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최근 수련에서 약간의 체득

글/ 허베이 대법제자

[밍후이왕] 몇 년간 나는 아침 3시 40분에 일어나 연공을 견지했다. 그러나 5장 공법을 할 때 자주 졸리고 특히 후반 30분은 대부분 잠을 잔다. 나는 이렇게 가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연공을 하지 않은 것과 같고 효과가 없다. 아침 6시 발정념을 한 후 다시 잠을 자게 되고 8시쯤에 다시 일어난다. 자신이 일어났다가 다시 잠을 자는 것은 안일심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잠을 다시 자지 않으면 낮에 졸린다고 생각했다. 마음속으로 아주 모순됐고 이런 상태는 몇 년간 지속됐다.

1. 일어났다 다시 자는 습관을 없애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우리의 공법은 일반적인 공법처럼 흔들거리거나, 흐리멍덩하거나, 정신이 나간 것처럼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공법은 모두 당신이 명명백백하게 당신 자신을 수련할 것을 요구한다. 어떤 사람은 늘 말한다. ‘스승님, 저는 눈을 감기만 하면 흔들거립니다.’ 나는 꼭 그런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당신은 이미 자신의 主意識(주이스)를 놓아버리는 습관을 양성했는데, 당신이 눈만 감으면 자신의 主意識(주이스)를 느슨하게 하고 없게 하는, 이런 습관을 당신은 이미 양성했다. 여기에 앉아서는 당신은 왜 흔들거리지 않는가? 당신이 눈을 뜬 상태를 유지하고, 이렇게 살며시 눈을 감으면 당신은 흔들리는가? 절대 그렇지 않을 것이다. 당신은, 이 기공이란 이렇게 연마(練)해야 한다고 여기는데, 당신은 일종의 개념을 형성하여 눈만 감으면 당신이 없고 어디에 갔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당신의 主意識(주이스)가 반드시 또렷해야 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이 한 세트의 공법은 당신 자신을 수련하는 것이므로, 당신은 명명백백하게 제고해야 한다.“[1]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主意識(주이스)가 강해야 한다”[1]를 말씀하셨다. 흐리멍덩한 상태가 나타날 때 사상업이 나의 대뇌를 교란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마땅히 그것을 배척하고 그것을 막아야 한다. 내가 그렇게 시도하려고 할 때 오히려 해내지 못했다. 이것은 나의 안일심과 관계된다고 생각했다. 안일심의 표현 형식은 자신이 잠을 자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침 6시에 발정념 시간만 되면 늘 졸리고 손이 넘어간다. 왜냐하면 이때 안일심은 ‘출근’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사실 내가 5장 공법을 할 때 안일심이 먼저 ‘출근’했다. 안일심을 이렇게 오랫동안 뒀기에 이미 하나의 산이 됐다. 언제 제거해야 하는가? 나는 오랫동안 사상 투쟁을 했다.

연초 나는 더는 일어났다가 다시 자지 않겠다고 결심을 내렸다. 왜냐하면 아직 하나의 관념을 타파하지 못했는데 수면시간이 부족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연공시간을 조종해 4시 40분으로, 한 시간 늦게 일어나 수면시간을 한 시간 늘렸다. 1장부터 4장까지 공법을 아침 8시 전에 했다. 이렇게 다시 잠을 자는 시간을 없앴다. 시간을 조정한 후 다시 자는 습관이 없어졌다. 연공과 발정념 효과도 좋았고 주의식이 또렷해졌으며 이전처럼 졸리지 않았다.

이것은 사람 표면에서 일부 조치를 취한 것이다. 물론 자신의 사상에서 중시하고 강렬한 소원과 행함이 있었기에 사부님께서 집착심을 제거해 주신 것이다.

2. 타인을 위해 생각하다

나는 이전에 위사위아한 마음이 비교적 심하고 무슨 일을 하든지 자신을 위해 생각하는 것이 많았다. 지금은 달라졌고 타인을 위해 생각한다. 나는 일상의 작은 일에서부터 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이전에 자전거를 타고 앞으로 가면 타인을 상관하지 않고 생각해 주지도 않았다. 지금은 먼저 타인에게 길을 양보하고 때로 뒤로 돌아봐 다른 사람의 통행에 방해가 되는지 본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또 당신들에게 알려주겠다. 사실 당신들 이전의 본성(本性)은 위아위사(爲我爲私)의 기초 위에 세워진 것이다. 당신들이 앞으로 일함에 먼저 남을 생각해야 하고 무사무아(無私無我), 선타후아(先他後我)의 정각(正覺)으로 수련 성취해야 한다. 그러므로 당신들이 앞으로 어떠한 일을 하든지, 어떤 말을 하든지, 역시 남을 위하고 후세 사람을 위하는 데 이르기까지 고려해야 한다! 대법(大法)의 영세불변(永世不變)을 위해 고려해야 한다!”[2]

수련생 A의 노트북은 속도가 느리다. 그녀에게 SSD를 바꿔 메모리를 늘리라고 해 200위안을 들여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며칠이 지나서 그녀는 프린터를 바꿨고 어떤 수련생은 수련생 A에게 노트북이 오래됐으니 이번 기회에 바꾸라고 했다. 그래서 그녀는 새 노트북으로 바꿨다. 수련생 A가 나에게 이 일을 알려줄 때 나는 마음이 좋지 않았다. 내가 수련생에게 200위안을 들여 메모리를 늘려주었는데 결국 쓸모없게 됐다. 이 노트북은 10년 전에 산 것이고 확실히 바꿔야 했다. 나는 안으로 찾아보았는데 자신이 이 일에서 엄숙하게 대하지 못했고 문제를 잘 파악하지 못했다. 메모리가 충분하면 된다고 여기고 장기적으로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다른 수련생에게 사용하게 주라고 했다. 그녀의 남편이 끼어들어 말했다. “누가 사용하려면 300위안을 주세요!” 그래서 내가 노트북을 가져왔다.

몇 개월이 지난 후 수련생 B가 노트북을 사려고 했다. 마침 나에게 쓰지 않는 낡은 노트북이 있어 그녀에게 주려고 생각했다. 그러나 수련생 A로부터 가져온 노트북은 이 노트북보다 좋다. 마땅히 좋은 것을 타인에게 줘야 한다. 사실 그 전에 나는 일념이 있었는데 이 노트북을 내가 사용하려고 했다. 곧 이익을 추구하는 마음이란 걸 깨달았으며 이것은 잇속을 차지하려는 것이다. 나는 내 생각을 수련생 B에게 말하였고 그녀는 나의 건의를 받아들였다.

노트북과 프린터를 연결한 후 자료를 인쇄하는 데 문제가 없었고 인터넷 접속도 정상이었다. 며칠 후 수련생 B는 노트북 화면이 어둡다며 나에게 밝게 해달라고했다. 그러나 최고 밝기로 했는데도 그리 밝지 않았다. 확실히 노트북은 오래된 것이었다. 수련생 B는 노트북 밝기를 중요시하기에 나는 낡은 노트북을 그녀에게 가져다가 사용하도록 했다. 동시에 300위안을 그녀에게 환불했다. 화면 밝기는 좋으나 인터넷 접속에 문제가 있어 무선 랜카드가 있어야 했다. 이때 수련생 C가 노트북을 바꿨고 낡은 것은 사용할 수 있었지만 속도가 좀 느렸다. 팔아도 돈이 안 된다며 누가 사용할 수 있으면 사용하라며 돈을 받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SSD를 수련생 C의 노트북에 바꿨더니 속도는 눈에 띄게 빨라졌다. 나는 이 일을 수련생 B에게 말하지 않았다. 필경 낡은 노트북이고 성능도 보장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 SSD가 작용을 발휘하게 하자.

수련생 D의 노트북 시스템은 결함이 좀 있다. USB에 데이터를 저장하지 못하는데 노트북의 파일을 USB에 복사하지 못한다. TC 암호화 소프트웨어 배치 파일이 매칭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TC 소프트웨어도 작용하지 못해 시스템을 다시 깔았다. 나는 수련생에게 노트북에서 자료를 보존해야 할 것이 있는지 물었다. 암호화하지 않는 시스템에 아들과 여자친구의 사진이 있다고 하여 나는 USB에 복사했다.

시스템을 설치하는 과정에서 그녀의 아들이 돌아왔다. 우리가 노트북을 만지고 있는 것을 보고 노트북의 사진이 아직 있냐고 말했다. 나는 이미 복사했다고 말했다. 그녀의 아들은 선한 말투로 말했다. “새 노트북을 사요. 이것은 너무 낡았어요.” 나는 말했다. “다시 시스템을 설치하고 한번 보고 아닐 때 봐요.” 노트북이 확실히 낡아서 겨우 TC 암호화 시스템을 설치할 수 있을 뿐이었다. 시스템을 설치한 후 TC 암호화 소프터웨어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화면에 하드웨어 용량이 부족하여 설치할 수 없다고 나왔다. 이건 옳지 않다. 원래 시스템은 TC암호화 된 것이기에 용량이 충분해야 한다. 나는 안으로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안전 문제에 어떤 누락이 있는 것이 아닌가? 수련생 D는 당시 자신의 문제를 의식했다. 그녀는 말했다. “그녀 핸드폰에 아직 위챗을 제거하지 않았고 퇴근 후 핸드폰을 지니고 수련생 집에 가서 법공부도 한다고 했다. 그녀는 반드시 고치겠다고 말했다. 그녀의 사상이 바뀌자 이 노트북에 소프트웨어가 설치됐다. 안으로 찾으니 정말로 신기했다.

TC 암호화 시스템을 설치한 후 키보드에 이상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노트북을 작동시킨 후 키보드로 암호를 입력할 수 있었지만, 노트북은 작동한 후 키보드가 작동하지 않았고 키보드의 불도 켜지지 않았다. 만약 키보드가 망가졌으면 암호는 마땅히 입력되지 않을 것이다. 당시 나는 초보적으로 노트북 메인 모드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

내가 고민에 빠져 있을 때 그녀의 아들이 나에게 일깨워주었다. 자신의 키보드로 시험해 보라고 했다. 그 결과 노트북은 정상으로 작동됐다. 키보드가 망가진 것이다. 이것은 정상적인 이치에 부합되지 않았으므로 나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당시 꼼꼼히 생각하지 않았는데 이 교류 문장을 쓸 때 마음을 조용히 하고 생각해보았다. 확실히 자신의 수련과 관계가 있었는데 자신의 어떤 집착심을 없애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3. 관념과 사상업력을 없애다

키보드에 이상이 나타난 후 왜 좋은 키보드로 실험하지 않고 현상을 통해 추측한 것인가? 이것은 자신이 오랫동안 형성한 사유 방식이다. 일에 부딪히면 흔히 경험을 빌려 추리하고 상상하고 판단하고 귀, 눈, 실험으로 감지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수련생과 약속 시간과 장소를 정하고 약속 시간이 돼서 수련생이 보이지 않으면 자신이 장소를 잘못 들었다고 생각한다. 왜 잘못 들었는가? 원인은 수련생이 말을 할 때 자신은 근본적으로 열심히 듣지 않았고 주관적으로 저번에 만난 그곳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그곳이 아니다. 수련생과 교류할 때 참을성이 없고 수련생의 말을 끝까지 듣지 못한다. 마치 자신이 상대방이 무엇을 말하는지를 알고 있는 듯 급히 빼앗아 발언하고 심지어 상대방의 말을 끊는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관념은 대뇌의 사상(思想)속에서 형성되는데, 관념이 만든 사상업은 사람의 머리에서 하나의 업력덩어리를 형성한다. 선념(善念)이라고? 불교에서는 생각만 해도 곧 업이라고 말한다. 사실 이른바 선념이란 더욱 높은 표준에 서서 가늠해 보거나 眞(쩐)·善(싼)·忍(런)이란 더욱 높은 표준으로 보면 역시 변화가 생길 수 있다.”[3] 이런 사유 방식은 일종의 관념이다. 나쁜 관념은 또 사상업을 생성한다. 나는 이 사상업에 ‘상상’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수련생과 교류할 때 이 ‘상상’은 즉시 튀어나왔고 수련생의 말을 듣는 것을 가로막았다. 사실 이런 사상업은 생활에서도 체현된다. 예를 들면 남편이 내가 마음에 없는 것을 보고 나에게 다시 말하라고 한다. 내가 완벽하게 듣지 않고 오해를 불러오는 것을 피했다. 마찬가지로 내가 발정념을 하고 정공을 할 때 이 ‘상상’은 끊임없이 나온다. 지금 나는 그것을 똑똑히 보았다. 그것은 사상업이고 나의 머릿속에 반영돼 교란 작용을 한다.

법리를 똑똑히 한 후 나는 네 개의 정각 발정념 전 5분간 그것을 청리하니 효과가 뚜렷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연공(煉功)은 德(더)를 중시해야 한다. 우리는 연공할 때 당신이 좋은 일은 생각하지 않는다 해도 나쁜 일을 생각해서는 안 되며, 가장 좋기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저층차에서 연공할 때 기초를 닦아야 하는데, 이 기초는 지극히 중요한 작용을 하기 때문이며, 사람의 의념(意念) 활동은 일정한 작용을 일으키기 때문이다.”[1] 이전에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이 말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지금 이해했다. 덕을 중히 여기지 않으면 사상업을 없애지 못하고 심성도 올라오지 못한다. 수련 층차가 올라오지 못하면 연공할 때 조용하지 못한다. 이전에 발정념을 할 때 손을 버티지 못하고 눈을 감으면 안으로 굽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은 현실 생활 중에서 양성된 관념과 좋지 못한 그러한 것들을 단번에 깨끗하게 제거하기가 어려우며, 습관적인 것들은 여전히 습관을 고쳐야 한다. 사유의 방식은 이미 이렇게 되었는데, 그럼 사유의 방식에서도 그것을 찾아 바르게 해야만, 비로소 더는 문제가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 당신은, 제가 이미 깨끗하게 청리하지 않았습니까? 라고 말할 것이다. 그렇다. 발정념을 해서, 이 마당은 모두 밝아졌다. 그러나 일어서자마자 머리엔 바로 속인의 사유이며, 생각한 문제와 한 일은 또 원점으로 돌아가서, 그것이 또 생겼다. 심지어 발정념을 할 때 당신의 사상 염두가 아직도 안정할 수 없어, 한편으로는 발정념을 해서 좋지 못한 것을 청리하고 소멸하며 또 한편으로는 생기고 있다. 수련이란, 바로 자신을 수련하는 것인데, 사실 바로 이러한 일이다.”[4] 사부님의 이 법을 배우고 나는 더욱 알게 됐다. 나중에 철저히 자신의 사유 방식을 바꿔야 하고 발정념을 끊임없이 해서 이런 나쁜 관념과 사상업력을 청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4. 당문화 독소를 없애다

나는 어려서 당문화의 환경에서 생활했고 나도 모르게 오염됐다. 만약 사상 속의 당문화를 없애지 않으면 자신이 법에 동화하는 것을 방해한다. 세인에게 진상을 알릴 때 사람이 사당에 환상을 품고 있으면 진상을 똑바로 알리기 어렵다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안으로 찾았다. 자신이 당문화의 것을 똑바로 보지 못했다. 최근 나는 사당의 본질에 명석한 인식이 생겼다.

전에 사당이 장기를 생체적출한 범죄를 감히 믿지 못했는데 지금은 더는 의심하지 않는다. 이전에 그런 믿음은 사실 자신의 관념과 사상업이 주도적 작용을 했다. 앞에서 언급한 ‘상상’이다. 그것이 믿지 않은 것이다. 사람마다 어려서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일부 관념이 형성된다. 이 관념은 그가 사물에 대한 정확한 판단에 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대법제자이기에 사부님께서 법리로 천기(天機)를 우리에게 모두 알려주셨다. 우리가 신사신법(信師信法)하고 오성을 높이면 사상 속에 의혹이 생기지 않는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중공 사당에 대해 어떤 희망도 품지 말라. 이 악마는 인류를 훼멸하기 위해서 왔다. 진상을 똑똑히 알리는 중에서 반드시 세인들에게 그것의 본질을 분명하게 인식하도록 해야 한다. 대법제자는 그것에 대해 어떤 환상도 품지 말라.”[5] “한 세기 내내, 사당은 위장(僞裝)을 위해, 사람을 해치기 위해 거짓말을 끊임없이 바꾸고 있다. 지금 세인들은 이미 그것을 똑똑히 보았다. 대법제자는 박해를 받는 중에서 그것의 본질을 깊고도 분명하게 인식했다. 사당이 존재하는 한, 그것의 본질은 영원히 개변되지 않을 것이다.”[5] 자신이 사당에 대한 본질을 똑똑히 인식하면 진상을 알리는 과정에서 자신이 이런 장을 지니고 있기에 상대방의 바르지 않는 관념을 억제할 수 있고 세인은 대법에 동화하고 당원, 단원, 대원에서 탈퇴하고 이로써 구도될 수 있다.

당문화의 것은 각 방면에 모두 있다. 사당의 이른바 ‘항상 정확하다’가 나의 몸에서 체현된다. 예를 들면 자아를 지키고 잘난체하고 자신을 수련생 위에 있다고 생각한다. 마치 축구장에서 자신과 다른 수련생들이 모두 운동선수인 것과 같다. 이전에 이런 관계를 바로잡지 못했다. 때로 심판과 감독을 맡았다. 일에 부딪히면 타인의 누락을 찾고, 눈은 수련생의 나쁜 점만 보고 무조건 자신을 찾지 않았다. 이것도 일종의 사유 방식이고 자신의 성장 환경과 일하는 경험에서 자신도 모르게 형성된 것이다. 자신은 집에서 첫 번째였고 학교 다닐 때 성적이 우수했으며 직장에서는 지도자 위치에 있었다. 당문화의 것이 자신의 사상 속에 많이 주입돼 있었다. 사실 앞에 언급한 관념과 사상업력은 근본적으로 당문화에서 온 것이고 당문화의 사악한 토양에서 자생한 것이다. 그것은 내가 법에 동화하고 제고하는 것을 방해했다.

당문화는 ‘거짓, 악, 투쟁’을 행하고 겉만 번지르르하게 하며 일을 대충 한다. 수련에서 구체적인 표현은 법공부를 마음에 닿게 하지 않고 앞에 언급한 연공, 발정념도 흐리멍덩하게 한다.

2년 동안 나는 통독의 기초에서 법을 외우기 시작했고 법을 외우면서 확실히 자신에게 큰 도움이 됐다. 문제에 부딪히면 법에서 답을 찾고 자신의 일언일행을 지도했다. 그러나 나는 법을 외우는 과정에서 엄숙하지 않고 한 단락을 진정으로 다 외우지 못하고 다음 단락을 외웠다. 법을 외우는 것은 책을 보지 않는 상황에서 한 글자도 빠뜨리지 않고 전체 단락을 외우는 것이다. 나는 이전에 반복해서 몇 번 읽고 지나갔다. 사실 진정으로 외우지 못했다. 법을 외우는 것은 시간이 필요하다. 구체적인 일로 법을 외우는 시간을 많이 빼앗기고 시간이 길어지면 법을 외우는 시간이 적어진다. 우선 법을 제1위에 놓아야 하고 고정적인 시간을 내어 법을 외워야 한다. 만약 다른 일로 시간을 빼앗기면 나중에 꼭 보충해야 한다. 더는 일을 대충하면 안 된다. 당문화의 것을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
[2]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불성무루’
[3]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2’
[4]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각 지역 설법 10-따지웬(大紀元)회의 설법’
[5]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청성(淸醒)을 유지하라’

 

원문발표: 202043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4/3/403274.html

ⓒ 2024 명혜망.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