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랴오닝 대법제자
[밍후이왕]
1. 대법이 나에게 새로운 삶을 주었다
올해 71세인 저는 1996년에 파룬따파를 수련하기 시작했습니다.
수련 전에 저는 공부를 잘하고 일을 잘해서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만 알고 있었습니다. 어떠한 일에 대해서도 옳고 그름의 표준이 없었습니다. 담이 아주 작고 성격이 내성적이어서 늘 속으로 울화가 치밀었습니다. 항상 남을 이기려고 서로 다투다가 몸과 마음이 지쳐 큰 병을 얻기까지 하였습니다. 편두통이 심할 때는 머리를 벽에 부딪쳐야 했는데 중의, 양의사에게 다 보여도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또 현기증, 담낭염, 노이로제 증상 등이 있었고, 나중에는 암까지 걸렸습니다.
1996년, 절망에 빠졌을 때 저는 다행히 파룬따파(法輪大法)를 만났습니다. 법공부를 한 지 얼마 안 되어, 수술한 후 약물치료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 당시 마음속으로 병을 내려놓지 못해 약물치료 여부에 관해 결정하지 못했습니다. 한 수련생은 저에게 “당신은 법공부를 하고서도 또 약물치료를 하나요?”라고 했는데 저는 듣자마자 “맞아, 상관하지 말자. 나는 안심하고 대법 공부를 하자. 이미 한 번 죽은 몸인데 법을 얻고서도 아직도 죽음을 두려워하는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후로 20년 넘게 약 한 알 먹지 않았고, 무슨 영양 보양 식품도 먹어 본 적이 없었는데 모든 병이 저도 모르게 전부 나았습니다. 정말로, 걸을 때 바람 소리가 날 정도로 몸에 힘이 솟구쳤습니다.
그 당시 편리한 조건이 있어 회사의 빈방을 빌려 수련생들을 조직해서 단체 법공부와 연공을 하고, 사부님 설법 동영상 등을 보았습니다. 날마다 바삐 보냈지만, 행복하고 즐거웠던 그 시절이 아직도 그립습니다
2. 가정 자료점을 설립하여 거짓말을 폭로하고 세인을 구하다
1999년 7.20, 풍운이 돌변하여 한동안 거짓말이 하늘땅을 뒤덮어, 법을 얻은 지 2년 반밖에 되지 않는 저는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단체 법공부하고 연공하던 환경이 사라졌고, 각 방면의 압력이 잇달아 덮쳤습니다. 회사 상사는 연속 저를 찾아와서 대화했고, 주민 간부들도 늘 저의 집에 와서 위협하면서 급여명세서까지 몰수하는 등 각종 수단으로 저에게 수련을 포기하도록 핍박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그들에게 “저는 대법을 수련하고 연공하여 암도 나았습니다. 국가 지도자가 암에 걸려도 치료하지 못하는데, 저 같은 일반 시민이 암에 걸리면 죽는 길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아주 좋은 일로서 당신들은 마땅히 저를 대신해 기뻐해야 합니다. 저는 대법을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들은 더는 악인을 도와 나쁜 일을 하지 말기 바랍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후로 그들은 더는 저를 찾지 않았습니다.
수련생들이 밍후이왕에 접속하여 진상자료를 다운받을 수 있어, 저는 복사기 한 대를 사서 진상자료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초기에는 두려운 마음이 특별히 강했고, 전자파로 인해 사악에게 감시당할까 봐 걱정했습니다. 또 소리가 들려 남들이 들을까 봐 걱정했고, 가족이 볼까 봐 걱정했습니다. 한동안 곳곳마다 저를 감시하는 눈이 있는 것 같아 중도에서 포기할 생각도 한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거짓말을 폭로해서 대법과 사부님의 결백을 회복시키는 큰일은 반드시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부님과 대법에 떳떳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할 수 있는 조건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저의 책임이기에 저는 반드시 해야 하고 또 잘 해야 합니다.
이 일념이 확고해지자 사부님께서는 저의 두려운 마음을 제거해주셨습니다. 얼마 안 가서 저는 컴퓨터와 복사기를 샀는데 모든 것을 영점에서 시작했습니다. 컴퓨터와 복사기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었던 저는 사이트에 접속하여 다운로드, 편집, 조판, 타자, 인쇄(이전의 진상자료는 모두 밍후이왕에서 다운받은 후 스스로 편집, 조판해서 다시 인쇄한 것임), CD굽기 하는 것을 배워 대법책과 진상소책자, 진상 스티커, 진상 현수막, 션윈공연 CD (대륙에서 배포하는 것을 허락할 때 만든 것임), 매년 달력 등을 만들었습니다. 수련생들이 사람을 구하는 데 필요하기만 하면 모두 만들었습니다. 모든 항목에서 저는 할 줄 모르던 데에서 할 줄 알게 되어, 전반 과정에서 저는 사부님의 가지(加持)를 느꼈습니다. 돌파하기 어려워 보이는 곤란이 있을 때마다 모두 사부님께서 주신 지혜로 지혜로운 사고가 끊임없이 열려, 보기에 불가능했던 일부 일들이 사실로 변했습니다.
한번은 수련생이 몇 미터 길이의 큰 현수막을 만들어 달라고 했는데 비단으로 하면 비용이 너무 들었고 또 글을 쓸 사람도 없었습니다. 저는 소모품을 구매할 때 공장에서 서비스로 주는 컬러 A4용지를 이용하여, 프린터로 종이 한 장에 한 글자, 어떤 것은 두 장에 한 글자씩 인쇄했습니다. 이것을 코팅할 때 연결하여 “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진선인은 좋습니다” “세계는 진선인을 필요로 합니다” “장쩌민을 법으로 처벌하라” 등의 대형 현수막을 만들어 사악이 몹시 겁먹게 하였습니다.
처음으로 진상 자료를 만들 때 심성이 따라가지 못해, 기계가 자주 고장 났습니다. 그래서 일을 그르치게 되어 늘 기술자 수련생을 찾았는데 그들도 매우 바빴습니다. 저는 기술 수련생에게서 기계 수리를 배운 후 일부 작은 고장도 혼자 수리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기계도 법을 위해 온 것이므로 문제가 나타나면 먼저 자신이 일심불란(一心不亂)하게 일을 했는지에 대해 찾아보고, 다시 기계와 소통했는데 기계마다 모두 저의 법기였고 또한 저의 심성에 따라 움직였습니다. 그 결과 아주 신기한 것은 마지막에는 기계들이 모두 제가 실수하지 않도록 잘 협조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한편으로는 진상자료를 만들고, 한편으로는 대법제자의 노래를 틀고 인쇄, CD굽기, CD면에 인쇄하기를 하여, 여러 대의 기계를 동시에 움직였습니다. 저는 질서정연하게 기계들을 다루어 아주 수월하게 해야 할 일을 했습니다. 자료를 다 만들고 시간이 있으면, 수련생들과 함께 나가서 진상을 알렸습니다. 한 수련생이 어디에 그렇게 많은 시간이 있어 이렇게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는지 물었습니다. 그것은 사부님께서 저에게 무량한 지혜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가정 자료점은 저 혼자서 했는데 바쁠 때는 수련생들이 와서 함께 했습니다. 사용되는 소모품이 비교적 많아 모두 수련생들이 가져왔습니다. 수련생들이 3층으로 소모품을 옮길 때 지쳐서 온 얼굴에 땀투성인 것을 보고 수련생들에게 창고에 놓으라 하고, 나중에 내가 혼자서 천천히 옮기겠다고 했습니다. 그 당시 저는 혼자서 옮길 수 있는지, 남들이 보면 어쩌지하는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깊은 밤에 저는 혼자서 조금씩 옮겼는데 저도 모르게 10여 개의 종이 상자와 다른 소모품을 3층으로 옮겼습니다. 그 당시 저는 이미 5, 60세였고 키가 작았습니다. 수련 전에는 또 수술도 했는데 이런 소모품을 3층으로 옮겨도 지치지 않았습니다. 모두 사부님께서 저를 도와주시고, 가지해 주셨기 때문에 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사부님의 가지하에 10여 년을 견지해 왔습니다.
3. 사부님을 확고히 믿고 마귀 굴에서 뛰쳐나오다
2014년 7월 22일, 저는 경찰에 납치되고 불법으로 가택수색을 당했습니다. 파출소에서 사건처리 경찰은 저에게 이른바 기록부에 사인하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들이 진상을 몰라 저를 납치하여 이미 대법에 죄를 지었기에 더는 죄를 짓게 하지 말고, 그들에게 삶의 희망을 남겨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사인하지 않겠어요. 사인하면 당신에게 좋지 않아요.”라고 했고 경찰은 “당신 집을 보니 아무것도 없던데 당신은 월급을 모두 여기에 씁니까?”하고 물었습니다. 저는 그에게 ”암에 걸린 저를 대법 사부님께서 구해주셨습니다. 이렇게 좋은 일을 제가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지 않을 수 있습니까? 저는 당연히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대법의 구도가 없었다면 저는 있을 수 없습니다.”라고 했으며 그는 더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구체적인 일들에 부딪혔든지 내가 당신들에게 알려준 적이 있는데, 그것은 모두 좋은 일이다. 왜냐하면 당신이 수련했기에 비로소 나타난 것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아무리 큰 마난(魔難)으로, 아무리 큰 고통으로 여기든지 간에 모두 좋은 일이다. 왜냐하면 당신이 수련했기에 비로소 나타난 것이기 때문이다. 마난 중에서 업력을 없애버릴 수 있고, 마난 중에서 사람 마음을 제거할 수 있으며, 마난 중에서 당신으로 하여금 제고하여 올라오게 할 수 있다.”[1] 납치된 것은 제가 잘 하지 못해 사악이 빈틈을 탄 것입니다. 이것은 나 자신의 마난이므로 스스로 뛰쳐나와야 합니다.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각종 환경 중에서 모두 다른 사람을 좋게 대해야 하고, 남을 선하게 대해야 하는데,”[2] 저는 경찰에게 저의 가방에 있는 돈으로(가방은 그들이 몰수해 갔음) 빵 몇 개와 물을 사달라고 했습니다. 경찰이 퇴근하고 저는 파출소의 작은 방에 갇혔는데 세 명의 경찰이 교대로 저를 감시했습니다. 저는 경찰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했습니다. 그들은 모두 기뻐서 악당 조직에서 탈퇴하고 또 저에게 연공하는 것을 그들에게 보여달라고 했습니다. 밤이 깊었는데 세 명의 경찰은 온밤 자지 않아 저는 그들에게 빵과 물은 내가 산 것이니 먹으라고 했습니다.
이튿날 저는 간수소로 납치되어 갔습니다. 감방 안의 우두머리는 제가 파룬 휘장을 달고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서 “당신은 어떻게 이런 것을 달고 들어와요?”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한 수련생이 불법으로 수감되어 있었는데 그는 감옥 우두머리에게 “당신은 파룬 휘장을 잘 보관했다가 그가 나갈 때 다시 돌려주세요. 이것은 아주 큰 일입니다.”라고 했습니다. 후에 제가 간수소에서 나오기 몇 시간 전에 감옥 우두머리는 파룬 휘장을 저에게 주어, 저는 파룬 휘장을 달고 간수소에서 나왔습니다.
간수소에서 저는 시간만 있으면 법을 외우고 발정념하여 사악의 박해를 해체했습니다. 마음을 조용히 하고, 자신의 어디에 이렇게 큰 누락이 생겨 사악에게 빈틈을 타게 하였는지를 찾아보았습니다. 자신이 오랫동안 일해 온 일에 마음이 크게 부풀어 과시심, 환희심, 남을 깔보는 마음, 질투심 등이 있는 것을 찾아냈습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 마음으로 인해 자신도 모르게 일하는 것을 수련으로 여겼습니다. 그 결과 다른 사람만 수련시키고 자신은 수련하지 않았습니다. 사부님께서 여러 차례 점화시켜 주셔도 깨닫지 못했고, 수련생이 저한테 안전에 주의하라고 알려주어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여러 가지 사람 마음은 저를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저는 며칠 전에 S 수련생이 일자리도 잃고, 오토바이가 고장 났으면서도 여전히 진상을 알리던 일이 생각나 그에게 100위안(한화 약 1만7천 원)을 주어 오토바이를 수리하도록 했습니다. 제가 납치된 후 경찰은 불법으로 심문하면서 저의 핸드폰이 어디에 있는지 물었습니다. 제가 없다고 하자 경찰은 또 “당신 집에는 왜 두 대의 유선전화기가 있나요? 당신이 그들에게 월급 주나요?”라고 물었습니다. 이 말을 듣고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저는 평소에 법공부하고, 수련생이 와서 대법 일을 할 때 모두 전화기 코드를 빼버리기 때문에 그들이 전화기로 저를 감청할 수 없었습니다. S 수련생에게 돈을 줄 때도 우리 두 사람만 있어 누구도 이 일을 모르는데 사악이 어찌 똑똑히 알고 있었는지? 원래 S 수련생이 저의 집에 있을 때 핸드폰을 갖고 있어, 사악이 도청하고 추적했던 것이었습니다. 납치된 원인의 하나가 바로 핸드폰 안전에 주의하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이 진정하게 수련하는 사람이라면 우리 法輪(파룬)은 당신을 보호해 줄 것이다. 나의 뿌리는 모두 우주에 박혀 있으므로 누가 당신을 움직일 수 있다면 곧 나를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그는 곧 이 우주를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2]
사부님의 이 한 단락 법을 얼마나 많이 배웠는지 저는 모릅니다. 왜 “진정하게”란 두 글자를 보지 못했을까? 사부님께서는 진정으로 수련하는 사람을 관여하고 계십니다. 자신이 이렇게 많은 사람 마음으로 진수(眞修)제자가 될 수 있을까? 개인이 잘하지 못하고, 법에 있지 못하기에 사부님께서 당신을 도와주려고 해도 구세력은 도와주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구우주의 이치가 거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사부님께 잘못을 인정하고, 반드시 각종 사람 마음을 수련해서 제거하고, 법 속에서 바로 잡아 진정한 수련인이 되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간수소는 제가 있을 곳이 아니므로 사부님께 하루빨리 마귀 굴에서 뛰쳐나올 수 있도록 가지해 주실 것을 부탁했습니다.
사부님께서 명백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또 당신들에게 알려주겠다. 사실 당신들 이전의 본성(本性)은 위아위사(爲我爲私)의 기초 위에 세워진 것이다. 당신들이 앞으로 일함에 먼저 남을 생각해야 하고 무사무아(無私無我), 선타후아(先他後我)의 정각(正覺)으로 수련 성취해야 한다.”[3] 사부님의 가르침에 따라 수감자, 경찰을 포함한 모든 사람에게 사심없이 대법의 아름다움과 자비를 그들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저는 수감자들에게 대법제자가 박해당한 진상을 알렸고, 자신이 법공부할 때의 신기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들이 시간만 있으면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읽게 하면서, 여러 방면에서 힘이 닿는 대로 그들에게 관심을 두고 도와주었습니다. 수감자들 사이에 모순이 발생하면 저는 그들에게 인과관계를 이야기해 주면서, 인내하여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알려주었습니다. 간수소에 막 들어갔을 때 경찰은 수시로 저에게 고함을 질렀지만 저는 차분한 마음으로 그들을 대하면서 미워하지 않았고, 선한 마음과 자비로 그들을 감동케 하였습니다. 그들이야말로 가장 가련한 세인이기 때문에 저는 시기를 봐 가면서 진상을 알렸는데 그들은 진상을 알고서 모두 이미 삼퇴했습니다(일부 사람은 대법제자가 이전에 권고하여 탈퇴한 것임)
10여 일 뒤, 저는 마땅히 해야 할 일들을 거의 다 했기에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부님께서 곁에 계신다는 것을 알고 저는 마음속으로 사부님께서 병업가상을 만들어 주어 제가 나갈 수 있도록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이 생각을 하자 저는 바로 침대에 쓰러졌고, 혈압이 230이 되어 의식을 잃었습니다. 4명의 잡부가 담요로 저를 들어서 보건실에 옮겨 갔습니다. 깨어난 후 감옥 의사는 “제 등을 보세요, 다 젖었어요, 모두 당신을 위해서 그래요.”라고 했습니다.
그 후부터 저는 밥을 먹기만 하면 토하고, 물을 마셔도 토했습니다. 한번은 아침에 일어났는데 바닥에 쓰러져 소변까지 가누지 못했습니다. 며칠 뒤 왼쪽 반신이 전부 자줏빛이 되었습니다. 감옥 우두머리는 2명을 배치해서 한 사람은 저의 일상과 빨래(이 사람은 수련생임)를 책임지게 하고, 다른 한 사람은 식사를 책임지게 했습니다. 아침에 쌀죽이 나와 수감자에게 병에 담아 와서, 제가 낮에 먹도록 했는데 아무 때나 먹어도 모두 괜찮았습니다, 어린 수감자를 한번 부르기만 하면 누구를 막론하고 모두 저에게 먹을 것을 가져다주었고, 감옥 우두머리도 자신이 구매한 참깨죽을 저에게 주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함부로 남의 물건을 가질 수 없어 일일이 거절했습니다. 거절할 수 없는 것은 가족이 저에게 입금한 돈으로 그들이 좋아하는 것을 사서 그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한번은 제가 일이 있어 식사시간을 놓쳤는데 다른 사람들이 저에게 토마토 계란탕을 한 그릇 가져왔습니다. 간수소에서는 이런 음식이 자주 나오지 않았습니다. 제가 식사할 때 두 명의 수감자가 저에게 이 국을 달라고 했는데. 저는 그때 이미 밥을 먹을 수 없어 시큼한 국을 마시는 것이 매우 좋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별로 생각하지 않고 그들에게 주었습니다. 그러자 다른 수감자들이 가만있지 않고 “할머니(나이가 가장 많아서 모두 할머니라고 부름)가 이렇게 됐는데 너희들이 할머니 국을 달라고 하냐?”하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들이 달라고 하면 줘요, 나는 괜찮아요.”라고 했습니다.
감옥 우두머리는 제가 식사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어디에서 몇 알의 B12를 얻어와서, 저보고 먹으라고 했습니다. 저는 병이 아니어서 먹어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선의를 보고, 이 생명을 애호해야 하기에 그가 대법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지 못하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과거에 출가인에게 밥 한 그릇 주는 것도 공덕이 무량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저는 20년 만에 처음으로 약을 먹어 보았습니다.
저는 20여 일 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못해, 나중에는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낮에 침대에 누워 있으면 어린 수감자들은 자기의 방석을 저의 몸 밑에 넣어주고 자기들은 딱딱한 나무의자에 앉아 있었습니다. 대법의 자비가 이런 인연 있는 사람들을 감화시켰고, 대법제자가 마난에 부딪혔을 때 도움의 손을 내주었습니다. 대법제자를 선하게 대하면 반드시 좋은 미래가 있는 것입니다. 한 수감자는 저에게 “할머니, 제가 일찍 할머니를 만났다면 제가 여기에 들어오지 않았을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한 생명이 뉘우치고 있는 것입니다.
어느 날 모두 감방 안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옆방의 한 대법수련생이 심문받으러 가게 되었습니다. 제가 있는 감방문 앞을 지나갈 때 모 수련생을 불렀는데 CCTV에 의해 발견되었습니다. 감옥 경찰이 누가 문 앞에 있었는지 묻자 감방 안에서 보았다는 사람이 없었고, 감옥 우두머리도 보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감옥 경찰은 CCTV를 돌려 그 수련생을 발견했는데 이때 그 수련생은 심문받으러 가서 감방에 없었습니다. 감옥 경찰은 화가 나서 “왜 다들 보지 못했다고 말하는가, 모두 3일간 엄한 관리를 받고, 식사도 하지 못한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감옥 경찰의 눈을 주시하면서 “감옥경찰 배후의 사악을 제거한다, 대법 수련생과 중생을 박해하지 말고 대법에 죄를 짓지 말라.”하고 발정념 했습니다. 이때 그 수련생이 돌아와서 “저는 문 앞에 있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을 연루시키지 말고 처벌하려면 저를 처벌하세요.”라고 했습니다. 점심을 먹지 못하게 하는 일도 지나가 버렸습니다. 후에 누군가 저에게 엄한 관리를 받으면 모두 침대 위에 앉아서 움직이지 못하고, 식사도 여기 밥만 먹어야 하며, 배가 부르지 않아도 자신이 산 것을 먹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진상을 안 중생들은 처벌과 배고픔을 두려워하지 않고 대법수련생을 보호했습니다. 그들이 모두 대법 속에서 이익을 얻고, 하늘이 그들에게 행복과 평안을 주었으면 합니다.
누군가 저에게 “할머니가 많이 여위었어요, 할머니가 잠들면 우리는 모두 무서워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나는 죽을 수 없으니 두려워하지 말라. 18년 동안 대법 사부님을 만나 뵈지 못했으니, 나는 나가서 나의 위대한 사부님을 만나야 한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 저에게 “3서를 쓴 사람들은 며칠 후에 나갔어요. 할머니도 빨리 쓰고 나가세요, 그렇지 않으면 37일 뒤에 나갈 수 없어요.”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저는 그에게 “나는 아무것도 안 쓴다. 그들의 말을 인정할 수 없고, 사부님의 말씀만 인정한다. 나는 반드시 나갈 수 있다”라고 했습니다.
제가 납치된 후 37일 되는 날, 저는 길을 걷기도 힘들어서 경찰이 휠체어로 저를 밀고 가서 심문을 받았습니다. 사건처리 경찰은 제가 불법 체포되었다고 선포했는데 그들이 다 읽기도 전에 제가 의식을 잃어 그들은 슬그머니 사라졌습니다.
저는 병원에 보내졌습니다. 혈액검사를 할 때 간호사는 매우 어렵게 피를 조금 뽑았는데 검은 자주색이었습니다. 결과를 기다릴 때 복도의 긴 의자에 검사결과를 기다리는 환자와 가족, 그리고 저를 감시하는 젊은 경찰이 앉아 있었습니다. 저는 휠체어에 앉아 있었고 사람들은 모두 의문의 눈빛으로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내가 전에 혈액암에 걸렸지만, 대법을 수련한 후 모두 나았고, 모든 병이 없어졌으며, 20년 동안 약 한 알 먹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또 경찰이 저를 어떻게 납치해서 박해한 사실을 말했는데 사람들은 모두 조용히 듣고 있었습니다. 비록 목소리가 크지 않았지만 제가 최선을 다해 말한 만큼 중생들이 모두 알아들었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일체는 모두 사부님의 장악하에 있었습니다. 검사결과도 가히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다음날 오전 경찰은 가족에게 제가 병이 있다고 알려주면서 오후에 데려가라고 했습니다.
집에 돌아온 후 그날 밤 저는 좁쌀죽 한 그릇을 먹었는데 더는 토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시간을 다그쳐 법공부와 연공을 하자 몸이 아주 빨리 회복되었습니다.
저는 혼자 살기에 아이들이 곁에 없었습니다. 저를 납치한 며칠 뒤에 경찰은 제 가족을 찾아 그들에게 내가 파룬궁을 연마하는데 우두머리라고 하면서 또 자료점에서 적지 않은 물품을 수색해서 몰수해 갔으니 판결해서 감옥에 보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가족과 경찰을 포함해서 누구도 제가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저를 만난 사람들은 제가 나올 수 있는 것은 기적이라고 했습니다. 일주일 뒤에 저는 잠옷 두 벌과 20여 켤레의 양말과 속바지를 사서 간수소에 보내, 저에게 관심 두고 보살펴준 인연 있는 사람들에게 나눠주었습니다. 그런 후 저는 또 조사정법의 대 홍류 속에 뛰어들었습니다.
4. 정처없이 떠돌아다녀도 계속 사람을 구하는 일을 잘하다
사부님께서 저를 간수소에서 구해주셨지만, 사악은 절대 달가워하지 않고, 계속 법률절차를 밟으려고 하였습니다. 저는 당연히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6개월 뒤에 경찰은 전화로 가족에게 통지해서 제가 법원에 가도록 했습니다. 저는 절차대로 법원에 가면 불법적인 재판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또 조사정법하고 자신의 서약을 실천해야 하기에 사악에 협조할 수 없었습니다. 집에 떠나 새로운 환경으로 바꾸어서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계속해야 했습니다.
2015년 2월, 저는 새로운 환경으로 왔습니다. 하지만 마땅히 구도해야 할 중생은 여전히 제가 성장한 도시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진상자료를 다 만들어 다시 한 시간 넘게 장거리 버스를 타고 고향 도시에 가서 배포했습니다. 왕복으로 하루 걸리는 곳을 매주 2~3번 갔으니 돈과 시간을 모두 길에다 썼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 저는 돌아가서 더 많은 시간을 이용하여 사람을 구하려고 했습니다.
2015년 11월, 저는 본고장으로 돌아가 친척 집에 있었습니다. 이렇게 하면 편리하게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를 납치했던 파출소가 가까워 자녀들은 근심했습니다. 저는 “안전에 주의할 것이니 괜찮다, 나는 사부님이 계시기에 사부님께서 나를 도와주신다.”라고 말했습니다.
몇 년 동안 저는 절대다수의 시간에 유동 손님이 많고, 쇼핑객들이 중복되지 않는 큰 백화점, 쇼핑몰, 도매시장 등지에 가서 진상 자료, ‘9평공산당’, ‘공산주의의 최종목적’ 등을 배포했습니다. 차에 타면 ‘논어’를 외우고 발정념을 했습니다. “내가 가는 곳의 다른 공간의 일체 사악 요소를 철저히 제거한다. 진상 자료가 한 명에서 열 명, 열 명에서 백 명으로 전해져 더 많은 세인을 구도하도록 하고, 사악이 보지 못하도록 한다. 감시 카메라도 작용을 일으키지 못하고, 누구든지 사람을 구하는데 교란해서는 안 된다. 누가 교란하면 그가 악보를 받게 한다.”
저는 진상 자료를 배포하러 차를 타고 갈 때 몇 차례 경찰의 추적을 당했지만 모두 사부님의 가지하에 묘하게 경찰한테서 벗어났고 위기에서 벗어났습니다. 한번은 제가 버스 역에서 차를 기다릴 때 경찰이 미행했는데 차에 오른 뒤에 1m 떨어진 곳에서 저를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발정념 하면서 사부님께 가지해 주실 것을 부탁하고, 기회를 엿보다가 차 문이 바로 닫히는 순간에 차에서 내렸습니다. 차가 떠나자 저는 고개를 돌려 차에 있는 경찰을 보았는데 그는 멍한 표정으로 저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한번은 경찰이 급행 열차역에서 저를 발견하고 저를 따라 차에 올랐습니다. 그리고는 1m 떨어진 곳에서 핸드폰으로 내가 여기에 있다고 연락을 했습니다. 저는 이 말을 듣고 발정념 하면서 사부님께 가지해 주실 것을 부탁하고, 경찰을 그곳에 정지시켰습니다. 저는 앞당겨 차에 서 내린 후 역을 빠져나와 택시를 타고 벗어나 끝내 경찰을 따돌렸습니다. 그리고 가야 할 곳에 가서 사람 구하는 일을 했습니다.
이전에 자료를 배포하기 전에, 저는 이 자료들을 몇 번에 나누어 얼마를 배포할지에 대해 계획했지만 어떤 곳에 가면 계획과 맞지 않아 다시 고려했습니다. 나중에 가방에 자료를 넣을 때 사부님께서 저의 머릿속에 얼마를 가져가야 한다고 알려 주셨습니다. 한번은 손에 23권의 자료가 있었는데 두 번 나눠서 배포하기에는 적은 양이고, 한 번에 배포하기에는 조금 많았습니다. 제가 20권을 담자 사부님께서는 저에게 모두 가져가라고 점화해주셨습니다. 어느 곳에 가는 것도 사부님께서 배치해 주셨는데 저는 자연스럽게 가서 배포하기만 하면 되었고, 일체는 순조롭고 무사했습니다.
장쩌민 고소 붐이 시작될 때 저는 밍후이왕에서 장쩌민을 고소하는 관련 공지를 보고, 이것은 정법노정이고, 모든 대법제자가 마땅히 참가해야 한다고 인식했습니다. 아울러 사부님께서는 2015년 법회에서 아주 명확히 그것을 고소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 바로 본고장에 돌아가서 수련생들과 교류했습니다. 며칠 후, 밍후이왕에서 형사 고소장 양식이 발표되자 저는 밍후이왕에서 형사 고소장 양식을 다운받은 후 아주 빨리 장쩌민을 고소하는 형사 고소장을 썼습니다. 그리고 2015년 5월 중순, 어느 시의 우체국 창구에서 특급으로 부쳤는데 수련생들은 사이트에서 저의 고소장이 고등 검찰원과 고등법원에서 접수되었다는 메시지를 확인하였습니다.
5. 대법의 요구에 따라 자신을 잘 수련하다
2018년 7월, 사악은 각종 방법을 이용해 저를 찾았습니다. 그런데 친척이 무심코 저의 거처를 말하는 바람에 경찰이 늘 와서 소란을 피워 저는 세를 놓고 이사 갔습니다.
몇 달 후 한 친척이 그의 아들 집으로 이사 가야 하는데 집을 봐줄 사람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아무 생각도 없이 그에게 “제가 집을 봐 줄게요, 어차피 저도 밖에서 셋방살이하고 있으니 집세도 드릴게요.”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친척은 안심된 나머지 기뻐서 한마디로 승낙했습니다. 예전에 저는 이 친척에게 진상을 알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가 병이 있어 그에게 호신부를 주면서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외우도록 하였는데 몸이 좋아졌습니다. 그의 집은 농촌집이어서 도시의 아파트보다 생활환경이 좋지 않았지만 저는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대법제자가 고생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기에 저는 그의 집에 있기로 했습니다.
돌아갈 때 지금 사는 셋집이 아직 만기가 되지 않았는데 이사 가면 집주인이 1천 위안의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을까 염려했습니다. 집에 거의 도착할 때 부동산 사무실을 보았는데 의념 속에 누군가 저에게 들어가서 알아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부동산 사무실에 들어가니 한 여직원이 매우 친절하게 저를 접대하면서 앞당겨 집을 내놓으면 보증금은 줄 수 없는데 집세는 집주인과 논의해서 돌려받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보통 셋집 계약을 최소 6개월로 하지만 저는 5개월만 계약했습니다. 5개월 계약은 하기 매우 어렵습니다. 부동산 사무실 여직원은 저를 도와 찾아주겠다고 했지만 저는 어떠한 희망도 품지 않았습니다. 다음날 제가 부동산 사무실을 지나가는데 그 직원은 저에게 한 총각이 6개월 셋집을 찾고 있는데 그에게 먼저 살아보게 한 다음 다시 그에게 셋집을 찾아주도록 했다면서 저녁에 집을 보러 온다고 했습니다. 저는 핸드폰이 없어 그와 연락하기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이 직원은 저와 집주인을 대신해 집세를 돌려주려고 입이 닳도록 말하여 모두 순조롭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저는 친척이 봐 달라고 한 농촌집으로 이사 갔습니다. 그런데 생각밖에 한 달 후 그 친척은 아들 집이 불편하다면서 갑자기 자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저는 먼저 그에게 한 달 집세를 주었지만, 그는 받지 않고 저에게 될수록 빨리 이사 가라고 했습니다. 저의 아들은 이 사실을 안 후 화가 나서 “이건 사람을 괴롭히는 게 아닌가, 70세가 넘는 사람이 이사하기가 그리 쉬운가? 이렇게 일을 처리하는 것이 어디에 있는가?”라고 했습니다. 저는 아들에게 화내지 말라면서 돈을 좀 쓰고, 고생을 좀 하면 되는데 그들처럼 똑같게 대하지 말고, 관대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이사가 이미 습관이 되었습니다. 이 일에 대해 저는 조금도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고, 특별히 차분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자연적인 것은 존재하지 않고 우연한 것은 없으며, 일체는 모두 원인이 있다.”[5] 몇 년 동안 이사하는 것이 저의 일상이 되어, 사부님께서는 이사를 이용해 저의 각종 집착심을 제거해주셨습니다. 이익 앞에서 부정적 사고와 사람 마음으로 대하다가 자신을 수련인으로 여기고, 대법의 기준으로 안에서 자신을 찾도록 요구했습니다. 당시 저는 겉으로 보기엔 마음이 순수한 편이었지만 내면의 깊은 곳에는 ‘내가 대법을 수련하기 때문에 당신을 도와주는 거지, 다른 사람이라면 누가 이렇게 할 건가’라는 과시심이 있었습니다. 제가 좋다는 말을 듣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이런 바르지 않는 마음이 있어 이런 결과가 나왔습니다. 은밀하게 깊이 감추어져 있는 사람 마음을 깊이 파헤쳐 제고해 올라오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이사할 때마다 너무 힘들었습니다. 집을 찾고, 차를 빌리고, 집을 정리해야 하는데 매번 적지 않은 돈을 손해 보았습니다. 또 소문나지 않게 이사를 해야 하고, 비상시기에 또 안전에 주의해야 하기에 매번 저와 60세가 넘는 여동생 둘이서 이사했습니다. 일체는 모두 사부님께서 정성껏 안배해 주셔서 저의 각종 사람 마음이 제거되었고, 자신이 더욱 빨리 제고되었습니다. 매번 제자를 위해 걱정해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심성이 제고되자 사부님께서는 가장 좋은 것을 제자에게 배치해 주셨습니다. 다음날 저는 특별히 순조롭게 집을 구했습니다. 중개사를 통하지 않아, 집세가 좀 싸고, 장소도 괜찮아 제가 일하는 곳에서 훨씬 편리해졌습니다.
한번은 수련생과 교류하는 중에 그는 전에 내가 지지하지 않았던 어떤 프로젝트가 어디에 잘못이 있는지에 대해 말했습니다. 저는 듣자마자 화가 나서 변명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사부님의 한 단락 법이 생각났습니다. “신이 볼 때 세간에서 한 수련인의 옳고 그름은 전혀 중요하지 않고, 사람 마음의 집착을 제거하는 것이 오히려 중요하며, 수련 중에서 당신이 어떻게 사람 마음의 집착을 제거하는가가 비로소 중요한 것이다.”[6] 저는 저 자신이 왜 이랬는지, 왜 그렇게 큰 화를 냈는지, 쟁투심도 올라오고, 더욱 인내하지 못한 것에 대해 후회했습니다. 이것은 제고할 기회가 아닌가? 왜 또 밖으로 밀어냈는가? 사부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저는 반드시 이런 나쁜 사람 마음을 제거해서 제고해 올라오겠습니다.
한번은 또 한 수련생이 말하기를 모모가 나에게 불만이 많다고 했습니다. 저는 우리가 이렇게 오랫동안 함께 박해를 받았는데 그가 아직도 내려놓지 못하는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 당시 그와 저는 모두 함께 자료를 만들었고, 제가 무엇을 하면 그도 그것을 하였습니다. 제가 어떤 기기가 있으면 그도 있어야 했습니다. 몇 번이나 지적해도 그는 고치지 않아 저는 되도록 그의 집착을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와 같은 식견을 갖고 있지 않아 건드릴 수 없어 좀 피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신에게도 그런 마음이 있는지를 찾지 못했습니다. 그가 왜 저를 그렇게 대할까? 저도 이렇게 그를 대한 적이 있었는가? 자신을 수련하지 않아 저의 쟁투심, 질투심, 비교하는 마음, 자아에 집착하는 등 많은 사람 마음이 폭로되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오로지 버려야만 비로소 얻을 수 있다.”[7] 그가 어떻게 생각하던지 저는 이런 마음을 제거해야 하고, 그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버리고 자신을 수련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은 모두 서로 다른 층차에서 수련하고 있고, 모두 사부님이 관리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장점을 많이 생각하고, 자신의 부족한 점을 많이 보고, 상대방의 입장과 관점에서 고려해야 합니다. 집착을 제거하고 자신의 수련의 길을 잘 걸으면 그도 제고해 올라올 수 있습니다.
6. 내가 매일 해야 할 일은 밍후이왕에 접속하는 것이다
10여 년 동안 제가 매일 해야 할 일은 밍후이왕에 접속해서 밍후이왕의 문장을 매일 보는 것입니다. 어떤 수련생들은 밍후이왕에 접속할 수 없어 저는 사부님의 설법이 발표되면 바로 경문을 수련생에게 보내주고, 대법 정보도 수련생에게 전해주어 정법의 노정에 따라가도록 했습니다. 아울러 ‘정법수련 이야기, 사부님의 은혜를 회상하다’ 등 음원을 다운로드하여 수련생에게 전달해주고, 인터넷에서 수련생들이 교류한 좋은 문장을 다운로드하여 인쇄한 후 법공부팀에 가져가서, 법공부를 다 한 다음 법공부팀에서 교류했습니다. 교류 중에서 수련생들이 어떻게 법리상에서 제고하여 관념을 바꾸고, 문제에 봉착하면 어떻게 바로 깨닫고 안으로 찾는가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한번은 수련생들이 발정념 문장에 대해 교류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수련생들이 자신을 청리할 때 구세력의 배치도 부정한다고 추가하여 저는 깨우침을 얻었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구세력에 대해 인식이 모호하여, 마난 중에서 피동적으로 구세력을 인정한 후에야 비로소 청리하였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구세력이 배치한 이 일체를 우리는 모두 승인하지 않으며, 나, 이 사부가 승인하지 않으므로 대법제자도 당연히 모두 승인하지 않는다.(박수) 그러나 그것들은 필경 그것들이 하고자 하는 것을 하였는데, 대법제자는 더욱 마땅히 더 잘해야 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중에서 자신을 잘 수련해야 한다. 수련 중에서 마난(魔難)에 부딪힐 때 자신을 닦고 자신을 보아야 하는데, 이는 구세력이 배치한 마난과 그것들이 배치한 마난 속에서 어떻게 잘할 것인가 하는 것을 승인하는 것이 아니며, 이런 것이 아니다. 우리는 구세력 자체의 출현과 그것들의 배치한 일체마저 모두 부정하는 것으로, 그것들의 존재마저 승인하지 않는다.”[9]
저는 발정념으로 “나는 대법제자로서 사부님이 배치하신 길을 가겠다. 구세력의 배치를 부정하고, 구세력 자체마저 승인하지 않으며, 구세력의 배치는 더욱 승인하지 않겠다. 누가 배치하면 그가 죄가 있다. 주동적으로 구세력을 제거한다.”라고 하자 효과가 매우 좋은 것을 느꼈습니다.
제가 간수소에서 나와서 처음 한 일은 바로 컴퓨터와 인터넷 충전카드를 사서 밍후이왕에 접속하는 것이었습니다.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는 동안에도 늘 이사를 하였는데 이사를 다 하면 처음으로 하는 일이 바로 인터넷을 설치해서 밍후이왕에 접속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악이 어떻게 인터넷을 봉쇄하든지 사부님의 가지하에 모두 순조롭게 밍후이왕에 접속했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의 수련제고는 밍후이왕과 갈라놓을 수 없었습니다. 매일 밍후이왕을 보는 것은 삶의 일부분입니다. 모든 대법제자들은 모두 밍후이왕이란 이 공동체에 융화되어 비학비수(比學比修)하면서 격차를 찾고, 정체(整體)승화, 정체제고하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 함께 제고하고 정진할 수 있는 플랫폼인 밍후이왕을 만들어 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대법제자들을 하나로 화합시켜, 다 같이 조사정법(助師正法)하고, 사명을 실천하는 수련생들의 노력에 감사드립니다.
20여 년 동안, 매 시각 모두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 속에서 우리가 사부님과 대법을 확고하게 믿기만 하면 길은 갈수록 넓어지고, 갈수록 안정되었습니다. 어떤 마난과 심성 상의 고험에 봉착하더라도 사부님과 법을 생각하기만 하면 아주 빨리 수월하게 지나가 버렸습니다. 이때가 저에게는 가장 행복하고 즐거운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온몸에 업력이 가득한 저를 죽음의 변두리에서 구해주셨고, 대법으로 몸과 더러운 생각을 정화시켜 참신한 나-대법의 입자로 변신시켰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기뻐할 만한 것은 당신들이 걸어 지나왔다는 것이다. 이 길에서 여러분이 어떤 비바람을 만났든지 간에, 사실 되돌아 생각해보면 단지 대법제자에 대한 단련(魔煉)에 불과할 뿐이며, 이 과정 중에 당신들을 성숙하게 하고, 사람의 마음을 제거하여 최후에 원만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당신들이 걸어온 길이다. 되돌아보면 역시 이러하다.”[1]
위대한 사부님 감사합니다! 저를 이끌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길이 아무리 멀어도 저는 원만할 때까지 사부님의 정법을 바짝 따라갈 것입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각 지역 설법 8-2008년 뉴욕법회 설법’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불성무루(佛性無漏)’
[4] 리훙쯔 사부님 시사: ‘홍음2-사도은(師徒恩)’
[5] 리훙쯔 사부님 저작: ‘유럽법회 설법’
[6] 리훙쯔 사부님 저작: ‘각 지역 설법 10-맨해튼 설법’
[7] 리훙쯔 사부님 저작: ‘시드니법회 설법’
[8] 리훙쯔 사부님 저작: ‘각 지역 설법 10-밍후이왕(明慧網) 10주년 법회 설법’
[9] 리훙쯔 사부님 저작: ‘각 지역 설법 4-2004년 시카코법회 설법’
(밍후이왕 제16회 중국대륙 대법제자 수련심득교류회)
원문발표: 2019년 11월 1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11/11/39545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