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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받는다는 사고방식을 내려놓자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전에 수련생들은 몸이 불편하거나 일이 순리롭지 않으면 즉시 구세력의 교란 박해라는 생각을 했다. 실제 정황이 정말 그러한가? 아마 몸이 불편했던 것은 사부님께서 신체조절을 해주시는 것이거나 공이 자라는 반응일 수 있으며, 일이 순리롭지 않은 것도 사부님께서 이렇게 하지 말라고 점화해 주시는 것일 수 있다. 물론 구세력의 교란일 수도 있다.

대법제자의 수련에서 사부님께서는 시종 우리 신변에 계시며 우리의 수련을 배치하신다. 우리가 바르게 했을 때 오직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배치하시며, 우리가 바르게 하지 못했을 때 구세력은 곧 틈을 타고 마난을 배치한다. 이때 우리는 눈앞에 있는 구세력의 배치에 따라갈지의 선택에 놓인다. 만약 사상 중에서 구세력의 배치에 대해 심리적 부담이 생기면 교란 박해를 에워싸고 ‘수련’하게 되며, 속으로 어떻게 자신을 잘 수련해 ‘박해에서 벗어날 것’인가 하는 생각으로 가득해 사실은 구세력의 배치를 받아들인 것과 같아 구세력이 배치한 교란 박해 중에서 수련한 것으로 이미 구세력이 배치한 길에 있다. 바꿔 말하면 이미 구세력의 속임수에 들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그것들이 조성한 마난 속에서 수련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승인하지 않는 가운데서 자신의 길을 잘 걷는 것이며,”[1]

받아들이면 자신이 요구한 것으로 구세력은 계속해 그것이 하려는 일을 배치해나간다. 사부님의 제자로서 우리는 오직 사부님께서 가르치신 바른 법리로 수련해야 한다. 한 가지 일이 발생하면 사부님께서 우리가 이 일을 어떻게 대하기를 바라시는지를 생각하고 곧 그대로 대해야 한다. 사부님의 요구에 따라 오직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수련의 길을 걷는 이것이 우리의 유일한 선택이다.

바꿔 말하면 이후의 수련에서 우리는 사부님의 배치에 따라 구세력이 배치해낸 일을 대해야 한다. 사부님께서 명백히 말씀해주셨다. “수련 중에서 당신들이 부딪힌 좋은 일이든 좋지 않은 일이든, 모두 좋은 일이다.”[2] 우리는 사부님의 법에 따라 해야 하고 어떤 일이 나타나든 적극적이고 자발적으로, 낙관적이며 당당한 심태로 마주해야 한다. 우선 이 일을 좋은 일이라 확정하고 나타난 모든 일을 사부님 정법의 필요에 따라 원용하여 좋은 일이든 좋지 않은 일이든 최종적으로 사부님께서 배치한 일부분에 원용한 것으로 되게 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만약 구세력이 배치한 일이 발생했을 때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장계취계(將計就計)”[3]에 따라 어떠한 환경이든 수련의 환경으로 여기고 사부님의 가르침에 따라 전면적으로 세 가지 일을 잘해 구세력의 배치가 허사가 되게 해야 한다. 우리는 오직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길을 걸어야 하며 어떠한 일이든 그것을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일부분에 원용하게 바꿔야 한다.

신사신법(信師信法), 사부님께서 하신 말씀은 모두 우주 진리라고 믿어야 할 뿐만 아니라 사부님의 능력을 믿어야 하며 사부님께서 일체를 주관하시고 사부님의 배치가 모든 것보다 위임을 믿어야 한다. 오직 우리가 사부님의 배치에 따라 해야만 사부님께서 우리의 일체에 대해 능히 보장해주실 수 있다. 지금부터 박해받는다는 사유를 철저히 버려 더는 구세력을 안중에 두지 말아야 한다. 어떤 일이 나타나든 속으로 생각하는 것은 사부님으로, 사부님의 요구에 따라 해야 하며 정정당당하고 떳떳하게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정법 수련의 길에서 걸어야 한다.

대법제자로서 문제를 보는 기점이 반드시 발라야 한다. 어떤 일이 나타나든 반드시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입장에서 문제를 보아야지 구세력이 배치한 입장에서 문제를 보아서는 안 된다. 우리는 오직 사부님의 배치를 원용해야 하며 구세력의 배치를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사부님의 배치는 대법제자가 법을 실증하는 길이므로, 대법제자로서 법을 실증하는 입장에서 문제를 보아야 하며 나타난 일체 일을 대법제자가 법을 실증하는 일로 여겨야 한다.

예를 들면 구세력이 경찰을 통제해 우리를 간수소로 납치했다. 구세력이 배치한 박해라는 입장에서 보면 우리가 박해받은 것이며, 법을 실증하는 입장에서 보면 우리에게 하나의 새로운 법을 실증하는 환경(간수소)을 제공해 준 것이다. 우리는 간수소에서 온전하게 전면적으로 세 가지 일을 할 수 있고 법을 실증하며 중생을 구도할 수 있다. 지금부터 우리가 문제를 보는 기점을 시종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대법제자가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것에 두어야 하며, 이로써 구세력의 배치를 철저히 뿌리치고 오직 사부님의 배치에 따라 실천할 수 있다.

아마 일부 수련생은 질문이 있을 것이다. 오직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세 가지 일을 잘하고 구세력이 배치한 박해에 대해 무관심으로 대한다면 구세력이 마음대로 박해하도록 하는 게 아닌가? 전면적으로 세 가지 일을 잘하는 것은 사부님께서 대법제자에게 배치하신 수련의 길이며 사부님의 배치는 매우 전면적이고 합리적이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장계취계라, 바로 장계취계하는 것이다. 근본적인 것은 그것들이 움직일 수 없기에, 대법제자로 말하자면, 당신은 곧 당신의 정념을 견정히 하고, 당신의 일을 잘해야 하는데, 당신이 이 세 방면을 정말로 아주 잘한다면 누구도 감히 당신을 건드리지 못한다.”[4], “나는 리훙쯔(李洪志)의 제자이다. 다른 배치는 다 필요 없고, 모두 승인하지 않겠다. 그러면 그것들은 감히 하지 못하므로 모두 해결될 수 있다. 만일 당신이 정말 할 수 있다면, 입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할 수 있다면 사부는 반드시 당신을 위해 처리해 줄 것이다.”[3]

수련에서 진정으로 잘하지 못했더라도 만약 능히 구세력의 배치에 대해 확고하게 인정하지 않고 오직 사부님의 배치만 인정한다면 구세력도 감히 당신을 건드리지 못한다. 여기에서 관건은 구세력의 배치에 대해 확고하게 인정하지 않을 수 있는가인데, 즉 나에게는 사부님이 계시고 나의 수련은 오직 사부님께서만 관장할 수 있으며 수련 중에 누락이 있더라도 능히 사부님의 배치 속에서 점차 그것을 닦아 보충할 수 있기에 기타 사람과 관계가 없고 기타의 배치는 모두 요구하지 않으며 모두 인정하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구세력의 배치에 대해 철저히 인정하지 않는 것에 도달할 수 있는가? 마음에 오직 사부님의 배치만 있는 대법제자의 법실증에는 구세력이 배치한 박해라는 개념이 없으며 설사 구세력이 배치한 일이 수련에서 발생하더라도 그것을 구세력이 배치한 박해로 대하지 않고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대법제자의 법실증 중의 일로 여길 것으로 일체는 모두 사부님의 배치에 있으며 영원히 오직 사부님의 이러한 배치만 있다고 한다면 “나는 리훙쯔(李洪志)의 제자이다. 다른 배치는 다 필요 없고, 모두 승인하지 않겠다.”[3]를 해낸 것이다.

우리가 확고하게 구세력의 배치를 승인하지 않을 때 사부님께서 우리를 위해 처리해주실 수 있으며, 우리가 자신의 일체를 모두 사부님의 배치에 맡길 때 사부님께서도 우리를 위해 처리해주실 수 있다. 사부님께서는 회천력이 있으며 문제는 정념을 족하게 할 수 있는지, 사부님을 믿을 수 있는지 여부에 달렸다. 온전하게 신사신법을 해낼 수 있을 때 자신의 일체를 사부님의 배치에 맡길 수 있는 신심이 생긴다. 다른 한 방면에서 자신의 일체를 사부님의 배치에 맡길 수 있을 때 마음에서 사부님의 회천력을 믿고 있음과 사부님께서 자신에게 도움을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음이 설명된다. 이때 사부님께서도 꼭 당신을 위해 처리해주실 것이다. 우리 일부 수련생은 마난 중에서 감히 자신의 일체를 사부님의 배치에 맡길 수 있으나 일부 수련생은 해내지 못한다. 여기에서 사부님에 대한 믿음의 정도가 체현된다. 자신이 사부님에 대한 믿음이 어느 정도인지에 따라 사부님께서 당신에게 그 정도로 처리해주실 것이다.

사부님의 제자로서 사부님을 믿고 일체를 사부님의 배치에 맡겼다면 사부님에 대해 완전히 믿는 정도에 이른 것이며 사부로서 당신을 위해 처리해주지 않을 수 있겠는가? 100%로 처리해주신다. 문제는 자신이 사부님을 믿는지, 자신의 일체를 사부님의 배치에 맡길 수 있는지 여부에 달렸다. 밍후이왕에서 수련생의 교류 글을 읽어보면 마난에 봉착했을 때 병업 마난이든 납치당한 마난이든 오직 그 수련생이 마음에서 사부님을 떠올리고 일체를 사부님의 배치에 맡기면 마난이 매우 빨리 사라지는 이러한 사례가 특별히 많다. 아래에 밍후이왕 12월 14일 글에서 본 한 가지 사례를 여러분에게 소개한다.

“우리는 죄수복을 입지 않았다. 구류소의 규정에 따르면 죄수복을 입지 않을 시 밖에 바람을 쐬러 나갈 수 없다. 몇 번이나 우리를 밖에 바람을 쐬러 나가는 것을 허가하지 않았다. 한번은 내가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있어서 죄수복을 입지 않고 죄수들을 따라 밖으로 나갔다. 밖에 나오니 수십 명의 남녀 죄수들이 한 바퀴 둘러앉았고 구류소 소장이 사람마다 노래를 부르게 했다. 나는 ‘파룬따파하오’ 이 노래를 부르려고 생각했다. 이 생각이 떠오르자 소장이 나를 지명하여 노래를 부르게 했다. 나는 일어나 가운데로 걸어가 큰 소리로 불렀다. ‘파룬따파는 좋습니다, 파룬따파는 정법입니다, 법광이 널리 비춥니다.’ 사실 나는 노래를 부를 줄 모르나 이번에 매우 잘 불렀고 목청이 좋았다. 이는 사부님께서 나에게 가지해주신 결과이다. 이어서 나는 또 사람들에게 ‘홍음’에서 사부님의 시사 ‘사람 되기’ 경문을 낭송했다. ‘명예를 위하는 자 평생 화내고 원망하며 이익을 위하는 자 육친마저 몰라보고 정을 위하는 자 스스로 번뇌를 부르나니 고달픈 다툼에 일생토록 업을 빚는구나 명예를 구하지 않으니 유유자득이요 이익을 중히 여기지 않으니 인의지사요 정을 움직이지 않으니 청심과욕이라 참답게 수신(修身)하며 일생토록 덕을 쌓네’ 낭송을 마치자 소장이 삽시에 화가 잔뜩 나 핏대를 올리며 나에게 외쳤다. ‘뒤로(그곳은 간수소) 가려는 것인가, 집에 돌아가지 않으려는 것인가, 아이의 장래를 생각지 않는가!’ 그는 또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려고 했다. 나는 속으로 정념을 내보냈다. ‘당신이 하는 말은 소용이 없다. 나의 사부님이 관장하신다. 나의 일체는 모두 사부님께 맡겼다.’ 그는 즉시 핸드폰을 집어넣었다.”

신사신법은 수련의 기초이며 사부님을 믿을 때 사부님의 말씀에 따라 할 수 있다. 아래는 수련생이 신사신법한 또 하나의 표현이다.

“마지막에 우리는 시 외곽에 왔고 어느 집 마당에 들어섰다. 그들은 대문 입구에서 우리가 나갈 길을 막아섰으며 우리는 마당에서 발정념했다. 반 시간쯤 지나 그들은 여전히 떠나지 않았다. 나는 다른 2명의 수련생에게 말했다. ‘우리는 신이고 사부님께서 보호하고 계십니다. 발정념으로 저들을 멈추게 합시다. 그러면 우리가 나갈 수 있습니다.’ 발정념을 마치고 우리는 그들의 눈앞에서 지나갔으나 그들은 꼼짝 않고 그곳에 서 있었으며 한마디 말도 하지 못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로 우리는 남은 진상 스티커를 모두 붙였다.”

만약 한 수련인이 사부님에 대해서도 완전하게 믿을 수 없다면 또 어찌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법을 완전히 믿을 수 있겠는가? 법에 대해 완전히 믿을 수 없으면 어찌 자신을 잘 수련할 수 있겠는가? 자신을 잘 수련하지 못하면 수련성취할 수 있겠는가? 이생에 수련을 선택해 반본귀진하여 지상의 평범한 사람에서 하늘의 위대한 신으로 전변하는 이러한 전변을 실현하려면 전부 사부님께 달렸다. 이렇게 큰일인데 여전히 엄숙하게 대하지 않고 사부님에 대해 믿는 듯 마는 듯하며 애매모호하다면 그건 장난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겠는가? 자신의 수련을 애들 장난으로 여기면서 어찌 수련성취할 수 있겠는가? 정법수련이 오늘에 이르렀고 우리에게 남겨진 수련할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이제 다시 한 손으로 사람을 붙잡고 놓지 않으며 다른 한 손으로 신을 붙잡고 놓지 않는다면 자신을 사람 속에 붙잡아두는 것으로 회천할 희망이 없다. 지금부터 자신과 중생을 위해 책임져야 하며 자신의 수련에 대해 엄숙히 대하고 자신의 전반 생명으로 사부님을 믿으며 마음을 굳게 먹어 자신의 일체를 모두 사부님의 배치에 맡겨 100% 신사신법하고 사부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셨으면 그대로 따르도록 하며 어떠한 절충도 하지 말자. 만약 정말로 이렇게 해낼 수 있다면 누구도 감히 당신을 움직일 수 없으며 법실증의 길은 곧 막힘이 없고 기다리는 것은 반드시 위대한 원만일 것이다!

수련의 어려움은 일에 있지 않으며 그 마음에 있다. 예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정법을 위한 일체 밑바탕의 준비에서 오천년마다 하나의 시나리오이며 거듭되는 수정을 거쳤는데 모두 수련인의 마음을 겨냥하여 배치했다. 정법수련에서 일의 표면을 보면 얼기설기 복잡하며 매우 혼란한 듯하나 사실 전혀 혼란하지 않으며 모두 매우 질서가 있다. 일체는 모두 수심이화(隨心而化)이며 심태가 어떠한지에 따라 주변의 환경이 곧 어떻게 변하는데 완전하게 대응된다. 사부님께서 “좋고 나쁨은 사람의 일념(一念)에서 나오며,”[5]라고 말씀해주셨다. 한 가지 일에서 그것을 좋은 일로 생각하면 곧 좋은 일로 되며 그것을 나쁜 일로 생각하면 곧 나쁜 일로 된다. 이는 모두 자신의 마음에서 촉성된 것이다. 구세력이 배치한 마난 앞에서 그것을 나쁜 일로 여겨 회피하고 도망치려 한다면 그것이 박해로 되며, 그것을 좋은 일로 생각하여 우리가 법을 실증하는데 좋은 기회를 제공한 것으로 여긴다면 그것은 곧 자신의 법실증에서 밑바탕으로 되며 법실증과 중생구도에 편리를 제공해준다.

법실증에서 마음으로 박해받는 것을 두려워한다면 그것을 나쁜 일로 여긴 것과 같기에 그것은 곧 나쁜 일로 되며 박해가 자신의 몸에서 발생한다. 이는 자신의 마음으로 촉성한 것이다. 때문에 전에 형성된 박해받는다는 사고방식을 철저히 내려놓아야 하며 조금만 순리롭지 않으면 즉시 자신이 박해받는다고 생각하고 즉시 방법을 대 도피하려 한다면 구세력의 배치 속에서 걸어가는 것과 같으며 구세력의 뜻에 부합해 스스로 마난과 교란을 불러오게 된다. 반드시 관념을 전변(轉變)하고 신사신법하여 모든 일을 좋은 일로 여겨야 한다. 그리하면 대법제자의 수련에서 어떤 나쁜 일이 존재하지 않으며 전부 좋은 일로 된다. 이렇게 한다면 좋은 일, 나쁜 일에 봉착해도 모두 원하는 대로 될 수 있으며 최종적으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모두 좋은 일이다.”[2]로 바뀐다.

사실 구세력이 배치한 마난을 좋은 일로 여길 때 ‘좋은 일’ 이 일념으로 완전하고 철저하게 구세력의 배치를 부정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을 박해로 여겨 대하지 않고 대법제자가 법을 실증하는 하나의 일로 여겼기에 이렇게 한다면 구세력에 대한 가장 철저한 부정으로 된다.

수련인은 반드시 신사신법해야 하며 바른 이치(正理)로 문제를 대하고 모든 일을 좋은 일로 여겨야 한다. 예를 들면 법실증에서 협력할 때 모순이 발생한 후 서로 다투고 속으로 불균형을 이루며 불복하고 질투, 원망, 질책 등 마음이 나오는데 왜 이러한 현상이 나타날 수 있을까? 바른 이치로 문제를 보지 않고 모순을 나쁜 일로 여겼기 때문이다. 사실 이 모든 게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모순이 나타나면 제고할 좋은 기회가 온 것으로 무조건 안으로 찾기를 통해 사람 마음을 찾아내 그것을 닦아버리면 제고해 올라온 것이 아니겠는가? 때문에 대법제자 사이에 모순이 있다면 서로 수련의 제고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매우 좋은 일이다. 누가 그것을 좋은 일로 여겨 안으로 찾아 자신을 닦는다면 그가 제고할 수 있다. 누가 그것을 나쁜 일로 여겨 밖으로 보고 다른 사람에게서 부족점을 찾는다면 그가 제고하지 못 한 것으로 이는 수련에서 바보에 속한다. 속인사회에서 사람들과 어울릴 때 이익 앞에서 좀 어리석게 표현한다면 좋은 일이나 수련에서는 절대 어리석지 말아야 하는 것으로 자발적으로 자신을 닦아야 한다. 속인의 물질이익에서는 자신을 위해 생각할 수 있으나 수련에서는 어째서 자신의 근본을 위해 생각할 수 없는가?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 공(功)은 사부에게 달렸다.”[5] 사부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무엇이든 해주실 수 있으나 수련은 반드시 자신이 해야 하며 수련에서 불합격이라면 사부님께서도 우리를 억지로 위로 올려놓지 못하신다.

한편 중국이라는 환경에서 바른 이치로 문제를 보는 게 더욱 중요하다. 예를 들면 길에 달려있는 CCTV에 대해 그것이 자신을 감시하는 것으로 생각하지 말자, 그것은 나쁜 사람을 감시하는 것이며 나는 좋은 사람이기에 나를 감시할 수 없다. 경찰이 집에 찾아왔을 때 경찰이 자신을 박해하러 온 것으로 생각하지 말고 그가 진상을 들으러 온 것으로 생각하자. 경찰이 집에 들어온 후 사부님의 법상, 컴퓨터, 프린터, 대법서적, 대법 진상자료를 박해 증거로 여기지 말고 그건 자신의 합법적인 재산이며 모두 법실증과 중생구도에 필요한 것으로 가장 신성한 것이기에 누구도 감히 움직일 수 없다고 생각하자. 밖에 나선 후 만약 사복경찰이 뒤를 따르고 있으면 자신을 주시한다고 여기지 말고 진상을 듣고 구도되기 위해 따르는 것으로 여기자…… 늘 신사신법하고 바른 이치로 문제를 대하면 사부님께서 능히 당신을 위해 처리해주실 것이며 누구도 감히 건드릴 수 없다. 바꿔 말하면 어떤 문제가 나타나든 모두 법을 실증하고 중생구도하는 입장으로 대하고, 나타난 일체 일을 모두 대법제자가 법을 실증하고 중생구도의 필요에 따라 원용하여 대법제자의 역사적 사명을 잘 완성해야 한다.

이상은 개인의 현 단계 수련에서의 옅은 깨달음으로 적절하지 않은 부분은 자비로 지적해주시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각 지역 설법 4-2004년 시카고법회 설법’
[2]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시카고 법회-정진요지3’
[3]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2003년 정월대보름 설법’
[4] 리훙쯔 사부님의 경문: ‘2015년 미국서부법회 설법’
[5]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

 

원문발표: 2019년 12월 2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교마당>이성(理性)인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12/21/39724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