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DC 법회 참가 후기
7월 18일 한국 수련자 20여명은 부산 김해공항에서 워싱턴을 향해 출발하였다.
도쿄 나리타 공항에서 탑승 대기시간에 한 중국인 청년을 만나 화인 수련자들이 밀도 있는 진상을 하였고 여객기 안에서 우리 일행에게 좌석을 바꿔준 한 여성에게 대법을 자비롭게 전해주었다. 또 디트로이트 공항에서는 여객기가 출발이 지연되어 일부 수련자들이 동공을 하던 중 한 중년 남성이 연공동작을 따라하며 많은 관심을 보였고, 우리는 전단지를 주고 홍법하였다.
워싱턴에 자정에 도착하여 가볍게 취침하고 다음날 새벽에 숙소 근처 공원에서 연공을 하였다. 이튿날 한 여성분이 5장 공법을 하고 있는 수련자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발걸음을 멈추고 유심히 보고 있자 한 수련자의 지도로 30분간 정공을 함께하고 전단지를 받아갔다.
오후에 우리는 워싱턴 차이나타운에 도착하여 준비해온 현수막을 들고 거리를 걸으며 지나가는 중국인과 화인상점 음식점에 진상자료와 9평을 전해주었다. 평일 낯 시간이서 진상의 효과는 크지 않았으나, 차아나 타운의 상인들은 미국 현지수련자들의 퍼레이드를 통해 이미 진상을 알고 있었고, 또 퍼레이드를 기다리고 있는 듯하였다. 한 중년흑인에게 전단지를 건네주며 진상을 하자 파룬궁수련자의 장기적출사건을 알고 있다며 근처에 있는 대기원 가판대에서 신문을 꺼내 보이며 기사를 읽어봤다고 했다. 워싱턴 거리의 곳곳에 배치된 대기원시보 가판대를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한국인 미국현지 수련자는 일간으로 발행되는 대기원시보에 동참하고 있다고 했다. 자신도 바쁠 때는 한 시간의 수면을 취하고 4시간의 운전으로 먼 거리에서 참여할 때도 있다고 했다. 우리 대법제자의 희생적인 위덕에 존경스러움을 느꼈다.
다음날 오전에 우리는 국회의사당의 대규모 집회에 참석하였다. 수련생들은 단체연공을 하고, 탄압 7년 반박해 촉구 행사를 시작하였다 “중국 공산당은 탄압을 중단하라”는 주제로 미국 국회의원, 인권 대표, 종교 자유 단체의 유명인사들이 중공의 지난 7년간의 파룬궁 수련자에 대한 박해와 최근 수련생들에 대한 장기적출 사건을 폭로하였다. 그들은 이 같은 집회에 초대되어 감사드린다고 하면서 수련자들의 자유와 인권 수호를 주장하고 수련자들을 지지한다고 하였다. 중국 공산당의 장기적출사건에 대해 강력히 비판하면서 수련자들에게 끝까지 포기하지 말라는 성원을 표했다.
또 장기적출에 가담했던 의사의 부인이 직접 연단에 올라서 장기 적출에 대한 증언을 하자 중공의 사악함은 더욱 명백하게 드러났다.
금요일 오전에는 집회 및 “중국 공산당을 탈당한 1,200백만중국인 지지” 대행진을 시작하였다. 각국에서 온 전 세계 대법제자들은 민족 전통의상과 노란색 티셔츠를 입고 탈당센타에서 진행하는 행사에 참여하여 워싱턴 거리를 행진하기 시작했다. 위풍당당한 뉴욕 천국악단과 캐나다 천국안단의 천둥과 같은 천음소리로 연주하는 “法輪大法好”를 시작으로 황금빛 요고대와 각자 준비해온 플랜카드를 펼치며 퍼레이드를 시작했다. 그것은 시작도 끝도 보이지 않는 장관이었다. 날씨가 무척 더웠지만 현지 경찰의 도움으로 행사는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행사장 주변을 지나던 세인들은 모두 우리를 주목하였다. 인연이 있는 세인은 오랫동안 기다렸던 손님을 만난 것처럼 반가워했다. 그리고 밤 8시에 워싱턴 기념탑에 3천여 명의 수련생이 모여 촛불 추모행사를 열었다.
기나긴 박해 속에 안타깝게 희생된 동수들의 넋을 기리며 추모에 참석한 동수들은 발정념을 통해 사악을 제거하고 정체로서의 결속을 다졌다
22일 토요일 오전에는 파룬따파 법회가 열렸다.
오전 9시부터 각국의 수련생들의 심득교류회가 시작되었다.
12시쯤 되자 장내에는 기립박수가 터져 나왔고 사부님께서는 단상에 오르셨다.
제자들은, 사부님께 “사부님 안녕하십니까”하고 문안인사를 드렸다.
사부님께서는 대법제자 모두 잘 하였다고 말씀하셨다. 모순이 오면 한발 물러서서 안으로 찾으라고 하셨고 수련된 일면은 다른 공간으로 갈라놓으신다고 하시며 남아있는 누락된 부분이나 집착은 앞으로 수련해야할 부분이라고 하셨다. 설법 내내 제자들을 격려하시며 “대법제자들이 성취한 일체가 크게 펼쳐 보일 것이다!” 라고 하시며 30분 정도 설법하시고 법회장을 떠나셨다.
심득교류회는 오후 6시까지 계속되었다.
부동한 공간과 시간, 같지 않은 수련의 길을 걷고 있는 수련생의 심득교류였지만 동수의 집착을 내안에서 찾을 수 있었고, 그들의 누락이 곧 나의 누락과 일치함을 모두 공감하였다.
이렇게 교류하는 마당의 필요성을 또 한번 느꼈고, 정체제고에 큰 힘이 되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는 뉴욕으로 노정을 옮겨 뉴저지에 있는 숙소에 휴식을 취하며 동수들과 자유롭게 교류하였다. 이번 법회에 참여한 수련생들은 수련의 기간, 지역, 연령, 성별도 다양했고 수련하지 않는 수련생 가족도 있어서 처음에는 동수간에 어색함도 있었고 모순도 있었으나, ‘무사무아’ 자신의 관념을 내려놓고 상대방의 의견을 들음에 진지했고, 현실에 부합되게 수련하기에 효와 예를 실증하는 계기가 되었다. 현실에 부합되게 수련한다는 것은 그리 말처럼 쉽지가 않았다. 다른 나라의 문화를 알고 이지적으로 에티켓을 지키며 진상해야했고, 동수 간에도 어른을 공경하고 배려해야 했으며, 간단한 중국어와 영어를 통해 효과적이고 적극적인 홍법을 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다음날, 한국수련생들은 한 곳을 방문하게 되었다.
그곳에는 동양의 신비스러운 목조건축물들이 천년의 기다림 속에 가장 아름답고 신성한 공간속에 건조되어 말로만 듣던 지상낙원을 구체적으로 상상 할 수 있었다.
식사 후, 우리는 영원히 잊지 못할 한순간을 맞이했고, 돌아서는 우리일행을 아쉬움으로 배웅해주시는 한없는 자비로움에 우리는 송구스러움과 가슴 뭉클함을 지금까지도 잊을 수 없다.
끝으로, 시종 일관 웃으시며, 풀 한포기 나무 한그루라도 더 눈에 담아 가게 하기 위해 열성으로 안내 해 주신 그분께 이 자리를 빌어다시 한번 깊은 감사드리며, 정법시기 대법제자로서의 3가지 일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2006년 8월 2일
서울수련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