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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을 원망하던 데에서 이해하고 잘 대하다

글/ 허베이(河北) 대법제자

[밍후이왕] 어제 나는 아래층에서 아들과 며느리가 또 싸우는 소리를 듣고 마음이 좀 불편했다. 나는 8살 손녀가 괴로워할까 봐 근심했는데 잠시 후 딸이 와서 그들이 싸우는 것을 보고 아이를 자기 집에 데리고 갔다고 말해서야 좀 시름 놓았다.

예전에 한 번은 한밤중에 계속 싸워 손녀(그때 4살이었음)가 살짝이 내 방문을 열고 들어와서 잤다. 그들이 싸우느라 애도 관계하지 않아 나는 애가 불쌍하게 여겨져 참지 못하고 그들 방에 가 몇 마디 호되게 꾸짖었다.

요 몇 해 나는 줄곧 며느리를 원망했다. 매번 그들 부부가 싸우는 것을 보면 며느리가 거기에서 야단치면서 끊임없이 말하고 아들은 한 마디도 없었다. 특히 며느리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아이의 기분을 상관하지 않으며 시도 때도 없이 싸울 때마다 나는 아이가 왜 이런 가정에서 태어났을까 하고 불쌍하게 여겼다. 시간이 길어지자 이런 원망이 물질로 형성되어 장기간 제거할 수 없었다.

나는 끊임없이 원망하는 마음을 닦아버렸다. 이번에 나는 많이 좋아진 것 같았다. 그들 사이의 은혜와 원망이 우연히 발생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아이가 이런 가정에서 태어난 것도 절대 우연한 것이 아닌데 내가 상관할 수 있겠는가? 동요한 것은 자신의 그 마음이고 오랫동안 포기하기 싫어하는 정(情)일 뿐이다. 나는 이번에 며느리를 원망하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았고 며느리가 매우 고생스럽다고 생각했다. 부모가 질병이 있어 어머니를 돌보느라 일을 할 수 없고 종일 어머니 건강 때문에 근심하고 거기에 생활상의 압력까지 받으니 정말 쉽지 않을 것이다. 며느리가 자기 남편에게 화를 내 스트레스 해소하는 것을 마땅히 이해해야 한다.

나는 저도 모르는 사이에 원망하는 이런 물질을 선(善)으로 전화했다. 며느리를 동정하고 이해할 수 있었고 다른 사람을 위해 생각할 수 있었다. 아울러 분별하는 마음에서 벗어났다. 아들은 나의 육친이고 며느리도 나의 육친이 아닌가? 며느리가 우리 집에 왔으니 마땅히 딸처럼 대해야 하지 않는가? 나는 수련인이기에 누구든 마찬가지로 대해야 한다. 하물며 며느리 또한 나의 육친인데!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어떤 일이든지 모두 인연 관계가 있는 것으로서, 사람은 왜 사람이 될 수 있는가? 바로 사람에게는 정(情)이 있으며, 사람은 바로 이 정을 위해서 산다. 육친정ㆍ남녀지정ㆍ부모지정ㆍ감정ㆍ우정, 매사에 정분(情份)을 중시하며, 곳곳마다 이 정을 떠날 수 없다. 하려고 하거나 하지 않으려고 하거나, 기뻐하거나 기뻐하지 않거나, 사랑과 미움, 전반 인류사회의 모든 것이 전부 이 정(情)에서 나온 것이다. 만약 이 정을 끊어버리지 못하면 당신은 수련하지 못한다.”[1]

만사는 모두 명리정(名·利·情) 이 세 글자를 벗어나지 못한다. 원망과 미움이 바로 정의 체현이 아닌가? 정에서 원망이 나오고, 원망에서 미움이 생긴다. 한 수련인이 어찌 다른 사람을 원망해서 되겠는가? 게다가 자신의 육친임에랴?

사부님께서 또 한 번 저에게 원망하는 마음의 근원을 찾게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오늘 이후 어떤 일에 부딪히고 어떤 사람을 만나든지 원망하는 마음을 경계하고 그것을 닦아버리는 것에 주의하며, 자비로 모든 일과 사람을 대하는 진정하게 다른 사람을 위하는 사람이 되겠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轉法輪)’

 

원문발표: 2020224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2/24/40162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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