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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을 가볍게 논함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10여 년 전 한 여성 수련생이 남동생에게서 MP3를 가져와 주위 수련생에게 팔아 본인이 돈을 좀 벌었다. 그 후 주위 수련생이 그녀에게 가격 차액을 돌려주라고 했다. 수련생의 돈을 벌어서는 안 되며 이것은 대법에 부합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그녀는 뜻하지 않게 시간을 끌다 보니 그때 MP3를 산 수련생을 찾지 못해 흐지부지하게 넘어갔다. 이 수련생은 그 뒤 진상을 알리다 고발되어 불법으로 3년형 선고를 받았다. 이 수련생은 매우 선량하고 견정한데 왜 엄중한 박해를 받았을까? 벌지 말아야 할 돈을 번 것이 아닐까?

나도 탐욕이 매우 심했다. 예를 들면 회사차를 타고 개인 일을 봤고 다른 사람이 준 구매 카드를 썼으며 증정품을 가졌고 무료 음식을 먹는 등이다. 하루는 “우리 가지지 말자. 우리 가지려면 직접 가서 사자.”[1]를 배울 때 갑자기 흠칫했다. 그렇다. 한 연공인으로서 무엇이 필요하면 스스로 가서 사는 것이 바른 이치다. “당신이 이익을 점하면 얻은 한 편에 속하는데, 그러면 당신은 곧 잃어야 한다.”[1] 그 후 가급적 스스로 가서 사는 이치로 자기를 요구했다.

사무실 화장실 휴지는 일주일에 3개밖에 놓지 않는다. 이전에 나는 손을 씻을 때 내 휴지를 가져가지 않았다. 하루는 생각했다. 내가 매번 공용 휴지를 많이 쓰면 다른 사람은 적게 써야 한다. 그 후 나는 내 휴지를 가지고 갔다. 그러나 몸에 밴 습관을 고치기 매우 어려웠다. 이득을 챙기지 못하자 어떤 땐 탐내는 마음이 꿈틀거리며 올라왔다. 나는 끊임없이 그것을 반대하고 억제하고 제거했다.

나는 자신에게 물은 적이 있다. 신이 탐욕스럽고 인색할 수 있는가? 신이 다른 사람의 이득을 챙길 수 있는가? 나는 부처수련을 하는 사람으로서 말끝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조사정법 중생 구도(救度)하겠다고 말하고는 휴지 1장마저 내려놓지 못하면서 내가 뭘 내려놓을 수 있는가?

사실 전통문화 중의 청렴은 고상한 미덕이고 탐욕은 부패이고 치욕이다. 그러나 인류 도덕성이 타락됨에 따라 우리도 세파에 휩쓸려 수치를 모르게 됐다. 어떤 때 돈을 쓰지 않고 이득을 챙길 수 있으면 좋아하는데 사실 이것은 변이되고 바르지 않으며 왜곡된 가치관이다. “다른 사람의 좁쌀 한 알 탐오하면 반년 곡식을 잃는다.”(석함걸)는 고어가 있다. “나는 탐내지 않는 것을 보배로 여기고 자네는 옥을 보배로 여기고 있네. 만약 그걸 나에게 준다면 우리는 모두 보배를 잃는 것일세.”(자한) “자기가 마땅히 가져야 할 것이 아니면 일전 한 푼도 구해서는 안 된다. 산간의 맑고 신선한 바람과 물속의 밝은 달처럼.”(소식) 진정한 수련자는 이 재물을 탐내고 물질을 탐내는 마음을 내려놓아야 한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예톈스가 강희황제의 큰 종기를 치료하여 황제가 그에게 후한 포상을 하려 했지만, 그는 완곡하게 거절했다. 예톈스는 말했다. “학생이 병 치료를 한 이래 진찰비만 받고 환자의 어떤 선물도 받지 않았습니다. 예외가 없습니다.” 황제는 말했다. “왜 예톈스는 짐이 하사한 것도 받지 않는가?” 예톈스는 말했다. “학생은 병 치료한 지 30년이 넘습니다. 의술은 천도(天道)와 통한다는 것을 잘 압니다. 의술은 자기 넓적다리의 살을 잘라내어 약으로 쓸 수 있는 마음이 있어야지 개인의 이익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의술은 세상을 구제하는 기술입니다. 의사는 천만 명의 생명을 관심해야 합니다. 사람 목숨이 달린 중대한 일입니다. 의술로 명리를 구하는 것은 도적과 다를 바 없습니다. 학생은 의술로 절대 재물을 모으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잘 압니다. 무사무아(無私無我)해야 비로소 자유자재로 원용할 수 있고 바르게 유지될 수 있으며, 원만하게 소원을 이룰 수 있고 의술의 올바른 이치입니다. 황제께서 학생의 완전무결함을 이해해주시고 학생의 소원을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의술로 이익을 구하는 것은 도적과 다를 바 없으면 대법으로 이익을 구하는 것은 구세력, 낡은 귀신, 흑수와 다를 것이 또 뭐가 있는가? 수련은 의술보다 훨씬 엄숙하다. 사욕, 사리가 있으면 사심이 없어 두려울 게 없는 사람으로 될 수 없고 심성이 제고되지 못한 것이다. 그러므로 수련생을 시장으로 여기고 대법의 돈을 벌어서는 절대 안 된다. 오직 순수한 마음으로 바른길을 걸어야만 구세력의 안배를 부정할 수 있다.

소설 ‘수호전’ 중에 쓴 한 단락이다. 노지심은 한 꾸러미 금 은 비단을 꺼내 사부님에게 바쳤다. 지진 장로는 말했다. “내 제자야, 이 물건을 어디서 얻은 것인가? 의롭지 못한 돈을 절대 받아서는 안 된다.” 지심은 아뢰었다. “제자가 공을 세워 상을 받은 것을 모은 겁니다. 제자에게는 필요 없어 공용에 충당하시라고 특별히 사부님께 바칩니다.”

나는 반성했다. 내가 아낀 돈이 깨끗한가? 사용한 컴퓨터는 회사에서 폐기한 것이고 책표지의 종이는 다른 사람의 것을 가져온 것이고, 진상 편지를 부치러 갈 때 탄 차는 회사차다. 모두 자기 돈을 쓰지 않았으니 나는 정말 총명하다고 생각했다.

얼마 전에 한 수련생이 나에게 경서를 베낀 종이를 복사해달라고 했다. 내가 직장에서 복사할 때 관리자가 보고 경멸하는 눈빛을 보냈다. 나는 즉시 복사를 멈추고 머리를 숙이고 나왔다. 내가 왜 직장의 복사기를 사용한 걸까? 여전히 내 돈을 들이기 아깝고 이득을 챙기려는 마음이 있은 것이다. 나는 자기 돈으로 법을 베낀 종이를 복사해야 진정하게 수련생을 위해 책임지는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정말로 이렇듯 제고해 올라와서 당신들이 순정(純淨)한 심태에서 한 일이야말로 가장 좋고 신성한 일이다.”[2] 탐욕을 버리고 심성을 제고해야 성결하고 위덕이 있는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돈에 집착함은, 재물을 구하는 거짓 수련이라, 교(敎)를 파괴하고 법을 파괴하여 백년을 헛되게 보냄이니, 부처수련이 아니다.”[3] 지금 나는 돈을 내려놓지 못하면 진수한 것이 아니고 불법(佛法)을 교란하고 파괴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다단계를 하는 수련생, 모금하는 수련생은 아마 이 법의 참뜻을 전혀 모르기에 방향을 잘못 걷고 대법을 멀리한 것이다. 그들이 조그마한 돈을 위해 지은 거대한 죄는 지극히 무섭다.

최근 한 가지 일을 들었다. 한 수련생이 콩나물을 키우는 작은 기계를 만들 줄 알아 A수련생이 그의 집에 가 보고 좋다고 생각하여 그에게 하나 만들어 달라고 했다. B수련생도 알고 그에게 하나 만들어 달라고 했다. C수련생이 알고 그에게 자기에게도 하나 만들어 달라고 했다. 사실 이런 작은 기계는 인터넷에도 있고 가격도 비싸지 않은데 왜 스스로 사지 않고 수련생에게 만들어달라고 하는가? 사실 이 작은 일에서 이런 수련생에게 탐욕을 닦아버리지 못한 것이 반영되었다. 수련생이 세 가지 일을 할 시간을 이용하여 그들에게 기계를 만들어준다면 이것은 수련생이 제고하고 사람 구하는 일을 지체한 것이 아닌가? 이것이 그래 작은 것 때문에 큰 것을 잃는 것이 아닌가?

사실 “잃지 않으면 얻지 못한다는”[1] 법리를 사부님께서는 줄곧 말씀하셨지만 조금만 주의하지 않으면 사람의 사욕 탐욕이 범람하게 된다. 그러므로 반드시 법을 배워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편직물공장의 수건을 늘 자기 집으로 하나씩 가져갔는데, 모든 직원들이 그랬다. 공을 배운 다음에는 그는 가져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미 집에 가져갔던 것도 도로 가져왔다.”[1] 이익에서 수련인은 반드시 깨끗해야 한다. 기회를 타서 물건을 슬쩍 가져가는 일이 없어야 할 뿐만 아니라 수련하기 전에 불법으로 점유한 것도 전액 돌려주어야 진수하는 것이다.

이상은 개인의 얕은 의견이니 자비롭게 바로잡아주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
[2]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재인식(再認識)’
[3]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수련자 금기(修者忌)’

 

원문발표: 2020122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1/22/39920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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