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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감사절, 한 호주 프로선수의 감사한 마음

[밍후이왕] (밍후이 시드니 기자팀 보도) 연례행사인 미국 추수감사절이 다가오니 호주 시드니 청년 대법제자 폴 린(Paul Lin)은 마음속으로 가장 감사한 사람으로 파룬따파 사부님 리훙쯔(李洪志)선생님을 떠 올렸다.

올해 18세인 폴 린은 영특하고 밝지만, 그에게는 특별한 어린 시절이 있었다. 이유는 그가 중국에서 파룬따파를 수련하는 가정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부모와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모두가 수련자였다. 중공(中共)의 잔혹한 박해로 그는 영아시절부터 부모의 보호를 받지 못했다. 온 가족은 시종일관 ‘진선인(眞·善·忍)’에 대한 신앙을 굳게 지켰다. 시련 속에서 대법과 대법 사부님의 보호로 그와 그의 부모는 마침내 자유의 나라에서 만나 다시 화목한 가정을 이루었고, 아울러 또한 한 명의 프로축구선수가 됐다.

图:今年十八岁的澳洲职业足球队员保罗·林(Paul
올해 18세인 호주 프로축구선수 폴 린이 파룬궁 제5장 공법 신통가지법을 연마하고 있다.

11개월 된 영아가 610 사무실에 납치되다

샤오린(小林)은 회억하며 말했다. “가족이 저에게 2002년 10월 아버지가 ‘파룬따파 하오(法輪大法好, 파룬따파는 좋습니다.) 파룬따파는 정법’이라는 현수막을 걸었다는 이유로 경찰이 우리 집에 찾아와 불법적으로 가산을 몰수하고 아버지를 납치했으며, 경찰이 어머니의 왼쪽 팔은 때려 부러지게 했다고 알려주었습니다. 당시 저는 아직 한 살도 되지 않았고, 아버지는 저를 안고 610 사무실에 납치돼 구두로 자백했습니다. 저는 놀라서 울었고 종일 굶었습니다. 아버지는 중공에 의해 6년의 불법판결을 받았고, 이 일로 저는 아버지의 사랑을 빼앗겼습니다. 2004년 4월, 저의 어머니는 ‘파룬따파 하오, 쩐싼런하오’ 스티커를 붙인 이유로 불법 노동교양을 3년간 당했고, 겨우 2살이 넘은 저는 어머니의 사랑마저도 빼앗겼습니다. 화기애애했던 가정은 이렇게 중공의 박해로 산산조각이 났고, 외롭고 의지할 데 없던 저는 어쩔 수 없이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에게서 컸습니다. 당시 어린 저는 어머니와 아버지를 부를 수 없어 늘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를 어머니 아버지로 부르며 부모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기도 했습니다.”

“아버지는 가까스로 6년간의 억울한 감옥 생활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지만, 여전히 중공 610과 같은 불법 요원의 장기간 감시를 당했습니다. 아버지는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스스로 배를 몰고 중국을 벗어나 해외 대법제자들의 성공적인 구출을 받았습니다. 아버지는 비록 평안했지만, 저와 아버지는 바다를 사이에 두고 멀리 떨어져 헤어져 살았습니다.”

대법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에 감사합니다

비록 어린 시절이 이렇게 힘들었지만, 샤오린은 자기가 매우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는 가장 소중한 대법을 만났기 때문이며 어려서부터 대법 속에서 자랐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박해당하는 동안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가 그를 데리고 함께 수련하여 수련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말했다. “비록 중공의 파룬궁에 대한 잔혹한 박해는 20년간 멈춘 적은 없지만, 우리 일가족의 파룬따파에 대한 굳은 신앙은 오히려 지금까지 바꾸지 않았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가 저를 데리고 함께 십 년을 하루같이 수련했습니다. 그들은 늘 저에게 어떤 환경에서든 모두 자신이 대법제자라는 것을 기억해야 하며 대법의 표준으로 자신을 엄격히 요구해야 한다고 알려주셨습니다. 저는 이렇게 하여 대법에서 많은 혜택을 받았고 시시각각 모두 사부님의 보호를 받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깊이 감동한 샤오린은 말했다. “저는 어려서부터 축구를 좋아했고 후에 지역 축구팀의 주전 선수가 되었습니다. 축구 할 때 상대 선수와의 신체적인 경쟁은 매우 심각했습니다. 동료들은 가끔 많이 다치지만, 이는 피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렇게 다년간 축구를 했지만 다친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이 때문에 사부님께서 시시각각 저를 보호하고 계신다는 것을 느꼈고, 신체적으로 받을 수 있는 큰 상해를 피할 수 있었습니다. 대법 수련은 매우 신기했고 이는 다만 그중의 한 가지 예일 뿐입니다.”

‘진선인’으로 사람 마음을 귀정하고 프로축구선수로 되다

그는 자기의 수련의 길을 되돌아보며 말했다. “운동선수로 승부욕이 강해 오랫동안 시합에서 이기려는 마음이 강했습니다. 시합에서 지면 기분이 우울했고, 경기 중 잘하지 못해도 기분이 안 좋았으며. 일반 생활에서도 성격이 좋지 않았습니다. ‘진선인’으로 가늠하여 이런 좋지 못한 사람 마음과 집착은 마땅히 모두 제거해야 했습니다. 비록 제가 줄곧 수련했지만, 중국의 그런 복잡한 사회 환경은 저를 오염시켰습니다. 2015년 2월 저는 시드니에 와 마침내 부모님과 만나게 됐고 헤어졌던 가족은 다시 화목한 가정이 됐습니다.”

그는 말했다. “시드니에 온 후 저는 자신이 대륙에서 오염됐던 그런 좋지 않은 품행을 개선하고 사람 마음의 집착을 제거하려 결심했습니다. 저는 매일 법공부, 연공을 했고 수련인의 표준으로 자신을 요구했으며 모순에 마주치면 안으로 찾고 자신의 심성을 지켰습니다. 점차 이기고 지는 것을 담담히 보고, 예전의 그런 승부욕과 질투심 등 집착심을 내려놓았습니다.”

그는 기뻐하며 말했다. “일체는 모두 저의 심성 제고에 따라 좋아졌고, 공을 다루는 기교도 한층 좋아졌습니다. 일찍이 대륙의 프로 축구팀에서 저에게 팀에 가입을 요청했습니다. 시드니 프로축구팀에서 훈련할 때 시드니 각계에서 온 몇백 명의 선수들이 참가했지만, 축구팀 정원은 겨우 십여 명으로 100대 1 정도였습니다. 시험 훈련 과정에서 저는 줄곧 평온한 수련인의 마음 상태로 이번 선발을 대했습니다. 과정은 그야말로 일파만파였지만 저의 마음은 줄곧 평온했고, 기교를 정상적으로 발휘했으며, 두 번의 시험 과정을 거쳐 최종에 재능을 발휘해 축구팀에 선발되었습니다. 만약 수련인이 아니었다면 마지막 결과가 어떠했을지 상상할 수 없습니다.”

그는 자신이 끊임없이 심성을 높이고 자신을 바로잡아, 친척 친우들과의 관계도 모두 화목하게 됐다고 말했다.

마지막에 그는 말했다. “미국 추수감사절이 다가올 즈음 제자는 우리 전체 가족을 대표하여 사부님께 문안을 드리며, 공손히 절을 올립니다! 자비하고 위대하신 사부님께서 추수감사절을 즐겁게 보내시기를 기원합니다!”

 

원문발표: 2019년 11월 2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11/29/39637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