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 (밍후이왕 통신원 쓰촨 보도) 판즈화(攀枝花) 빙차오강(炳草崗)의 올해 58세인 파룬궁 수련생 탄하이옌(譚海燕)은 예전에 9년의 억울한 옥살이를 당했는데 이번에 또 세 번째 불법으로 납치를 당했다. 2020년 3월 17일, 5∼6명의 경찰이 집으로 찾아와 가택을 수색하고 납치했다. 18일, 완요우수(彎腰樹) 구치소로 이감되었다.
3월 17일 오후 4시경, 판즈화시 국가보안 경찰과 빙차오강 파출소의 몇 명의 경찰은 폭력으로 탄하이옌의 집 문을 두드려 열고 들어갔다. 탄하이옌이 강력하게 소환장과 검사증을 보이라고 요구하자 그때야 보여주며 탄하이옌을 판즈화 공안국 둥구(東區)분국으로 납치했다. 뒤이어 또 그녀의 서적과 간행물 등 개인물품을 불법으로 조사했다. 3월 18일 저녁 8시경, 탄하이옌은 불법적인 형사 구류처분을 받고 판즈화시 런허(仁和)구 완야오수 화양(華陽)로 27호로 보내졌다.
탄하이옌의 딸이 파출소로 가서 석방을 요구하자, 경찰은 “우리는 법에 따라 사건을 처리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녀 딸은 또 부소장을 찾아 석방을 요구하고, 파룬궁은 ×교가 아니라고 말했다. 부소장은 “국가에서 규정한 것이라고 당신과 말한 적이 있지요. 우리는 법률적인 절차를 지켜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녀 딸은 “당신은 파룬궁을 압니까? 파룬궁 수련생은 모두 좋은 사람입니다……”라고 말했다. 아직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이 부소장은 즉시 “당신은 이곳에서 파룬궁을 선전하지 마세요!”라고 고함쳤다. 그녀 딸은 “내가 선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당신에게 알고 있는지를 문의했고, 당신에게 사실을 반영하려 했을 뿐입니다!”라고 말했다. 부소장은 이어서 “당신에게 말했지요. 당신은 파룬궁에 대해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녀의 딸은 “당신들은 무고한, 좋은 사람을 납치했습니다. 나는 검찰원에 가서 당신들을 신고하고 고소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부소장은 여전히 난폭하게 “나가세요, 나가세요!”라며 그녀를 쫓아냈다.
대법을 수련해 환골탈태하다
탄하이옌은 원래 랴오닝(遼寧省) 하이청(海城) 사람으로, 어려서 부모님이 삼선건설(三線建設) 때 따라서 쓰촨(四川) 판즈화시로 왔다. 그녀는 젊은 시절에 산후병에 걸려 자궁어혈 증상이 나타나 두 차례나 수술을 받아 핏덩이를 떼어냈다. 생리 때마다 극심하게 아파 근무할 수 없어 휴가를 받아 쉬어야만 했다. 그녀는 성격이 무척 급했다. 집에서는 자신에게 결정권이 있어 늘 남편과 다투고 아이를 욕하고 때리며 이웃과의 사이도 아주 좋지 않았다. 1997년, 탄하이옌은 운 좋게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접하게 되었다. 그 뒤로 그녀는 마치 환골탈태한 것 같았다.
파룬궁을 수련한 후 그녀의 병은 차츰 사라졌다. 매달 생리 때에도 극심한 통증이 사라졌다. 냉수도 마시고, 옷을 빨고, 집안일 등을 할 수 있었으며, 또다시 휴가를 받지 않고 정상적으로 근무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녀는 ‘진선인(眞·善·忍)’의 표준에 따라 자신을 요구해 무릇 다른 사람을 먼저 고려해 주고, 자신의 부족함을 찾았으며, 다투지 않고 손해를 보아도 따지지 않고 개의치 않았다. 차츰 그녀의 가정은 점점 화목해지고, 이웃과도 점점 조화로웠다.
몇 년 전, 탄하이옌의 시어머니가 병에 걸려 입원했었는데, 집안의 네 명의 아들딸은 모두 가서 노인을 보살피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녀는 매일 퇴근 후 1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병원으로 가서 노인을 보살펴 드렸다. 이튿날 아침에 또 버스를 타고 직장에 출근했다. 시아버지는 오랫동안 술을 마시고 늘 대소변을 바지 혹은 베란다에 눴으나 집에서는 그를 담당하는 사람이 없었다. 탄하이옌은 딸을 데리고 가서 청소하고 옷과 일상용품 등을 깨끗이 씻었다. 지난 2년 동안, 탄하이옌의 형님댁의 한 친척이 백혈병에 걸렸는데, 그녀는 3천 위안(한화 약 51만 원)을 꺼내 그 집에 주었다. 금액은 많지 않았으나 그때 탄하이옌의 퇴직 연금은 매달 겨우 1400위안(한화 약 24만 원)이었다.
진상을 알려 세 번째 불법으로 납치당하다
이렇게 선량하고 소박한 사람은, 자신의 믿음을 견지하고 세인에게 진상을 알린 이유로, 세 번째 불법으로 체포당했다. 2000년 8월 25일, 탄하이옌은 파룬궁 진상 자료를 배포한 이유로 경찰에게 불법으로 체포당해 공안 세 곳에 하루 저녁을 감금당했다. 그녀를 밤새도록 경찰은 돌아가며 심문하고 혹독한 고문을 가하며, 그녀가 잠을 자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쇠 난간 위에 매달아 수갑을 채웠다. 이튿날 완요수 구치소로 보내 45일 동안 불법 감금했다가, 그 후 쯔중(資中) 난무쓰(楠木寺) 여자노동교양소로 납치돼 1년 15일 동안 불법 노동교양처분을 받았다. 그 기간 탄하이옌은 각종 잔혹한 비인간적인 학대를 당했다. 교도관은 고압 전기봉으로 몸 각 부위에 전기 충격을 가했고, 장시간 동안 세워두기 고문을 가했다. 겨울에는 솜옷을 입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고, 여름에는 태양에 쪼이는 체벌을 가했으며, 물을 마시지 못하게 하고, 화장실 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리고 목욕을 허락하지 않았고, 강제로 주사를 맞히고 약을 먹였으며, 손발을 마치 개를 묶는 것처럼 묶었다.
탄하이옌은 원래 판강(攀鋼) 주광(朱礦) 화학실험실의 연구원이었다. 하지만 불법 노동교양처분을 받은 후 직장에서는 곧 그녀를 철도보수 일을 하게 했다. 모두 중노동, 힘든 일(늘 침목을 메야 했음)을 했을 뿐만 아니라 월급이 적었다. 그러나 그녀는 전혀 원망이 없었다. 이 일을 5년 동안 했다.
화학실험실에 출근할 때의 탄하이옌, 파룬궁을 수련한 후 그녀는 행복하고 즐거웠다
6년의 억울한 옥살이 박해를 당하다
2006년 4월 4일, 탄하이옌이 집에서 휴식하고 있었는데, 판즈화시 국가보안은 판강 주광 보위과, 마자완(馬家灣) 파출소의 경찰 등 10여 명과 결탁해 강철 끌로 그녀 집 문을 비틀어 열고 들어가 거듭 그녀를 불법으로 납치하고 가택수색을 했다. 이번에 법원에서는 탄하이옌에 대해 6년의 불법 징역형을 선고했고, 청두(成都) 룽취안이(龍泉驛) 촨시(川西)여자감옥에서 박해를 당했다.
감옥 안에서 교도관은 고압 전기봉으로 탄하이옌의 얼굴, 목과 몸 위의 기타 부위에 전기 충격을 가하면서 그녀를 ‘전향’하려 시도했다. 그녀가 전혀 그것에 움직이지 않자 교도관은 곧 그녀에 대해 광적인 구타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연속 며칠 동안 그녀에게 잠자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고(아오잉(熬鷹) 고문), 강제로 그녀에게 음식물 주입 고문 등으로 잔혹하게 장기간 그녀를 괴롭혔다.
어느 한 번, 탄하이옌은 갑자기 허리 부위가 극렬하게 아파 하반신을 움직일 수 없는 하반신 마비 증세가 나타났다. 그러나 교도관은 그녀를 의사에게 보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또 그녀에게 매일 작업실로 일하러 가도록 요구했다.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자, 교도관은 곧 같은 감방의 죄수에게 그녀를 작업실로 업고 가서 일하도록 했다. 그녀는 매일 파룬궁 서적 ‘홍음(洪吟)’을 외웠는데, 의사에게 보이지 않고 아무런 치료도 받지 않은 채 한 달 후 그녀는 천천히 호전됐다. 그 후 자리에서 일어나 걸을 수 있었다.
2010년, 탄하이옌의 남편은 파출소에서의 장기간의 교란과 직장에서의 압력을 감당할 수 없어 감옥으로 와서 탄하이옌과 이혼 수속을 밟았다. 이것은 탄하이옌에게 극심한 고통이었다. 그녀는 며칠 동안 잠을 이루지 못하고 말없이 눈물을 흘렸다.
2012년 4월, 탄하이옌은 마침내 억울한 옥살이에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딸, 사위, 어린 외손녀와 함께하며 본래 만년을 편안하게 보낼 수 있다고 여겼다. 그러나 바로 2020년 3월 17일, 판즈화 공안국 둥구 분국의 국가보안 경찰과 빙차오강 파출소의 5, 6명의 경찰은 또 집으로 찾아와 불법으로 호출해 탄하이옌을 납치했다. 이튿날, 완요수 구치소로 보냈다.
선행을 권하다
1999년 7월 20일 이래, 헤아릴 수 없는 파룬궁 수련생이 불법납치, 노동교양처분, 판결 심지어 박해로 사망 혹은 생체로 장기 적출을 당했다. 20년 이래, 탄하이옌처럼 반복적인 불법납치 혹은 불법징역형을 선고받은 파룬궁 수련생도 아주 많다. 그러나 그들은 ‘진선인(眞·善·忍)’의 이념을 굳건히 지켰는데, 모욕, 조롱, 억울한 옥살이 고문에 직면했을지라도 그들은 확고히 선의를 품고 길고도 극심한 고난을 감당하고 있다. 진(眞)에 따라 그들은 진상을 알렸고, 선(善)에 따라 그들은 비참하게 박해를 당하고도 원망이 없이 세인의 양심을 일깨워 아름다운 미래를 가지기를 바랐으며 인(忍)에 따라 그들은 고난을 감당하고 개인의 모든 소원을 포기하며, 평화롭고 이지적으로 굳게 지켰는데 그들의 인(忍)은 의지가 강하여 굽힐 줄 모르고, 두려움이 없었다. 그들은 정의, 진리의 필승을 믿고, 20년 이래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원한을 원한으로 갚지 않았다. 전국에서 파룬궁 수련생이 박해를 당하고 불공평함, 폭력, 불법적인 억울함을 당해도 하소연한 사건이 발생한 적이 없다. 이것은 자신을 희생해 세상을 구하고 대자대비(大慈大悲)한 것이다. 표현해낸 경지는 중화를 부흥시키고 도덕을 승화시키는 희망이다.
탄하이옌이 2006년 불법납치를 당했을 때, 그때 국가보안대대의 대장 톈핑(田萍)은 그녀에 대해 무차별 폭력을 가해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했다. 톈핑은 1999년 ‘7.20’부터 2010년에 퇴직하기 전까지 장기간 적극적으로 잔인하게 파룬궁 수련생 박해에 참여했다. 이로 인해 법률을 준수하고 선을 행하는 많은 파룬궁 수련생에게 불법 노동교양처분, 판결을 선고받게 했으며,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집과 가족을 잃게 하고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게 해야 했는가……그러나 오늘날 톈핑의 남편은 직장암에 걸려 장기간 항암치료를 하고 있다.
유일한 아들은 급성 골수계통 백혈병에 걸려 병세가 몹시 심각한데, 의료비용은 사람을 매우 놀라게 했다……톈핑은 편지에서 도움을 청해 주장했다. “인생은 무상합니다. 우리 일가는 모두 경찰로 국민을 위해 한평생 복무했는데, 만년에 오히려 이와 같은 변고를 경험할 것은 생각지 못했습니다……하느님은 무엇 때문에 이렇게 저를 대하고 이렇게 저의 가정을 대하려 합니까?”라고 말했다.
만약 20년 전에 톈핑이 ‘하느님’을 생각할 수 있었고, ‘하느님은 눈이 있다.’, ‘사람이 하는 일은 하늘이 보고 있다.’, ‘선악에는 인과응보가 있다.’는 이런 진리를 생각할 수 있었다면, 그녀는 위로 올라갈 수 있고 이른바 ‘공을 세우고’, ‘장려받기’ 위해 선량한 동네 어르신과 마을 사람들을 납치, 가택수색, 혹독한 구타, 고문, 고문에 의한 강제자백, 무고한 판결 등 악랄한 수단을 쓰지 않고, 하늘의 뜻을 위배한 악행을 진행해 각종 죄행을 저지르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오늘날 인생의 고통과 보응을 받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탄하이옌이 최근 어느 한 차례의 불법납치를 당할 때 전부 젊은 새로운 얼굴이었는데, 기본적으로 모두 20~30대였다. 오래 근무한 사람은 물러나고 새 사람을 보충했다. 중공(중국공산당)이 천지를 뒤엎을 듯한 거짓말로 한 세대 또 한 세대의 중국인을 속여 물질이익으로 그들을 유혹하고, 그들을 핍박해 사람을 괴롭히고 사람을 해치게 했는데, 결국 악보를 입은 사람도 역시 속고 이용당한 사람이다.
젊은 경찰들은 급히 각성하라. 더는 속임을 당하고 이용당하지 말며, 다시는 그들의 전철을 밟지 말라. 당신들의 눈을 뜨고 당신들의 귀를 열고, 보고 듣고 파룬궁을 요해하라. 자신이 단지 상급의 명령을 집행한 것으로, 책임을 질 수 없다고만 생각하지 말라. ‘선악에는 인과응보가 있다.’는 것은 진리이다. 누가 나쁜 일을 하든지를 막론하고 모두 정의로운 심판을 받을 것이다.
1992년 2월, 통일된 후 독일이 베를린 법정에서 한 차례 총살사건을 심판했다. 피고는 독일이 통일되기 전 동부 독일의 잉거이다. 헝리치의 베를린 장벽을 지키는 위병이다. 그는 베를린 장벽을 지킬 때 장벽을 뛰어넘어 서부 독일로 도망치는 크리스라는 청년을 총살했다. 그의 변호사가 말하기를, 그는 당시 명령을 집행했기에 무죄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러한 변호는 결국 판사의 인정을 받지 못했다.
일찍이 제2차 세계대전 후, 뉘른베르크에서 파쇼 전범을 심판할 때 이미 전례가 있었다. 당시 각국 정부의 태도는 약속이나 한 듯이 일치하게, 부도덕한 행위는 정부의 명령을 받들고 해낸 것이라는 구실로 너그러이 용서를 받지 못한다고 했다. 베를린 법정의 최종 판결은 위병 잉거에게 징역형을 선고했다. 헝리치는 3년 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았고 가석방을 불허했다. 판사 세이 델은 법정에서 “경찰로서 상급 명령을 집행하지 않는 것은 유죄입니다. 그러나 제대로 겨누지 못한 것은 무죄입니다. 마음이 건전한 사람으로서 이 시각에 당신에게는 총구를 1㎝ 들어 올리는 주권이 있습니다. 이것은 당신이 마땅히 주동적으로 감당해야 하는 양심의 의무입니다. 어떠한 사람이든 모두 명령에 복종한다는 구실로 일정한 도덕적 윤리 최저선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됩니다.”라고 지적했다.
법률과 양심이 갈등할 때, 양심이 최고의 행위 준칙이지 법률이 아니다. 경찰로서 맨 먼저 사람이고, 그런 다음 비로소 경찰이다. ‘헝리치 사건’을 ‘최고양심준칙’으로 삼은 사건 사례는 일찍이 광범하게 전파되었다. ‘1㎝를 높여 들기’는, 인류가 사악한 정권의 부추김에 직면할 때 저항과 자구를 잊지 않고 사람의 양심, 용기와 지혜를 증명하고 있다.
원문발표: 2020년 4월 5일
문장분류: 대륙소식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4/5/40339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