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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얻기 쉽지 않으니 더욱 정진해야

글/ 뉴욕 대법제자

[밍후이왕]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수련한 지 2년 된 신 수련생입니다. 어렸을 때는 두려움이 매우 컸고 시비를 명확하게 가리지 못한 데다 부친의 심한 반대까지 있어 수련하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어머니께서 집안은 고려하지 않고 모든 사람이 반대하는 수련을 왜 계속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대법 수련에 들어오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어머니는 1996년에 법을 얻었으나 제가 이것저것 기억하기 시작해서부터 박해가 시작됐습니다. 이런 사악한 환경에서도 어머니는 진상 소책자를 일부러 항상 제 침대 머리맡에 놔두었고 틈이 나면 사부님의 설법 녹음도 틀어놓아 듣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보지도 듣지도 않았으며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게 숨기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강한 저항은 열등감이 들게 했고 어린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할 때 저는 항상 심리적 갈등을 겪었는데 왜냐하면 어머니께서 항상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가 새겨진 작은 호신부를 그들에게 주셨기에 그들이 함께 놀아주지 않을까 봐 걱정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강렬한 두려움, 그리고 선생님과 가족들의 공포는 제가 대법 진상을 알지 못하도록 하고 법을 얻지 못하게 하는 중대한 장애가 됐습니다.

이런 상태는 줄곧 대학까지 계속됐습니다. 매체 직업을 좋아했기 때문에 졸업 후 모 신문사 산하 인터넷 매체에 취직했으나 이때는 소위 말하는 신문의 이상(理想) 따위는 철저하게 없어지고 저는 경쟁하며 기어 올라가려 했고, 허영에 빠지고, 조류를 따라 휩쓸렸으며, 심지어 원고료를 받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얼굴은 여드름투성이였고, 결국 커다란 심리적 격차와 복잡한 인간관계의 압력으로 숨쉬기도 어렵게 됐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처신해야 한다고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었기에 2017년 저는 신문사를 사직했습니다.

친척과 친구들이 보기에는 불가사의한 일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전법륜(轉法輪)’을 완전하게 보지 못했고 물질 이익의 법리에 대한 개념도 거의 없었으며 은연중에 감화되게 하려는 어머니의 교육도 저에게 늘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사직한 날 무거운 짐을 벗은 듯 홀가분한 느낌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이 모든 것이 사부님의 배치였습니다.

같은 해, 어머니의 설득으로 저는 의구심을 갖고 알아보겠다는 마음으로 뉴욕에 도착했습니다. 어머니가 중국 국내에서 직접 박해당한 사실이 없는 데다 자신은 고집스러웠기 때문에 진상을 알 수 있는 경로를 스스로 닫아버렸습니다. 대법제자가 핍박당하는 사실을 전혀 믿지 않았으며 회피하고 듣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수련생 아주머니들이 박해로 유리실소(流離失所) 하며 미국까지 전전하게 된 실제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본래 저 자신이 중국공산당에 세뇌되고 독해 당한 사람이라는 것을 의식했는데 그것도 학교 다니기 시작해서부터 취직하기까지 20년을 철저하게 세뇌당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자책하며 반성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전에 반항심으로 어머니께 매일 같이 대들었던 것을 후회하며 의심과 경계심을 버리고 제가 받았던 모든 메시지를 연속 며칠에 걸쳐 모든 목록을 단숨에 다 봤습니다.

비록 대법에 대해서 완전히 새로운 인식을 알기는 했지만, 자신이 진정으로 수련하자면 아직 멀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쇳물이 ‘나무 부스러기’를 녹여버리듯 대법 중에서 마음 닦고 집착을 버리다

2018년 6월 운 좋게도 저는 워싱턴 법회에서 처음으로 사부님을 뵈었습니다. 극장이 매우 커서 저와 사부님과의 거리가 상당히 멀었기에 저는 사부님의 모습을 똑똑히 볼 수는 없었고 사부님께서 들어오실 때 제 주위 사람들이 모두 운다는 것만 알았습니다. 저도 울컥했는데 ‘왜 울지? 나는 울지 않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사부님께서 세 마디도 하시기 전에 왠지 모르지만 격동돼 눈물범벅이 됐으며 머릿속에서는 줄곧 어렸을 적 ‘전법륜(轉法輪)’ 중에서 본 사부님의 사진을 회상하려 했고, 더욱 자신을 통제할 수 없었는데 그때 자신에게 “지금 수련해도 늦지 않다.”라고 말했습니다.

3개월간 관광지에서 진상을 알렸지만, 제겐 어떤 소득도 없었고 자신이 항상 관례적으로만 일한다고 느꼈으며, 게다가 매일 법 공부가 부족해 관광객이 조금만 깊은 문제를 질문해도 답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자책했으나 어떻게 높여야 하는지도 몰랐으며 중국에서의 전공을 살려 매체에서 사람을 많이 구하고 싶었습니다. 이렇게 저는 다행히도 매체 수련환경에 들어오게 됐으며 수련 중에 어떻게 높이고 어떻게 ‘정진(精進)’하는지 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뉴스 부서의 일은 매일 아주 빠듯하며 분초를 다툽니다. 제 업무는 뉴스 영상 편집이었는데 이는 직접 진상을 말하여 사람을 구하는 데 참여한다는 것을 뜻하기에 저는 추후도 소홀히 할 수 없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뉴스를 제작할 때 시간이 촉박하고 일손이 부족해 임시로 션윈 교향악 뉴스 편집을 저에게 맡겼었는데 자기 업무에 아직 익숙하지 못한 저는 방송을 내보는 데 영향을 줄까 봐 걱정했으나 수련생 A가 편집을 도와줘 겨우 방송 시간에 맞출 수 있었던 일입니다.

일이 끝나고 책임자가 강경한 어조로 많은 사람 앞에서 질문하기를 “션윈 교향악에 왜 떨린 화면을 사용했습니까?”라고 했습니다. 저의 첫 번째 반응은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었으며 어쨌든 내가 한 것이 아니기에 못 본 척하면 그만이었습니다. 하지만 생각할수록 맞지 않았습니다. ‘나는 수련하고 있지 않은가? 그는 나를 도와서 하지 않았는가? 왜 탓하는 마음이 있지? 이것은 분명 내가 아니다.’라고 생각을 정리한 후 책임자에게 “자신의 부주의로 인한 것이며 다음에는 꼭 주의하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비록 말을 했고 겉치레도 다 했지만, 마음은 편치 않았습니다. 이때 수련생 B가 재빨리 자신이 책임을 다하지 못했으며 마지막에 줄표는 응당 자신이 잘 점검했어야 했다고 말했습니다. 또 금방 수련생 C가 자신이 배경 화면을 잘 처리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집에 돌아오자 제가 편집하는 것을 도왔던 수련생 A가 자책하고 사과하며 시간이 너무 촉박했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내가 어찌할 바를 몰라 할 때 책임자의 말투가 부드럽게 변하기 시작했고 정체 협력으로 방송 시간에 댈 수 있었으니 잘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정체 협력”[1]이 네 글자는 일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수련이며, 모두가 문제에 봉착한 난에 대해 자신의 마음을 찾아야 함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뉴스를 저는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지 않고 책임을 회피했으니, 수련생과 비교하면 정말 차이가 너무나 컸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용광로의 쇳물에 나무꼬투리 하나가 떨어져 들어가면 순식간에 그것의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다. 우리 이렇게 큰 법으로 당신 한 사람을 받아들여 당신 몸의 업력을 없애주고 당신의 좋지 못한 생각을 없애버리는 등등, 그것은 대단히 쉬운 일이다.”[2]

물론 수련 중에는 어려움이 많을 수 있는데 일하면서 힘에 부쳐 뜻대로 되지 않아 초조할 때, 동료의 거슬리는 말이 억울해 눈물 흘릴 때, 야근이 너무 피곤하고 출근하기 힘들 때 등등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부정적인 생각이 들면 저는 ‘애초 왜 이곳에 왔는가? 왜 수련하는가?’를 생각합니다. 그러면 사부님께서 매 대법제자에게 부여하신 사명을 깊이 감수할 수 있었고 ‘대법제자’라는 이 칭호가 얼마나 긍지 높고 자랑스러운지 더욱 깊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자신과 환경의 변화

올해 11월 뉴욕 브루클린 대행진에 저는 일 때문에 행렬에 참여하지 못했고 처음으로 행렬 밖에서 진상 자료를 배포하며 진상을 알렸지만, 이번에는 진상을 알리는 데 제고가 있음을 뚜렷하게 느꼈습니다.

이전에 관광지에서 나이 많은 아저씨 아주머니에게 진상을 알릴 때, 그들은 ‘당신 이 젊은 처자가 무슨 역사를 알겠는가? 아무런 경험도 없겠지.’하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별로 생각하지 않고 기백 있게 나오는 대로 그들에게 대법의 아름다움을 알렸는데 그들 눈빛에서 긍정적인 일면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감탄을 금하지 못하며 “당신들 파룬궁은 젊은 사람이 이렇게나 많은가! 어떻게 수련하는지 나도 가서 좀 보겠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변화의 배후에는 꼭 사부님의 가지와 매 수련생이 힘을 합해 만들어낸 멋들어진 행렬이 있어 그들을 감격하게 하는데 나는 비록 그중 작은 하나의 입자에 불과하지만, 지극히 중요한 작용을 뚜렷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후 제가 진상을 알리는 데 신심을 키워줬으며 더는 질문하면 아무것도 모르고 멍해지는 젊은 수련생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이 기간에 저는 중국에 계시는 부친과 친구들에게 저의 미국 생활을 좀 들려줬는데 처음에 그들은 제가 미국에서 머무르는 것을 매우 반대했는데, 지금에야 저와 어머니에 대한 태도가 천천히 변했으며 이해하게 됐습니다. 저는 이것이 하나의 큰 관문이며 저 같은 신 수련생으로 말하면 수련이 견정한지 그렇지 않은지의 고험임을 알게 됐습니다.

속인의 큰 염색 항아리 속에서 저를 건져내 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꼭 잘하겠습니다!

이것은 제가 맨 처음 쓴 심득 교류이며 구절마다 반복적인 수정과 법리적인 빗질이 필요할 것입니다. 부족함을 면하기 어려우니 자비롭게 바로잡아 주시기 바랍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각 지역 설법 6-아태지역 수련생회의 설법’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북미 제1기 법회설법’

(2019년 씬탕런, 따지웬 법회 발언고)

 

원문발표: 2019년 12월 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12/7/39661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