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산둥성 대법제자 소연(小蓮)
[밍후이왕] 저는 법을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은 청년 대법제자이며 자신이 법을 얻은 전후의 경험을 써내어 사부님 은혜에 감사드리고자 하며 동시에 대법의 위대함과 초범성을 실증하고자 합니다.
하루는 제가 스카이프(skype)에서 채팅할 때, 미국에 있는 한 대법제자가 저에게 천안문 분신자살 진상 사진을 전송해주면서 천안문 분신자살은 사람을 속인 것이고 파룬궁(法輪功)에 죄를 뒤집어씌워 모함하는 것이라고 알려줬습니다. 또 저에게 삼퇴하면 평안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알려줘 당시 저는 흔쾌히 사악한 중국공산당의 공산당, 공산주의 청년단, 소년선봉대 조직 탈퇴에 동의했습니다. 실명을 막 전송하려던 찰나 그는 이미 저에게 ‘소연’이라는 가명을 지어주었고 전송해줬습니다. 이 이름으로 삼퇴를 도와주겠다고 말했고 저는 가명으로 해도 된다는 것을 알고는 더 기뻤습니다. 그 대법제자는 당시에 또 방화벽을 돌파하는 링크를 보내줬으나 그때는 그냥 저는 뉴스를 본 것 같아서 대법에 대해 깊이 알아보지 않았습니다.
그날 채팅에서 제가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모니터 너머로 상대방의 선함과 진실함을 느낄 수 있었고 조급함이 없이 그처럼 끊임없이 생동감 있게 이야기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남편을 알게 된 후, 그가 언급하는 파룬궁 이야기를 들을 때 사악한 중국공산당이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환경하에 저의 첫 일념은 두려워서 몇 걸음 물러서며 도망가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저를 삼퇴시켜준 그 대법제자가 떠올라 결국 남았습니다.
저의 남편 일가족은 1999년 7·20 이전에 법을 얻었습니다. 결혼 후, 고향에 갈 때 시부모님은 늘 진상 자료를 가져와 저에게 그 안에서 알려주는 좋은 사람이 되는 것과 시부모에게 효도하는 내용을 보여주곤 했습니다. 그때 저는 ‘아, 시부모님은 내가 효도하지 않을까 봐 두려워서 내게 보여주고 나를 좋은 며느리가 되라고 하는 거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그것은 시부모님이 대법이 좋다는 것을 알고 저에게도 많이 보게 하여 저라는 이 생명이 잘 되기 위해서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마 저의 연분이 아직 닿지 않아서 일부의 것이 저를 가로막고 들어오지 못하게 해 제가 오래도록 수련에 걸어 들어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남편이 저에게 말해준, 시아버지가 이전에 앓던 병을 병원에 가도 잘 낫지 않았지만, 파룬궁을 수련해서 낫게 됐다는 이야기를 믿었습니다.
나중에 시아버지는 저에게 대법 책을 구해 주었습니다. 매우 긴 시간이 지나서 완전히 한 번 읽어본 후, 저는 울기 시작했으며 왜 일찍 저에게 보게 하지 않았냐고 남편을 원망했습니다. 대법은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게 하고 더욱 좋은 사람이 되게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대법 수련을 결심한 후, 그달에 임신했고 몸에 병이 없어 온몸이 홀가분해지다
저는 결혼해서 아이를 가지려 했으나 1년 동안 줄곧 임신이 안 돼 한의사에게도 찾아가 봤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남편은 저를 파룬궁을 연마하게 했고 구하는 마음을 품어서는 안 된다고도 말했습니다. 저는 그럼 파룬궁을 수련하겠다고 하면서 자신이 임신할 수 있는지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며 임신을 못 하면 우리가 한 명 입양하자고 말했습니다. 남편은 좋다고 말했습니다. 신기하게도 이 말을 한 그달에 저는 바로 임신했습니다. 오늘날까지 우리의 아이는 이미 두 살이 넘었으며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제2장 공법 ‘파룬좡파(法輪樁法)’는 그때에도 음악이 30분이었습니다. 저는 자신에게 ‘처음 연마하는 것이니 아무리 어려워도 견지해야 한다. 이 공법을 연마해서 도대체 어느 정도로 지치는지 보고 다음번에 반 시간을 견지할지 말지 가늠해보자’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제2장 공법을 처음에 바로 견지했습니다. 비록 연마할 때 팔을 들고 있는 것이 몹시 힘들었지만 연마한 후 몸이 유난히 가벼웠습니다. 두 번째 제2장 공법을 연마할 때에 저는 처음에 견지했는데 두 번째에도 견지하는 것은 문제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앞의 네 가지 공법을 단번에 연마할 수 있게 됐습니다.
제5장 공법은 저에게 있어서 몹시 어려웠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가부좌를 전혀 못 했기 때문입니다. 반가부좌를 해도 다리가 너무 높게 들렸으니 결가부좌는 말할 것도 없었습니다. 처음 시작했을 때에는 1분도 가부좌를 할 수 없었으며 겨우 가부좌를 틀고 나면 아파서 곧바로 내려놓아야 했습니다. 나중에 서서히 1분씩 늘려가며 견지했습니다. 지금은 가부좌 1시간을 매우 가볍게 할 수 있습니다. 한번은 사부님의 가지 하에 2시간을 가부좌했습니다.
어릴 때, 저는 왼쪽 발목을 접질렸습니다. 나중에 어머니가 저를 데리고 병원에 갔을 때 의사는 새 살이 돋아나 나을 수 없다고 말해 더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조금 오래 서 있거나 쪼그리고 앉거나 길을 좀 오래 걸으면 늘 아픈 느낌이 있었습니다. 또 고등학교 1학년 때 한번은 비가 내려 길이 미끄러웠고 저는 넘어져서 허리를 다쳤습니다. 평소에는 괜찮다가 허리를 굽혀 자세가 틀어지면 찌를 듯이 아팠습니다. 오른쪽 무릎은 겨울만 되면 차가웠고 말할 수 없이 괴로웠으며 류머티즘 같았습니다. 저는 연공할 때, 이런 것을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가 나중에 이런 증상은 제가 연공한 후 부지불식간에 나았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전에 생리할 때면 허리가 은근히 아팠고 아랫배도 가라앉는 듯한 느낌이 있었습니다. 생리가 시작된 후 차가운 음식을 먹거나 만지기만 해도 배가 아팠기 때문에 과일처럼 차가운 것을 먹을 수 없었고 냉수도 감히 마시지 못했으며 물건을 씻을 때도 차가운 물을 사용하지 못했습니다. 파룬궁을 배운 후, 이런 속인의 것은 저에 대해 작용을 일으키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생리가 와도 저는 과일을 먹었고 심지어 겨울에 냉수도 감히 마셨으며 마침내 배도 아프지 않았습니다. 이런 것은 정말 기적입니다.
꿈에 왠선(元神)이 공중에 뜨다
수련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한번은 제4장 공법 파룬쩌우톈파(法輪周天法)를 연마할 때, 막 배운 법이 떠올랐습니다. “사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대주천이 통하기만 하면, 이 사람은 공중으로 뜰 수 있는데, 바로 이렇게 간단하다. 어떤 사람은 생각한다. 이처럼 여러 해 연공(煉功)했는데, 대주천이 통한 사람 역시 소수가 아닐 것이다. 내가 말하는데 몇 만이나 되는 사람이 이런 정도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해도 허황하지 않다. 왜냐하면 대주천 그것은 필경 갓 연공하기 시작한 첫걸음이기 때문이다.”[1] 저는 바로 마음속으로 한 번 생각했습니다. ‘나는 막 연공을 시작했다. 그러면 나도 대주천이 통한 것이 아닌가?’ 결국, 밤에 매우 또렷한 꿈 하나를 꿨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저를 확실하게 공중에 뜨는 느낌을 체험하게 해주셨습니다. 잠을 자고 있는데 분명하게 자신이 이불과 함께 떠오르는 것을 느꼈고 당시에 좀 두려워서 곁에 있던 남편을 붙잡고 싶었지만 그러기도 전에 문 입구까지 날아갔습니다. 두려움 속에서 불현듯 사부님께서 법에서 하신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그녀가, 나는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하자 또 떠서 돌아왔다.”[1] 저도 바로 마음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돌아가자.’ 저는 정말 천천히 날아돌아와 침대에 누웠습니다. 저는 놀랍기도 하고 흥분됐습니다. 저는 또 ‘뜨자’라고 생각하자 또 바로 떠올랐습니다. 그다음 또 ‘내려가자’하고 생각하자 또 내려왔습니다. 이렇게 몇 번 오고 가다가 마음속으로도 사부님의 말씀 “그가 과시만 하면 없어지는데, 이렇게 존재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1]라는 법이 분명하게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여전히 ‘앞으로 친정집에 갈 때 차를 탈 필요 없이 직접 날아서 가면 되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자신도 이렇게 생각하면 떠오를 수 없게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떠오르지 못하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과연 이렇게 한 번 생각하자 마음속으로 다시 ‘뜨자’라고 생각했지만 뜨지 못했습니다. 사부님의 말씀이 진실하며 허황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이 꿈은 너무 사실적이어서 꿈에서 깨어나 매우 긴 시간이 흘러서도 도대체 꿈이었는지 현실이었는지 분간하기 어려웠습니다.
밤에 연공하지 못하는 두려운 마음을 돌파하다
저는 어려서부터 유난히 어두움을 두려워했습니다. 어린 시절 귀신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고 공포영화를 본 적이 있어 늘 사상 속에는 자신도 모르게 이런 것을 자신의 현실 생활 속으로 끌어들였습니다. 학창시절 학교 기숙사에 있을 때 밤이면 화장실을 감히 가지 못했고 도저히 참지 못하게 돼서야 갔으며 들어가면 감히 문을 열고 나오지 못하다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의 소리를 듣고서야 비로소 나오곤 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문을 열고 나갈 때,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나를 끌어당길 것 같기 때문입니다. 매우 긴 시간 동안 저는 밤에 감히 연공하지 못했습니다. 자신이 그 백 분의 일에 해당하는 극히 특수한 상황일까 봐 두려웠습니다. 하지만 낮에는 그렇게 시간이 많지 않아서 여전히 밤에 연공해야 했습니다. 처음에 시작할 때부터 남편과 아이는 모두 잠들었습니다. 저는 바로 침대 옆에 서서 억지로 두려움을 참아가며 혼자 연공했습니다. 남편이 말을 걸어 줄 때면 좀 낫다가도 말을 걸지 않으면 마음은 곧 안정감을 잃고 늘 두려워했습니다. 이렇게 한동안 지속하다가 한번은 저 혼자 거기에서 연공하고 있을 때, 갑자기 한 줄기의 차가운 바람이 불어왔고 저는 손마저 시렸습니다. 마치 무언가 앞에 와있는 것 같았으며 저는 ‘창문도 닫았는데 어디에서 불어온 바람인가’하고 생각하며 또 두려워했습니다. 불현듯 그 며칠 동안 배운 법이 생각났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곁에 계시는데 나는 네가 두렵지 않다.’라고 생각하며 눈을 감고 계속 연마했습니다. 결국, 신기하게도 그날 밤부터 저는 밤에 연공할 때 더는 두려운 느낌이 없었으며 담도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법 공부를 할 때 글자가 책 속에서 날아 나오는 것을 두 번 보다
처음에는 때때로 법 공부를 할 때, 생각이 저도 모르게 다른 곳으로 흐르게 되며 자주 졸기도 합니다. 한번은 법 공부를 하다가 졸아서 눈이 떠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교란인 것을 알았고 잠을 자는 것은 진정한 자아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만 극복하기가 매우 어려워 인위적으로 견지하고 있었습니다. 읽다 보니 갑자기 사부님께서 한 차례 설법에서 제자의 질문에 대답해주실 때 하신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당신의 말대로 당신이 그것을 갖지 않겠다고 하여 그것이 바로 죽어버린다면 이는 너무나도 쉽다. 당신이 그것을 똑똑히 분별할 수 있는 동시에 당신 자신이 강건해지고, 깨닫게 되어 그것의 포위망을 뚫고 나오면 갈수록 강대해지지만, 그것은 갈수록 약해지고 소실되어 최후에는 소멸하여 버리는데, 이는 과정이 필요하다.”[2] 저는 눈을 감고 마음속으로 한번 생각했습니다. ‘나는 너를 갖지 않겠다.’ 다시 눈을 떠보니 자신이 읽고 있는 그 구절의 말씀이 갑자기 크게 변하여 책 속에서 날아 나와 저의 눈앞에 보였습니다. 머리도 단번에 명석해졌고 조금도 졸리지 않았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제가 법에 있는 모습을 보시고 저를 격려해주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또 한번은 이전에 법 공부를 할 때 “대륙 수련생들 가운데 한 가지 상황이 있습니다. 법을 배우면서 사부님의 이름을 만나면 어떤 사람은 읽으면 안 되며 ‘사부’, ‘사존’으로 고쳐서 읽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법을 읽는 것은 곧 법을 읽는 것이며 고치면 안 됩니다.”라고 배웠습니다. 하지만 이 단락의 법을 배운 지 오래되어 그 후로 다시 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도 ‘전법륜’을 통독하다가 사부님 이름을 만났을 때 마음속으로 ‘사부’로 고쳐서 읽었습니다. 결국, 여러 번 읽은 후 또 한 번 사부님 이름이 있는 곳을 읽게 되었을 때, 마음속으로 ‘사부’라고 읽고 싶다고 막 생각한 그 순간 그 한 페이지에서 사부님의 이름이 있는 몇몇 곳이 전부 크게 변해서 책 속에서 날아 나왔습니다. 저는 단번에 자신이 이전에 배웠던 그 단락의 법이 떠올랐으며 사부님의 이름으로 고쳐서 읽었습니다.
자신을 수련하는 동시에 사람을 구하는 것을 잊지 않다
한 길을 걸어오면서 곤란에 부딪히면서 걸어왔습니다. 막 임신했을 때, 대법 책과 사부님의 경문을 들고 아이에게 이름을 찾아 지어주려고 했습니다. 아이를 낳은 후 시어머니는 31일째 되는 날 고향 집으로 돌아가려고 해서 저는 혼자 아이를 데리고 있다 보니 법공부와 연공을 하지 못했습니다. 매일 지쳐서 씻을 겨를도 없이 그때는 다만 아마 연공하면 저는 이렇게 힘들지 않으리라고 생각할 뿐이었습니다.
아이가 한 살이 넘었을 때, 한번은 밖에서 수련생 아주머니 한 분을 만났는데 저에게 삼퇴하여 평안을 보장받는 것을 알려줬습니다. 저는 아주머니에게 저는 이전에 연공한 적이 있지만 지금 아이를 데리고 있어서 시간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아주머니는 “아이가 잠든 것을 기다렸다가 다시 연마하세요. 아이는 깨지 않을 거예요.”라고 말했습니다. 아주머니는 또 저에게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는 것도 알려줬습니다. 저는 그때 멍해졌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집으로 돌아간 후 아이가 잠든 것을 기다렸다가 저는 다시 시도해보자고 생각했습니다. 이번에 다시 수련하게 되었을 때 저는 법 공부를 하고 연공하면 지혜가 열릴 수 있다는 마음을 품고 아이가 어린 틈을 타 교사 자격증을 따서 아이가 학교 다닐 때 선생님이 되어 직업도 안정적이게 되면 겨울 여름 방학에는 아이와 함께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배우면서 저는 서서히 그 교사 자격증이 저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느껴졌습니다.
이전에 저는 혼자 법 공부를 하고 연공했습니다. 시부모님은 고향 집에 계셨고 남편도 법 공부와 연공을 하지 않았습니다. 서로 의견을 나눌 사람이 없어서 어떻게 수련하는지 몰라 남편과 갈등을 빚게 되어도 안으로 찾을 줄 몰랐습니다. 가끔 아이를 데리고 나가서 진상을 알려도 잘 알리지 못했습니다. 하루는 밖에 나가기 전에 마음속으로 수련생이 있어서 함께 배우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날 아이를 데리고 나간 후, 매우 무거운 자루를 들고 있는 아주머니 한 분을 보고 저는 다가가서 말을 걸면서 돕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다음 아주머니에게 대법 진상을 알렸습니다. 그녀는 저에게 자신이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을 안다고 알려주면서, 진상 소책자를 매일 모두 본다고 말하며 저를 데리고 갔습니다. 이렇게 저는 사부님의 배치 하에 수련생을 찾게 되어 내심으로 비할 바 없이 기뻤습니다. 자신은 잘하지 못했지만, 이 마음이 있는 것만으로도 사부님께서는 저를 도와주셨습니다.
이제 알게 되었습니다. 어떤 갈등에 부딪혀도 모두 자신에게서 찾아야 하고 자신이 마음을 움직일 때 자신의 어느 마음에 저촉되었는지 봐야 하며 그것을 잡은 다음 닦아 없애야 합니다. 하지만 말하기는 쉬워도 행하기는 여전히 매우 어렵습니다. 이전에 남편은 저에게 별로 욕하지 않았고 때리지도 않았는데 제가 자신을 잘 수련해보려고 할 때부터 걸핏하면 저를 욕하고 때렸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는 자신에게 매우 심한 쟁투심, 평형을 이루지 못하는 마음, 질투심,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는 마음, 과시심, 잘난 척하는 자기중심적인 마음, 색욕, 명리정 등 사람의 마음이 너무 많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어떤 때에는 법리에서 자신의 마음이 욕과 매를 불러왔다는 것을 알면서도 마음속으로 여전히 내려놓지 못했습니다. 저도 제가 그것이 진정한 자신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고 그것들을 배척할 때, 사부님께서도 조금씩 저를 도와 그런 나쁜 것을 없애주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진실하게 사부님께서 저를 지옥에서 꺼내어주시고 깨끗하게 씻겨주시고 다시 깨끗하게 씻겨주신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제가 서서히 조금씩 좋아짐에 따라 남편도 가끔 대법 책을 들고 보고 가끔 연공을 해보곤 합니다. 비록 사람을 욕하고 때리는 현상이 아직 있지만 저는 거기에는 모두 제가 닦아 없애야 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제가 잘하기만 하면 주변 환경이 따라서 좋게 변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면하여 진상을 알리는 것을 저는 여전히 잘하지 못했습니다. 가족에게 알리는 것을 시도해보았고 일부 사람들을 탈퇴시켰습니다. 비록 자신이 수련을 잘하지 못했지만 지금도 힘이 닿는 한 나가서 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부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대법제자의 세 가지 일은 이미 아주 명확한데, 당신은 모두 했는가? 하지 않은 이는 가서 하고, 그 진상을 알리는 거점을 할머니들의 특허라고 여기지 말라. 그리고 사실 당신이 하고자 한다면, 많은 일을 모두 할 수 있다. 당신의 환경 속에서, 심지어 당신이 인터넷에 그럴듯한 문장을 몇 편 올리는 것도 모두 작용을 일으킨다. 대법제자라, 당신이 마땅히 무엇을 해야 한다면 당신은 곧 하라.”[3]
제 곁에서 일어난 신기한 일들이 아직 매우 많지만 편폭이 한정되어 있어 이만큼만 쓰고자 합니다. 저는 자신이 대법으로 걸어 들어와서부터 지금까지 매 한 걸음은 모두 사부님의 보살핌과 보호를 떠날 수 없다는 것을 알며 오직 스스로 잘해야만 비로소 사부님 따라 집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두 손을 허스(合十)하여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적절하지 않은 곳은 자비롭게 바로잡아주시기 바랍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오스트레일리아법회설법’
[3] 리훙쯔 사부님 경문: ‘2019년 뉴욕법회 설법’
원문발표: 2020년 1월 2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1/29/40038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