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신사신법(信師信法) 하기만 하면 사부님께서 시시각각 우리 곁에 계신다

글/ 후베이(湖北) 대법제자

[밍후이왕] 저는 1994년 건강을 위해 대법에 들어왔습니다. 당시에 수련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이 파룬궁(法輪功)이 몸에 좋다고 말하는 친구의 말만 듣고 모두를 따라 함께 수련해 부지불식간에 오랫동안 약을 먹고도 낫지 않던 병이 모두 나았습니다.

25년의 수련 과정과 20년의 사악한 박해 속에서 넘어지면서 지금까지 걸어왔습니다. 저 자신과 수련생의 수련에서 무수히 많은 기적을 목격했습니다.

1. “천산만수(千山萬水)를 사이에 두고도 제자를 돌봐주시는 당신의 사부님은 정말 위대하시네”

2001년 여름, 어느 날 저녁 7시가 넘어서 저는 큰딸과 함께 전기 오토바이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우리가 탄 전기 오토바이가 앞으로 주행하다가 길가에 정차하고 정비 중이던 오토바이에 부딪혔습니다. 전기 오토바이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뒤집혔고 저와 딸은 차 밑에 깔렸습니다.

차 밑에서 나왔을 때, 딸은 머리에 큰 혹이 하나 생겼고 제 오른쪽 손과 발은 모두 부서진 유리 조각이 잔뜩 묻어 있었으며 여름철의 얇은 옷에서는 이미 끈적끈적한 피가 가득 느껴졌습니다. 제가 정신을 차리고 난 다음 첫 번째 일념은 발정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오토바이를 수리하던 젊은이는 바로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교통경찰은 도착해서 상황을 간단히 물었고 우리를 병원에 데려가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딸이 무사한 것을 보고 우리는 병원에 가지 않겠다고 말했고 우리는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이며 약을 먹지 않고 주사도 맞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교통경찰은 안 된다고 했습니다. 교통사고에서 트집을 잡는 사람들이 매우 많으며 이렇게 다친 사람을 보고도 서둘러 병원에 데려가지 않았다며 비난한다고 했습니다.

병원에 가서 보니 제 오른발과 오른손 곳곳에 모두 피가 흘렀고 의사는 저에게 사진 촬영과 CT를 찍게 했습니다. 저는 자신은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이므로 괜찮으며, 약을 먹지 않고 주사도 맞지 않으니, 번거로우시겠지만 발에 박힌 유리 조각만 빼주시면 된다고 말했습니다. 의사는 약솜을 가져와 제 종아리와 무릎을 오가며 닦은 후 유리 조각을 찾아 뺐습니다. 그리고 저와 딸은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이튿날 아침 일어나 보니 저의 오른쪽 발은 매우 크게 부어서 구부릴 수 없었고 길을 걸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직장에 전화를 걸어 휴가를 내면서 사유를 이야기했습니다. 그 후, 회사 동료가 집으로 저를 보러 왔습니다. 동료는 집에 온 후 보자마자 모두 이처럼 더운 날에 이렇게 다쳤으니 서둘러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아야지 염증이 생기기라도 하면 큰일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약을 먹지 않았고 주사도 맞지 않았습니다. 그냥 집에서 법공부를 하고 연공하면서 셋째 날이 되자 붓기가 사라졌습니다. 월요일에 저는 출근했고 모두 저에게 어떻게 출근할 수 있었는지, 약을 먹지 않고 주사도 맞지 않았는지, 잘 걸을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저는 약을 먹지 않았고 주사도 맞지 않았다고 웃으며 말했습니다. 저는 손과 발을 그들에게 내밀어 보여주었습니다. 발의 붓기도 사라졌고 손과 발의 상처에 모두 딱지가 앉았습니다. 당시에 사무실 주임은 “천산만수(千山萬水)를 사이에 두고도 제자를 돌봐주시는 당신의 사부님은 정말 위대하시네”라고 말했습니다.

2. 4개월 넘은 복통을 바른 일념으로 해체하다

2002년 3월쯤, 저는 때때로 배가 약간 아팠고 가끔 책을 보고 법공부를 하면 저절로 나았습니다. 가끔 아파서 괴로울 때 연마하면 바로 괜찮아졌지만, 어떤 때는 좋다가 어떤 때는 나빠졌고 끊어졌다 이어졌다 하며 4개월이나 이어졌습니다. 7월의 어느 날 밤, 저는 아파서 견딜 수 없었습니다. 법공부와 연공도 모두 소용없었습니다. 밤에 저는 마당의 문을 잠그고 잘 준비를 하려고 문밖을 걸어 나가 마당 중간쯤 갔을 때, 배가 마치 두 개의 날카로운 칼에 찍힌 것처럼 아팠습니다. 너무 아파서 서 있을 수 없었고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마치 움직이기만 하면 곧바로 날카로운 칼에 찍혀 터질 듯했으며 온몸이 아파서 말조차 할 수 없을 정도여서 신음하면서 울 뿐이었습니다.

이웃집 언니가 제 울음소리를 듣고 우리 집으로 찾아와 영문을 물었습니다. 저는 배가 아픈 동작을 하면서 말은 하지 못했습니다. 언니는 저를 부축해 방으로 들어가서 벽에 기대어 서게 했습니다. 그리고 급히 제 남편을 찾아서 불러와 저를 병원에 데려가게 했습니다. 저는 가지 않겠다고 하자 모두 “이렇게 심하게 아픈데 왜 병원에 가지 않아?” “반드시 가야 해!”라고 제각기 말했습니다. 모두 한편으로 말하면서 한편으로 저를 차에 밀어 넣어 병원에 보냈습니다. 마침 당직 의사와 임원이 모두 아는 사람이어서 짧은 시간 내에 1인실 병실과 링거 도구가 모두 준비됐습니다. 저에게 링거를 놓으려고 했으며 제가 동의하지 않아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말했습니다. “사부님! 저는 무엇을 잘못해서 사악이 틈을 탄 건가요. 제가 잘하지 못한 것 때문에 구세력에게 약점을 붙잡혀 법을 파괴할 수는 없어요!” 이 일념이 나오자마자 배는 아프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순간적으로 정신을 차리게 됐으며 전혀 아프고 난 후의 그런 느낌이 없었습니다. 저는 병실에서 큰 소리로 배가 안 아프며 링거를 맞을 필요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웃집 언니는 웃으면서 저에게 물었습니다. “정말 배가 안 아파?” 저는 안 아프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큰 소리로 웃으면서 언니에게 말했습니다. “저를 봐요. 정말 조금도 안 아파요. 링거 맞을 필요 없어요.” 병실 내의 의사, 임원, 가족, 이웃들은 모두 신기한 눈빛으로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저는 모두에게 감사드리며 정말 안 아프니 집으로 돌아가자고 말했습니다.

3. ‘파룬따파하오’를 외쳐 담결석이 치료하지 않고 완쾌되다

작년 3월 9시 무렵, 우리는 모두 학교에 가서 밤늦게 자습하고 나오는 아이를 데리러 밖에서 기다렸습니다. 우리 동네 한 여성이 자신이 탄 오토바이에 기대어 고통스럽게 신음했습니다. 저는 다가가서 그녀에게 왜 그러는지 물었습니다. 그녀는 담결석이 담을 가득 채워서 의사가 수술해야 한다고 했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런데 왜 수술하지 않는지 물었습니다. 그녀는 남편이 밥을 할 줄 모르고 그녀를 돌봐주지도 않을 것이며 돌봐줄 사람이 없어서 줄곧 수술하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녀에게 파룬따파를 믿으면 복을 받는 일을 이야기해주면서 그녀에게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묵념하라고 알려줬습니다. 그녀는 즉시 나지막한 소리로 염하다가 일어서서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

학교 수업이 끝나, 우리는 각자 학교 정문에 가서 아이를 마중했습니다. 이틀이 지나서 저는 그녀를 만나 물어보았습니다. “언니, 담결석은 어떻게 됐어요?” 그녀는 나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날 밤 큰 소리로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염하고 바로 나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감사하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저에게 감사할 필요가 없으면 대법 사부님께 감사드리라고 말했습니다. 그녀가 진심으로 파룬따파가 좋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에 대법 사부님께서 구해주신 것이라고 알려줬습니다.

나중에 삼퇴(중국공산당, 공청단, 소선대 탈퇴)의 열풍이 일면서 저는 다른 사람들을 삼퇴시켰는데, 그녀는 현장에 있기만 하면 “○○씨(나를 가리킴)의 말을 듣고 탈퇴하세요. 사악한 공산당을 탈퇴하면 정말 평안을 보장받아요”라고 도와서 말하곤 했습니다. 그녀는 나중에 장사를 했는데 갈수록 잘 됐습니다. 정말 진상을 알면 복을 받습니다.

4. 직장 상사가 진상을 알고 사악의 명령과 지시에 협조하지 않다

저는 1994년 대법 수련 이후, 온몸 가득 병이 있고 성격이 좋지 못했던 사람에서 몸이 건강하고 노고를 마다하지 않고 원망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명리의 득실을 다투지 않는 사람으로 바뀌었습니다. 이것은 회사 상사와 동료가 모두 직접 목격한 바입니다. 2000년, 저는 전단을 배포하다가 불법적으로 50여 일 갇혔고 2004년 성(省)의 세뇌반에서 불법적으로 1개월 감금됐습니다. 당시에 회사 상사는 파룬궁에 대해 매우 잘 알고 있었고 업무에서 저를 난처하게 한 적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여러 차례 공안국 관계자가 직장에 찾아가 저를 괴롭힐 때도 저를 보호해주었습니다.

2006년, 우리 직장에 상사가 새로 바뀌었습니다. 그는 평소에 제가 연공하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늘 대법제자가 발송한 진상 휴대전화 메시지와 진상 자료를 받았습니다. 때때로 시골로 내려가는 길에 차에서 자신이 받은 휴대전화 진상 메시지를 저에게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저도 한 마디 말했습니다. “진상을 알면 복을 받습니다.”

2009년, 저는 외지에 가서 일을 처리하고 진상을 알리다가 진상을 알지 못하는 세인으로부터 모함을 받아 불법적으로 수감됐습니다. 당시에 악인은 저에게 3년 형을 선고한다고 큰소리쳤습니다. 외지에서 불법적으로 수감당한 기간 동안 저에게는 오직 일념뿐이었습니다. ‘사부님! 이번에 저는 반드시 잘하겠습니다. 절대 사악과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1주일 단식 후 정념으로 검은 소굴을 돌파해 나왔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지 며칠 후, 저는 직장에 출근했습니다. 직장에서는 문건을 내려보내 이후 어떠한 때라도 제가 누군가에게 진상을 알리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며, 제가 알렸다고 신고하는 사람이 있기만 하면 제 월급에서 500위안(약 8만 원)을 삭감하고, 또 기본적으로 매월 월급에서 6백 위안(약 10만 원)을 삭감한다고 했습니다. 연말이면 다시 한번 저에게 문건을 보내곤 했습니다. 공안국에서 근무하는 제 형부는 몇 번이나 집과 직장에 찾아와 저에게 더 이상 수련하지 않는다는 ‘보증서’를 쓰게 했습니다.

원래 남편은 제게 잘해주지 않았습니다. 이번에 외지에서 박해를 당하자 형부와 딸이 남편을 독촉해 제 직장 상사를 찾아서 함께 외지 구치소로 저를 보러 왔고 비로소 저는 검은 소굴을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당시 저는 단식했고 경찰관은 제가 구치소에서 죽을까 봐 석방했습니다.

곧이어 시의 국내안정보위국(국보)에서 매주 한 통의 편지로 저를 소환했고 당시 저에게는 두려운 마음이 있었습니다. 형부는 제가 ‘결렬서(決裂書)’를 쓰기만 하면 국보 측에 가서 이후부터 더 이상 저를 소환하지 않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어느 날 오후, 제가 직장 건물 1층 로비에 있었고 형부가 또 와서 저에게 ‘결렬서’를 쓰게 했습니다.(당시에 저의 직장 상사는 거의 외부에 있었고 3명의 부국장과 많은 외부 부서에서 일하러 온 사람들이 그 자리에 있었음)

저는 그들을 향해 크게 울면서 말했습니다. “결렬서를 쓰라고 하는데 공안국에서 강요해서 쓰게 하고 가족이 억지로 쓰게 하네요. 제가 살인을 했나요, 방화를 했나요? 아니면 물건을 훔치고 빼앗는 나쁜 일을 했나요? 결렬해야 한다고요? 저는 그냥 연공한 것뿐이잖아요. 좋은 사람이 되는 거잖아요. ‘진선인(眞·善·忍)’을 수련해 좋은 사람이 되는데 그만둬야 하나요? 당신들은 왜 내가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하는 것을 박해하는 정부, 공안국을 찾아가서 항의하지 않나요? 그들이 좋은 사람을 잘못 박해했다고 말해보세요! 공산당은 역대 운동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나요. 오늘 일은 또 ‘진선인’을 수련하는 좋은 사람을 박해하러 온 것인데, 저에게 결렬서를 쓰게 하고 제가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을 그만두라고 하는데 지켜만 보는 당신들은 좋은 일을 하는 건가요, 아니면 나쁜 일을 하는 건가요?” 형부는 제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 웃으면서 갔습니다.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서로를 바라보다가 할 말이 없어 조용히 들었습니다. 그 후부터 저는 가부좌할 때 다리가 아프지 않았습니다.

다시 직장에서 제 월급을 삭감한 일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2009년 말, 자주 저와 함께 시골에 내려가던 동료가 저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를 조심해야 해요. 직장에서 저에게 당신이 저에게 파룬궁을 이야기했는지 자주 물어봐요.” 연말 신정 휴가 전에 직장 상사 4명이 저를 찾아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또 사무실 주임이 기록했습니다. 저는 바로 발정념을 했고 사부님께 제가 다른 공간에서 저를 박해하는 것을 조종하는 사악한 요소를 해체하는 것을 도와달라고 청을 드렸습니다. 국장은 얼굴을 붉히며 불쾌한 기색으로 저에게 말했습니다. “○○씨, 이번에 우리는 내려가서 확인할 겁니다. 당신이 밖에서 회사에 나쁜 영향을 끼쳤고 두 명의 직장 상사가 당신이 파룬궁을 선전했다고 말했어요. 지금 원래의 서류대로 우리는 실행하려 하고 당신의 임금을 삭감할 겁니다.”

당시에 저는 그들에게 대답했습니다. “좋습니다. 여러분께서 이미 결정하셨고 여러분은 임원이니 합리적이어야 합니다. 첫 번째로, 여러분은 제가 직장에 미치는 영향이 나쁘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시골에 내려가서 힘든 일이나 직장에서 필요로 하기만 하면 마다하지 않고 했습니다. 불평한 적이 없었다는 것은 여러분이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직장에서 저보다 나이가 많은 분은 잠을 못 주무셔서 시골에 내려가지 않았습니다. 직장에 젊은 사람은 아이를 돌봐야 해서 시골에 내려가지 않았습니다. 나이가 많지도 적지도 않은 저는 파룬궁을 수련해서 곳곳에서 타인을 위해 생각하고 직장을 위해 생각하며 괴로움과 고생을 참고 견디며 다른 사람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했습니다. 기왕 제가 이렇게 하는 것이 여전히 나쁘고 회사에 미치는 영향이 나쁘다면 저는 휴직하고 출근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다른 직업을 구하겠습니다. 직장을 위해서 하는 바이고 동료를 위해서 하는 바이며 여러분에게 영향을 주지 않겠습니다.”

“두 번째로, 여러분은 제가 파룬궁을 선전한다며 저의 임금을 삭감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제가 누구에게 말했나요?(그들이 말했던 두 사람 중 한 명은 내가 모르는 사람이었고 전혀 단독으로 말한 적이 없었으며 다른 한 명은 이미 진상을 알고 있었음) 어떤 사람이 제가 그분들에게 파룬궁을 선전한다고 말해서 여러분이 저의 임금을 삭감한다면 그건 작은 일이지만 이 일로 인해서 여러분이 좋은 사람을 박해하는 데 참여하게 된 것으로 모두에게 좋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모두 제 직장 상사고 동료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좋지 않게 되는 것을 보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여러분께서 이 두 분을 찾아서 제 앞에서 이 일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해야만 제 임금을 삭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저를 억울하게 하는 것이라면 여러분 모두에게 좋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제가 곳곳에서 좋은 사람이 된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면서도 저를 박해하려고 합니다. 저는 여러분을 저주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만약 이렇게 하면 정말 여러분에게 좋지 않습니다! 직장에서 우리는 임원과 직원의 관계이며 사회적으로 우리는 이웃이며 서로 이해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여러분 매 개인이 모두 평안하고 행복하기를 희망합니다. 우리 사이에는 아무런 원한이 없습니다. 이번 파룬궁 박해는 올바른 것인지 틀린 것인지 여러분 잘 생각해보세요. 공산당이 수십 년 동안 해왔던 정치 운동은 어느 때에 올바른 적이 있었나요?” 당시에 국장은 바로 태도 표명을 했습니다. 그는 제가 휴직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저를 직장을 떠나지 못하게 했으며 돈을 삭감하는 일을 잠시 보류한다고 밝혔습니다.

회의가 끝나자마자 저는 전화를 걸어 그 두 명의 임원을 찾았습니다. 그 후 저는 동료와 각각 관계자를 찾아 진상을 알렸고 진상 편지를 썼으며 임원을 찾아 삭감한 제 임금을 지급하게 했습니다. 한번은 국장이 저에게 말했습니다. “○○씨, 당신 쪽 사람들에게 더 이상 저에게 편지를 쓰고 전화를 걸게 하지 말아요. 저는 그 휴대폰 번호를 감히 사용하지 못하겠어요. 휴대폰을 열기만 하면 당신들이 걸어온 전화뿐이에요.”

진상 알리기를 통해 이번 박해는 해체됐고 임금은 삭감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우리 직장 상사는 잇달아 대만, 유럽 몇몇 나라에 답사를 다녀갔고 모두 파룬따파가 세계에 널리 퍼진 상황을 목격했으며 진상을 알게 됐을 뿐만 아니라 현지의 정치법률위원회, ‘610’이 저에 대한 박해를 막아내기도 했습니다. 마지막에 국장은 강권을 두려워하지 않고 저를 보호해주었습니다. 이는 한 생명이 진상을 알고 진정하게 구원받았음을 증명했습니다.

 

원문발표: 2019년 12월 1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교류>수련체험>진상을 알려 세인을 구도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12/12/39342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