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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慧법회| 정을 내려놓자 더욱더 성숙해지다(상)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존경하는 사존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20여 년을 수련하면서 저는 비바람 속에서 곤두박질하며 오늘까지 걸어왔고 느낀 점도 많습니다. 뒤돌아보면 사부님께서 일일이 세심하게 보살펴 주셨고 배치해 주신 것을 깊이 느꼈습니다. 사부님께서 가장 좋게 배치하셨기에 비로소 오늘까지 걸어왔습니다. 제자는 사존의 불은호탕(佛恩浩蕩)에 비할 바 없이 감사드립니다!

1. 정을 내려놓고 참답게 수련

1999년부터 저는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의 정을 내려놓는 것이 제 수련의 길에서 줄곧 이어졌습니다.

2003년, 저와 어머니는 함께 진상 자료를 배포할 때 타인의 악의적인 신고로 국내안전보위, ‘610’ 인원에 납치됐습니다. 그들은 그때 우리 자료 출처를 물었는데, 저와 어머니는 협조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료의 내원을 말하면 저를 석방한다고 유혹·기만했습니다. 저는 그때 확고한 일념밖에 없었습니다. ‘나는 대법제자다, 절대 수련생을 배신하면 안 된다.’ 처음에 저는 협조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저를 구치소에 불법 감금했습니다. 그때 아이는 2살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제가 조용해지기만 하면 아이 생각은 밀물처럼 밀려왔습니다. 아이가 울고 있는 것이 들리는 듯했고 엄마를 부르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사건 처리 경찰에게 진심으로 편지를 써서(그때 아직 진상을 잘 알리지 못했음) 저의 고통을 말해 석방을 바랐습니다. 저를 심문할 때 그들에게 편지를 주었습니다. 그들은 편지를 보고 저를 동정했습니다. 37일 후 그들은 갑자기 저를 석방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불법적으로 1년 징역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제가 석방된 후 이튿날 아침, 파출소 경찰은 저에게 전화를 걸어 어머니가 노동교양을 선고받아야 한다고 말하고 한번 만나게 해준다고 했습니다. 파출소 입구에서 저를 기다린다고 했습니다. 저와 남편은 즉시 출발했습니다. 우리가 파출소와 약 50m 떨어진 곳에서 저는 배가 갑자기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머릿속에 갑자기 일념이 나타났습니다. ‘나중에 만나면 되지 않는가?’ 저는 가지 않기로 하고 남편에게 경찰에게 전해 주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사부님의 보호 아래 저는 사악의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알게 됐는데 저도 불법 노동교양을 받게 했고 노동교양 판결문도 이미 노동교양소에 보냈다고 합니다. 노동교양소 경찰은 어머니에게 물었다고 합니다. “당신 딸은 왜 오지 않았어요?”

저의 가정환경은 그 후부터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때 사악 요소가 아주 많아 세인은 대법을 잘 알지 못하고 사회, 회사, 친구, 이웃에서 오는 시비와 이해하지 못하는 각종 압력이 잇따라 왔습니다. 이런 무형의 압력으로 우리의 생활은 큰 변화가 생겼습니다. 특히 남편은 대법이 수련자의 심신건강에 좋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저는 이런 충격을 감당하지 못해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고 성격도 근심하며 불안해했습니다.

저와 남편은 10년 동안 연애를 하고 결혼했습니다. 저는 농촌에서 나온 여자라서 마음속으로 줄곧 전통적인 관념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남편은 찾기 어려운 사람으로 진지하고 사람을 잘 배려해 주는 성격이고, 각 방면에서 제 요구에 부합된 사람이며, 영원히 기댈 수 있는 사람이라고 믿고 결혼한 것입니다. 수련 전 저는 비쩍 말랐고 몸이 약하고 병이 많았습니다. 가족도 모두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때 남편은 나를 이해하고 지지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런 박해와 압력 앞에서 그는 감당하기 어려웠습니다. 특히 그의 형제 몇몇은(모두 성, 시 정부 공무원) 그를 질책했는데, 약자는 강자를 이길 수 없다고 했습니다. 현대 관념 행위와 공산사령의 박해에 이끌려 남편은 아주 드세게 변했고, 온정 없이 눈썹을 치켜들고 냉대했는데, 무엇도 마음에 드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때 저는 법 공부 시간이 길지 않아 수련 기초를 닦지 못했는데, 99년 법을 얻은 후 뒤이어 결혼했고 임신하고 아들을 출산했습니다. 그리고 집을 사서 인테리어하고 각종 사람 마음을 없애지 못했습니다. 구세력은 지체없이 제게 고통을 겪게 했습니다. 남편의 변화, 아이의 연루, 환경의 압력에 더해 또 출근까지 해야 해서, 저도 생활에 용기가 없어졌고 자신감이 사라졌습니다. 좋은 것은 사부님의 배치로 수련생은 제때 저를 도와주고 격려해 주었으며 저를 참답게 수련하게 하고 세 가지 일을 잘하게 했습니다. 서서히 저는 정상적인 수련 상태를 회복했습니다. 동시에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법은 저를 명백하게 하셨습니다. “현재의 사람들은 정(情)을 매우 중하게 본다. 그러나 정이란 가장 믿을 수 없다. 당신이 나를 좋게 대하면 나는 기뻐하고, 당신이 나를 좋지 않게 대하면 정이 없어지는데, 이것을 믿을 수 있는가? 정으로 사람의 혼인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1]

2004년 현지 자료점의 수련생이 납치돼 저는 자료점의 일을 맡게 됐습니다. 수련생이 핸드폰 안전에 주의하지 않아 나중에 저는 미행·납치당했습니다. 제가 납치당할 때 날이 저물었고 교외에 있었기에, 저는 수련생이 연루될까 봐, 악인이 핸드폰을 찾아낼까 봐(핸드폰에 수련생 몇 명의 전화번호가 있었음) 경찰이 주의하지 않는 틈을 타서 핸드폰을 버렸고 자료점의 열쇠, 프린터를 구매한 영수증도 버렸습니다. 나중에 경찰은 내 몸을 수색해서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사부님의 가지아래 저는 머리가 어지러워 바닥에 쓰러졌습니다. 그들은 저를 구급차에 태워 병원에 보냈지만, 치료에 협조하지 않았고 가족을 부르라고 요구했습니다. 나중에 가족이 왔습니다. 병원 침상이 부족해 병원에서 남은 한 개 침상을 제게 준다는 것을 거절했습니다. 남편은 침실에 대다수가 노인이라 제가 두려워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저는 줄곧 복도에 임시 이동 침대에 있었습니다. 경찰은 저를 지켜보는 것이 그리 자유롭지 않았습니다. 저는 눈을 감고 온종일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고 소리도 내지 않았습니다. 나는 화장실에 한번 갔는데 남편이 저를 업고 갔습니다. 내가 변기에 좀 앉아 있자 여자 경찰도 화장실에 저를 감시하러 왔습니다. 남편은 경찰을 질책했습니다. “화장실에서 도망갈까 봐 두려워서 왔어요? 나가세요.”

저는 줄곧 발정념을 했습니다. 저는 사부님의 법상을 한번 회상했는데, 갑자기 사부님을 보았습니다. 사부님은 특수한 형상으로 나타났습니다. 겹겹이 쌓인 사부님의 두상이 나타났고 자비로운 미소를 지으시며 저를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저는 자신이 생겼고 사부님께서 저를 보호해 주시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튿날 밤, 저는 유치장에 감금됐습니다. 막 입구에 들어서자 저는 간질병 증상(예전에 있어본 적이 없는 상태)이 나타났는데, 유치장에서 거절해 저는 또 병원으로 보내졌습니다. 그날 밤, 핸드폰 안전에 주의하지 않은 수련생이 연루돼 수련생 5명이 납치됐습니다. 경찰은 저를 지켜볼 겨를이 없어 의사에게 저를 지켜달라고 말했습니다. 의사는 밤에 여러 번 내 병실에 왔습니다. 이튿날 아침, 저는 병이 없고 여기는 내가 머무는 곳이 아니니 빨리 가야 한다고 깨달았습니다. 남편에게 나를 업고 병실을 떠나자고 했습니다. 의료진이 있는 곳에서는 저를 업었고, 사람이 없는 곳에서는 저를 내려놓고 빨리 달렸습니다. 얼마 후 저는 병원에서 나와 남편이 밖에 주차한 차에 탔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주저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여보, 왜 시동을 걸지 않아요?” 남편은 “우리 어디로 가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집으로 가자고 말했습니다. 저는 움직이지 않았는데, 그는 걱정과 압력이 있었습니다. 저는 하는 수 없이 친정집으로 가자고 했습니다. 이렇게 저는 친정에 갔습니다. 얼마 후 경찰은 우리 엄마 집에 왔습니다. 저는 빨리 침대에 누워 잤습니다. 이때 사부님께서 신기하게도 나에게 병업 가상인 간질병 증상이 나타나게 해주셨습니다. 그들은 저의 이런 상황을 보고 더는 저를 괴롭히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그들은 우리 집을 반년 동안 감시했습니다.

이 사이에 7, 8명이 오랫동안 저를 미행하고 감시했습니다. 이웃도 제게 평소 말할 때 조심하라고 알려주었습니다. 그들은 또 감시자도 배치했습니다. 남편은 이웃과 회사, 친구의 비난과 오해에 압력을 받아 매일 집에 돌아오지 않았고 아침에 돌아와 악담을 퍼부었습니다. 현지 ‘610’, 회사, 주민센터 직원은 하루 이틀이 멀다하고 저를 찾아와 담화했습니다. 아이도 때로 병업 상태가 나타나 침대에 올라가면 울어 저는 밤새 아이를 안고 소파에 앉아 있어야 했습니다. 나중에 17일간 음식을 먹지 못했는데, 어쨌든 교란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두려운 마음도 하루하루 심각해졌습니다. 허영심과 체면을 내려놓지 못하고 정정당당하게 맞서지 못하고 먹장구름이 뒤덮인 느낌이었습니다. 당시 정체에서 벗어나 정념은 갈수록 약해졌고 법을 읽는 것도 마음에 닿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남편이 돌아와 말했는데, 남편 상사가 내부소식을 알았는데 5.1절 휴가가 지난 후 나를 세뇌반에 데려간다고 알려줬습니다. 만약 ‘전향’하지 않으면 나를 직접 노동교양소에 보낸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때 정념이 강하지 않아 사악을 대면할 용기가 없었습니다. 사부님의 법을 되새겨보았습니다. “집에 파리ㆍ모기가 있으면 우리는 그것을 쫓아버리고 방충망을 쳐서 그것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면 된다.”[2] 저는 남편에게 물었습니다. “사악이 찾으러 오면 우리 협조하지 말아요? 어때요?” 그는 말했습니다. “나는 협조해야 해. 그렇지 않으면 직장을 잃을 거야.” 밤에 사존께서 꿈으로 점화해주셨습니다. 저는 시골집 사합원[중국 전통의 정원식 주택으로 사면이 모두 집채로 둘러싸고 있는데 남쪽은 ‘正房(본채)’이고 동서쪽은 ‘厢房(곁채)’이고 북쪽은 ‘倒厅(바깥채)’이며 중간은 ‘天井(정원)’로 이루어져 있음]에 살고 있었습니다. 모든 문에 모두 마오(毛) 마두(魔頭)가 있었는데, 유일하게 옆의 작은 문에는 걸리지 않았습니다. 남편은 긴 의자에 앉아 ‘당(黨)’이라는 글을 쓰고 있었습니다. 저는, 사악이 이미 저의 공간을 가득 채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악에 붙잡혀 가면 정념이 부족해 결과는 상상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저는 잘 수련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집을 떠났습니다. 아이는 제가 직접 키웠는데, 3살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당시 아직 사악이 박해가 심각할 때라 제가 나가면 언제 돌아올지 몰랐습니다. 아이는 어떻게? 남편은 어떻게 될까? 직장은 어떻게? 나는 어디로 갈까? 저는 생각을 정리하고 그날 밤에 눈물을 흘리며 남편에게 편지를 쓰고 아이의 안식처를 잘 인계했습니다. 저는 또 면전에서 남편과 시어머님께 알려 주었습니다. 저는 명(命)에 난이 있는데 내가 만약 감옥에 들어가면 모두 괴롭기에 먼저 좀 떠나겠습니다. 이렇게 저는 하는 수 없이 간고한 선택을 했습니다. 제가 집을 떠난 지 3일 만에 그해 내 집을 감시하던 경찰은 불법적으로 노동교양 1년 6개월을 선고한 판결문을 남편에게 주었습니다.

집을 떠난 후 저는 심각하게 반성했습니다. 나는 왜 자주 일이 생기는가? 밍후이왕의 일부 수련생은 왜 정념이 그렇게 강한가? 나는 왜 이럴까? 자신이 수련을 잘하지 못해 가족도 고통을 받게 되고 평온한 생활을 하지 못하게 되어 정말 미안합니다. 대법은 위대하고 사부님도 위대하십니다. 저는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능력을 수련해 내기로 했습니다.

그날 밤에 저는 꿈에서 사부님을 보았습니다. 저는 어린아이고 사부님께서 저를 안아주셔서 사부님 다리에 앉았습니다. 저는 고개를 들고 사존을 바라보았는데, 사부님의 얼굴은 깨끗했고 피부는 부드러웠습니다. 그러나 눈가에 두 가닥 눈주름이 나타났습니다. 저는 꿈에서 그것은 저를 위해 생긴 온갖 풍파를 겪은 눈주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사이에 꿈에서 깨어났습니다. 그때 저는 사부님께서 줄곧 저를 돌봐주시고 격려해 주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제 선택은 옳은 것입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의 고통을 나는 다 알고 있으며 사실 나는 당신들 자신보다도 더 당신들을 소중히 여긴다!”[3]

떠돌이 생활을 할 때 저는 병업관에 처한 아직 노출되지 않은 수련생 집에 갔습니다. 매일 수련생과 함께 법 공부하고 연공하며 감히 외출하지 않았습니다. 14일 후 저는 꿈을 꾸었습니다. 제가 곡식 한 단을 지고 있었는데, 의념 중에서 만약 옆 틈으로 가면 한 사람만 구할 수 있기에 오직 대도(大道)를 가야 비로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다른 배치가 있고, 저도 다른 사명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수련생과 작별하고 다른 수련생 집에 갔습니다. 수련생 집에 막 도착하려 할 때 경찰 3명이 수련생 집에서 나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대면했을 때 저는 두려움이 없었고 즉시 앉아 제 신발 끈을 맸습니다. 경찰은 나를 알아보지 못하고 옆으로 지나갔습니다.

나중에 저는 한 자료점 수련생의 집에 갔습니다. 수련생은 바쁘고 자료를 만드는 외에 속인의 많은 일을 처리해야 했습니다. 저는 수련생을 도와 제본, 절단했습니다. 그때 큰 자료점이 파괴되어 자료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그때 수련생은 일하는 마음이 강하고 법 공부를 적게 하고 일상생활은 아주 바빴습니다. 저는 자격지심으로 수련생에게 기술을 물어보지 못했는데, 내가 수련생의 일을 빼앗는다고 생각할까 봐 두려웠습니다. 사실 저는 여유로운 시간과 정력으로 이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어느 하루 수련생이 외출했기에 저는 자료를 만들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컴퓨터를 만진 적 없고 수련생의 컴퓨터는 휴면상태(프린터는 연결돼 있었음)였습니다. 제가 마우스를 움직이자 모니터가 밝아졌는데, 무엇을 만졌는지 컴퓨터는 검게 변했습니다. 순간 저는 머리가 아프고 온몸이 차갑고 발은 얼음물을 밟은 듯했는데, 그때는 겨울이었습니다. 비록 제 몸은 이런 상태였지만, 마음속은 안정되어 일종의 의지가 저를 계속 연구해 나가게 했습니다.

처음에 마우스가 말을 잘 듣지 않았지만 조금 뒤 잘 됐습니다. 나는 시험삼아 1장을 인쇄해봤는데, 앞면, 뒷면 모두 순조롭게 인쇄됐습니다. 원래 아주 간단했는데, 사부님께서 저의 지혜를 열어주셨습니다. 어느 버튼을 눌러도 정확했는데, 저도 일부 중요한 조작은 기억했고, WORD파일과 PDF파일, ‘9평’과 대법 경문 만드는 법, 큰 책자와 소책자를 만드는 법을 배웠습니다. 저는 반복 탐구했고 줄곧 새벽 3까지 탐구했습니다.

이튿날 수련생이 왔는데, 저는 그에게 알려주었습니다. 사부님께서 가지해 주셔서 한밤중에 모든 자료 만드는 법을 알았다고 했습니다. 그는 감히 믿지 않았고 줄곧 기적이라고 했습니다. 나중에 수련생은 외지에 출장가야 했기에 홀로 자료 인쇄하라고 했습니다. 그는 소모품을 책임지겠다고 했습니다.

사부님의 점화로 저는 법을 외우기 시작했습니다. 한 단락씩 외우고 한 글자도 틀리지 않게 6번 외웠습니다. 한 번 외우면 3시간 이상 외웠는데, 많은 법리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는, 내가 법을 전하는 시간이 기본적으로 거의 끝났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진정한 것들을 여러분에게 남겨주어, 여러분이 앞으로 수련하는 가운데 여러분을 지도할 법이 있게 하려 한다.”[2] 두 번째로 이 한 단락 법을 외울 때 저는 통제하지 못하고 통곡했는데, 사존의 불은호탕(佛恩浩蕩)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사람을 구하는 대법은 박대정심(博大精深)한 것으로, 제가 이전에 알고 있던 얕은 것이 완전히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게다가 저는 매일 밍후이왕 문장을 계속 읽었고, 각종 진상 자료를 보며, 심신은 근본적인 변화가 발생했습니다. 명확히 진수제자의 신분을 알게 됐고 최선을 다해 조사정법을 해야 하는 책임과 사명을 알게 됐는데, 모든 생명은 바로 이것을 위해 존재합니다. 우주에 이렇게 큰 천기(天機)가 포함돼 있습니다.

책임과 사명이 있기에 밍후이왕에서 대량의 자료를 반드시 진지하게 선택해서 현지 중생에 적합한 자료가 되도록 해야 한다고 인식했습니다. 때로 저는 특색 있는 문장 내용을 기재하고 어느 주간 어느 신문에 내야 한다고 마음에 담아 둡니다. 각자 다른 내용은 서로 다른 직업의 미혹을 풀어주기 적합한데, 그리하여 나중에 저는 진상 우편을 보내는 항목도 했습니다.

떠돌이 생활을 한 후 제 모든 친척의 전화는 감청됐습니다. 우리 친정도 장기간 감시당했습니다. 그때 자료점의 창문은 모두 닫혀있었습니다. 한동안 수련을 통해 떠돌이 생활은 사부님께서 배치한 길이 아니라고 인식했습니다. 그러나 제 마음속은 은근히 괴로웠고 집으로 가는 날은 마치 기약이 없이 아득하게 느껴졌습니다.

어느 하루 저는 창문 커튼 틈으로 밖을 보았습니다. 마침 남편의 차를 보았습니다. 차에 한 여자가 앉아 있었고 보니 비정상적인 관계였습니다. 어떻게 이럴 수 있는가? 그러기에 남편이 이혼을 제기한 것이 아닌가…… 내 몸의 뼈마디마다 풀어진 느낌이고 뼈도 곤두선 느낌이었습니다. 저는 충격을 받아 기절했습니다.

두 시간이 지나 저는 깨어났습니다. 이때 사부님의 법이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아들이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으면 다음번에 거꾸로 되는데, 바로 이렇게 돌아오고 돌아간다.”[2] 저는 깨달았습니다. 원래 인연관계, 세인은 구세력이 배치한 극본에 따라가고 있는데, 나의 의지는 무너지면 안 됩니다. 내 생명의 목적과 의의는 속인과 완전히 다른데, 제가 가는 길은 사부님께서 배치한 조사정법의 길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저는 대법제자인데, 남편의 행위는 가상입니다.

법리에서 바로 잡고 저는 노력해 자신을 극복했습니다. 부부 사이의 정을 내려놓고 열등감, 평형을 이루지 못하는 질투심, 쟁투심, 자존심을 내려놓았습니다. 점차 저는 정념을 회복했고, 마음속으로 구세력에 알렸습니다. ‘내가 누락이 있어도 대법에서 수련 제고할 것이고, 당신 구세력과 어떤 관계도 없다. 나는 남편과 이혼을 하지 않을 것인데, 이것은 나의 선택이고, 모든 것은 내가 결정한다.’ 대법제자는 사부님을 도와 정법하는데, 자신의 건곤도 바로 잡아야 합니다.

이후에 남편의 표현이 어떠하든 저는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는데, 그는 미혹 속에 있어 아주 가련했습니다. 저는 모든 것은 대법을 위해 원용해야 한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지금 그의 나에 대한 태도와 대법에 대한 표현은 갈수록 좋아졌습니다.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2년이 지났는데, 저는 ‘전법륜(轉法輪)’을 6번 외웠고 기초를 다져놓았습니다. 저는, 정법 형세의 변화에 따라 자료점은 마땅히 천지에 꽃을 피워야 하는데, 대면해서 진상을 알리고 삼퇴 하는 것이 현재 법 실증의 형식으로, 저는 반드시 걸어 나가야 하고 사부님의 정법노정을 따라야 구세력의 저에 대한 배치를 부정할 수 있다고 깨달았습니다. 내 생각을 어머니와 친척 수련생에게 알린 후 그들은 다른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지금 아직 형세가 좋지 않고 며칠 전 너의 회사에서 통지가 왔는데, 10일내에 회사에 신고하지 않으면 제명한다고 통지했다. 전국 각지에서 올림픽 전에 많은 사람을 납치했다. 너는 어디에서도 세 가지 일을 잘할 수 있고, 집안에서 자료를 만들 수 있고 확실히 너의 일이 있고 또 안전하다. 너는 어디에 가서 이런 환경을 찾겠니?”

여러 방면을 고려했을 때 저는 듣고 이치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마음속에서는 아직도 제 생각을 억누를 수가 없었고 모순이 쌓였습니다. 밤에 꿈을 꿨는데, 꿈에서 제가 한 밀실에 있는 것을 보았는데, 벽은 모두 연한 동황색이었고, 아주 두꺼운 벽에 저는 등나무 의자에 앉아 위로 날아올랐습니다. 높은 곳으로 날아오른 후 주먹으로 벽을 쳐서 구멍을 뚫었습니다.

그러나 그때 저는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때 비록 나가서 법을 실증하려 했지만, 걱정이 많았습니다. 한번은 제가 자료를 인쇄하며 생각했는데, 갑자기 프린터에 종이가 끼었습니다. 당시 소책자 뒷면을 인쇄했는데, 이렇게 계속 2, 3페이지가 인쇄되었는데, 이 부분은 페이지 수가 안 맞는 게 아닌가? 저는 급히 프린터를 멈췄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제가 아무리 검사해 보아도 깨진 글자가 없었고 단면 종이가 끼어 나왔는데, 중복된 단면 페이지가 나왔습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사부님이 저를 점화해주신 것이 아닌가. 이런 걱정을 생각하는 것은 모두 불필요한 것으로 문제가 나타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사부님의 두 번의 점화를 수련생에게 알려줬습니다. 수련생은 저를 데리고 일주일에 두 번 나가기로 했습니다. 아침에 나가 진상을 알리고 혹은 자료를 배포하고 메시지를 발송하고 온종일 바빴는데, 저녁 식사 때 돌아왔습니다. 기타 시간은 집에서 법을 외우고 자료를 만들었는데, 효과가 아주 좋았습니다.

1년 후 저는 밤에 특이한 꿈을 꿨습니다. 꿈에서 경찰 10여 명이 마트에 앞에 앉아 내가 앞으로 지나가는 것을 보았는데, 경찰은 저를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내 등에 지고 있는 검은색 가죽가방 끈이 끊어졌는데, 아무리 이어도 잇지 못했습니다. 아마 어떤 일이 관건이라는 것인데 저는 깨닫지 못했습니다. 시련 속에서 사부님께서 자비롭게 꿈의 형식으로 저를 깨닫게 하시고, 바른길을 가게 가르쳐주셨는데, 저를 밀고 앞으로 가신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꿈에 집착하지 않았습니다.

얼마 후 진상을 알릴 때 경찰의 딸에게 알리게 됐습니다. 그녀는 우리를 신고했고 나와 수련생은 경찰에 납치됐습니다. 사부님의 가지 아래 저는 마음이 평온했습니다. 저는 우주에서 가장 바른 일을 하고 있고, 우주의 인정을 받은 것인데, 누구도 저를 박해할 자격이 없습니다. 유치장에서 같은 방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진상을 알려 삼퇴 시켰습니다. 경찰은 소리 지르며 말했습니다. “당신이 도망가서 곳곳에 당신을 찾아다녔고 베이징까지 찾아다녔는데 줄곧 당신을 찾지 못했다. 이번에 당신을 붙잡았으니 중형을 받아야 한다.” 저는 그를 믿지 않았고 사부님이 결정하신다고 생각했습니다. 경찰이 심문할 때 제 몸은 심한 병업 가상이 나타났는데, 칼슘 부족이었습니다. 엄중한 심장병과 유사한 병인데, 수시로 생명 위험이 있습니다. 경찰은 방법이 없어 하는 수 없이 저를 석방했고, 가족이 보증서에 서명하라고 하고, 또 일이 발생하면 4만 위안 벌금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3일 후 저는 집에 돌아왔고 떠돌이 생활을 마쳤습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각 지역 설법 6-아태지역 수련생회의 설법’
[2]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轉法輪)’
[3]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2-마지막 집착심을 제거하자’

(계속)

 

원문발표: 2019년 11월 1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11/10/39556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