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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믿는가, 아니면 사부님을 믿는가

글/ 무기명

[밍후이왕] 세계에는 70억 인구가 있다. 서민에서부터 모든 관리, 그리고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 중 어느 누가 대법 사부님과 비교할 수 있는가? 그들 중 누구를 대법 사부님과 견줄 수 있는가? 누구의 논리를 ‘진선인(眞·善·忍)’과 비교할 수 있겠는가? 하나도 없다.

자신이 이번 생에 쓴 논설과 이룬 업적을 보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지 않은가? 사부님과 함께 논할 수 있는가? 우리가 한 말과 써낸 것을 몇 명이나 믿겠는가? 세계에는 적어도 1억 명이 파룬따파(法輪大法) 사부님의 말씀과 행위를 믿고 있고, 모든 정부가 파룬궁(法輪功)을 주목하고 있지만, 우리는 10명이 자신을 믿게 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아내와 자식 혹은 남편, 이 몇몇 사람들도 자신을 믿는다고 할 수 없다. 이로 보아 우리는 사부님을 믿어야 하는가? 아니면 우리 자신을 믿어야 하는가?

1999년부터 지금까지,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한 지 이미 20여 년이 됐다. 그동안 사부님께서 하신 설법은 아주 많고, 아주 방대한데, 어떤 대법제자들은 사부님께서 나중에 하신 설법이 초반과 차이가 아주 크다고 느끼고, 어떤 사람들은 사부님께서 10여 년 전에 곧 끝난다고 반복해서 말씀하셨지만, 10여 년이 지났어도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고 여기며, 어떤 사람들은 사부님께서 최후, 최후에 이르렀다고 반복해 말씀하셨지만 10여 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최후라고 말씀하신다고 여기며, 어떤 사람들은 사부님께서 10여 년 전에 반면으로 나간 대법제자도 모두 데리고 가시겠다고 말씀하셨지만, 훗날의 설법은 또 그에게 이 사람들은 모두 죽어도 묻힐 곳이 없다는 느낌을 받게 했을 뿐만 아니라, 수련을 잘못한 이들도 매우 비참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는 등등을 말한다.

가엾게도 인간 세상의 수련은 이렇게 어려운데, 당신은 어떻게 해야만 확고하게 믿을 수 있겠는가? 가장 어려울 때 당신은 도대체 자신을 믿었는가, 아니면 사부님을 믿었는가? 사부님의 설법은 줄곧 가장 근본적인 믿음을 시험하셨고 믿지 않으면 모든 것이 헛된 것이다.

무엇이 ‘최후’인가? 우주의 ‘최후’ 시기는 멸(滅)이다. 성주괴멸(成住壞滅) 중, 멸이 ‘최후’이다. 사람은 아는가? 멸, 그 시간은 불가사의하게 길다. 그렇다면 인간 세상에서 말하는 ‘최후’는 얼마나 긴 시간일까? 청나라 300년 말기를 ‘최후의 시기’라고 불렀다. 자연재해, 외래의 침입, 조정과 백성의 재앙이 끊이지 않자, 사람들은 청나라가 최후의 시기가 됐다고 생각했는데 끝날 때까지 그 기간은 거의 100년에 가까웠다. 그들은 100년 동안 멸망한다고 말했는데, 몇 세대가 지나도 청나라는 여전히 멸망하지 않았고, 사람들은 반복해 청나라가 멸망한다고 생각했으며 마지막에 결국 멸망했다.

중국 역사상 나이가 가장 많은 왕조인 주나라는 800여 년 동안 이어졌는데, 사람들은 주나라의 해체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 알고 있는가? 주나라는 기원전 1100년에 건국됐는데, 기원전 771년에 동주(東周)로 해체되면서부터 시작해 줄곧 기원전 221년까지, 500여 년의 역사 시기를 거쳐 해체됐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혼란과 살벌한 참극이 있었겠는가? 이 기간을 또한 춘추전국시대라고도 불렀다.

또한, 전국 시기는 기원전 476년부터 200여 년 동안 이어졌고, 기원전 221년 진시황이 6개국을 통일하면서 끝났다. 그의 ‘마지막’은 바로 이렇게 길었다. 그런데 우리는 겨우 20여 년이지 않은가? 어떤 사람들은 아주 오래고 오랜 시간이 지났다고 생각한다.

기독교는 300년 넘게 탄압을 받고서야 끝났는데, 기독교인들은 시간이 길었다고 생각했는가? 그들 중 신심이 부족한 이들은 고통스러운 시련 중에서 간절히 바라며, 줄곧 기다리다 낙담하고, 기다리다 신심을 잃었으며, 죽을 때까지 기다렸지만 박해는 여전히 예전과 같았다. 갓 태어난 기독교인은 평생 박해를 받았는데, 이 얼마나 많은 세대였는가! 예수의 부활 후, 이렇게 대단한 기적의 영향에서도 로마는 여전히 계속 기독교인을 박해했다. 로마 황제가 기독교 박해로 인해 응보를 받고 죽은 후에도 후대 황제는 여전히 계속 기독교를 박해했다. 대 역병의 응보에서 로마는 곳곳에 시체가 산더미처럼 쌓였지만, 여전히 기독교를 박해했다. 세 차례의 거대한 역병이 로마를 덮쳤는데, 로마의 인구 절반이 죽었고, 어떤 도시는 전멸했지만, 기독교인에 대한 박해는 멈추지 않았다. 여러 세대에 걸쳐 기독교인을 박해하던 악인이 모두 죽고, 그 자손도 모두 멸종됐지만, 박해를 멈추지 않았으며 300여 년이 지나서야 멈췄다. 300여 년이라! 얼마나 많은 세대가 태어났겠는가? 태어난 사람들은 예수가 박해당한 이 일조차 전혀 몰랐고 로마가 기독교인들을 계속 박해하는 것도 가로막지 않았다. 이렇게 오랜 시간을 대법제자는 갈 수 있을까?

수련이라, 당신은 정말 수련하려고 하는가? 오직 진정으로 수련하려 하고, 진정으로 법을 믿는 사람만이 수련할 수 있다. 300년 동안에 진정으로 수련하지 않는 모든 이들을 씻어버렸다! 우리는 오늘 겨우 20여 년인데 얼마나 많은 진수(眞修)하지 않는 사람들을 씻어냈을까? 당신은 도대체 사부님을 믿는가, 아니면 당신 자신의 그 판단을 믿는가? 사실은 진정한 수련과 가짜 수련의 경계다.

우주의 일은 번잡하고 끝이 없는데 도태(淘汰)라고 하면, 사람은 몇 층차의 도태시키는 법이 있는지 아는가? 가장 낮은 층의 형신전멸(形神全滅)로부터 위로 올라가면 무수히 많은 층과 무수히 많은 도태 방식이 있다. 그 형신전멸이 몇 개 층차가 더 있는지 사람은 알고 있는가? 이렇게 극도로 고통스러운 사회는 또 어떻게 존재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대법제자가 수련을 잘하지 못한다면 그는 어느 층차에 있겠는가? 그는 심지어 여러 층차에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많은 층차가 있기 때문이다. 어떤 층차에서는 아직 살아있고, 어떤 층차에서는 내려갔고, 어떤 층차에서는 철저히 해체됐는데, 그의 원신(元神)이 처한 상황은 그의 본질에 따라 또 다를 수 있다. 이런 복잡한 상황을 사람들은 알고 있는가? 당신은 모르는데, 당신은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법이 왜 이렇게 모순되는가?’고 여길 것이다. 사실은 당신 자신이 보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해서 생긴 오해다.

대법은 전체 우주에 대응하고 있는데 우주가 복잡한 만큼 대법은 그만큼 복잡한 층차가 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면 곳곳에 모두 반짝이는 별빛이다. 별빛에 가까이 다가가 보면 또 별빛은 본래 방대한 은하계인 것을 볼 수 있는데, 그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가 다시 자세히 보면 그 흑막의 우주 공간은 놀랍게도 무수한 암흑 은하계와 은하계 간의 물질이다. 한 사람의 상황도 왜 이렇지 않겠는가? 겉으로 보기엔 한 사람이지만, 다시 확대해 보면 사람의 형상이 아니다. 그렇다면 더 확대하면 어떨까? 수련은 모든 물질에 변화를 발생시키는데, 이 무수한 상황들이 대법 수련 중에서 모두 다른 나타냄이 있다. 써낸다면 얼마나 다르게 쓸 수 있을까?

원만은 또 어떤 상황인가? 인체에는 무수하고 다양한 입자와 원신(元神)이 있는데, 원신은 또 일반적인 입자들과는 다르다. 이 입자들과 원신의 원만(圓滿)은 얼마나 복잡할까? 묘사하면 천차만별인데, 그렇다면 당신이 이런 상황들을 모른다면 ‘이 묘사들이 어찌하여 모두 다른가? 왜 이렇게 많은 모순이 있는가?’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렇게 많은 모순은 바로 당신이 한 가지만 인식해 견식이 좁기 때문인데, 다른 사람이 다른 것을 묘사할 때, 당신은 여전히 당신이 생각하는 그것에만 대조하는데 당연히 맞지 않는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법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얕은 데서부터 깊은 데로 들어갔고, 어떤 것은 초기에는 얕고 어떤 것은 후기에 깊은데, 얕은 것은 이 공간에 존재할 수 있고, 깊은 것은 다른 매우 높은 공간에 존재하거나, 같은 공간의 다른 부분을 말씀하신 것일 수도 있다. 인간 세상의 자연과 풍경, 그리고 풍토와 풍습이 각지에 따라 다른 것처럼, 미시적으로는 더욱더 다르다. 그러나 같거나 혹은 유사한 것이 각지에 있기도 하다. 우리가 이러한 서로 다른 법을 봤을 때, 당신은 ‘왜 모두 다른가’라고 여기지 않겠는가? 심지어 ‘어떤 것은 아직도 모순되는 것 같은데?’라며 이런 것들이 전부 다르다는 상황을 생각지도 못한다. 그뿐만 아니라 또 사람이 꿈에도 생각지 못하는 더 심오한 공간과 물체의 존재가 있는데 이런 것을 묘사해내면 똑같을 수 있겠는가?

이 설법에서 말씀하신 것은 표면 공간의 어느 한 곳을 말씀하신 법이고, 저 설법에서 말씀하신 것은 물체 배후의 미시적인 어느 한 곳의 법을 말씀하신 것인데, 당신은 더욱 이해하지 못한다. 많은 사람이 사부님 설법의 전후 차이가 너무 크다고 생각하지만 바로 자신의 인식 부족으로 조성한 것이다. 자신의 잘못을 찾아내지 않고, 도리어 사부님께 의심을 품고 있다!

사람은 또 아주 사악한 극단적인 심리 상태가 있다. 중국공산당이 백만 건의 나쁜 짓을 했어도 사람들은 그것을 전부 부정하지 않지만, 도리어 대법에 단 한 가지 이해되지 않는 것 때문에 대법과 사부님을 전반적으로 부정하려 한다. 중국공산당이 그렇게 많은 나쁜 짓을 했는데 당신은 왜 중공을 부정하지 않는가? 중국에는 매일 분신이나 자살하는 사람이 있고 관리들도 모두 이러한데 당신은 왜 중공을 부정하지 않는가? 단지 위조된 ‘천안문 분신 거짓 사건’ 하나 때문에 파룬궁을 부정하는가? 무신론, 진화론의 허점이 만 개인데 당신은 왜 그것을 전부 부정하지 않는가? 그렇게 많은 허점을 당신은 도리어 그대로 믿고 있다! 그러나 당신은 대법에 단 한 가지 의심이 있고 또한 확정하지 못하면서도 대법을 부정하려 하는가? 당신은 근본적으로 도대체 누구를 믿는가? 이것은 한눈에 간파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수련은 진위를 가리는 과정이다. 사부님을 믿는지, 아니면 자신을 믿는지 하는 판단은 모두 수련자의 진가(眞假)와 지혜를 나타내고 있다.

 

원문발표: 2019년 12월 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12/9/39681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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