녀의 병을 봐주던 기공사가 그녀를 데리고 설법을 들었다고 한다. 사부님께서 두 차례 그녀의 주변을 지나가셨고 그녀는 두 번이나 사부님의 손을 잡고 물었다고 한다. “사부님, 저와 같이 이런 신체로 수련을 할 수 있습니까?” 그때마다 사부님께서는 자상하게 “할 수 있다.”고 대답해 주셨다. 이렇게 하여 그녀는 그날부터 확고하게 수련을 견지했고 온몸의 병이 사라져 날아갈 듯이 가벼워졌다.
당시 많은 사람들은 막 법을 얻었고 어떤 사람은 아직까지 법을 접촉하지도 못했다. 때문에 법에 대한 이해는 완전히 희미한 상태였다. 어떤 사람은 “어떻게 하면 편안하게 살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하면 하는 일마다 뜻한 대로 할 수 있습니까?” 라고 물었다. 사부님께서는 웃으시면서 이런 세속적인 문제들을 포함한 모든 질문을 다 해답해주셨다. 사부님께서는 말씀을 아주 잘 하셨는데 언제나 아주 쉬운 말로 매우 깊은 법리를 해석해주셨다. 사부님께서 강연을 너무 잘하셨기 때문에 몇 시간이 지났음에도 수련생들은 모두 정신을 집중하고 들었다. 당시 대만 경찰당국에서는 많은 경찰을 동원했음에도 몇 명의 여인을 강간하고 살해한 흉악범들을 체포하지 못했었는데 사부님께서 오신지 이틀 만에 결국 체포된 일이 있었다. 어떤 수련생이 이 사건이 사부님께서 대만에 오신 것과 관련이 있는가를 여쭈어 봤더니 사부님께서는 조용히 “불광이 널리 비추니 예의가 원명하도다”라고 대답하셨다.
셋째 날 사부님께 고궁 박물관을 참관해보실 것을 청했다. 사부님의 이번 걸음을 헛되이 하지 않으려고 수련생들은 해설원을 배치하느라 시간을 지체했다. 사부님께서는 항상 동작이 빠르셨고 시간을 낭비하지 않으셨다. 해설원이 오지도 않았지만 사부님께서는 수련생들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가 참관하셨다. 매 하나의 문물에 대하여 사부님께서는 손금 보듯이 환하게 수련생들에게 그것의 유래를 해설해주셨다. 당시 제작할 때의 작용과 어떻게 감상할 것인가? 등인데 수련생들은 아주 재미있게 들었다. 마치 처음으로 고궁을 참관하는 것 같았고 그제서야 그 문물들을 보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기억나는 것은 고궁 박물관 전문가들도 모르는 황금색 뼈를 보시고 사부님께서는 그것이 용(龍)의 뼈라고 하시면서, 수련생들에게 천목으로 미시적인 것을 보면 곧 그 형상이 나타난다고 말씀하셨다. 고궁을 나오기 전에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많은 현대 화들은 변이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문을 나서자, 원래 고궁의 다른 한쪽에는 현대화를 전시하고 있었다. 그 후에야 우리는 사부님께서는 일체를 알고 계시며, 천지간 사물의 내원과 자초지종을 누구도 사부님같이 똑똑히 잘 알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사부님께서는 비행기에서 내리시자마자 곧 일월담(日月潭)과 대만 각지를 돌아보시겠다고 하셨기에 우리는 사부님께서 관광하러 오셨다고 생각했었다. 나중에야 우리는 사부님께서 당시에 대만을 위해 애써 하신 일체를 분명히 알게 되었다. 당시 우리는 타이베이에서 출발하여 대만 동부와 남부를 돌아 타이중으로 와서 일월담으로 갈 예정이었다.
우리가 이란(宜蘭)을 출발할 때 기름통에는 휘발유가 절반밖에 남지 않았지만 가는 길에 기름을 보충할 수 있다고 착각하여 이란에서 휘발유를 가득 채우지 않았다. 그런데 차가 비교적 무겁고 산길을 달려야 했으므로 기름 소모가 아주 많았다. 기름이 바닥날 때가 되어서야 한 마을을 발견할 수 있었지만 온 마을을 다 돌았어도 주유소를 찾을 수 없었다. 사부님께서는 단지 “석유회사에서 왜 주유소를 더 설치하지 않을까?”라고 한마디만 하셨다. 이때 한 마을 주민을 만나 그에게 주유소가 어디에 있는지 물으니 그는 이 길을 지나가는 사람들은 이란 주유소에서 기름을 가득 채워 화롄(花蓮)까지 가기 때문에 이 길에는 주유소가 없다고 대답했다. 한번의 소홀함으로 사부님께서 산속에 머무르셔야 한다고 생각하니 후회막급이었다. 이때 사부님께서는 눈을 감고 계셨다. 잠시 후 우리가 머리를 돌려 보니 갑자기 밑바닥에 있던 바늘이 기름이 가득 찬 위치에 가 있는 것이었다.
사부님께서는 무엇이나 다 알고 계셨지만 그러나 드러내시지 않으셨다. 가는 길에 어느 쪽으로 가야할지 몰라 망설이고 있으면 사부님께서는 중요한 고비에 우리에게 어느 길로 가라고 알려주셨다. 우리는 원래 차 천장에 있던 창을 열어놓아 하늘과 바다에서 많은 불, 도, 신들이 출현한 것을 보았다. 사부님께서는 창문을 닫으라고 하셨다. 일월담에 도착하니 저녁 9시가 넘어 밖은 어두웠고 아무 풍경도 볼 수 없었다. 우리는 이튿날 아침에 사부님을 모시고 부근의 명승지로 가려고 생각하고 식당에 가서 숙소를 정했다. 이번 여행에서 주차비와 식사비용을 사부님께서 모두 지불하셨기 때문에 수련생들은 자연스럽게 신용카드로 사부님의 숙박비를 결재해드리고자 했다. 그러나 생각지도 않게 신용카드를 카운터에 막 넘겨줄 때 뒤에서 커다란 사람이 나타나 수련생을 제쳤다. 사부님께서는 어느새 그 신용카드를 손에 쥐시고는 “이것은 내가 보관하고 있다가 내일 돌려주겠다.”라고 웃으면서 말씀하셨다.
이튿날 아침 우리는 사부님께 일월담을 유람한 후 문무묘(文武廟)을 참관하고 사오부족(邵族)을 보러가자고 청을 드렸다. 그러나 사부님께서는 모두 가지 않겠다고 하시기에 그럼 차를 타고 호수를 한 바퀴 도는 것도 좋다고 했으나 역시 거절하시는 것이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이제 갑시다!” 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모두 어리둥절해졌다. 천리를 마다않고 달려온 것은 이곳 풍경을 감상하려던 것이 아니었던가? 어제 저녁에 늦게 도착했는데 하루 밤 자고나서 오늘 아침에 급히 가시다니? 어쨌든 사부님의 말씀이 있으셨기에 우리는 그저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떠날 준비를 할 때 아내가 밖에 서서 기다렸는데 사부님께서 종이쪽지를 하나 주시는 것이었다. 펼쳐 보니 위에는
“한 늪의 맑은 호수
노을빛 아름답게 비껴드누나
몸은 난세 중에 있거니
홀로 아름답기 참으로 어렵네”
당시에 나는 일월담을 묘사한 이 시의 뒷부분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삼년 후 대만에서는 9.21 대 지진이 발생했다. 그 이튿날 나는 전체 대만의 대법제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여러 사람들이 무사한 것을 보고 일월담을 떠나실 때 사부님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일월담의 이 神은 본래는 좋았지만 이곳의 개발을 지나치게 했기 때문에 그 신을 놀라게 했다. 그때 사부님께서는 3년 후 대지진이 발생할 것이며 당신께서 무슨 일을 했다는 것을 말씀하지 않으셨다. 원래 사부님께서 이렇게 고생스럽게 대만을 한 바퀴 돌아 일월담에 오신 것은 관광을 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대만의 마당을 청리하러 오신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전에 일월담은 대만의 명맥을 건드리기 때문에 만일 붕괴되면 대만의 모든 생태와 식물에 아주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사부님께서는 대만에서 일주일을 체류하셨는데 우리는 행운이 있어 사부님을 모시고 대만을 한 바퀴 돌았다. 일주일 동안 우리는 사부님의 많은 신통을 목격하였다. 사부님께서 오실 때 누구도 몰랐고 갈 때도 수련생들이 알지 못하게 하셨다. 표현하신 것은 곳곳마다 사람들을 위하는 일면이셨고 우리에게는 가장 좋은 몸소 행하시는 가르침[身敎]을 남겨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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