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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구덩이와 파리, ‘자아’에 대한 집착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2017년 초에 수련을 정식으로 시작한 청년제자이다. 2019년 이전은 일체가 모두 아주 순조로웠고 대법의 은혜 속에 있었는데 자신의 심성 제고가 아주 빠른 것을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거의 한두 달 동안 법공부가 부족하여 업무와 생활 속에서 몇 가지 모순에 부딪혔다. 사건이 발생할 때 심성을 모두 아주 좋게 지키지 못했고 최근의 반성과 깨달음을 통해 “자아”가 어떤 것인지를 발견하게 되었는데, 이를 써내어 여러분들과 교류하고자 하며 층차의 제한으로 만약 법에 입각하지 못한 곳이 있으면 교류와 시정을 바란다. 먼저 발생한 이런 일들을 여러분과 교류하는데 보기에는 모두 생활 속에서 자주 만나는 작은 일이지만 사실 수련인을 놓고 말하면 의미가 작지 않았다.

1. 심성을 지키지 못한 모순 두 가지

첫 번째 일은 업무에서 발생했다. 나는 다른 한 항목팀에 갔고 항목은 곧 마무리될 시점이었지만 나에게 또 다른 사항을 추가로 요구했다. 그러나 항목에서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제공한 것은 나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조건들이었기에 나는 항목팀장을 찾아가서 지지를 요청하면서 그에게 다른 팀원에게 임무를 배분해주라고 요청했다. 상의할 때 그 팀원은 하려고 하지 않았고 나더러 스스로 가서 하라고 했다. 나는 듣고서 입으로는 반대하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로 아주 화가 났다. 그리고 그들 두 사람이 뒤에서 내가 그 당시에 가장 듣기 괴로워했던 말들을 하기 시작했는데, 나는 그들 팀원으로부터 무시당했다고 느꼈다. 나의 팀장도 나의 곁에 앉아있었지만 나를 돕지 않았고 반대로 나를 조롱하는 농담을 했다. 그 당시 나는 화가 나서 말했다. “이것을 나는 할 방법이 없으니 당신들 스스로 대책을 상의하고 나를 찾아서 인수인계하기 바랍니다.” 말할 때 자신의 얼굴 근육이 모두 움직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비록 자신의 표정을 볼 수 없었지만 긍정코 추악하고 왜곡된 표정이었을 것이다. 그러고 나서 불쾌하게 헤어졌다.

나는 그 팀원과의 관계가 항상 괜찮았는데 그의 업무 능력이 나보다 강했고 성격도 괜찮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 무엇 때문에 내가 그와 부딪혔는가? 사실 나는 자신한테 질투심이 있다는 것을 명확히 알고 있었는데 그는 회사에 나보다 더 늦게 입사했지만, 이번 항목에서 진정한 임시 책임자는 사실상 그였다. 이는 이미 내가 그들 항목팀에 들어간 후 폭발한 두 번째 모순이었다. 지난번에는 나에게 배분한 업무량이 너무 많아서 나는 그들을 찾아가서 상의했지만 반대로 한바탕 의심을 받고 질문까지 받았다. 때문에 이번 항목에 투입되면서 처음부터 마음속에 불만이 있었고, 이전에는 그를 찾아 도움을 청할 때마다 그가 도와주었는데 지금은 반대로 그가 나에게 임무를 배분해주자 비록 입으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마음속 불만으로 암암리에 이미 간격이 생긴 것이었다.

이 두 가지 일을 마음속에 안고 있어 나는 아주 괴로웠고 나는 발정념하여 질투심, 쟁투심을 청리하기 시작했으며 계속 사부님의 말씀을 반복해서 외웠다. “옳은 것은 그이고 잘못된 건 나이니”[1] 그러나 마음속은 여전히 평형을 이루지 못했고 정념이 조금만 느슨해지면 다른 사상염두가 작용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내가 어디 잘못했는가, 나는 잘못이 없다! 옳은 것은 본래 나고 틀린 것이 그가 맞지 않은가! 마땅히 그의 팀장한테 잘 해석해야 하고 마땅히 그더러 행하게 해야 한다.

후에 이 일은 그의 팀장이 혼자서 나를 찾아와 인계하면서 해결되었다. 그러나 이어서 생활 속에서 유사한 일이 발생했다.

나는 두 가구와 함께 집 한 채를 임대했고 한 가구는 농촌에서 온 부부였고 다른 한 가구는 대학을 갓 졸업하고 나보다 몇 살 어렸다. 이 부부는 아주 뚱뚱하고 늘 싸우면서 물건을 부쉈지만, 다음날 또 화해했다. 남자는 위생에 아주 주의하지 않았고 화장실을 사용한 후 변기 안은 아주 더러웠다. 일깨워주어도 고치지 않았고 처음에는 나는 자신에게 일깨워주었다. 이는 고의로 나를 수련시키려고 온 것이고 나의 심성제고를 위한 것이다. 그리고 나는 변기를 깨끗이 청소했다. 그러나 마음속은 여전히 구역질나고 괴로웠다. 나처럼 당당한 사나이가 그의 뒤처리나 해주다니. 후에 나는 규칙을 수정하여 그 남자에게 화장실 청소를 하게 했고 그가 남의 노동을 소중히 여기게 하려고 했지만 효과가 없었다. 그는 배분해준 임무도 그의 아내에게 전가했다. 끝내 어느 날 그의 아내는 나와 모순이 터졌고 한동안 논쟁한 후 나는 말했다. “됐어요. 나는 상관하지 않을 테니 그 규칙을 당신이 정해요.” 그녀는 아주 화가 나서 말했다. “내일 부동산 중개업자가 와서 처리하도록 합시다.”

다음날 부동산 중개업자가 왔고 우리 몇 사람이 나와서 상의하게 했지만 나는 나가지 않고 당신들이 상의한 대로 하겠다고 말했다. 나는 자신이 높은 자태라고 느껴졌고 그녀와 싸우지 않고 일이 이렇게 지나가게 했다. 그러나 그녀는 중개업자한테 내가 어떻게 까다롭다는 등을 말했다. 나는 방안에 앉아서 몇 분간 들었는데 마침 사부님께서 하신 말씀과 같았다. “그러나 흔히 모순이 생길 때, 사람의 심령(心靈)을 자극하지 않으면 소용없고 쓸모없으며 제고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마음속에서 내려놓지 못하면, 마음이 번거로워질 것인데, 사람의 마음을 불러일으켜, 그를 헐뜯는 두 사람의 형상을 자꾸 되돌아보려는 생각이 날 것이다. 되돌아보니 그 두 사람은 흉한 표정으로 한창 열이 나서 말하고 있다. 그는 순간 참지 못하고 화가 치밀어, 당장 그들과 맞설 것이다.”[2] 나는 그 당시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끝이 없네? 분명히 당신 남편 잘못인데 반대로 나를 고자질하니 이 여인의 얼굴이 진짜로 두껍구나. 화가 나서 문을 열고 해석하기 시작하자 그녀는 눈썹을 위로 치켜들며 나에 대해 아주 하찮은 표정을 지었는데 나를 더욱 화나게 했고 이전의 불만을 쏟아내게 했다.

중개업자는 중간에서 조정해주었고 어투가 우리 두 사람보다 더 많이 평온했다. 나는 말하고 나서 사실 후회스러웠고 자신의 심성이 여전히 속인보다 못하고 모순이 발생했을 때 완전히 법을 마음속에 두지 않았음을 느꼈다. 방에 들어온 후 나는 밍후이 방송을 듣기 시작했고 마음은 조금 평온해졌다. 그러나 밤에 발정념할 때 각종 잡념과 쟁론, 억울함을 전혀 통제할 수 없었고 마음은 평형을 잃었다.

세 번째 날 출근할 때 나는 자기 생각을 끊임없이 배척했지만, 그녀의 말투와 악한 표정이 계속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마음은 쥐어짜듯이 괴로웠고 저녁에 퇴근한 후 한동안 법을 배우자 마음속에 한 가지 염두가 나타났다. 나는 그녀에게 사과해야 한다. 나는 또 생각했다. 내가 어찌 자신의 체면을 내려놓고 그녀에게 사과해야 하는가? 가지 말자. 그러나 나는 억지로 걸어나가서 그녀의 방문을 열고 그녀에게 사과했다. 사과할 때 자신의 말과 몸이 모두 떨리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방안에 돌아오자 갑자기 마음이 단번에 홀가분한 것을 느꼈고 반대로 자신이 진짜로 용기가 있다는 것을 느꼈으며 마음속으로 더는 그들을 생각하지 않았다.

이 두세 가지 일이 발생한 후 비록 결과적으로는 해결된 것 같지만 나는 자신의 수련이 아주 좋지 않음을 발견했다. 완전히 정념이 없었고 아울러 자신이 왜 심성이 이렇게 차하고 남들의 자신에 대한 평가와 불공평을 참지 못하는지를 반성하기 시작했다. 나는 자신의 체면을 중시하고 마음이 비좁고 질투심이 강하고 까다롭고 남을 용납 못 하는 등을 인식하고 이런 사람 마음을 배척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효과가 좋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나는 뿌리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실 이 몇 가지 모순의 본질은 모두 같은 것이었고 단지 표면에서 같지 않을 뿐이었는데 나는 오히려 표면에서 빙빙 돌고 있었다.

2. 밍후이 교류문장을 읽고 문제점을 발견하다

이틀 전 밍후이 교류문장 ‘자신을 잘 수련하는 것은 구도중생에 아주 중요하다’를 읽었고 사부님의 한마디 말씀을 인용한 것을 보고서 마음이 확 트였다. 비록 나는 그와 깨달은 것이 비슷하지 않지만 나는 자신의 문제점을 알게 되었음을 느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은 줄곧 자신이 옳다고 강조하는데, 당신이 옳았고 당신이 잘못이 없다 한들, 또 어떻단 말인가? 법에서 제고했는가? 사람의 마음으로 옳고 그름을 강조하는, 이 자체가 바로 틀린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은 속인의 이치로 당신 자신을 가늠하고 있고, 다른 사람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이 볼 때 세간에서 한 수련인의 옳고 그름은 전혀 중요하지 않고, 사람 마음의 집착을 제거하는 것이 오히려 중요하며, 수련 중에서 당신이 어떻게 사람 마음의 집착을 제거하는가가 비로소 중요한 것이다.”[3]

이 한 단락 법을 나는 이미 여러 번 통독했고 스스로는 이미 아주 익숙하다고 여겼다. 그러나 나는 이전에 두 가지 점을 내가 잘못 이해하거나 전혀 보지 못했음을 발견했다.

첫 번째는 전에 “사람의 마음으로 옳고 그름을 강조하는, 이 자체가 바로 틀린 것이다.”[3]를 읽고 바로 마음속에 한 가지 의념이 있었다. 이 한 단락 말씀의 의미를 나는 이미 다 읽었고 후에 말씀하신 것은 모두 해석 설명인데 중요 부분은 내가 이미 똑똑히 잘 알고 있다는 생각이었다. 오늘 비로소 발견했는데 원래 법 속에서의 매 한마디는 모두 아주 중요하고 모두 사람을 깨우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사부님께서 다음 한마디를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당신은 속인의 이치로 당신 자신을 가늠하고 있고, 다른 사람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3] 내가 속인의 이치로 자신을 가늠하고 아울러 속인의 이치로 남을 요구하는데 이는 대법과 전혀 무관하고 수련과 무관하다고 명확히 지적하셨다. 진짜로 꿈에서 깨어나게 되었다! 나는 내가 대법으로 자신을 가늠하고 대법으로 남에게 요구한다고 여겼는데 단지 자신과 남은 모두 잠시 대법의 요구에 도달하지 못하여 너무 완벽하게 행하지 못하여 모순이 발생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나의 방법은 이미 수련인이 모순을 마주해서 어떻게 법의 요구에 따라 행하느냐의 문제에서 벗어났다. 나는 계속 속인의 심태로 속인의 이치로 속인의 일을 하고 있었고, 그 때문에 이런 문제가 비로소 한번 또 한번 나타나게 되었다. 과정 중에 비록 정념이 있어도 자신의 속인 마음을 눌리기엔 부족했고 모두 사건이 발생하고 법공부하는 중에 비로소 자신이 어디가 잘못되었는지를 발견하고 반성하는 격이었다. 그러나 남에게는 이미 상처를 주었다.

두 번째는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수련인의 옳고 그름은 전혀 중요하지 않고, 사람 마음의 집착을 제거하는 것이 오히려 중요하며”[3]인데, 나는 전에도 이 한 점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나의 집착에 대한 이해는 오히려 편차가 있었다. “어디에 잘못이 있다”의 표면적인 원인을 자신의 집착으로 여겼다.

“사람 마음의 집착을 제거하는 것이 오히려 중요하며”를 읽을 때 나의 머리에는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자아’가 사실 똥구덩이이구나. 나는 탁 트였다. 내가 끝내 자신의 문제의 근본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찾았기 때문이다. 너무나 ‘자아’적이었다. 나는 이는 사부님께서 자비롭게 나를 점오해주신 것으로 생각했다!

안을 향해 찾는 것은 법보이지만, 나는 오히려 진정으로 사용하지 못했고 나는 지금 이해하기를, 안을 향해 찾는 것은 사람 마음을 제거하기 위함이며 이렇게 오랫동안 내가 안을 향해 찾았던 목적이 모두 잘못된 것이었다. 안을 향해 찾는 것은 내가 이 모순에서 ‘어디에 잘못이 있는가’(이는 단지 부차적인 것임)를 찾아서 어떻게 보완하고 고칠 것인가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사건의 모순을 단서로 삼아자신에게 숨겨진사람 마음의 집착을 찾아 그 뿌리를 뽑아 없애는 것이다.

3. ‘자아’는 사실 똥구덩이다

농촌에서 어릴 때 우리 그곳의 똥구덩이는 모두 노천이다. 오랜 세월 지나서 구덩이 안의 똥 위에는 ‘딱지’가 앉기 시작하고 두터운 한 층은 보기에는 아주 단단해 보이고 기본 상 안의 악취를 막고 있다. 똥구덩이와 가까이 있을 때 비로소 사람을 취하게 하는 악취를 맡을 수 있고 조금 멀리 떨어지면 악취가 나지 않는다. 어릴 때 장난칠 때 친구를 괴롭히려고 길가의 돌덩이를 들어서 똥구덩이에 던졌고 만약 돌멩이가 작으면 밖의 그 ‘딱지’를 부수지 못하기에 반드시 큰 돌멩이로 던져야 부술 수 있었다. 부수면 위에 있던 한 무더기 파리 떼가 윙윙하고 날아다니고 안의 똥이 온 바닥에 튀어서 악취가 하늘을 찔렀다.

‘자아’는 사실 바로 이 똥구덩이이고 안은 더럽기 짝이 없다. 매번 남들이 나의 ‘자아’를 충격할 때가 마치 돌멩이로 나의 똥구덩이를 부수는 것이고 가볍게 부수면 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데 제대로 부수지 못하고 단지 몇 마리 파리 떼만 놀라게 해서 윙윙 날아다니게 했기 때문이다. 이 파리 떼들은 내 사상 속의 잡념과 심리상의 표면반응을 반영하는 것이고 정념이 족할 때는 기본 상 마음속으로 ‘멸(滅)’ 글자 하나를 지켜 단번에 이런 파리들을 깨끗이 청리하게 된다.

만약 호되게 부수었거나 돌멩이가 커서 그 한 층의 ‘딱지’를 부쉈다면 이 한 층의 ‘딱지’가 사실 바로 속인의 이른바 인간 세상에서의 소양과 표면의 공손함 등 처세의 이치 혹은 세상만사를 겪은 후의 인내 정도이다. 또한 내가 찾은 그러한 ‘어디에 잘못이 있다’라는 원인에 대한 ‘해결수정방안’도 포함한다. 예를 들어 비록 마음속에서 아주 화가 났지만 역시 얼굴에 위선적인 웃음을 짓는 등이다. 일단 이 ‘딱지’가 부서지면 파리 떼가 날아다니고 잡념이 일어나고 똥도 튀어 마음이 ‘더럽다.’ 그 때문에 남에게 악한 말, 더러운 말, 독한 말을 하기 시작하고 험악하게 남을 다스리려고 한다. 이렇게 한 무더기 더러운 것들이 ‘더러워진’ 마음속에서 마구 움직이는데 한 사람이 어찌 평화롭고 순결해질 수 있겠는가?

4. ‘자아’의 각종 표현

자신에 대한 분석을 통해 ‘자아’를 견지하는 사람은 항상 질투심이 아주 강한데 남을 이해하고 주변 사람을 이해하고 주변 사람에 대해 진심으로 선하게 대하기 아주 어렵다. 반대로 쉽게 남을 자신의 대립면으로 밀어내고 가끔은 또 제3자에게 잘 보여서 남들이 자신에게 줄을 서서 자신을 지지해 줄 것을 구한다. 마침 내가 ‘자아’란 이 똥구덩이를 수호하고 있어서 자신은 악취를 온몸으로 발산하고 또 남들이 말하지 못하게 하고 심지어 남들의 좋은 부분을 보지 못하는데 교류문장(‘질투심에 대한 재인식’)에서 말한 것처럼 평범한 속인들은 주변 사람이나 잘 아는 사람에게 좋은 일이 생기면 강렬한 질투심이 생긴다고 하였고, 자신이 접촉하지 못하거나 좌우지 하지 못하거나 혹은 한 층차에 있지 않은 사람에 대해서는 질투심이 아니라 부러워하는 마음이 있다고 하는데 부러워하는 마음 뒤에는 아주 깊은 질투심이다.

전에 나는 질투심은 악독하고 부러워하는 마음은 좋은 것이라고 여겼는데 지금 부러워하는 마음과 질투심은 사실 같은 것이고 표현방식이 다를 뿐임을 발견했다. 사실상 모두 ‘자아’가 충격받아 자신이 남보다 못하다고 여겨져 마음속으로 불공평을 느끼고 불편하고 평형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다. 때문에 ‘자아’ 이 똥구덩이 속에서 가장 돌출하게 표현되는 것은 질투심이다. 왜냐하면 질투심은 공격성이 아주 강한 부식작용이 있기 때문인데 남을 해칠 뿐만 아니라 자신도 해친다. 비록 표면에서는 드러내지 않지만, 가끔 내심에서는 남과 암암리에 겨루고 있고 잡념 망념으로 자신을 괴롭히고 있었다.

‘자아’의 다른 한 가지 돌출된 표현은 바로 과시심이다. 과시심은 사람에게 마땅히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게 하고 마땅히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게 하는데, 남을 조금 도와주고 상대방의 보답을 바라며 주역을 하기 좋아하고 남의 잘못을 지적하고 통제하려는 욕구가 강하고 남들과 잘 협조하여 항목을 완성하지 못하고 거짓말과 사기도 수단으로 된다. 왜냐하면 과시심의 목적은 자아를 부각시켜야 하는 것이고 남들이 자신을 누르는 것을 용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 가지 일을 잘못하고 나도 잘못된 부분을 알고 있지만 남이 나의 잘못을 지적하면 나는 교활하게 변호하거나 한 세트의 ‘도리’를 말하는데 도리가 없어도 억지를 부린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래도 어떤 수련생은 빙빙 둘러서 책임을 밀어내고, 문제가 있기만 하면, 이 면의 원인이 아니면, 바로 저 면의 원인이라고 한다. 정말로 원인이 없을 때면 하나를 만들어내기까지 하며, (뭇사람 웃음) ‘당신들은 모르는데, 그 당시에는 어떤 정황이었다.’라고 하면서 여차여차하다고 한다. (뭇사람 웃음) 이건 그나마 비교적 좀 나은 사람에 속하고, 심각한 사람은 조금도 건드리지 못하게 한다.”[3]

나는 이 한 단락 법에서 말씀하신 것이 마침 나 자신이 항상 표현했던 상태임을 느꼈다. 상태가 좋으면 교활하게 해석하고 상태가 차하면 차가운 얼굴로 냉전을 한다. 내심에서 남이 나를 상관하는 것에 불복종하고 남의 의견을 듣지 못하고 비록 남의 의견이 나와 비슷해도 그의 그 약간 다른 부분을 지적해서 한바탕 질책한다. 일에 부딪히면 강경한 태도로 남이 자기 생각에 따라 하도록 강요하고 나의 요구에 따라 행하지 않으면 원한을 갖고 나보다 완벽하지 못하면 질책하고 나보다 잘하면 질투하고 민감하게 군다. 전반적으로 남이 나의 ‘자아’를 건드리면 ‘자아’라는 똥구덩이 속의 똥을 남의 몸에 끼얹지 않으면 그만두지 않고 남의 마음을 불편하게 해야 화가 풀린다. 나중에 내가 한 것이 과분하여 수련인 같지 않다고 여겨져 후회하고 반성하지만 다시 유사한 일에 부딪히면 보증코 또 똑같은 표현이다.

물론 ‘자아’의 똥구덩이에는 또 다른 집착심들이 표현되고 있는데 나 현재 상태로 말하면 이 두 가지가 나에 대한 영향력이 가장 컸다.

5. ‘자아’를 청리하다

사부님께서 설법에서 말씀하셨다. “만약 수련하는 사람이 단지 표면상으로만 내려놓고 마음속에는 아직도 지닌 채, 한 가지 것을 고수하면서, 당신 자신의 그 가장 본질적인 이익을 다른 사람이 해치지 못하도록 고수하고 있다면,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는바 그것은 가짜 수련이다! 당신 자신의 내심을 움직이지 않으면 당신은 한 발자국도 제고할 수 없는바, 그것은 자신을 속이는 것이다. 오로지 당신이 진정하게 내심에서 제고 해야만 당신은 비로소 진정하게 제고된다.”[4] “사람의 마음이 개변되지 않으면 일체는 모두 거짓이다. 당신은 표면상으로 나는 아무것도 없다고 하지만, 당신 마음속으로 내려놓지 못한 염두는 이런 것들에 대해 꿈틀꿈틀 요동치는데, 아무 소용도 없다.”[5]

따라서 내가 해야 할 것은 바로 법공부를 강화하고 되도록 정념을 가지하여 이 ‘똥구덩이’를 자신으로 여기지 말아야 하고 자신의 일념이 항상 자신의 영역에서 운행되게 하여 모순을 통해 ‘자아’란 이 똥구덩이를 즉시 발견하고 청리해야 한다. 남이 나의 사람 마음을 건드린다고 느껴질 때 이 일념으로 나에게 또 똥구덩이가 있는지 청성하게 알고 재빨리 잘 청리해야 한다.

만약 ‘자아’ 이 똥구덩이를 내가 전부 청리한 후 만약 남이 돌 한 개를 다시 던져도 나의 이곳은 오히려 평지이고 자연히 어떠한 ‘파문’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소리도 들리지 않을 것이다.

이상은 개인 체험인데 층차의 제한으로 법에 있지 않은 곳은 수련생들이 자비롭게 시정해주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시사: ‘홍음3-누가 옳고 누가 그른가’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轉法輪)’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각 지역 설법 10-맨해튼 설법’
[4] 리훙쯔 사부님 저작: ‘북미제1기법회 설법’
[5] 리훙쯔 사부님 저작: ‘스위스법회 설법’

 

원문발표: 2020년 1월 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1/2/39846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