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원 특별보도
등록일: 2009년 04월 24일 14시 01분 26초
1999년 4월 25일, 중국인 파룬궁 수련생 1만여 명이 베이징 국무원 민원처리실을 찾았다. 합법적인 수련 환경을 제공해 달라고 요청하기 위해서였다. 사람들은 이 일을 ‘4.25 대상방(大上訪)’이라고 불렀다. 요청은 이뤄지지 않았고 그 후 많은 파룬궁 수련생이 불법으로 감금 폭행당하거나 심지어 장기가 적출되기도 했다. 10년이 흐른 지금, 이제 진실을 바로 알아야 할 때가 왔다.
압력이 만든 4.25
파룬궁 수련은 1992년 중국에서 처음 전해졌다. 사람들은 몸을 건강하게 하고 도덕과 마음을 지킬 수 있게 하는 파룬궁을 환영했다. 기하급수적으로 파룬궁 수련생이 늘어나자 중공은 관영 매체를 사주해 부정확한 비판과 비방을 시작했고 수련생에 대한 압력을 가했다. 1996년 6월 광명일보는 ‘비과학’이라는 기사로 파룬궁을 비방했다. 7월부터는 파룬궁 서적 출판도 전면 금지됐다.
1997년 초, 파룬궁 탄압을 주도한 뤄간은 공안부를 사주해 파룬궁을 우선 ‘사이비 종교’라고 결론 내리고 그 후 증거를 찾기 위해 대대적인 조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적당한 ‘증거’를 찾지 못하자 공안부는 파룬궁을 비방하기 위해 다른 방법을 찾았다. 스파이를 파견해 파룬궁 수련자를 때리거나 자극했다. 문제가 생기면 파룬궁 수련자에게 뒤집어씌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파룬궁 수련생이 선의로 대처하면서 이 계획도 소용없었다.
1999년 4월 11일 뤄간은 다시 파룬궁을 비방할 계략을 세웠다. 그의 동서이자 어용 과학자인 허쭤슈를 사주해 톈진교육대학 잡지에 파룬궁을 공격하는 글을 발표하도록 했다. 4월 18일 많은 파룬궁 수련생이 톈진교육대학과 관련 당국을 찾아가 잡지에 발표된 내용이 사실이 아님을 알렸다.
그러나 경찰은 며칠 뒤 수련생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며 45명을 체포했다. 파룬궁 수련자들이 석방을 요구하고 나서자 톈진 공안 당국은 베이징으로 가서 해결하라고 말했다. 4.25 대상방은 이렇게 시작됐다.
혹자는 만약 4.25가 없었다면 파룬궁 탄압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는 원인과 결과를 거꾸로 해석한 것이다. 중공이 4.25 때문에 파룬궁을 탄압한 것이 아니라, 탄압이 4.25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4.25 이후 중공은 7월부터 전면적으로 파룬궁 탄압에 나섰다. 이는 중공이 장기간 이어온 탄압의 연장선에 불과하다.
1998년 말, 중공은 이미 파룬궁을 단속하기로 내정했다. 이런 상황에서 파룬궁 수련생들이 베이징으로 상방(청원)하러 간 것은 아주 정당하고 합리적이었다. 누군가 불공정한 대우를 받을 때 이에 대해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상방은 헌법에 규정된 국민의 권리이다. 만약 중공이 상방을 구실로 파룬궁을 탄압했다면 이것이 바로 불법이다.
1999년 4월 25일 베이징 중난하이 앞. 중국 역사상 가장 평화로운 청원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명혜망
음모를 좌절시킨 파룬궁 수련자들
4월 25일 파룬궁 수련자들이 도착한 곳은 민원처리 사무실이었다. 만여 명의 수련생들은 경찰의 인솔하에 중난하이 정문 양측으로 한 바퀴 에워싼 형태로 늘어섰다. 곧 중공 매체는 파룬궁 수련자들이 중난하이를 포위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명백한 모함이었다.
오히려 그들은 중국사회에서는 유례없이 평화로운 이성의 힘을 보여줬다. 구호나 표어 한 번 외치지 않았으며 어떤 상황에서도 질서정연하게 자리를 지켰다. 당시 허쭤슈가 현장에 나타나 논쟁을 일으키며 탄압의 구실을 마련하려 했다. 하지만 파룬궁 수련자들이 선의로 대하면서 허쭤슈의 계획도 실패했다.
상방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그들은 경찰이 버린 담배꽁초와 길에 버려진 쓰레기까지 다 치웠다. 당시 출동한 한 여경은 파룬궁 수련자들이 깨끗이 치운 땅바닥을 가리키며 “봐라. 이것이 바로 덕(德)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4.25는 중국 도덕의 기념비
중국 역사상 억압을 받은 사람들은 대개 참고 견디거나, 혹은 봉기했다. 4.25 상방에서 파룬궁 수련자들은 평화, 이성, 존엄, 참신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 앞에 섰다.
세상에서 가장 크고 폭력적인 정권에 대면해 진정한 존엄과 아름다운 가치가 무엇인지 보여줬다. 파룬궁을 모함하려는 중공의 음모에 그들은 극명한 대조를 이루며 오히려 파룬궁의 숭고함을 보여주는 계기를 마련했다.
톈안먼 광장에서 사복경찰이 파룬궁 수련생의 목에 칼을 들이대고 있다.ⓒ 명혜망
중공, 사악한 정체를 드러내다
전체 사건 중에서 파룬궁 수련자는 하늘이 부여한 인권을 이행한 것에 불과하고, 파룬궁의 근본 사상인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수련하는 권리가 무리한 탄압과 비방에 저애받지 말아야 함을 요구한 것이다. 그들은 심지어 톈진에서 파룬궁 수련생을 구타한 경찰의 책임을 묻지도 않았고 정권에 대한 관심도 없다.
파룬궁 수련자들의 이런 행위는 현장에 출동한 경찰과 많은 사람을 감동시켰다. 1998년 전(前) 인민대표대회 위원장 차오스(喬石) 등 퇴직 고위 간부들은 파룬궁에 대한 심층 조사를 토대로, “파룬궁은 국가와 국민에 백가지 이로움이 있을 뿐, 해로운 점은 하나도 없다”는 보고서를 발표한 것처럼, 조금이라도 이성이 남아 있는 정상적인 정부라면 파룬궁은 애써 구하려 해도 구할 수 없는 소중한 재산이다. 1999년 이후 파룬궁이 전 세계에 전파되면서 보여준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하지만 투쟁 철학으로 가득찬 중공과 장쩌민은 4.25에서 보여준 파룬궁 수련자들의 참모습을 인식하지 못하고, 독재 정권에 대한 ‘위협’으로만 받아들였다. 선량함을 연약한 것으로 여기고 대대적인 탄압에 들어갔다. 4.25 이후 불과 2개월 만에 중공은 본색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들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 발생했다. 탄압을 계기로 파룬궁이 전세계에 알려지면서 오히려 전파를 촉진하게 된 것이다. 공산당 스스로 무덤을 판 셈이다.
중난하이에 모인 파룬궁 수련생. 1만 명이 운집했지만 물리적 충돌이나 교통 방해가 없을 정도로 평화롭게 진행됐다.ⓒ 명혜망
4.25는 역사의 전환점
파룬궁 수련자들이 체현해 낸 평화의 정신은 세계에 거대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사람들은 파룬궁을 새로운 시선으로 보게 됐고, 예의 조용한 수련단체에서 서방 언론의 초점으로 세계 무대에 등장했다. 이런 의미에서 4.25는 역사의 전환점이자 파룬궁이 세계로 전파되는 전환점이 됐다.
4.25 이후 중공은 계략이 성공했다고 여기고 지체없이 파룬궁에 대한 전면적인 탄압에 들어갔다. 이후 10년간 세계는 선과 악의 대결을 목격했다. 한쪽은 모든 국가 기구와 자원과 권력을 장악하고 각종 비방 선전과 탄압 수단을 이용했으며, 다른 한쪽은 맨손으로 거짓말과 폭력, 증오에 맞서 두려움 없이 진상을 알리며 진선인에 대한 믿음을 보여줬다.
이 대결은 광범위하게 지속했으며 각국 정부와 언론은 중공의 유언비어에 말려들기도 했다. 10년간의 박해로 3가지 현상이 나타났다. 첫째 중공이 파룬궁 탄압을 최우선으로 두면서 모든 국가 자원을 동원해 탄압을 유지하면서, 모든 외교 채널과 경제적 협박으로 탄압을 해외로 확장했다. 어느 국가와 민족도 여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모든 사람은 이 선악과 시비의 대조를 보면서 자신의 입장을 표현하고, 자신의 양심에 묻고 자신의 미래를 결정한다.
둘째 중공의 탄압은 역으로 파룬궁을 전 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했다. 장쩌민은 3개월이면 파룬궁을 소멸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하지만 10년이 흐른 지금 현재, 파룬궁은 사라지지 않았으며 반대로 중공의 탄압은 매번 파룬궁을 돕는 역할을 했다. 결과 파룬궁은 세계 80여 국가로 뻗어나갔다.
셋째 중공 악당(惡黨)은 파룬궁 탄압으로 악명이 높아졌으며 몰락을 향해 가고 있다. 파룬궁은 10년간 평화적으로 탄압을 반대해 국제 사회의 지지를 얻었다. 중공은 이번 탄압으로 중국 사회의 문명 발달 과정을 파괴하고 역행했다.
모든 사람이 연관된 이 피바람 속에서 중공은 사람들에게 본색을 철저히 드러냈으며, ‘9평 공산당’ 출시와 중국인 5천만 명의 공산당 탈퇴와 대조를 이뤘다. 현재 중국 사회에서 정의의 힘은 나날이 강대해지고 있으며 탄압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나날이 커지고 있다. 중공을 해체하는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으며, 중공의 폭정은 분화구에 곧 떨어지게 됐다.
영원한 4.25
10년은 기나긴 역사에서 한순간에 불과하지만, 인생에서는 긴 시간이다. 4.25 상방 이후 파룬궁 수련생들은 10년간 탄압에 반대해 왔다. 이 10년은 파룬궁 수련생 개개인이 어려운 과정이자 부담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감당, 그들이 지불한 대가는 평화와 선량함을 부각시켰고, 유례없는 도의(道義)의 고봉(高峰)을 세웠다. 이는 중국과 세계의 귀중한 정신적 자산이다. 세월이 얼마나 흘러도 이 빛은 영원할 것이다.
파룬궁의 진상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4.25 10주년은 역사를 자세히 살펴보고 이해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파룬궁 수련자들이 10년간 보여준 행적은 정과 사가 대결하는 이 특수한 시기에 선악과 시비를 가르고 올바른 선택을 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하지만 세계 각국 정부를 말하자면 탄압이 10년이나 지속한 것은 가슴 아프고 치욕스럽게 생각해야 할 일이다. 되도록 빨리 탄압을 저지하고 공의(公義)를 재건할 것인가는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숙제다.
인류 사회의 미래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든, 4.25는 인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단체 청원 사건으로 도덕의 기념비를 세웠으며, 과정에서 보여준 수련자들의 경지는 불법(佛法)의 위대함을 드러낸 것이다. 장차 인류 역사는 4.25를 이렇게 기억하게 될 것이다.
대기원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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