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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념정행으로 사악의 박해를 제거하다

글/ 중국 대법제자 서광(曙光)

[밍후이왕] 나는 1998년에 법을 얻었는데, 당시 중학생이었던 나는 급성 위염을 앓았고, 몸이 약해 병치레를 하면서 늘 감기와 발열에 시달렸다. 수련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께서 내 신체를 깨끗이 해주셨고, 나는 정말 병이 없는 가벼운 몸을 갖게 됐다. 나는 저녁 자습을 마치고 자전거를 타고 오다가 앞에서 오던 자전거와 오토바이에 두 번이나 부딪혔는데,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의 보호 아래 놀라긴 했지만, 위험은 없었다. 심성(心性)을 닦아야 한다는 것을 처음 알았을 때는 파룬의 회전을 느꼈는데, 그때는 매일 불광(佛光) 속에 빠져 신체가 건강하고 마음이 유쾌해 내가 아주 빨리 향상되는 것을 느꼈다.

1999년 7월 20일, 사당(邪黨)이 파룬궁을 상대로 미친 듯한 박해를 시작했다. 2000년에 나는 고등학생이었다. 한번은 정치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사람을 속이는 사당의 거짓말을 강의하셨다. 나는 일어서서 대법을 위해 바른말을 하고 싶었지만 박해 압력 때문에 망설였다. 사존의 시구가 생각났다. “한결같은 마음으로 만근 다리 옮기나니”[1] 나는 일어서서 말했다. “선생님, 파룬궁은 텔레비전에서 말하는 것과 다릅니다. 제가 바로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입니다.” 교실에서는 일순간 적막이 흘렀고, 모두의 시선이 내게로 쏠려, 나를 바라보았다. 선생님은 한참 동안 말을 못 하시다가 나에게 앉으라고 하셨다. 나중에 선생님은 나를 밖으로 불러 자신도 파룬궁을 접한 적이 있어서 파룬궁이 좋다는 것을 안다며, 단지 교사의 임무를 완수할 뿐이라고 말씀하셨다. 이야기하던 중에 교장 선생님이 멀리서 다가오셨다. 선생님은 눈짓으로 목소리를 낮추라는 신호를 하셨는데, 나를 보호하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내가 주의하지 않아 이후에 교장 선생님이 사당의 박해에 협조하게 했다. 수업이 끝나자 친구들이 나를 둘러싸고 많은 이야기를 했고, 자신들은 절대 파룬궁을 반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들이 내 사람 됨됨이를 알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성적이 우수했고, 선생님을 존경했으며, 친구들과도 아주 화목하게 지내는 등 모든 면에서 아주 괜찮았다.

이튿날 교장 선생님이 날 불러 이야기를 나누었고 이후로도 거의 매일 나를 찾으셨다. 교장 선생님은 사당의 거짓말에 아주 깊이 세뇌되어 있었다. 내가 많은 진상을 알려드렸지만, 자신의 지위를 잃을까 봐 두려워 교육국에 보고하셨다. 교육국에서 한 무리 사람들이 왔는데 그중 한 사람은 국장이었다. 그는 내가 진상을 말해주어도 듣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날 정신병자라고 했다. 국장으로서의 소양이 정말 너무나 낮았다. 나는 그를 똑바로 쳐다보면서(당시 사부님께서는 이미 발정념에 관한 설법을 하셨음) 그에 대해 발정념을 했다. 즉시 그의 날뛰던 기세가 사라졌고 나와 헤어질 때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나는 다시 그들에게 많은 진상을 알려줬는데 교장 선생님이 와서는 나를 교실로 돌아가게 하셨다. 국장이 학교를 떠날 때 그가 날 가리키며 이 아이가 괜찮다고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내가 발정념으로 그를 조종하는 사악을 제거해 그의 본성의 일면이 밖으로 드러난 것을 알았다.

교장 선생님은 내가 아주 확고한 것을 보고는 파출소에 신고하셨고, 경찰이 와서는 나를 불법적으로 심문하며 자백을 기록했다. 교장 선생님은 옆에서 나를 다그치셨다. “사실이 아니지? 왜 말을 안 해?” 당시 박해가 방금 시작되어 나도 법리가 명확하지 않아 부모님도 연공을 하신다고 말했다. 사실은 그들도 부모님이 베이징에 청원하러 간 것을 일찍이 알고 있었고, 부모님을 납치하려던 사악한 속셈을 드러냈다. 과연 그들은 아주 빨리 우리 부모님을 납치했고, 나만 홀로 집에 남겨놨다.

이때가 내 일생 중 가장 암울한 시기였다. 비록 환경은 암울했지만, 내가 내딛는 길은 밝았다. 대법을 생각하기만 하면 내 마음속은 빛으로 가득했다. 나는 법공부를 잊지 않았고, 사람들 눈에 띄지 않기 위해 한여름에 천막으로 덮은 삼륜차 안에서 법공부를 했다. 비록 많은 땀을 흘렸지만, 법공부만 하면 내 마음은 비할 바 없이 평온했다. 수련생들은 사심 없이 날 도와주었다. 아주머니 수련생은 매일 나를 집으로 데려가 밥을 주셨고, 심적인 부담 없이 공부에 전념하게 하셨다. 땅의 풀을 뽑아야 할 때는 모두 우리 집에 와서 도와주셨다. 수련생들은 정말 평온하고 사심이 없었다. 친척들이 나에게 관심을 주지 않는 상황에서 수련생들은 도움의 손길을 주셨다. 사부님의 법과 수련생들은 나에게 가장 어려운 시기를 넘기게 해주었다.

여름방학 기간에 교장 선생님은 내가 탄원하러 나설까 봐 날마다 학교에 가서 서명하라고 하셨다. 그리고 개학 전에 이른바 ‘보증서’를 쓰라고 하셨다. 나는 절대 쓰고 싶지 않았고, 경찰의 납치를 피하고자 유랑할 준비를 단단히 했다. 그때 부모님께서 불법으로 감금되어 있던 구치소에서 한 달 만에 돌아오셨다. 그분들은 본심을 어기고 이른바 ‘보증서’에 서명을 하셨고, 나에게도 거짓으로 ‘보증서’에 서명을 하라고 하셨다. 나중에 우리는 모두 밍후이왕에서 엄정성명을 발표했다. 우리는 넘어졌다 일어났다 하며 끊임없이 정진해 곧장 조사정법(助師正法)의 길에 올랐다.

2015년 장쩌민 고소 열풍이 불었을 때, 나는 이미 가정을 이뤘고,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에서 일했는데 그곳은 중학교로 바뀌어 있었다. 우리 진(鎭)의 대법제자들은 아주 기쁘게도 이번의 정법 노정에 올랐고, 나는 우리 진의 대법제자 수십 명을 도와 고소장을 정리했다. 적시에 배달해 배송 확인서를 받았고, 제때 밍후이왕에 보냈다. 나중에 사당이 ‘노크 활동’으로 보복했는데, 파출소장과 경찰 세 명이 학교로 날 찾아와 파출소에 가서 상황을 알아보자며 거짓말을 했다. 나는 마침 그들에게 진상을 알리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비록 당시 마음이 조금 불안했지만, 진심으로 중생을 구하고 싶었다. 그들이 계략을 꾸미는 것을 피하고자 나는 집에 전화를 걸어 파출소에 간다고 알렸다.

경찰차에서 내가 소장에게 진상을 알리자 그는 아주 귀찮다는 표정을 지었다. 파출소에 도착하자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내가 몇마다 하기도 전에 경찰이 휴대전화를 빼앗고는 나를 땅에 넘어뜨리고 수갑을 채웠다. 그들은 나를 납치하려고 일찍이 사전모의를 한 것 같았다. 그들은 수갑으로 날 심문용 철제 의자에 묶고는 불법으로 심문했다. 나는 그들의 질문에 답하지 않고 진상을 알렸다. 그들은 크게 고함쳤지만 난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무 말 없이 발정념을 했다. 그들은 곧 나를 현(縣) 공안국에 데려가려고 철제 의자에서 풀어주고 손에 수갑을 채우려 했는데, 내가 그들에게 협조하지 않자 그들은 수갑을 채우려 했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채우지 못했다. 나중에 한 경찰이 수갑의 부속품을 길게 조절한 후에야 나에게 수갑을 채웠는데, 살을 아주 깊이 파고들게 채웠다. 현 공안국으로 가는 도중에 한 경찰은 또 계속해 내 손목을 꺾었다. 그러나 나는 조금도 아프지 않았다. 사부님께서 제자를 보호해주신 것이었다. 나는 그들을 조금도 원망하지 않았고, 단지 그들이 무지(無知) 속에서 대법제자에게 죄를 짓는 것이 불쌍해 계속 그들에게 진상을 알렸다.

공안국에 도착하자 그들은 수갑을 풀어줬다. 내 손목에는 두 줄기의 빨갛고 깊은 골이 생겼다. 경찰이 내 정보를 기록하는 것을 보니 마치 날 감금할 준비를 일찌감치 한 것 같았다. 나는 움직이지 않고 생각했다. ‘나는 리훙쯔 사부님의 제자로, 다른 배치는 모두 원치 않고 인정하지 않는다.’ 지장을 찍을 때 체격이 우람한 경찰 두 명이 내 손을 잡고 눌렀다. 나는 힘을 쓴 것 같지도 않았는데, 그들은 누르지 못했고,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그들은 나를 불법적으로 심문했다. 내가 한마디도 하지 않고 끊임없이 발정념을 하자 그 경찰은 안절부절못했다. 나는 앉았고, 그는 쪼그린 채 거의 애원하는 말투로 나에게 말을 건넸다. 이전의 고함치고 날뛰던 모습은 사라졌고 얼마 안 되어 나가버렸다. 마침내 가장 높은 사람이 나타났다. 그는 고의로 자신의 신분을 숨긴 채 공안국이 날 박해하지 않을 것이라는 등의 말을 하며 협조하라고 했다. 나는 자비롭게 그에게 진상을 알렸고 반드시 가족과 자녀의 앞날을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중에 나는 경찰들의 대화를 참작해 그가 국보대대장이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그의 본성의 일면이 움직여진 것을 느꼈다.

사악은 또 술수를 썼다. 교장과 몇몇 간부, 동료가 공안국에 왔다. 교장은 교육청의 지시를 받고 왔다며, 내가 ‘전향’하지 않으면 해고한다고 했다. 나는 따끔하게 충고했다. “제가 어떤 국가 법률도 어기지 않았는데, 무슨 해고를 합니까? 누구든 저를 해고하면 찾아갈 겁니다.” 교장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악은 또 우정을 끌어들였다. 평소 형제처럼 지내던 한 동료가 나를 설득했다. 나는 그에게 호의가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사악에게 속은 그는 내가 타협하면 사악이 날 풀어줄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과 다르다고 말했다.

나중에 한 경찰은 국보대대장에게 우리 가족이 몰려오면 내 신심과 정념을 북돋울 것이라고 말했다. 잠시 후, 경찰은 다시 가족의 정을 이용하려고 아내를 들여보냈다. 내가 아내를 보아 타협하기를 기대한 것이었다. 나는 심성을 장악하며 정을 움직이지 않았고 아내를 살폈다. 아내는 날 보기 위해 직장에서 급히 달려왔고 충격을 받았다. 나는 아내의 손을 잡고 말했다. “당신이 왔네요.” 아내가 말했다. “무슨 문제가 있나요?” 내가 말했다. “없어요.” 당시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나와 아내가 서로 존중하고 사랑하는 모습에 감동했다.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속인의 상태에 맞게 수련하라고 하셨으므로 나는 아내를 생각했고, 아내도 나를 배려했다. 국보 대장은 다시 아내를 속이면서 내가 서명만 하면 풀어준다고 말했다. 아내도 진상을 알고 법공부를 했다. 아내가 말했다. “양심에 어긋나는 일은 할 수 없어요.” 국보 대장은 나를 감금하겠다고 말했다. 나는 생각했다. ‘당신 마음대로 안 되고, 우리 사부님 마음대로 된다.’ 나는 그들에게 일침을 가했다. “저는 장쩌민까지도 고소했으니 누구든 고소할 겁니다.” 국보 대장은 놀라서 얼굴을 붉어졌다. 그는 자신이 이미 밍후이왕 악인 명단에 올랐고, 내가 자신의 이름과 신분을 알고 있다는 것에 대해 몹시 놀라워했다. 나중에 사악은 수단이 바닥나자 모든 사람을 나가게 하고, 나를 감시하는 경찰 두 명만 남겨놨다.

나는 계속해 자신의 누락을 찾았고, 많은 집착심을 발견했다. 그러나 집착과 누락이 있다고 해서 구세력의 박해를 승인하지는 않았다. 나는 대법제자이며, 나는 법 속에서 옳은 길로 돌아설 것이었다. 내가 끊임없이 발정념을 하자 내가 아주 커지고, 공안국이 나의 발아래에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또 감시하는 경찰 두 명에게 진상을 알렸다. 실내에 감시가 있었으므로 그들은 모두 못들은 체했다. 나는 그들의 명백한 면이 듣는다는 것을 알고 아주 많은 이야기를 해줬다.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 국보 대장이 들어와서는 나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겠다며, 자신이 집에 방문할 것이라고 했다. 나는 마음속으로 사존께 감사드렸다. 그것은 사존께서 나에게 주신 기회였다. 경찰 마음대로 안 되고, 대법 사부님 마음대로 된 것이었다. 그는 나중에도 이른바 방문도 하지 않았다.

밖으로 나온 나는 현지의 몇몇 수련생이 고생을 마다하지 않고 적시에 공안국으로 와서 날 위해 근거리 발정념을 하고, 내 정념을 가지 해주었기에 내가 순조롭게 위험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 수련생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교장은 내 정념정행에 감동하고 말했다. “내일은 평소처럼 출근하세요.” 나는 이튿날 평소처럼 출근했다. 그러나 교장은 나중에 다시 혼란스러워했다. 그는 학교 간부들을 소집해 나에게 이른바 보증서를 쓰게 했고, 나를 몰아붙였다. 같은 곳, 같은 학교에서 나는 과거 고등학교에 다닐 때와 같이 ‘전향’을 강요받았다. 비록 교장으로부터 해고 협박을 들었지만, 나는 흔들리지 않고 일념을 견지했다. ‘사부님 뜻대로 된다.’ 결국, 교장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다시 교육청 간부가 와서는 날 이직시키기로 했다고 말했다. 나는 잘못이 없었으며, 어떤 법률도 어기지 않았기에 흔들리지 않았다. 대법제자가 하는 일은 가장 바른 것이며, 어떠한 구세력과 사악한 생명의 박해도 허용하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나는 교사 직책을 수행하고 있다.

이렇게 여러 해, 한 길로 걸어오는 동안 걸음마다 사존의 자비로운 보호가 없었다면 나는 오늘까지 걸어올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사존의 은혜를 잊을 수 없다. 앞으로 나는 반드시 정념정행하며 사부님을 따라 조사정법, 중생 구도를 견지할 것이다. 사존의 자비롭고 고생스러운 제도에 감사드립니다! 수련생들의 사심 없는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시 : ‘홍음-태산에 올라(登泰山)’

 

원문발표: 2020321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3/21/40227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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