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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자연 노쇠 한다는 관념을 타파하자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사부님께서는 대법제자를 소중히 여기신다. 지옥 명부에서 이름을 지워주셨고 수련의 길을 배치하셨으며 우리의 심성을 높여주셨고 수차례 신체조절을 해주셨으며 시시각각 모든 대법제자를 보호하고 계시는 등이다. 무엇 때문인가? 우리에게 책임이 있고 사명이 있기 때문이다. 대법제자의 건강상태는 중생이 구도되는 실제 사례이므로 반드시 자신의 심신을 잘 닦아야 더욱 세 가지 일을 잘 완성할 수 있다.

사존께서 법을 전하신지 20여 년이 됐다. 수련생들도 오랫동안 수련해 왔고 수련의 길에서 쉼 없이 달려왔으며 비바람 속에서 세 가지 일을 하면서 언제나 어딘가 잘하지 못한 게 있다고 느끼며 시간이 늘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수련에서 정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다지 정진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는데 뒤돌아보면 수련생마다 다른 변화가 있다. 일부 수련생은 80~90세지만 여전히 젊은이와 같으며 활발하게 세 가지 일을 하고 있다. 또 일부는 20여 년 수련에서 겉모습에 그다지 큰 변화가 없어서 80대지만 60대로 보이고 70대지만 50대로 보인다. 그러나 또 큰 변화가 있는 수련생도 있는데 심지어 나이가 들어 보인다. 그래서 수련인이 어떻게 자연 노쇠라는 이 문제를 대해야 할지에 대해 최근에 깨달은 바를 교류하려 한다.

우주에는 성주괴멸(成住壞滅)의 규칙이 있으며 다른 층차에서 성주괴멸 시간 길이의 규칙 차이도 매우 크다. 인류 사회에 이르러 이 층차에서 사람에게 대응되는 것은 생로병사(生老病死)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 명성이 얼마나 높고 또 돈이 얼마나 많던지 최종적으로는 이 길을 걷기 마련이며 불변의 규칙이다. 이 때문에 거의 모든 사람에게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자연 노쇠 한다’는 일종 관념이 형성됐다. 특히 나이가 비교적 많은 사람에게서 표현이 더욱 뚜렷하다. 자연 노쇠의 표현은 머리카락이 희고 치아가 빠지며 눈이 어두워지고 귀가 먹어가며 허리가 굽어가고 다리에도 통증이 생기며 주름이 하나씩 쌓여가고 기력이 날로 못해가면서 노쇠해 죽음과 갈수록 가까워진다. 물론 이 모든 것은 구우주에서 구세력이 사람마다 반드시 거쳐 가게 배치한 길이다.

수련인이라면 이 같은 문제를 어떻게 대해야 할까? 우리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자연 노쇠 한다는 관념을 반드시 타파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대법 수련을 하기로 결정하면서부터 사부님께서 배치한 수련의 길을 걷게 되며 사부님께서 우리를 책임지신다. 아울러 단번에 우리를 매우 높이 밀어주셨기에 우리는 삼계 내의 생명이 아니며 이미 속인에 속하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구우주의 구세력이 상관할 수 없다. 비록 우리가 속인 사회에서 수련하면서 봉착하게 되는 번거로움, 모순, 시련과 신체적 고통은 속인과 별로 다르지 않으나 이 모든 것은 사부님께서 우리의 업력을 대부분 제거해주신 후 남은 부분을 각 층차에 나누어놓아 우리의 심성을 높이기 위해 배치하신 것이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특히 연공인(煉功人)은 수련과정 중, 부동(不同)한 층차에서 당신에게 조그마한 난(難)을 설치하는데, 그것은 모두 당신 자신의 업력이고 당신 자신의 난으로서, 부동한 층차에서 당신에게 배열해 당신을 제고하게 한다. 오직 당신이 心性(씬씽)을 제고하기만 하면 곧 넘을 수 있다. 그러나 단번에 이렇게 큰 업력이 온다면, 당신은 어떻게 넘겠는가?”[1] 때문에 수련의 길에서 나타나는 모든 번거로운 일은 모두 좋은 일이다. 그중 일부분은 자연 노쇠하는 방면에서 나타나며 또 일부 속인과 비슷한 상황이 나타날 수 있다. 조금만 주의하지 않으면 속인 그곳으로 미끄러져 가며 구세력이 배치한 길을 걷게 된다. 따라서 우리가 확고하게 신사신법(信師信法)할 수 있는지에 달렸으며 시시각각 자신을 진정한 수련인으로 간주하고 자신의 심성을 높여야 한다.

나는 올해 71세이며 1998년에 법을 얻었다. 아래에 착실한 수련과정에서의 몇 가지 작은 사례로 대법의 초범성을 실증하겠다.

1. 나의 수련에 도움을 준 치아

남편이 치과의사이고 치과를 경영하고 있어서 나는 치아 치료를 하기에 매우 편리하다. 몇 년 전의 어느 날 오른쪽 치아 하나가 갑자기 매우 아파서 집안의 편리한 조건을 이용해 치료했다. (몇 차례 나누어서 치료해야 함) 마지막에는 보철을 씌우는 치료를 했다. 이어서 좌측의 큰 어금니에 금이 생겨 다시 같은 치료과정을 반복했다. 많은 귀한 시간을 사용했지만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마침내 치아 문제를 해결했구나.’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가지런히 있는 앞니 4개가 짙은 흑색으로 변했다. 이어서 우측 위 큰 어금니가 또 심하게 아프기 시작하면서 옆에 물집마저 생겼다.

이때서야 자신이 수련인이라는 것을 자각했고 어째서 깨닫지 못했는지 생각하게 됐다. 나는 사부님께 말씀드렸다. “사부님, 제자는 조심하지 않아 또 속인으로 미끄러졌습니다. 구세력이 배치한 나이가 들면 이가 빠진다는 길을 걸었습니다.” 법을 얻은 지 18년이고 그때부터 약 한 알 먹지 않았으나 수련 전에 숱한 질병이 수련 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심지어는 큰 생사관을 지나왔다. 그때마다 사부님과 대법에 대한 확고한 믿음으로 지나왔다. 또 수련생에게도 늘 말했었다. “병원, 각종 약품, 건강식품, 영양제, 민간처방 등에 대해 저는 여태껏 생각한 적이 없으며 이 모든 것은 저와 상관없습니다.” 그러나 남편도 의사라는 것을 생각지 못했다! 이 역시 병원에 가서 의사를 찾은 게 아니겠는가? 마찬가지로 자신을 속인으로 여긴 게 아닌가!

사존께서 여러 번 점화해 주셨고 노제자로서 자신이 가소로워 보였으며 사부님께 너무나 많은 걱정을 안겨드렸다. 그래서 나는 수련인의 표준으로 치통을 좋은 일로 여기고 심성을 높일 수 있는 좋은 일로 여겼다. 물론 수련인이 우선 생각해야 하는 것은 안으로 찾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음식을 가려서 먹고 맛을 따졌으며 “먹어도 음미하지 않으니 입의 집착 없도다”[2]를 실천하지 못했다. 속인의 행복과 안일한 생활을 추구했으며 수구(修口)에서 매우 부족한 등, 많은 욕망과 집착심이 있어서 모두 그것을 제거해야 했다. 내가 말했다. “만약 내가 갚아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을 갚겠다. 만약 사악한 난귀(爛鬼)가 내가 하는 세 가지 일을 교란한다면 그건 안 된다.”

이렇게 생각을 굳혀갔으나 치통은 실로 견디기 어려웠다. 진정으로 속인이 말하는 ‘치통은 병이 아니나 그 통증은 정말로 목숨을 앗아가는 고통이다’를 체험했다. 남편이 내가 너무 아파하는 걸 보고 몇 번이나 치료하자고 했다. 치료하면 진통제를 사용해 통증을 빠르게 멈추게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나는 수련인이므로 대인지심(大忍之心)이 있어야 했으며 반드시 이 관을 넘어야 했다. 남편에게 더는 마음을 쓰지 말라고 했으며 일체를 모두 사부님께 맡긴다고 했다. 낮에는 무엇을 해야 하면 그것을 했으며 가장 아플 때는 밤이다. 그때마다 나는 연공인의 참음으로 지나왔다.

이삼일이 지나 통증이 사라졌으나 물집은 여전히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아예 신경 쓰지 않았다. 몇 달 후, 일 때문에 필요해 구강 단층면을 사진 찍으면서 치아 전체 상황을 볼 수 있었다. 사진 찍은 의사가 나이를 물어서 60여 세라고 말했다. 사진으로 봤을 때 치근, 잇몸, 치관 모두 매우 좋고 매우 젊고 건강한 치아이며 통증으로 물집이 생겼던 그 치아마저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했다. 더욱 뜻밖인 것은 짙은 검은색으로 변한 아랫니 4개도 원래대로 회복된 점이다. 이는 의학으로 해석이 불가하며 경험 많은 치과 의사도 여태껏 이런 경우를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이는 대법 초범성의 구체적인 체현이다.

지난해 또 큰 어금니 치근 부위 잇몸이 부으면서 치근이 보이고 크게 흔들렸다. 다른 쪽 이빨로 음식을 씹어도 매우 아파서 식사할 수 없었다. 나는 이전의 교훈을 받아들여 더는 구세력이 배치한 길로 가지 않았다. 즉시 안으로 찾았다. 어려서부터 고기를 먹지 않았고 수련 전에도 고기에 애착이 없었다. 수련 후에 점차 고기를 먹기 시작했고 갈수록 고기에 맛 들여갔다. ‘육식 문제’[1]를 공부할 때마다 나도 모르게 이런 생각을 했다. ‘나는 이 방면에서 무슨 집착심이 없다.’ 그러나 이 방면의 욕망과 집착을 중시해 닦지 않았기에 이 마음이 갈수록 강해졌다.

어느 날 홍샤오러우(졸인 돼지고기) 요리를 했는데 고향의 맛이라 매우 맛나게 먹었다. 고기에 집착하는 마음이 너무나 심했다. 사부님께서 여러 차례 점화를 해주셨으나 근본에서 그것을 제거함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 오늘은 ‘방할’을 주셨다. 어서 이 마음을 버려야 했다. 그리고 치아에게 말했다. “너 지금 나와서 어쩌려고? 어서 제자리로 돌아가! 제자리로 돌아가!” 3일 후 정말로 완전히 나았다.

꽤 오랜 시간 후 어느 날, 직장에서 행사 후 식사하면서 또 홍샤오러우를 먹었다. 옆에 앉은 동료에게 말했다. “고기가 참 맛있어요, 피부미용에도 좋겠어요.” 그날 밤 역시 그 치아가 또 심하게 아팠으며 다시 튀어나와 흔들렸다. 또 이전과 같은 집착을 범했다. 그래서 사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을 것이다. “한 사람을 제도하기란 아주 어려운데, 당신의 사상을 개변하기가 아주 어려우며, 당신의 신체를 조정(調整)하기도 아주 어렵다.”[1] 제자로서 사부님께 너무나 많은 걱정을 안겨드렸다. 나는 철저하게 고기와 모든 음식에 대한 욕망과 집착심을 닦아버려야 했다. 3일 후 아침 식사가 끝나면서 발견했다. 내가 아팠던 치아로 밥을 먹었는데 전혀 아프지 않았고 전부 좋아졌다.

나는 이런 치아의 통증과 변색을 소업으로 여겼고 사존께서 심성 제고에 도움을 주신 것이며, 또 먹는 방면과 거리낌 없이 하는 막말과 자신을 과시하는 등 많은 나쁜 것을 닦아버렸다. 역시 사존께서 신체조절과 심성 제고를 위해 배치하신 것이며 수련의 길에서 이는 필연적이다. 지금도 여전히 완전하고 건강한 치아를 갖고 있다.

2. 나이가 많고 적음을 숫자로 여기다

최근 5~6년 동안에도 일정하게 자연 노쇠 현상이 나타났다. 치아 문제 외에 우측 발가락이 마비되는 현상이 나타났었고 노안에 오른쪽 귀가 먹는 등 상태가 있었다. 눈은 두 번이나 노안 현상이 있었다. 책을 보고 베껴 쓰는 시간이 좀 길어지면 곧 침침해져 직접 법공부를 교란했다. 이런 상황에 봉착하면 즉시 경각성을 높였다. ‘이는 작은 일이 아니야, 법공부를 못 하게 하는 것은 곧 수련을 못 하게 하는 것이야.’ 얼마나 많은 수련생이 감옥에서 경찰의 잔인무도한 각종 혹형을 당했던가. 그 목적은 수련을 못 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생명으로 극한을 감당하면서도 자신의 신앙을 포기하지 않았다. 내 이런 상황은 그것과 유사하지 않은가? 비록 몸에서의 고통이 없으나 마찬가지로 부지불식간에 법공부를 못 하게 하는 것이다. 이는 절대로 허용할 수 없다.

우리가 수련하는 것은 성명쌍수 공법이다. “성명쌍수(性命雙修) 이 문제는 이미 여러분에게 명백히 논술한 적이 있다. 성명쌍수란 바로 心性(씬씽)을 수련하는 동시에 또 명(命)을 닦는 것으로서, 다시 말하면 本體(번티)를 개변하는 것이다. 개변하는 과정 중에 사람의 세포가 점차적으로 고에너지물질로 대체될 때 노쇠를 늦출 수 있다. 신체는 젊은 사람 방향으로 되돌아감이 나타나며, 점차적으로 되돌아가고, 점차적으로 전화(轉化)하여 최후에 완전히 고에너지물질로 대체되었을 때면, 이 사람의 신체는 이미 다른 물질신체로 완전히 전화된 것이다. 그러한 신체는 곧바로 내가 말한, 오행을 벗어났고 오행 중에 있지 않으며, 그의 신체는 곧 불괴(不壞) 신체다.”[1] 나는 수련인이며 속인과 같이 늘 이가 빠지고 귀가 먹으며 노안 등 자연 노쇠 상태가 나타나서야 되겠는가. 근본에서부터 확고하게 구세력이 배치한 일체를 승인하지 않아야 한다. 왜냐하면, 나는 전혀 그것에게 귀속돼 관리되지 않으며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수련인의 정념으로 몸에 나타난 각종 상황을 대해야 한다. 안으로 찾아 집착을 버려야 하며, 심성을 높이고 정념으로 악을 제거해야 한다. 이렇게 했더니 일정한 시간이 지난 후 모두 정상으로 회복됐다. 지금 시력은 젊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또렷이 보이며 발가락 마비도 사라졌고 귀도 정상으로 회복됐다.

내가 몸소 겪은 과정, 교훈을 얻어 성공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써내는 것은 수련생에게 ‘수련에는 작은 일이 없다’를 알려주고 싶어서이다. 유사한 문제에 봉착했을 때 나처럼 반응이 늦지 말며 일찍 깨달아 시행착오를 덜 하고, 빨리 향상시켜 사존께 걱정을 적게 끼쳐야 한다.

한동안 늘 자연 노쇠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느낌이 있었으며 좋지 않은 것에 속박된 느낌이 들었다. 이런 일이 아니면 저런 일이 나타났고 끊임없이 고비가 나타나 직접 세 가지 일에 영향을 끼쳤다. 이에 여러 차례 장시간 발정념을 했다. 어느 날 아침 발정념으로 악을 제거할 때 발견했다. 몇몇 나쁜 것이 앞에서 달아났는데 내가 뒤를 쫓고 있었으며 그것들은 매우 넓은 광장 변두리에 이르러서 아주 은폐된 곳에 숨었다. 하지만 나에게 발견됐고 급히 추적해가서 손가락으로 가리켜 “몌(滅)!”했다. 그것들은 즉시 폭파됐고 검은 버섯구름처럼 하늘로 솟았다. 속으로 ‘마침내 그것들을 소멸했구나’라고 생각했는데 단번에 그 버섯구름이 흩어지더니 하늘만큼 큰 검은 솥이 되어 나를 안에 가둬놓았다.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어떻게 하지? 갑자기 목소리 하나가 들렸다. “뛰쳐나가!”(사존의 점화) 나는 단번에 뛰쳐나갔다. 즉시 하나의 새로운 세계가 보였다. 투명하고 밝은 천체였으며 빛이 맑고 아름다웠다. 한숨을 돌리는 사이에 갑자기 눈앞에 꽃 바다가 나타났다.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사부님의 격려셨고 제자가 구세력이 배치한 속박에서 벗어나도록 도움을 주신 것이었다. 이건 유암화명(柳暗花明: 막다른 곳에서 길이 열림)의 광경이 나타난 것이다.

며칠 전 수련생 G와 자연 노쇠 문제에 관해 교류할 때 나 자신에게 노쇠를 두려워하는 심한 집착심과 죽음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또 젊어지고 예쁘게 되기를 바라는 욕망과 집착심이 있었다. 그 뿌리를 캐봤더니 수련에서 매우 깊이 은폐된 심각한 구하는 마음이었다. 이에 대해 여태까지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다. 수련생 G도 이런 마음이 있다고 토로했다.

주변에 있는 일부 수련생은 큰 관에서 뛰쳐나가고 큰 난을 넘기며 사람을 구하는 일도 매우 잘하고 있다. 그러나 자연 노쇠라는 이 문제에 대해서는 그다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 연달아 속인의 자연 노쇠 현상이 나타났다. 그래서 글을 써서 수련생에게 일깨움을 주고 싶다.

우리가 수련을 시작하면 사부님께서 매우 높은 층차로 밀어주신다. 이렇게 다년간의 수련을 거쳐 여러분은 상당히 높은 층차에 있다. 만약 한 수련생이 20년을 수련했다고 하자. 그가 처한 한 층차에서 바라볼 때 단지 3개월 혹은 이틀, 혹은 두 시간이 지났을 뿐이다. 그렇게 짧은 시간에 신체에 자연 노쇠의 표현이 있을 수 있겠는가? 없다. 물론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속인 중에서 수련할 수 있는 요소를 남겨주신 것을 고려하면 속인과 비교했을 때 “유일한 구별은 바로 당신이 동년배에 비해 아주 젊어 보인다는 것이다.”[1] 이런 현상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보아낼 수 있다. 우리 연공인에게 있어서 나이가 많고 적음은 숫자에 불과할 뿐이며 속인처럼 세월에 따라 나이를 먹어가면서 자연 노쇠 현상이 나타날 수 없다.

어째서 자연 노쇠를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을 수 있을까? 뿌리를 캐면 위사위아(爲私爲我)의 사람 마음에서 파생한 것으로, 건강해 장수할 수 있는 신체를 갖고 싶은 욕망, 명리정을 소유하고 싶은 욕망, 세간의 많은 것을 얻고 싶은 욕망에서 비롯된다. ‘욕망’을 닦아버려야 하는 것에 있어서 지금까지 중시하지 못했다. 한 속인은 사회의 각 방면에서 많은 욕망이 있을 수 있으며 어떨 때 그 욕망이 갈수록 강해지고 이 강한 욕망에 따라 일종 목표에 도달하려 한다. 그러면 또 잇따라 많은 집착심이 나타난다. 예를 들면 쟁투심, 질투심, 과시심 등이다. 이로 보아 각종 ‘욕망’을 닦아 버리는 일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사존께서는 ‘전법륜’에서 36번이나 ‘욕망’ 두 글자를 언급하셨다. 우리는 자연 노쇠를 두려워하고 죽음을 두려워하는 욕망과 집착심을 닦아버려야 할 뿐만 아니라, 각 방면에서의 욕망과 집착심을 닦아버려야 한다.

글을 마무리하며 사존께서 명시한 법리를 공손하게 옮겨 적어 되새겨보려 한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속인은 칠정육욕이 있으며 각종 집착심이 있게 마련이다. 각종 인간 세상의 욕망, 당신이 이러한 것을 갖고 천국으로 가려고 한다면 그 어찌 될 말인가!”[3] “한 수련인(修煉人)으로서, 속인의 환경 중에서 자신을 수련하고 자신을 연마(魔煉)하여 집착심과 각종 욕망을 점차적으로 버려야 한다.”[1]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서: ‘전법륜’
[2] 리훙쯔 사부님의 시: ‘홍음-도(道) 중에서’
[3] 리훙쯔 사부님의 저서: ‘유럽법회 설법’

 

원문발표: 2020년 1월 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교류>이성인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1/2/39846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