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상대방이 어떠어떠하다고 그들이 본 것으로 반대로 자신을 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1]
실질적인 수련 중에서 나는 주변의 수련생을 거울로 삼아 다른 사람의 집착을 보았을 때, 자신을 되돌아보고 법에서 대조한다면 자신이 평소에 의식하지 못했던 집착이 드러나는 것을 발견했다.
수련인도 속인 중에서 자랐기에 사람에게 있는 모든 집착심을 우리는 거의 다 갖고 있다. 다만 서로 다른 수련인에게서 표현되는 강약이 다를 뿐이다.
다른 사람의 집착은 똑똑히 보이지만 자신의 집착은 보기 어렵다. 관념과 사상업(思想業)이 가로막기 때문에 저항이 상당히 커서 안으로 찾기 싫어한다. 체내의 좋지 않은 것들은 모두 죽기 싫어하기에 수련인이 찾지 못하게 하려 한다.
자신을 보는 데는 난이도가 크기 때문에 자신을 보려 하지 않는데, 곧 법으로 다른 사람을 가늠하기가 쉬워 다른 사람의 문제를 지적해 내고 재빨리 바꾸기 바란다. 마치 자신은 바뀌려 하지 않으면서 ‘거울’이 얼른 바뀌어 다른 모습의 자신을 비춰주기를 바라는 것과 같은데, 이는 안 되는 것이다. 나는 자신이 변했을 때 상대방도 변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수련생은 서로의 ‘거울’이다. 다른 사람의 집착을 보고 대법에 대조하여 분석하고 돌이켜 자신을 분석하면, 같거나 다른 자신의 집착을 발견할 수 있다. 다만 누가 진심으로 안으로 찾아 그것을 똑똑히 인식하고 제거할 수 있는가를 본다.
사실 다른 사람의 문제를 본다는 것은 곧 자신의 문제를 보는 것이다. 어느 문제도 단순히 다른 사람의 문제이고 자신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다. 단순하게 다른 사람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은 곧 밖으로 보는 것이고 자신을 찾지 않은 것이다.
다른 사람의 문제를 지적할 때는 자신에게도 이 문제가 있는지 봐야 한다. 나의 표현은 어떠한가, 나는 어떻게 깨달았는가, 또 어떻게 수련해 왔는가, 자신의 수련 체득을 서술하여 상대방에게 거울로 삼게 하고자 한다.
수련인이 ‘거울’의 한가운데 서 있으면 주변의 사람은 모두 ‘거울’이다. 나는 법 속에서 수련하면 자신의 집착이 드러난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른 사람의 표현을 통해 자신에게 보여주고, 자신이 본 후에 마음이 불편하면 이것은 곧 자신에게 이 방면의 부족함을 닦는데 주의해야 한다고 일깨워 주는 것이다.
‘거울’의 작용 하에 주변 사람이 무엇이나 다 좋아 보이면 당신이 좋기 때문이고, 주변의 사람이 어디나 다 좋지 않으면 당신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당신이 불만이 있고 원망하고 다른 사람을 질책할 때 사실은 ‘거울’ 속의 자신에게 불만이 있는 것이지만 진정 좋지 않은 것은 당신 자신에게 있는 불만, 원망과 질책이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 – 시간과의 대화(和時間的對話)’
원문발표: 2020년 1월 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1/9/39874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