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머니와 아들 이야기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80년도 이후에 태어난 대법제자다. 어릴 적에 우리 집은 재난과 고난이 많았다. 어머니는 고혈압, 류머티즘, 신경쇠약, 그리고 이름 모를 병을 앓고 있었지만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치료비를 감당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타지에 가서 일하셨다.
몸이 약하고 병이 많아 두려워하는 어머니께 도움을 드리기 위해 나는 10살 남짓한 어린 나이에 집안일과 농사일을 감당해야 했다. 어떤 때는 아직 철모르는 남동생까지 돌봐야 해서 나는 어렸을 때 부모님의 보호를 받지 못했고 즐거움을 누리지 못했으며 그저 버텨야 했다.
내가 13살이 되던 해에 우리 집에 또 한 번 재난이 닥쳤다. 어머니는 기존의 질환이 낫지도 않았는데 신장이 나빠져 도시로 가서 입원 치료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 집 상황은 엎친 데 덮친 격이었고, 어머니는 한번 입원하니 일 년이었다. 집에는 6살 된 남동생과 내가 남았고 집안의 모든 일은 내가 도맡아야 했다. 나는 또 학교도 가야 하고 남동생과 함께 먹고살아야 했다. 집안의 모든 자질구레한 일, 텃밭 일을 하고 나면 쉬어야 하는데 저녁이면 남동생은 어머니를 찾으면서 울고불고했다. 남동생이 울고 난리를 치는 것을 보고 같이 우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몰래 눈물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나는 동생을 달래주면서 동생을 안고 도로변에 가서 지나가는 차들을 세면서 어머니가 좀 있으면 차를 타고 온다고 했다. 그렇게 차량을 세면서 동생이 잠이 들면 나는 동생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하루하루 지났고 회상하기조차 싫은 그 일 년 동안에 나는 고난 속에서 눈물로 지내왔다. 아버지의 친구는 내가 살아있는 것이 신기해 “아직 살아있었네.”라고 하셨다.
어머니는 비록 퇴원하셨지만, 의사의 말로는 병이 완전히 낫진 않기에 잘 요양해야 한다고 했다.
어머니는 몸이 허약해 침대에서 내려오지 못했기에 아버지는 어쩔 수 없이 일을 중단하고 집으로 돌아와 우리 셋을 돌보셨다.
1999년 9월, 잊을 수 없는 그때부터 어머니는 파룬따파를 수련하기 시작하셨다. 어머니는 대법의 요구에 따라 엄격하게 자신을 수련하셨고, 신기하게도 허약하던 어머니가 하루하루 좋아지기 시작하셨다. 의사가 불치병이라고 진단한 병이 어머니의 몸에서 사라졌고 어머니는 완전히 건강을 되찾았다! 우리 온 가족의 그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어머니의 얼굴에 오랫동안 사라졌던 웃음이 돌았고 집 안팎의 일체 집안일을 어머니가 하시니 나는 홀가분했고, 어린 시절의 즐거움을 되찾게 됐다. 아버지도 시름을 놓고 타지에 가서 돈을 벌었고 집안에 웃고 떠드는 소리도 늘었다. 20년이 지난 오늘날, 그 당시를 생각하면 나와 아버지는 여전히 감동을 금치 못한다.
한번은 수년간 보지 못했던 아버지의 친구가 우리 집에 와서 어머니가 건강한 것을 보고 놀라면서 “여태 살아있었네요. 나는 오늘 보지 못할 줄 알았어요!”라고 말했다. 어머니는 그가 놀라는 모습을 보고 기쁘고 자랑스러워서 “그래요, 저는 아직 살아있어요. 저는 파룬따파를 수련했어요. 대법 사부님과 대법이 저를 구해주시고 우리 온 가족을 구해주신 거예요.”라고 말씀하셨다. 그들의 대화를 듣고 우리 온 가족은 모두 한바탕 웃었다. 알다시피 그때는 바로 장쩌민이 하늘을 뒤덮을 듯한 기세로 미친 듯이 파룬궁을 탄압할 때였다. 우리는 파룬따파가 어머니와 우리 집을 구했다는 이 사실을 추후도 숨기지 않았다. 우리 온 가족은 누가 바르고 누가 사악한지 알기에 어머니의 대법 수련을 확고하게 지지했다.
사부님께서 내 아들을 구해주시다
행복한 시간은 그렇게 빨리 지나갔고 2004년에 나는 결혼했다. 건강검진에서 나에게 선천성 빈혈이 있는 것으로 밝혀져 의사는 내가 아이를 낳을 수 없다면서 임신을 하더라도 낳을 수 없다고 했다. 그 일은 나와 남편에게 아주 큰 충격이었다.
어머니는 그 상황을 아시고 나에게 ‘전법륜’을 주셨다. 어머니의 몸에서 대법의 기적을 보았기에 나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전법륜’을 열심히 공부했다. 공부한 지 6개월밖에 되지 않았는데 기쁜 일이 또 내 몸에서 일어났다. 나는 임신했을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정상이었다. 이 기적은 현대의학의 정설을 다시 한번 깨뜨렸다.
임신 6개월이 지나서 받는 정기 검진에서 탯줄이 아기 목을 두 바퀴 감은 것을 발견했다. 나와 남편은 걱정과 공포심을 느꼈는데 남편 동료의 아이가 같은 이유로 요절했기 때문이다. 나는 집에 와서 그 일을 어머니께 말씀드렸더니 어머니는 “괜찮아, 내가 연공을 알려줄게! 대법은 못 하는 것이 없어 일체를 모두 바르게 해줄 거야.”라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나는 매일 법공부와 연공을 했다.
임신 8개월 때 다시 가서 검사를 받았고 의사는 모든 것이 정상이라고 했다. 그 시각 사부님에 대한 감사는 말로 표현할 길이 없었다. 시어머니는 그 아이에 대해 특히 관심이 많았고 아이의 모든 것이 정상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수련은 하시지 않지만, 대법을 칭찬하시면서 거듭거듭 리 대사님께 감사드렸다.
현재 13살이 된 아들은 키가 이미 176cm이다. 시간이 나면 아들은 나와 함께 법공부를 하고 연공한다. 매번 내가 마음을 조용히 하고 아들을 볼 때마다 사부님 은혜에 대한 감사가 절로 나온다. 바로 사부님과 대법이 나에게 말을 잘 듣고 철이 든, 은혜에 감사할 줄 아는 아들을 주신 것이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사부님은 나에게 복을 주셨을 뿐만 아니라 어떻게 타인을 위할 줄 아는 좋은 사람이 되는지 알려주셨다. 시댁에서도 대법이 좋다는 것을 알았고 대법 중에서 이로움을 얻었다. 나는 늘 진정한 마음으로 시부모님께 효도하고 그들을 내 친부모님처럼 대하며 먹을 것, 사용하는 것을 아끼지 않고 자식이 해야 할 효도를 한다. 시부모님께는 딸이 없는데 늘 친딸 같은 며느리를 본 것을 행운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친척과 친구, 이웃들에게 날 칭찬하신다.
시부모님들도 내가 대법을 수련해서 이렇게 좋다는 것을 알고 계신다. 그래서 그들은 대법이 좋다는 것을 인정할 뿐만 아니라 내가 수련하는 것을 지지하신다. 아이가 어릴 적에 기꺼이 아이를 돌봐주셔서 나에게 더 많은 시간 동안 수련하고 사람들을 구하게 하셨다. 어떤 때는 나를 도와 발정념 시간을 봐주시기도 하셨고, 내가 밖에 일을 보러 나갈 때면 안전에 주의하라고 일깨워주셨다. 나도 그분들이 대법을 인정하시는 것을 보니 정말로 기뻤다.
시부모님은 연세가 많아지시면서 단독주택에 살기 불편해지셨다. 특히 겨울에는 더욱 그랬다. 2017년 남편과 상의한 후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있었지만, 대출을 받아 집을 장만하고 우리가 살던 70㎡ 아파트를 시부모님께 양보해드렸다. 시부모님께서는 너무나 기뻐하셨다.
오로지 정진하고 착실히 수련하며 세 가지 일을 잘하는 것만이 사부님과 대법이 베푼 은혜와 사부님의 구도를 저버리지 않는 것이다. 사부님 안심하세요!
원문발표: 2019년 12월 1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교류>수련의 신기한 이야기
원문발표: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12/14/39641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