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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환경에서 수련

글/ 허베이(河北) 대법제자 시위안(惜緣)

[밍후이왕] 우리 부부는 모두 대법제자다. 남편은 초기에 법을 얻은 노 대법제자이고 나는 그의 영향 아래 11년 전 대법 수련으로 들어왔다.

남편은 일할 때 신중하고 착실한 사람에 속했고, 또 말솜씨가 좋고 생각이 논리적이며 치밀해 일이 생겼을 때 분명하게 말하지 않으면 그만두지 않는다. 그는 문제가 있으면 이론적으로 진정하게 그에게 똑똑히 해석해야 비로소 받아들인다. 나의 성격은 상대적으로 상냥하고, 일을 대충대충 하며, 깊이 파고들지 않고, 감성이 강하고 이성이 떨어진다. 그러므로 무슨 일이든 그는 마음이 놓이지 않아 내가 일을 할 때 그는 자주 옆에서 이러쿵저러쿵하며 나를 귀찮게 한다. 내 기억에 이전에 우리가 매번 다투면 결국 나는 할 말이 없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그에게 굴복하지 않고 말로는 그를 당해 낼 수 없다고 생각했다. 결혼 몇 년 동안 그에게 깊이 뿌리박힌 관념이 생겼다.

초기에 법을 얻었을 때 나는 매우 격동했는데 단번에 생명의 의의를 알게 됐고 매일 기뻤다. 그때 우리 사이의 모순은 비교적 적었는데, 그가 법을 실증하는 일에 탄복했다. 자신이 많은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 진지하게 그의 견해를 귀담아들었다. 그는 비록 자주 나의 흠을 잡았지만, 많은 법을 실증하는 일은 우리는 서로 협력해 할 수 있었다. 내가 막 법은 얻은 지 6개월 되었을 때 남편은 수련생을 구출하다가 사당에 납치됐다. 우리는 정체(整體)를 이루고 서로 협력해 이번 박해를 해체했다. 24시간 만에 그는 집에 돌아왔다.

주변에 이런 노 수련생 남편이 있었기 때문에 법을 얻은 후 나는 신속하게 법을 실증하는 일에 뛰어들었고, 게다가 일상생활에서 일정한 기술을 습득했기 때문에 법을 실증하는 데서 일정한 작용을 했다. 그때 매일 정상적인 일, 생활을 제외하면 대량의 시간은 법을 실증하고 중생구도하는 일로 바빴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배치 덕분에 나는 직장에서 일이 한가해 매일 직장에서 법 공부를 많이 했고, 퇴근하면 법을 실증하는 일로 바빴는데, 매일 아주 충실한 느낌이었다. 그때 사상은 순정했고 일마다 대법을 위주로 했는데, 자신이 아주 행복한 느낌이었고 많은 사람 마음을 모두 내려놓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자신이 근기가 비교적 좋아서 가능했던 것인데, 사실 그때 진정으로 대법 요구에 따라 자신을 착실히 수련하지 못했다. 그때 본 지역의 사악 세력은 대법제자에 대한 박해가 심각했는데, 주변 수련생과 함께 자주 어떻게 법을 실증하고, 수련생을 구출하며, 중생구도하는 일을 교류했다. 개인이 그 속에서 어떻게 제고하는 것, 이 방면은 교류가 비교적 적어서 나는 일하는 것을 수련이라고 생각했다. 법 공부를 많이 했지만, 자신을 착실히 수련할 줄 몰랐다.

내가 법을 얻은 몇 년 동안 본 지역에서 한 차례 사악한 계획적인 박해가 발생했다. 그 사이에 남편은 수련생을 구출하다 납치당했고 나도 연루됐다. 수련이 착실하지 않아 박해를 대면해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몰랐다. 이전에 수련생을 구출할 때 모두 반박해 법리와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이것이 당시 나의 진실한 수련 상태다. 가족은 인맥을 이용했는데, 한 달 후 유감을 품고 나는 집으로 돌아왔지만, 남편은 불법 체포됐다.

돌아온 후 수련생들의 교류 도움 아래 나는 신속히 자신을 조정했는데, 대량의 법 공부, 발정념으로 주의식을 강화했고 정념을 확고히 했다. 수련생들의 사심 없는 협력 아래 남편을 위해 변호사를 선임했고, 수련생을 구출하는 과정에서 점차 두려운 마음을 제거하고 박해를 부정했으며, 관련된 공검법(公檢法) 직원에게 편지를 쓰고 마주 보고 진상을 알렸는데, 법리도 갈수록 똑똑해졌고 정념도 갈수록 강해졌다. 수련에서 자신이 서서히 성숙해진 것 같았는데, 또 주변 수련생의 인정과 칭찬을 받았다.

수련생과 협력하는 중 마음을 건드리는 일이 있었지만, 주변 수련생의 수련이 착실하고 나도 신수련생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시련에서 수련생이 나를 격려했고, 무조건 협력해서 나는 사악의 박해를 타파했다. 매번 작은 진보가 있을 때 격려와 인정을 받았고 심성에서 마찰이 적었다. 내 수련에서 부족한 점은 모두 수련생의 포용과 양해로 덮어 감춰졌다.

수련생을 구출하는 과정에서 반(反)박해 하고 법 실증하는 일은 잘 했지만, 자신을 착실히 수련하는 방면에서는 여전히 큰 발전이 없었다. 모르는 사이에 자아에 대한 집착, 과시심, 환희심도 생겼지만 스스로 의식하지 못했다. 그런데 남편이 돌아온 후 그를 마주하자 나의 이런 질투심, 과시심이 강렬하게 반영돼 나왔다.

남편이 돌아온 후 2년 동안의 깨달음과 수확을 그에게 퍼부었다. 그가 수련에서 부족한 점과 박해 원인을 지적해 주었고 그를 도와 고쳐주려 했다. 그러면서 그를 위한 것이고 그를 책임지는 것으로 생각했다. 일부 내가 인식한 남편이 표현하는 두려운 마음, 박해를 승인하는 것을 끊임없이 지적했고, 주관적으로 결론을 내리며 심지어 그를 얕보는 경향이 있었는데, 자신이 그보다 법리가 똑똑하고 잘한다고 생각했다.

사실 남편은 검은 소굴에서 아주 잘 했다. 줄곧 타협하지 않으며 정념정행(正念正行)했고, 사악의 거짓말과 가짜 이론에 넘어가지 않았으며, 정신이 또렷하고 말하는 것이 도리와 근거가 있어 매번 그를 ‘전향’시키려는 악인을 벙어리로 만들었다. 그는 돌아온 후 내가 그를 더욱 존경할 줄 알았는데 반대로 원래 그의 말에 잘 따르던 내가 그의 부족한 점을 지적하자 그는 나에게 법리에서 똑똑히 말하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강제로 결론을 내렸기에 그는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러므로 매번 교류나 협력할 때 각자 강렬한 정과 관념, 자아에 대한 집착심을 지니고 서로 충돌하고 다투었다.

나는 어떤 때 이상하다고 느꼈는데, 분명히 그의 부족한 점을 그를 위해 지적해 주었는데 왜 받아들이지 않는가? 라고 생각했다. 그도 마찬가지로 나의 부족한 점을 보고 지적해 주었는데 나도 불편했다. 어떤 때 두 사람이 교류할 때 상태가 아주 좋았는데, 말하면서 또 다투게 되었다. 원망, 불평 심지어 이성을 잃고 매번 안 좋게 헤어져 우리 두 사람은 모두 억울했다.

그때 나는 정말 괴로웠다. 어떤 때 그와 말하기 싫었는데, 격렬하게 다퉜을 때는 심지어 헤어지려는 생각도 했었다. 그도 매우 괴로워하는 것이 보였다. 서로 갈수록 간격이 커졌는데, 법을 실증하는 데서 서로 협력하는 것도 어려워 주변 수련생도 느꼈다. 우리 둘은 수련에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서로 조급했다. 매번 충돌에서 모두 안으로 찾아 많이 개선됐지만,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았다.

사악은 줄곧 호시탐탐 노렸고 우리 사람 마음의 틈을 탔다. 남편이 돌아온 후 1년도 되지 않는 사이에 나와 수련생이 시장에서 진상자료를 배포할 때 진상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신고해 나와 수련생은 경찰에 납치됐고 또 구치소로 납치됐다.

구치소에 감금된 후 남편은 매주 격려하는 편지를 나에게 썼고 양쪽 늙은 부모를 위로했다. 또 우리를 위해 변호사를 선임했고, 우리를 구출하기 위해 분주히 뛰어다녔는데, 부득이 외지의 일자리도 그만뒀다.

검은 소굴에서 나는 심각하게 안으로 찾았고 자신의 수련 길을 반성했는데, 자신이 법을 얻기 시작해서부터 법을 실증하는 일에 바쁜 것을 보게 됐다. 법 공부를 적지 않게 했지만, 마음이 고요하지 않았고 일상생활에서 법의 요구에 따라 시시각각 자신이 안으로 찾아 집착심을 제거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법을 실증하는 일은 비록 적지 않게 했지만 사람 마음과 집착심은 덮어 감춰졌다. 자신의 과시심, 좋은 말을 듣기 좋아하는 마음, 질투심, 색욕심, 안일심 등 마음이 자신을 교란했고 자신의 마음이 순수하지 못했다. 공산당 문화(黨文化) 요소도 심각했는데, 쟁투심이 강하고, 불복하는 마음, 잘 난 체하는 마음, 여자의 온화하고 부드러운 점이 없었다. 수련생, 가족과 중생에 더욱 진정한 선이 없었다. 나는 돌아가 반드시 잘 수련하겠다고 다짐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와 수련생들의 정체 협력 아래, 1년 뒤 나는 구치소에서 석방돼 집으로 돌아왔다.

이번 시련을 통해 우리는 노력해 잘하려 했고 모순이 발생한 후 각자 안으로 찾았는데, 서서히 우리 관계가 개선됐다. 그러나 나는 늘 우리 관계는 근본적으로 개변이 안 됐다고 생각했다. 대부분 강제로 참았고 태연하게 관을 넘기지 못했다. 어떤 것이 나를 가로막고 있는 듯했는데 자신도 아주 괴로웠다.

한번은 내가 운전해서 법 공부 팀에 갔다. 나는 초보운전자라 남편은 옆에서 끊임없이 나를 지도해 주었는데, 나에게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했다. 그의 요구에 따라 하지 않자 그는 원망했다. “왜 내 말을 듣지 않아요? 자신이 잘하지 못하고 또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지 않는데, 왜 자신을 바꾸려 하지 않아요?” 나도 자신의 정서를 통제하지 못해 말했다. “왜 제가 당신의 말을 들어야 해요? 당신이 저의 상사인가요? 상사도 다른 사람을 강제로 자신의 말대로 하라고 할 수 없어요! 저도 로봇이 아니고 제 생각이 있어요. 왜 당신 말을 들어야 해요?”

우리는 다투기 시작했다. 그사이에 사고도 날 뻔했는데, 정지 신호를 무시하고 차를 몰았다. 남편은 차를 길가에 세우라고 했고 우리는 냉정해졌다. 남편은 말했다. “제가 잘못했어요. 제가 당신에게 내 말에 따라 하라는 것이 틀렸어요.” 나는 말하지 않았다. 그는 또 말했다. “그러나 당신도 생각해봐요. 왜 그렇게 자신을 바꾸려 하지 않아요?”

그의 말이 나를 건드렸는데, 나는 사부님의 설법이 생각났다.

제자: 교만, 질투 등과 같은 자신의 집착을 인식할 수 있는데, 무엇 때문에 늘 제거해 버리지 못합니까?

사부: 만약 당신들이 정말로 이런 것들을 그토록 중하게 본다면 곧 그것을 억누를 수 있으며, 그럼 당신은 그것을 약화할 수 있고 점차 철저하게 제거해 버릴 수 있다. 만약 당신이 나는 알고 있다고 느끼고, 또 아주 조급해하지만, 그러나 실천 중에서 당신은 결코 진정으로 그것을 억누르지 않고 그것을 억제하지 않았다면, 사실 당신은 단지 이런 사상 활동을 오로지 보고 느끼는 것에만 머물러 있을 뿐, 당신은 그것의 행위를 억제하지 않았다. 다시 말하면, 당신은 단지 생각만 했지 결코 실천하여 닦지 않았다. [1]

나는 단번에 우리 모순이 해결되지 않은 근본 원인을 찾았다. 우리는 이 상황에 조급해하면서 매번 모순이 나타나면 안으로 찾았지만, 왜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았을까. 바로 우리가 모순이 나타났을 때 비록 안으로 찾았지만, 단지 표면에서 더는 자신을 견지하지 않도록 할 뿐이었지 근본적으로 자신을 바꾸지 않았거나 혹은 다른 사람을 바꾸려 하고 자신을 바꾸려 하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나의 증상이었다. 나는 자신의 부족한 점을 인식하고 잘하려 생각했는데, 심지어 조급했다. 하지만 실천에서 나는 해내지 못했고 실천에서 진정으로 착실히 수련할 줄 몰랐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금후 연공(煉功) 중에 당신은 각양각색의 마난(魔難)과 마주칠 것이다. 이런 마난이 없이 당신이 어떻게 수련하겠는가? 여러 사람이 모두 너도 좋고 나도 좋아 이익상의 충돌이 없고 인심의 교란이 없이, 당신이 거기에 앉아 있기만 하면 心性(씬씽)이 제고되어 올라오는가? 그것은 안 된다. 사람은 실천 중에서 진정하게 자신을 연마(魔煉)해야만 비로소 제고해 올라올 수 있다.”[2]

뒤돌아보면 가정은 우리의 얼마나 좋은 수련환경인가? 그러나 나는 오히려 심성을 제고하고 자신을 착실히 수련하는 그렇게 많은 기회를 잃어버렸고 또 사람 마음으로 대하고 운명의 불공평을 원망했다. 나는 스스로 자신에게 알렸다. 나는 반드시 자신을 바꾸고 진정으로 해내고 아주 작은 점부터 시작하겠다! 내가 이런 결심을 하니 마음이 아주 편안해졌다. 나는 사부님께 말씀드렸다. “제자는 너무 우둔해 수련 제고하는 기회를 놓쳤습니다. 그렇게 깨닫지 않고 원망까지 했는데 너무 부끄럽습니다.” 나는 마땅히 남편에게 감사해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당신도 좋고 나도 좋다면 어떻게 수련하겠는가?”[2]라고 말씀하셨다. 나와 남편간의 마찰, 모순은 수련에서 나에게 제고하는 가장 좋은 배치가 아닌가?

정말로 “관념이 바뀌고 부패된 물체 없애니 광명이 나타나네”[3]였다. 나의 관념이 변한 후 이전의 다투고 싸우던 모순은 사실 모두 아주 간단하게 느껴졌다. 예를 들면 이전에는 내가 일이 있어 늦게 들어오면 남편이 여전히 내가 들어와 밥 짓기를 기다려 나는 화가 났다. “당신은 밥 한 번쯤은 해야 하지 않나요? 무엇이든 내가 하기를 기다리는 것인가요? 전혀 다른 사람을 위해 생각하지 않아요.” 남편의 이유는 “당신이 언제 올지 모르니 일찍 하면 식지 않나요?” 이런 작은 일로 다투었다. 지금 나는 화가 나지 않았고 속으로 기뻐했다. 밥을 하면서 사부님께 감사했고, 다시 내게 제고의 기회를 주신 것에 감사했다. 남편도 변했고 너그러워졌다. 어떤 일은 내가 잘하지 못해도 나를 질책하지 않았고, 우리 사이의 모순은 적어졌다. 작은 마찰이 나오면 재빨리 인식했고 서로 평온하게 교류할 수 있었고 서로 협력할 수 있었다. 관계는 갈수록 원만해졌다.

우리 관계가 끊임없이 개선될 때, 아마 나의 수련이 착실한지 착실하지 않은지를 시험하기 위한 것 같은데, 바로 약 한 달 전 나중에 걸어 나온 어느 수련생이 남편에게 말했다. “책 한 권을 구매했는데 어떤 수련생이 그 책을 집에 놔두지 말라고 했어요. 저 또한 버리기 아쉬워서 이 책을 당신에게 주려고 해요.” 남편은 자신이 처리한다고 가져오라고 했다. 그때 나는 그들의 일을 몰랐다. 줄곧 어느 밤에 수련생이 책을 남편에게 가져다줘서 나는 알게 됐다. 그때 수련생의 감수를 고려해 뭐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일은 엄숙하다고 생각했고 남편과 교류하고 싶었다. 나는 오전에 남편이 없는 틈을 타서 사부님의 관련 설법, 밍후이왕 수련생의 교류를 찾아보고 자신이 반드시 조급해하면 안 되고 화를 내면 안 되고 부드럽게 남편과 이 문제를 교류해야 한다고 일깨워주었다.

점심때 남편은 돌아와 물건을 정리하고 오후에 직장에 가려 했다. (직장이 멀어 그는 매주 한 번 집에 돌아옴) 그는 책을 꺼내 가방에 넣었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당신은 이 책을 어떻게 처리하려 해요?” 그는 직장에 가져간다고 했다. 나는 이 책을 가져가면 안 된다고 했다. 그는 나에게 왜 가져가면 안 되냐고 물었다. 나는 그 책은 남기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왜 이렇게 말하냐고 했다. 그는 불만이 있는지 부드럽지 않았다. 나는 생각했다. ‘그는 왜 나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고 늘 고집스럽고 변하지 않는가?’ 나도 말이 조급했고 부드럽지 않았다. 나는 사부님의 이 방면의 관련 설법을 보았다고 말했다. 그런 후 나는 그에게 사부님의 이 방면의 설법 내용을 읽어주었다. 그는 나의 침대 옆에 앉았다. 나는 이미 그가 당시 어떤 말을 했는지 잊어버렸다. 느낌에 그는 마치 이 책을 어떻게 대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중요한 것은 내가 그의 해석을 듣지 않고 무슨 일이든 먼저 결론을 내린다는 것을 말하는 것 같았다. 그도 많이 변했는데, 나는 오히려 고정적인 관념으로 그를 대한다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과정에서 나는 감정을 통제하기 어려웠고 그를 반박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내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는데, 그것은 깊이 뿌리박힌 관념이라 생각하고 그것을 배척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억누르지 못하고 괴로워하며 말했다. “내가 수련을 잘하지 못한 것이에요. 저도 당신과 잘 교류하고 싶어요, 그러나 아직 잘하지 못해요. 저 자신도 잘 할 수 있는지 모르겠어요.”라고 말하고 방을 나갔다.

주방에서 나는 눈물을 흘렸다. 자신이 이 관을 넘지 못해 슬펐다.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말했다. ‘사부님 제자는 이렇게 제구실을 하지 못합니까? 이 관을 진정으로 넘기지 못했어요? 관념에 끌려갔고 자신이 잘했다고 생각하면 타인에게 강요해요. 자신을 수련하지 않고 남을 수련하려 해요. 저는 자신을 잘 수련할 수 있을까요?’라고 울며 생각했다. 이러면 안 된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나는 반드시 잘할 수 있다. 방금 표현은 몇 년간 쌓인 물질과 관념이며 그것들이 몸부림치고 있다. 나는 그것들을 똑똑히 보고 반드시 소멸하겠다고 생각했다.

오후에 나는 수련생 집에 가려고 눈물을 닦고 집을 나섰다. 버스에서 나는 자신에게 알려주었다. 나와 남편의 관계는 배후에 어떤 원인인지를 막론하고 나는 걸어 지나가야 한다. 나는 근본적으로 자신을 바꿔야 한다.

수련생을 만나 그녀와 방금 발생한 일을 교류했다. 그녀는 나를 격려해 주었다. 그녀는 사부님의 설법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했다. “대법 중에서 수련함은 한 층 한 층씩 사람의 사상을 제거하는 것이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마치 그 양파처럼 한 껍질 한 껍질 그것을 벗겨버리는데, 최후에 모두 벗겨서 없어졌을 때가 바로 본질이다. 대법 중에서 수련함은 무엇이든 모두 그것을 단번에 제거해 버릴 수 없는데, 그렇게 하면 당신은 속인 중에서 수련할 방법이 없다. 왜냐하면, 당신은 표면상으로도 이미 속인 중의 한 사람에 속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4] 그러므로 나에게 완전히 제거하지 못해도 조급해하지 말고 이미 인식했으니 서서히 여러 차례 시련을 거쳐 점차 나아진다고 말했다. 나는 자신이 생겼다.

밤에 돌아가 나는 남편에게 사과하는 문자 메시지를 보내며 내가 잘못했다고 말했다. 남편도 답장했는데, 그는 이미 책을 버렸다고 했다. 일이 지난 후 나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스스로 큰 단점을 바꾼 것을 알았다. 남편도 줄곧 항상 마음에 품고 있었는데, 내가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사과도 하지 않는데, 설령 자신이 잘못했다는 걸 알면서도 사과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나의 허영심이고 체면을 중시하는 마음이라는 것을 아는데, ‘잘못했다. 내가 잘못했다.’ 이 몇 마디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돌파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나는 자신을 착실히 수련하니 모든 것이 가장 좋은 배치라는 것을 깊이깊이 느꼈다.

사존께 감사드립니다. 정법 마지막에 나는 크게 깨달았고 무엇이 수련인지 인식했다. 나는 아직 많은 사람 마음이 있고 집착심을 제거하지 못했다. 자신이 하는 것은 법의 요구와 아직 거리가 멀다. 그러나 반드시 노력해 자신을 잘 수련하고 순수한 마음가짐으로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고 사존의 자비 구도를 저버리지 않겠다!

사부님 감사드립니다! 허스
저에게 무사(無私)한 도움을 주신 수련생들께 감사드립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2005년 샌프란시스코법회 설법’
[2]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轉法輪)’
[3] 리훙쯔 사부님의 시사: ‘홍음-신생’
[4]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뉴질랜드법회 설법’

 

원문발표: 2019년 12월 3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12/31/39718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