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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속에 숨은 ‘사(私)’를 찾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남편이 병업관을 넘는 동안 다른 수련생들이 사람 구하는 일에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서 나는 극히 일부 수련생과 교류했다. 옆에 있으면서 나는 남편의 많은 문제를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가 법에 있지 않은 모습을 보면 종종 교류했다.

그러나 대부분 교류가 순조롭지 않았다. 남편은 침묵하고 말을 하지 않거나 듣고 싶어 하지 않거나 맹렬하게 배척했다. 당시 나는 스스로 원인을 찾지 못했고 자신이 온전히 사부님의 법을 이용해 교류하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상대방이 대법을 떠난 시간이 길어서 내가 법에서 교류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심성에 한계가 있고, 전에 실수(實修)하지 않았고, 단번에 너무 높이 요구하면 도달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나는 한 차례 또 한 차례 안으로 자신을 찾는 기회를 놓쳤다.

남편은 병업관을 질질 끌며 넘지 못했고 교류가 순조롭지 않았다. 게다가 부부 사이의 정으로 인해 나는 남편에 대해서 무기력함, 걱정, 불안이 있었고 쇠가 강철이 되지 않는 것을 한스럽게 생각하는 등 법에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그가 정념으로 관을 넘도록 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자신이 이끌렸다. 박해를 거부하는 것은 입에만 있을 뿐 정념정행 하지 못했기 때문에 사실상 박해받는 중이었다.

어느 날, 한 수련생이 그의 부모와 함께 병원에 왔다. 그는 의사와 의학의 관점에서 병원에서 쓰는 의료수단의 위험에 대해서 말했다. 그 수련생의 평화롭고 지혜로운 교류방식은 나에게 자신의 격차를 보게 했다.

나중에 나는 자신의 말하는 방식을 반성했다. 자신의 표현방식은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기 쉽고 지혜가 부족하며 상대방의 부정적인 요소를 자극하기 쉽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교류는 모순과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욱 큰 간격과 대립을 조성하게 했다.

내 언어 표현 중에는 완전히 자신의 각도에서 법에 대한 이해와 활용을 표현했고, 상대방의 받아들이는 기초와 능력, 심리적 느낌을 고려하지 않고 상대방이 내 관점을 받아들이게 하려 했다. 내가 상대방을 좋게 하려고 하므로 상대방은 잘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강제주입식의 말투는 흔히 당(黨)문화보다 훨씬 높았고 안하무인의 기세였다.

이런 언어 표현 중에 담긴 거대한 ‘사’는 상대방에게 법에 있는 자비와 지혜, 관용과 이해, 이성과 평화, 정념과 겸손을 느끼게 하는 것이 아니고 완전히 자신이 법에서 깨달은 이해를 실증하고 상대에게 자신의 법에 대한 깨달음을 강요했다. 그중에는 명리심이 수반되었다. 받아들이면 과시하며 기뻐했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원망하고 싸우고 질투했다. 그를 좋게 하고 정념으로 관을 넘게 하려는 것처럼 보이지만 배후에는 이렇게 많은 더러운 것을 숨기고 있는데 어떻게 도움이 되겠는가? 반대로 생각해 보면 내 부정확한 상태는 오히려 그가 더 관을 넘기 어렵게 만들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당신이 늘 자비롭고 선(善)으로 남을 대하며, 무슨 일을 하든지 언제나 다른 사람을 고려하여 매번 문제와 마주칠 때마다 이 일을 다른 사람이 감당해 낼 수 있는가 없는가, 다른 사람에게 해가 되는가 안 되는가를 우선 생각한다면 문제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은 연공(煉功) 함에 높은 표준, 더욱 높은 표준으로 자신에게 요구해야 한다.”[2] “나는 늘 말했다. 만약 한 사람이 완전히 다른 사람을 위해, 티끌만큼도 자신의 목적과 인식이 없다면, 한 말은 상대방에게 눈물을 흘리게 할 수 있다고. 나는 단지 당신들에게 대법(大法)만을 가르친 것이 아니라, 나의 작풍(作風) 역시 당신들에게 남겨놓은 것이다. 일 처리 중의 어투, 선한 마음, 도리(道理)를 더하면 사람의 마음을 개변시킬 수 있으나 명령은 영원히 할 수 없다!”[3]

나는 해내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고 깨달았다. 말하는 방식은 상대방을 위하는 방향으로 바꾸었다. 그의 상태와 그가 직면한 상황을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자신의 어투와 심태, 표현 방식을 바꾸어 상대방이 법에서 수련해낸 선념(善念)을 감수하게 하고 대법 법리의 거대한 에너지를 느끼게 해야만 비로소 진정으로 그의 생명을 책임지고 진정으로 소통하려는 목적에 도달할 수 있다.

제자가 제대로 말하지 못한 이유를 찾게 해주신 사부님의 고심(苦心)한 안배에 무한히 감사드리며, 개인 층차에서의 얕은 인식이므로 바르지 않은 곳은 수련생들의 자비로운 시정을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불성무루’
[2]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
[3]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청성’

 

원문발표: 2019년 12월 1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12/10/39677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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