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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원시보] 김홍신 교수 “티베트·파룬궁 문제, 中 눈치 보면 안돼”

작가 김홍신 심층 인터뷰

등록일: 2009년 08월 14일 10시 22분 54초

– 어떤 점이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나

중국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중화사상, 중국은 위대하고 변방은 어리석고 못났다는 화이사관. 이 두 가지 철학은 잘못됐다. 아프리카 토인이 미개인이 아니다. 그들만의 문화, 철학, 종교가 다 있다. 차이가 있을 뿐, 무엇이 위대하고 못난 것은 아니다. 그걸 서로 인정해야 된다.

-‘대발해’ 출간 이후 달라이라마를 만나러 인도에 간다고 들었다

인도는 작년 1월에 가있었지만 못 만났다. 지금도 마음을 내면 주선해줄 분들이 여러분 있다. 만나려면 내가 그쪽으로 가서 뵈어야 하는데, 아직 가지 못했다. 사실 다른 나라는 다 티베트를 인정하지만 중국만 티베트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럼, 무엇이 진실인가. 진실을 따지자는 건 아니지만, 달라이라마가 그 민족의 지도자라면 그 활동에 민감할 필요가 없다. 민감하지 않고 자유롭게 활동하도록 하면, 중국의 대국적 기질도 있는데 그렇게 예민하게 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다.

– 달라이라마 방한이 계속 좌절되고 있는데

국회의원 시절에 달라이라마를 초청 하자고 외교부에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하지만 말도 못꺼내게 했다. 중국 정부 때문이다. 우리가 아주 알아서 기는 거다. 중국에 대한 외교의존도가 높은데다가 무역, 수출, 수입문제 이런 것들이 굉장히 많이 얽혀 있다. 경제 약소국이란 말이다. 그런데다가 북한 문제가 있다. 북한이 제일 의지하는 나라가 중국이지 않나. 이런 문제 때문에 초청 못하고 있는 것이다.

– 얼마전 중국에서 탄압을 피해 한국으로 온 파룬궁 수련생들의 난민지위 신청이 좌절되고, 세 명이 중국으로 강제송환 됐다. 중국이 탈북자를 북한으로 다시 돌려보낸 것처럼

그건 한국 정부의 잘못이다. 한 국가가 존엄한 자기정신을 가지고 살려면 그런 고통에 대해 손잡아 줘야 한다. 손잡아 주지 않으면 바른 태도가 아니다. 적이라 해도 세 가지 원칙을 지켜줘야 한다. 굶은 사람 먹이는 것, 아픈 사람 치료해주는 것, 못 배운 사람에게 최소한의 교육을 해주는 것이다. 망명신청을 했으면 생명의 위태로움을 각오하고 온 거 아닌가. 그러면 그것도 UN정신이지 않은가. 비록 지금 당장 국가적 불이익이 있다고 하더라도, 보호해 줘야 한다. 그게 말하자면 아주 건강한 국가, 선진국가의 태도다.

– 한국 정부가 너무 실리에 치우친다는 비판의 소리도 높다

당연히 그렇다. 자존심이 결여된 것이다. 그 조금의 경제적 불이익이 있다고 해도 장기적으로 봐야 하지 않나. 그 정도 불이익을 감수 해주면 오히려 중국이 대한민국을 은연중에 존중할 수밖에 없다. 왜 그렇게 짧게 보는지 모르겠다. 지금 당장 무역문제, 경제 문제, 이것만 보면 안 된다. 일본이나 외국이나 선진국에서 볼 때는 한국의 인권이 저 정도라고 생각한다.

– 동북공정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실리를 쫓다 역사마저 잃지 않을까 우려하는 이들이 많다

내게 가슴이 아픈 것들이 이런 것들이다. 말하자면 국가가 못하면 할 수 있는 근거라도 국가가 제공해 줘야 한다. 그런데 그것조차 안하고 있다. 우리 할아버지를 자신들의 할아버지라고 주장을 하면, 국가가 외교문제로 한번 걸어줘야 “아 그게 아니구나” 라고 세계가 아는데, 가만히 있다. 그럼 세상이 “아 발해가 중국 역사인가 보다” 이렇게 이해할 수 있다. 국가가 안 해주니까 작가가 이 몸부림을 치는 거다. 내가 몸부림 쳐야 되는가? 국가가 강한 태클을 걸어줘야만 된다. 그런데 그걸 안하고 있다. 내가 국회에 있을 때 대중국 대책기구를 정당에 만들자고 주장 했었다. 그런데 그게 안됐다. 중국이라는 거대한 경제블랙홀에 한국, 일본, 대만, 싱가포르가 지금 다 빨려 들어가고 있다. 빨려 들어가면 헤어 나오지 못한다. 빨려 들어가기 전에 공동 모색점을 찾자는 거였다.

– 대발해 쓰기 전에 중국에 몇 번 정도 갔나

꽤 많이 갔다. 몇 번인지 기억을 못한다. 86년도쯤 한국과 수교하기 전에 갔을때 중국은 못사는 나라였다. 물론 지금도 변두리 가면 정말 어려운 나라구나하고 느낀다. (공산주의)이데올로기가 이 나라를 이 모양으로 만들었다. 슬프다. 동양의 대국인데. 서양한테 굴종의 역사를 가졌을까. 이것을 빨리 반성하면 빨리 딛고 일어설 것이다.

– 중국이 새로운 중국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첫째, 세계 4대 문명의 발상지 중국이 21세기에 세계 문명의 핵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지금 조심해야 한다. 장족, 위구르, 티벳. 소수민족을 억압하고 분리하거나 무시하는 정책을 쓰면 반드시 독립이 된다. 역사적으로 확고하다. 따뜻하게 끌어안아줘야 한다. 둘째, 경제 대국으로서 위치를 굳히려면 문화, 정신의 대국이 되어야 한다. 경제 하나만 가지고 앞으로 너무 달려가다 보니 정신이나 문화가 못 따라온다. 그렇게 되면 계층 간의 갈등, 지역 갈등을 비롯해서 갈등 구조가 어마어마하게 커진다. 이게 민란이 되거나 분열이 된다. 그러면 바로 중국이 손해다. 눈앞의 이익만 보지 말고 좀 멀리 내다봤으면 좋겠다. 셋째, 경제를 10퍼센트 상승 시키는 것 보다 좀 낮춰서 그 나머지는 주변국가와 어려운 국가들을 도와주는 정책으로 가야 한다. 지금 중국은 자원을 싹쓸이 하고 있다. 다른 나라는 어떻게 하라고. 지구는 모른다. 중국이 저렇게 큰 소리 치다가 어느 날 갑자기 대 천재지변이 생길지도 모른다. 그랬을 때 주변 국가들이 도와주지 않는다. 중국이 앞으로 좀 더 잘 살게 되면 더 큰 문제가 자꾸 발생하게된다. 인권에 대한 관대함과 배려가 없으면 안 된다. 관대해야 한다. 다섯째, 중국이 환경 파괴의 주범의 역할을 하고 있다. 중국 내에 사막이 넓어지고, 중국의 강이 병들고, 바다가 병든다. 이게 문제가 되면 중국의 그 많은 인구에게 멸망의 근원을 제공한다. 물이 부족하다, 곡식에 문제가 생겼다. 그럼 민중들이 칼을 어디에 댈까. 과일 깎는데 대는 게 아니라 국가에 댄다. 이걸 염두에 두고, 환경재앙의 문제를 극복해야 한다. 경제 발전만 모색하는데, 환경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중국 자체가 먼저 붕괴된다. 그걸 면밀히 봐야 한다.

지금까지 120여 권의 저서를 낸 김홍신 교수.ⓒ 이유정 기자

– 밀리언 셀러 ‘인간시장’의 장총찬은 사회 부조리를 고발하고 개혁하는 인물인데, 본인이 원래 그런 데 관심이 있었나

작가의 시대적 소명이라고 하는 게 바로 그런 것들이다. 부조리나 정의롭지 못한 것, 민중을 아프게 하는 것, 비인간적 태도, 상식이 통용되지 않는 사회질서, 나라나 민족의 미래를 걱정해야 할 잘못된 구조에 관한 비평, 이런 것들은 작가가 늘 짊어지고 있는 소명 의식 중 하나다.

– 당시는 계엄 상태였는데 두렵지 않았나

각오했다. 누군가 아이들을 유괴해 죽인다고 협박해서 애 엄마가 심장병이 도져 애를 데리고 피신을 다니기도 했다. 가족을 힘들게 한 건 사실이다. 세월이 지나도 미안하다. 아내가 죽은지 5년 반 정도 됐는데(부인은 2004년 총선 선거운동을 할 즈음 고인이 됐다) 그래서 사람들이 혹시 그런 탓이 아니냐고 말한다. 전부는 아니지만, 일부 포함이 된 것 같다.

– 자녀들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 작가의 길을 걷고 싶어 하지 않나

아들 딸 모두 글은 안 쓰려고 한다. 아버지가 평생 글 쓰는 모습을 어려서부터 계속 봐 왔기 때문이다. 원고 쓸 때는 책, 자료를 접힌 채로 혹은 펼친 채로 온 사방에 벌려놓기 때문에 서재에 잘 들어오려 하지 않았다.

– 국회의원 8년 동안 빼놓지 않고 1등을 했다고 들었다

별명이 1등 국회의원이었다. 8년을 연속해서 1등을 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는 말도 들었다. 헌정 사상 거의 유일할 거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그때처럼 지금은 종합평가를 잘 하지 않는다. 그때는 해마다 큰 신문들이 달려들어서 하고, 시민단체도 여러 군데서 하고, 기관에서도 했다.

– 최초 시민운동 경실련에도 참여하고, 방송도 했다. 현재 대학 교수인데 하는 일 마다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것 같다

어려움이 많았던 시대를 살았다. 만약에 군사독재가 없었으면 인간시장이 그렇게 빅 히트를 했겠는가. 우리 사회가 경제 정의가 살아있었으면 시민운동이 그렇게 좋은 평가를 받았을 리 없고, 국회가 선진 국회였다면, 나같은 사람이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때 마다 내게 주어진 일에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그게 호응을 받은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지나고 보니 빚이 많다.

– 8년 동안 국회의원을 하고 2004년 총선에서 고배를 마셨다. 권력이나 명예를 가졌을 때와 잃었을 때, 간극이 컸을 것 같은데

간극이 그렇게 넓지 않았다. 나는 (권력을) 누리지 말자고 했다. 누리면 또 해야 되니까. 너무 좋으니까 놓을 수가 없는 거다. 그래서 당명에 무조건 백 몇 십 명이 따라간다. 왜 그렇게 하겠나. 다음에 또 하려고 하는 거다. 너무 좋은 자리니까. 우리는 그걸 일찌감치 포기했다. 국회의원 배지 한 번 단 적 없고, 레드카펫 깔린 정문으로 단 한 번도 다닌 적이 없다. 국민한테 빌려 쓰는데, 주인인 국민이 다니지 못하는 곳을 다닐 수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래서 저절로 쫙 열리는 정문이 아니라 쪽문과 회전문으로 다녔다. 외국 나갈때도 VIP통로가 아니라 일반 통로로 다녔다. 그래서 지금 아무렇게 다녀도 상관 없다.

– 꼬장꼬장 하다는 소리 들었을 것 같다

그런 얘기도 많이 들었다. 하지만 (국회의원으로서) 국민에 대한 도리라고 생각한다. 당시 15대 국회의원 시절, 48개월 근무했는데 세비는 49번을 받았다. 5월 28일부터 3일간 일한 것을 한 달 치로 계산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통장을 개설하지 않고 수령을 거부하면서 사무처장, 의장과 계속 싸웠다. 결국 국고금예치금으로 예치해 국고로 넘겼다. 그러다 16대 때 관련 법안을 고치게 됐다. 당시 의원들로부터 당신은 ‘인간 시장’ 써서 돈 많이 벌어서 그런냐는 이야기도 들었다. 하지만 그건 국민세금을 남용하는 것아닌가.

김교수는 작가로 출발했지만 국회의원, 방송인을 거쳐 현재 교수로 살고 있다. 그에게 물었다. 세상 사람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냐고. 그는 주저없이 말했다. 빚을 갚으려고 노력한 작가로 기억되고 싶다고. 대발해를 쓰면서 한국인으로 태어난 것이 그렇게 자랑스럽고 행복할 수가 없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빨리 가려면 혼자가고, 멀리 가려면 여럿이 가야 돼요. 100미터는 혼자 뛰어도 신기록 경신이 가능해요. 하지만, 마라톤은 혼자 신기록을 낼 수 없죠. 여럿이 그룹으로 형성되어서 가야만 멀리 갈 수가 있어요.”

“빚을 갚으려고 했는데, 또 빚을 지는거에요. 인생은 계속 빚을 지는 거죠. 하지만, 빚을 갚으려고 계속 해야 되요. 그래야 자기 인생이 풍요로워지는 것이죠.”

“가능하면 즐거운 마음을 가지려고 하지만, 나도 짜증나는 거 불쾌한 거 싫은 거 미운 거 생긴다고. 그런데 마음공부해서 딴건 못하는데 돌아서면 버려요. 돌아서면 버릴 줄 알아요. 하지만, 미운 사람 사랑은 못해요. 그래도 잃어버릴 수 있어요. 잊는게 아니라 잃는거에요. 잊으면 찾을 수 있고, 떠오를 수 있잖아요?”

“선진국이라는 개념 속에는 반드시 휴머니즘, 인간애가 반드시 포함되어야 해요. 그게 포함되지 않으면 선진국이 아니에요. 일류국가가 아니죠. 일류국가들 보면 치열하게 인간애 문제를 다루고 있거든요.”

글 조윤덕 기자
사진 이유정 기자

http://www.epochtimes.co.kr/news/article.html?no=150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