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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장점을 이용해 사부님을 도와 각계의 인연 있는 사람을 구하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대법 수련은 역사상의 어떤 수련과도 형식상에서 모두 같지 않다. 이는 당신들에게 대법제자의 책임—인류의 관건적 역사 시각에 중생을 구도하는 신성한 사명이 있기 때문이다.”[1]

저는 올해 64세로 1995년 행운스럽게 대법을 얻었습니다. 저는 1972년 고등학교 졸업 후, 지식 청년이 되고, 교사가 되었고, 공장에 들어가 기술자가 되어 품질 감압 기술자로 20년을 재직한 후, 시 정부의 직속 호텔로 전근되어 응접, 공관장, 여공 주임, 노조 주석직무를 했던 근무환경이 이 방면의 사람들을 구하도록 사부님께서 안배해주셨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저의 신성한 사명입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할아버지의 응석받이로 자랐습니다. 성격은 고집이 세고 자부심이 강해서 지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명문가 집안의 딸은 아니었지만, 초등학교부터 직장에 이르기까지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은 대장의 역할을 해왔고, 승부욕이 강했으며, 여러 면에서 모두 최고가 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해마다 병에 걸리면 약을 먹고 주사를 맞으면서 입원 치료를 받아야 했는데 수만 위안(약 수백만 원)의 돈이 드는 것은 말하지 않더라도 자신은 여전히 고통스럽기 그지없었습니다. 1995년 병원에서 구토로 탈수하여 응급처치를 받을 때, 저의 오래된 학교 친구가 와서 저에게 희소식을 알려줬습니다. 그녀는 난소암에 걸렸다가 연공 10여 일 만에 쾌유 되었다고 했습니다. 저는 무슨 공을 연마했는지 다그쳐 물었더니 파룬궁(法輪功)을 연마했다고 했습니다. 저는 기뻤고 파룬궁은 마치 제가 몇 생 몇 세에 꿈에서라도 바라던 것이었습니다.

파룬궁 수련 이후 10여 일 만에, 저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온몸의 병이 다 나았습니다. 약은 버렸고 몸은 건강해졌습니다. 안색은 불그레했고 걸음걸이는 경쾌하고 빨라졌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제가 갈수록 젊고 예뻐진다고 말했습니다. 그 몇 년 동안 성에서 시와 현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관리들은 저를 보면 모두 우스갯소리로 저에게 온종일 생글생글 웃으면서 화기애애하게 보인다며 직무에 적합한 ‘홍보 담당 여직원’ 같다고 말했습니다. 사실 그때 저는 마흔이 다 되어갔습니다.

시장 부인은 제가 파룬궁을 수련하여 몸이 건강해졌다는 것을 알고 저에게 전화를 걸어와 그녀에게 공법을 가르쳐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녀를 도와 대법 책 ‘전법륜’과 연공 비디오테이프를 신청했습니다. 그녀는 배운지 1시간도 채 안 돼서 다섯 가지 공법을 모두 배웠습니다. 그 후, 우리는 좋은 친구가 되었습니다.

지도자와 각 기관의 모든 직급별 사람들은 제가 파룬궁수련생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늘 진선인(眞·善·忍)으로 자신의 언행을 요구하였고, 서비스 업무 응대에서 좋은 사람이 되어 명리를 구하지 않았습니다. 고객이 높은 직위의 간부이거나 운전기사이거나를 막론하고 똑같이 대했습니다. 접대하는 직원들이 서비스 접대 일을 열정적으로 하도록 이끌어줘야 한다고 자신을 일깨우곤 했습니다.

1. 구치소 소장이 진상을 알다

1999년 7월 20일, 우리 지역의 많은 보도원이 밤중에 불법적으로 관할 구역 파출소에 납치됐습니다. 저는 소식을 들은 후, 공안국에 찾아가 사람을 풀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파룬궁을 수련하여 몸이 어떻게 변했으며, 대법의 신기함과 위대함을 그들에게 알려주었습니다.

1999년 7월 22일, 시 전체 기관의 인민대표대회 당원들이 회의에서(그들의 말에 의하면 저에 대한 ‘비판 회의’를 연다고 함) 원흉 장쩌민(江澤民)의 1호 문건을 읽을 때 저는 즉시 일어나 대중 앞에서 회의장을 떠났습니다. 회사 사무실로 돌아오니 동료들은 모두 파룬궁을 비방하는 ‘뉴스’를 논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곳곳에 가서 직원들에게 텔레비전에서 선전하는 것은 모두 유언비어이며 모함이라고 알려줬습니다.

저는 수련생과 함께 시 체육관에 가서 공개적으로 연공했습니다. 12월 10일까지 체육관에서 아침 연공을 하다가 공안국의 잠복해있던 경찰관들에 의해 불법적으로 납치됐으며 15일 수감됐습니다.

구치소에서 저는 연공과 법공부를 견지했고, 감옥의 규율을 암기하지 않았습니다. 단식하면서 소장을 만날 것을 요구한 후, 3시간 동안 구치소 소장과 현장에 있는 3명의 경찰관에게 저의 수련의 길, 몸과 마음의 변화 및 장쩌민과 사교 깡패집단이 바른 믿음을 박해하고 사부님을 모함하는 유언비어의 죄업에 관해 설명했습니다. 또 그들에게 우리를 박해하면 안 되며 좋은 사람을 박해하면 안 된다고 권했습니다. 좋은 사람을 박해하지 않으면 좋은 보답을 받게 된다고 알려줬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자유롭게 파룬궁을 배울 수 있게 하고 그들의 상해와 심한 구타를 당한 적이 있는 여성 수련생에게 영양이 있는 음식을 제공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소장은 진상을 알게 된 후, 저의 요구를 만족시켜줬습니다. 또 다른 범인에게는 파룬궁(수련생)으로부터 배우라고 했습니다. 제가 만기 되던 15일째 되던 날, 소장은 두 차례 시 공안국에 가서 저를 풀어주고 벌금을 부과하지 않아야 하며, 즉시 무사히 집으로 돌려보내도록 논의했습니다. 저와 함께 불법적으로 수감됐던 30여 명의 수련생은 모두 기한이 되어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2. 직장에서 탄압을 당해도, 진상 알리기를 견지하다

저는 공개적으로 연공하여 대법을 실증하다가 불법적으로 수감된 후, 시 기관 전체 간부들이 참석한 대회에서 저를 사당의 당적에서 제명하는 결정을 선포했습니다. 저의 남편을 맨 앞줄에 앉히고 클로즈업 촬영하여 시 방송국 뉴스에서 며칠 동안 방영하는 등 남편에게 압력을 가했습니다. 회사는 사당 총지부에서부터 지부까지 회의를 열어 전체 당원이 저를 제명하는 결정을 통과하도록 했습니다. 저는 대회에서 대법의 진상을 알렸습니다. 자신이 여러 해 동안 재물을 탐하지 않았고 명리를 구하지 않았으며 접대 직무에서 열심히 책임졌고 10년 근무하는 중에 가장 일찍 출근하고 가장 늦게 퇴근하면서도 야근 수당을 한 푼도 받은 적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대법의 진선인(眞·善·忍)의 표준으로 자신을 요구했고 홍보부, 여직원 노조 등 많은 직무에서 고통과 어려움을 참은 최고 책임자와 직원들이 모르는 사례를 이야기하여 대법을 실증하였습니다. 나중에 동료들은 모두 저에게 “우리는 큰 흐름을 따라가다 보니 어쩔 수 없었어요. 지역에서 모두 문건을 하달해 제명해야 했어요. 공산(사)당은 제멋대로 하고 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웃으면서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여러분이 알기만 하면 돼요.”

전체 시 대회 이후, 시장과 상무위원들은 우리 회사에서 식사하고 손님을 기다렸습니다. 사무실에서 그들은 모두 제가 사당 당적이 제명된 일을 비웃었습니다. 시장은 저에게 “당신같이 똑똑하고 이렇게 괜찮은 사람이 왜 수지가 안 맞게 굴어요. 왜 좀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바람을 거슬러 올라가고 바람을 보고 노를 젓지 않았는가 하는 의미) 우리 십여 명의 상무위원이 회의를 열면서 당신을 안타까워했어요.” 저는 “체육관에서 연공 한 것밖에 더 있어요? 이 공법은 이렇게 좋아요. 저의 생명을 구했어요. 파룬궁은 사람들에게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수련하여 더욱더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는 고덕대법이에요. 그렇지 않으면 제가 어떻게 이런 사람이 되어 있겠어요?” 현장에 있던 그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묵인했습니다.

시장 부인은 제가 사당 당적에서 제명되고 직무가 철회됐으며 직장의 최고 책임자가 제멋대로 저의 임금을 압류해서 매월 120위안(약 20000원)의 생활비만 지급하는 ‘처분’을 내렸다는 소식을 듣고 전화를 걸어와 저에게 말했습니다. “텔레비전에서 왜 함부로 말하죠? 책에서 사부님께서는 병이 있으면 약을 먹지 않고 병원에 가지 않는다고 말씀하신 적이 없잖아요.” 저는 대답했습니다. “그렇죠! 당신은 책을 봤으니 아는군요. 텔레비전에서는 모함하고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거예요.”

시장 부인을 만났을 때, 시장 부인은 저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병으로 퇴직하는 지표를 만들어주면 돈을 더 많이 받을 수 있어요(그녀는 인사국 기율검사 팀장임). 출근하지 않아도 되고요.” 저는 거절했습니다. “저는 이전에 몇십 년 동안 바로 약골이었습니다. 1년에 몇만 위안(약 몇백만 원)의 병원비와 약값을 써도 십 년, 이십 년 동안 병이 낫지 않았어요. 파룬궁을 수련하고 대법을 수련해서 나은 거예요. 파룬궁 사부님은 저의 생명을 구해주셨어요. 저는 비로소 이렇게 좋은 몸과 정신으로 나라와 시를 위해 접대 직무를 잘 수행할 수 있었어요. 직장을 위해 몇십만 위안(약 몇천만 원)을 절약해주었잖아요! 저에게는 병이 없어요. 병으로 퇴직 처리하지 않을 거예요. 거짓을 꾸며낼 수 없어요. 당신의 호의에 감사해요!” 시장 부인은 즉시 매우 탄복하는 눈빛으로 저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습니다.

3. 공안국 국장이 수련생을 선하게 대하다

우리 시에 두 번째로 부임한 공안국 국장, 시 위원회 서기의 비서는 저의 오랜 지인입니다. 그가 부임한 후, 그해 중국은 새해를 앞두고 1년 동안 몇 명의 파룬궁수련생을 불법적으로 수감했습니다. 이 상황의 소식을 들은 후, 저는 설을 맞아 이 국장의 집으로 찾아가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풀어 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바로 저의 곁에 계신다는 것을 깊이 느꼈으며 조금도 두려움 없이 오직 타인을 구할 생각뿐이었습니다.

그의 집에 도착한 후, 그의 부인은 그가 설을 쇠러 갔다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의 부인의 맞은편에 앉아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녀는 저의 나이와 직장을 알게 된 후 제가 이미 50대가 되었고 제가 이렇게 젊고 몸 상태가 좋아 보인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워했습니다. 저는 그녀에게 제가 원래 몸에 병이 많았는데 파룬궁 수련 후에 비로소 이렇게 병이 없어져 온몸이 홀가분해지게 된 상황을 알려줬습니다. 그녀는 들은 후, 얼굴에는 파룬궁은 텔레비전에서 말한 그것처럼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는 표정이 피어올랐습니다.

이 시간까지 설을 쇠는 사람들이 여러 번 드나들었고 1시간을 더 기다리니 공안국 국장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는 매우 놀라워하며 제가 어떻게 그의 집에 왔는지 물어보았습니다. 저는 설 문안 축복 인사를 몇 마디 건네고 직언으로 그에게 불법적으로 수감된 모든 수련생을 석방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는 먼저 책임을 미루었고 자신이 이 일을 상관하지 않으며, 구치소, 파출소는 그가 관할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당신은 국장님이시잖아요. 당신은 모두 관할하고 있지 않아요? 당신이 구치소의 그들에게 사람을 석방하라고 한마디만 하면 공덕이 무량한 일이 될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당시에 설 문안을 오는 사람들이 많아서 진상을 전면적으로 알리지 못했습니다. 그의 부인이 분명히 그에게 이야기할 것으로 생각되어 저는 대법 수련생을 선하게 대하면 하늘에서 행복과 평안을 내려주며, 좋은 미래가 있게 될 것이라고 거듭 이야기했습니다.

제가 문을 나설 때, 복도에서 국장이 말했습니다. “논의해보고 다시 얘기해요.” 저는 그에게 깊은 감사를 표했습니다. 저는 이것이 바로 생명이 각성한 후, 분명하고 지혜로운 선택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며칠 후, 우리 지역에 불법적으로 수감됐던 몇 명의 수련생들이 집으로 되돌아왔습니다.

설을 쇤 후, 저는 이 공안국장이 외지의 성에 가서 몇 개월 공부하고 시로 돌아와 상무 부시장이 되어 재무를 주관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더 나중에는 지역 보직 부서로 승진되었습니다.

그가 이 몇 년 동안 승진이 이처럼 빨랐던 이유를 우리는 모두 알고 있습니다. 이 국장은 대법제자를 선하게 대했고 파룬궁 박해에 가담하지 않아 하늘에서 관운을 내려주어 큰 복보를 받은 것입니다. 저는 그의 외지의 근무지를 수소문하였습니다. 8G의 이동식 메모리에 ‘9평 공산당(九評共產黨)’ ‘우리는 미래에 알린다(我們告訴未來)’ ‘천안문 분신자살사건(天安門自焚真相)’ 등 진상 자료를 내려받아 공안국 국장에게 우편으로 보냈습니다. 그가 진상을 알고 대법의 구도를 받아 미래가 더욱더 좋기를 바랍니다.

4. 시 정부 부주석에게 진상을 전하다

시 정부 부주석은 원래 우리 직장의 최고 책임자였습니다. 그와 함께 일한 2년 동안 저는 업무에 협조하면서 제가 배운 호텔 경영 전공 책을 그에게 보내줬습니다. 저는 홍보 담당, 식음 객실, 여직원 노조의 여러 항목의 관리 업무를 맡았습니다. 그가 출장을 가거나 외출하면 모든 지도 권한을 저에게 맡겼으며 오직 저에게 맡겨야만 가장 안심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몇 명의 중층 간부가 진급을 위한 관계를 맺으려고 여러모로 애를 썼습니다. 저는 종래로 그런 것을 하지 않았으며 오직 평소처럼 일만 잘했습니다.

한번은 그가 직접 저에게 말했습니다. “시 지도자는 당신에 대한 인상이 매우 좋아요. 당신이 그의 집에 손님으로 놀러 가보세요. 상대방도 ‘검토(담배와 술)’하기 편하도록요.” 저는 웃으면서 그에게 답했습니다. “저는 파룬궁수련생입니다. 그런 관계를 맺고 무슨 일을 꾸미지 않을 것입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명리를 구하지 말고 자신의 그 직무 위치에서 잘하며 어디에서든 좋은 사람이 되고 더욱더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셨어요. 진선인(眞·善·忍)은 바로 우리의 표준이에요. 저는 이 직무 위치에서 모범이 될 거예요. 더 잘할 거예요.” 그가 말했습니다. “위에서부터 아래에 이르기까지 현시에서부터 성급 국가에 이르기까지 모두 당신을 알아요!” 저는 웃으면서 그것은 제가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이고 대법제자의 표현이며 가져주신 관심과 칭찬에 감사드린다고 말했습니다.

그가 전근 가던 날, 감격해 하며 저에게 말했습니다. “이 몇 년 동안 내게 줬던 도움 고마워요!” 저는 제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기억에 의하면 저의 한 시 위원회의 오랜 동료가 저를 한 마디 혼낸 적이 있었습니다. “참 괴로운 여성이네요. 오직 하는 것만 알고, 하고 또 하고 찾지 않고 보내지도 않고 늘 사람을 접대만 하다가 어느 세월에 다른 사람이 당신을 접대할까요?” 저는 답했습니다. “저는 바로 이렇습니다. 그렇게는 하지 않을 것입니다.” 1999년 12월, 제가 공개적으로 연공하다가 불법적으로 수감되었던 기간에 이 상급 책임자는 한 번 공안국에서 분할 관리하는 감옥의 부국장과 식사를 하다가 제가 수감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제가 ‘삼서’를 쓰고 감옥을 나오는 것을 가지고 부국장과 내기를 했다고 했습니다. 그는 과일과 간식 한 꾸러미를 안고 감옥 접견실에 와서 저를 만났습니다. 당시, 우리 30여 명의 대법제자는 단식한 지 삼 일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그는 저를 보자마자 보증서를 쓰고 자신과 함께 나가자고 하면서 이미 국장에게 말해놓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종이와 펜을 꺼내어 저에게 빨리 쓰라고 재촉했습니다.

저는 비록 3일 동안 물과 쌀을 입에 대지 않아 기운이 없었지만, 순간적으로 정기가 넘쳐났습니다. 저는 단숨에 그에게 제가 왜 수감되었는지, 왜 단식하는지를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죄를 범하지 않았고 저는 사람마다 모두 갈 수 있는 체육관에 가서 연공을 했을 뿐이며 자신의 신앙을 견지했고 법을 준수했으며 좋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당신은 저의 모든 행위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잖아요. 장쩌민이 죄를 범했어요. 대법에 대해 비방했고 대법 사부님을 모함했으며 바른 믿음에 대해 박해를 했어요……제가 보증서를 쓰면 무엇을 보증하는 걸까요? 좋은 사람이 되지 않는 것을요? 장쩌민과 중공이 서로 결탁하여 파룬궁을 박해하고 좋은 사람을 박해하는 거예요.”

이때, 그는 제가 확고하게 보증서를 쓰지 않는 모습을 보고 휴대전화를 열고 저에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당신은 휴대전화에 대고 국장에게 세 글자 ‘제가 잘못했습니다’라고 말해요. 그럴 수 있죠?” 저는 “저는 잘못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잘못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잘못하지 않았습니다”라고 연이어 세 번 외쳤습니다. 그는 제가 절대로 쓰지 않고 말하지 않는 것을 보고 입가에 거품을 물면서 물건을 집어 들고 저를 수감실로 보내면서 “정말 완강하군. 정말 완강하군. 정말 완강하구나”라고 세 번 말한 다음에야 떠났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대법제자 진상을 알리려고 입속의 예리한 검 일제히 뿜어내네 썩은귀신의 거짓말을 폭로하나니 다그쳐 구도하고 빨리 알리세”[2]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을 구하는 것은 수련자의 자비의 체현이며 중생이 위난에 처했을 때의 책임이다.”[3] 그해, 구치소의 그 정치협상회의 주석은 아직 진상을 잘 알지 못했고 나중에는 만나서 이야기할 기회가 없다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세인이 구원받게 하기 위해 반드시 매번 기회를 단단히 포착해야 하고 방법을 강구해야 하며 자아를 내려놓고 정념과 선한 행동으로 책임과 사명을 실천해야 합니다.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이런 연분을 안배해주셨습니다. 저는 발과 다리를 많이 움직이고 입을 많이 움직여야 합니다. 사부님이 계시니 모든 것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시 정부 정치협상회의 사무실로 직접 찾아가 만나려고 했지만 여러 번 만나지 못했습니다. 어떤 수련생이 저를 일깨워줬습니다. “당신이 여러 번 갔다가 정치법률위원회 ‘610’ 관계자들에게 보이기라도 하면 의심을 사게 되는 것이 두렵지 않아요? 조심해요.” 저는 말했습니다. “뭐가 두려워요. 사부님께서 저의 곁에 계시잖아요. 뜻밖에 그 사람들을 만났는데 진상을 알리기 딱 좋지 않아요!” 매번 제가 직접 시 정부 사무실 건물로 들어가면 문을 지키는 경비 보안관이 공교롭게도 저에게 기록하라고 한 적이 없었으며 저를 불러 세우고 물은 적이 없었습니다. 그해, 크리스마스이브에 저는 일부러 ‘복(福)’자 장식이 들어가도록 맞춤 제작한 이동식 메모리에 대법의 진상 동영상과 ‘9평 공산당’ ‘장자석(藏字石)’ ‘왜 당신에게 삼퇴를 권유하는가(爲什麼勸你三退)’ 등 진상 관련 책자를 내려받아 2백 위안(약 34000원)의 훙바오(그의 아들이 수능시험을 앞두고 있으므로)를 봉투에 넣고 십여 가구를 찾다가 비로소 그의 집을 찾아냈습니다. 전화로 알게 된 바로는 그의 일가족이 나들이를 나갔다고 했습니다. 저는 챙겨온 물건을 그의 집 마당 안으로 던져놓았습니다. 이튿날, 저는 그의 부인의 사무실을 찾아가서 어제 그녀의 집에 들렀는지 물었습니다. 그의 부인은 제가 챙겨간 물건을 보지 못했으며 다시 가서 찾아보겠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말하는 김에 그녀에게 일부 진상을 알렸습니다. 계속 사람들이 드나들어 저는 사무실을 나왔습니다.

이튿날, 저는 그의 부인의 전화를 받았고 제가 챙겨준 꾸러미의 물건을 찾았다고 말하면서 나무에 걸려 있었다고 했습니다. 하마터면 마당의 연못에 빠질 뻔했다고 했습니다. 저는 부랴부랴 당부했습니다. “온 가족이 평안하게 크리스마스를 보내시길 바랍니다. 꼭 한 번 보세요!” 그녀는 저의 호의에 감사를 표하며 챙겨보겠다고 말했습니다. 그 며칠 동안 저는 여러 차례 발정념을 하면서 사부님께 그들이 구원받도록 가지 해 주실 것을 청을 드렸습니다.

5. 시장 보좌관이 공산당을 탈퇴하다

시장 보좌관의 둘째 며느리는 우리 회사의 종업원이었습니다. 우리는 그의 아들 결혼 피로연에서 아주 성공적으로 매우 흥겨운 분위기를 연출했습니다. 저는 전체 직원을 대표하여 그들에게 축하 노래를 함께 하면서 호응을 끌어냈고, 시장 보좌관도 매우 만족스러워했습니다. 이 역시 이후에 그에게 공산당 탈퇴를 권하고 진상을 알게 하는 매우 좋은 토대를 마련하였습니다.

지도자들이 자주 회의를 열고 손님들과 식사를 하여 진상을 알리기 위한 적절한 기회와 시간을 갖기 어려웠습니다. 저는 그의 집 주소를 수소문하여 여러 차례 가서 진상 전단지, 그림 책자를 창문가에 놓고 문 앞에 걸어두었습니다. 해마다 퇴직 지문을 찍는 기회를 이용하여 새해 탁상 달력, 진상 부채와 책자를 갖고 시장 보좌관의 큰 며느리 사무실로 찾아가 매번 그녀에게 조용히 시장 보좌관에게 전달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진상을 보면 평안을 보장받으며 그들 온 가족이 건강하고 즐거우며 평안하기를 축복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녀의 큰 며느리는 모두 기쁘게 받아들였습니다.

2016년 5월 13일은 세계 파룬따파의 날입니다. 저는 한 여성 수련생의 아들이 결혼한다는 소식을 듣고 몇백 리의 길을 떠나 참석했습니다. 그리고 발정념하여 사람을 구하도록 몇 명의 수련생을 초대하였습니다. 저는 여러 해 동안 이 수련생의 남편이 시의 일부 지도자와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만나기 어려운 시의 지도자들이 반드시 참석할 것이므로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먼저 결혼식 현장에 가서 결혼식에 참가하는 사람들, 특히 일부 특별한 사람들이 구원받고 진상을 듣도록 발정념 하여 공간장을 깨끗이 청리했고 일체 교란 요소를 제거하였습니다.

결혼식 때, 인민대표대회 정치협상회의, 공안 등 정부 퇴직 지도 부문의 십여 명의 사람들이 한 테이블에 앉아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집중적으로 그 테이블 인원에 대해 그들이 구도 되도록 발정념을 했고 그들을 교란하는 배후의 요소를 깨끗이 제거했습니다……연회가 시작된 후, 저는 서둘러 술잔이 놓여 있는 테이블 앞으로 다가가 말했습니다. “지도자 여러분, 여러 해 만나 뵙지 못했습니다. 오늘 이렇게 좋은 날, 여기 자리하신 여러분의 온 가족의 행복과 건강, 평안을 축원 드립니다. 건배!” 그들 모두 일어났고 어떤 사람이 말했습니다. “당신이 마신 음료는 안 돼요. 술을 마셔야 해요.” 저는 이것이 바로 제가 온 목적이며 핵심을 짚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서둘러 답했습니다. “제가 파룬궁을 20년 가까이 수련한 사실을 여러분은 모두 아시죠. 이 20년 동안 약 한 알 먹지 않았어요. 파룬따파(法輪大法)가 저의 생명을 구해줬어요. 오늘 여러분도 술을 마시지 말아요. 건강을 위해서요. 물로 술을 음료로 대체 해봐요. 모두 가능해요. 여러분에게 신체가 건강해지는 비결을 알려드릴게요.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 아홉 글자를 자주 염하면 평안을 보장받고 하늘이 행복과 평안을 내려줘요!” 저는 음료수병을 들고 매 사람에게 가득 따랐고 공안국 국장을 바라보며 모두에게 말했습니다. “삼퇴하여 평안을 보장받아요. 모두 평안해지자구요. 집집마다 평안해야죠!” 모두 이구동성으로 대답했습니다. “평안, 평안……” 모두 마신 후에야 저는 테이블을 떠났습니다. 저는 ‘오늘에서야 가장 만족스러운 홍보 담당[공관, 攻關(公關)]’이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자리로 돌아와 고기 요리를 먹으려고 준비할 때, 시장 보좌관이 일어나서 나가려는 모습을 보고 서둘러 시장 보좌관 앞으로 뛰어가 그에게 말했습니다. “시장 보좌관님, 안녕하세요. 몇 년간 뵙지 못했습니다. 당신 며느리에게 부탁해서 전달 드렸던 물건과 자료를 받으셨는지요?” 그는 웃으면서 답했습니다. “봤어요. 받았지요.”, “그러면 당신은 공산당에서 탈퇴해요. 탈퇴해서 평안해져야죠. 당신이 잘되기를 위해서예요. 모두가 잘 되기를 위해서예요. 마음속으로 탈퇴하면 돼요. 아무런 형식도 필요 없어요. 당신이 고개를 끄덕이면 돼요.”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 잇달아 두 번 말했습니다. “좋아요. 탈퇴해요. 탈퇴해요. 나는 그것을 탈퇴하겠어요. 고마워요!” 웃으면서 손을 흔들어 작별 인사를 건네면서 로비로 걸어 나갔습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경문: ‘대만법회를 축하한다’
[2] 리훙쯔 사부님 시사: ‘홍음2-快講(빨리 알려라)’
[3] 리훙쯔 사부님 경문: ‘유럽법회에 보내는 축사’

 

원문발표: 2020313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3/13/40237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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