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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慧법회| 수련생을 도와 성심성의로 사람을 구하다

글/ 헤이룽장 대법제자

[밍후이왕] 저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저는 만고(萬古)에도 만날 수 없는 고덕(高德)대법,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얻었기 때문입니다. 20여 년 동안 저는 제가 직접 겪은 경험으로 파룬따파가 좋다는 것을 증명하고, 실증하였습니다. 오늘 저는 저의 수련 경험과 체득을 써서 전 세계 사람들이 모두 파룬따파가 좋다는 것을 알도록 하겠습니다!

글을 모르던 내가 ‘전법륜(轉法輪)’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1996년, 3~4월 봄, 저의 몸은 좋지 않아 목이 뻣뻣했고, 남편과도 사이가 좋지 않아 기분이 나빠, 늘 사는 게 재미가 없다고 느꼈습니다. 그때 한 동료가 저에게 파룬궁을 소개해 주면서 “파룬궁은 아주 좋아요, ‘전법륜’을 보기만 하면 번뇌가 없어져요.”라고 말했습니다. 저의 집 서쪽 편에 연공장이 있어 저는 가서 파룬궁을 배우려고 결정하고, 또 두 아들에게도 모두 가서 배우자고 하니 그들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함께 갔습니다.

제가 어릴 때 가정형편이 좋지 않아 저는 학교에 다니지 못했기 때문에 글을 몰랐습니다. 저는 대법을 배우기 위해 반드시 ‘전법륜’을 보아야 했기에 남몰래 결심을 내렸습니다. 저의 집 벽에는 커다란 유리가 있는데, 저는 모르는 글자를 대충 비슷하게 유리에 써서 아이에게 어떻게 읽는지를 물어보면 아이들은 저에게 알려주어 저는 기억했습니다. 사실 모두 사부님께서 저를 도와주셔서 기억한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저는 유창하게 읽지는 못했지만 ‘전법륜’을 읽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법공부팀에 가서 법공부할 때 제가 읽을 차례가 되면 막힐 때가 있었는데, 어떤 수련생은 내가 글을 배우지 못했다는 것을 모르고 열심히 읽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제가 심혈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지만 돌아올 때 너무 억울하여 계속 울었습니다. 그런 후 저는 또 법공부팀에 가서 다른 사람이 읽을 때 같이 읽어, 점차 순조롭게 읽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겨울에 매우 추웠지만, 저와 두 아들은 매일 가서 연공을 견지했습니다. 아이가 연공 녹음기를 가지고 다녔습니다. 저의 집은 생활 형편이 좋지 않았지만 저는 총 3개의 녹음기를 구입했습니다. 처음에는 작은 것을 샀다가 나중에는 배우는 사람이 많아져 저는 또 큰 것으로 샀는데 소리도 크고 음질도 좋았습니다. 어느 날 연공을 하고 있는데 큰비가 와서 사람들이 모두 흩어졌지만, 저와 두 아들은 여전히 비를 맞으며 연공을 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더욱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쳤습니다. 저는 처음 법을 얻었을 때 ‘인(忍)’을 해내지 못해, 어느 날 또 남편과 싸우고 친정집으로 가버렸습니다.

다음 날 아침, 남편은 저에게 “꿈속에서 당신의 사부님을 보았소. 사부님께서 ‘당신네 네 식구 중에 세 명이 대법을 얻었으니 당신은 다투지 마세요. 당신네 집 안팎을 모두 청리하였으니 다시 다투기만 하면 당신을 상관하지 않겠어요.’라고 말씀했소. 그래서 제가 사부님께 절을 하니 사부님께서는 ‘어서 일어나세요, 이러면 안 됩니다.’라고 말씀하셨소”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또 여우와 족제비를 보았는데 모두 우리 집에서 도망갔다고 말했습니다. 그 후부터 저의 남편은 다시는 다투지 않고, 우리에게 밥을 해주기도 하고, 우리가 대법을 배우는 것에 대해 지지했습니다. 저의 마음은 마치 꽃이 핀 것처럼 즐거웠는데, 무엇을 하든 마음이 후련하여 저는 남편에게 더 잘 대해 주었습니다.

그때 우리 집과 시동생 집은 한 울타리 안에서 살았습니다. 어느 날, 시동생은 우리가 집에 없는 틈을 타서, 그의 집 뜰에 집을 지었는데, 저의 집 뒤 창문을 막아 창문을 열 수 없었습니다. 남들이 보기에도 너무 사람을 업신여겼습니다. 시동생의 아내는 또 저의 남편에게 욕까지 하였지만 우리는 그와 따지지 않았습니다. 사실 법원에 가서 해결하면 우리는 반드시 이길 수 있었습니다.

겨울에 시동생 집에 불행이 닥쳤습니다. 시동생 아이가 배가 아파, 병원에 가도 무슨 병인지 진단할 수 없었습니다. 설이 다가왔는데도 설을 쇨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풍수 보는 사람을 찾아 풍수를 보았습니다. 그 사람은 “당신네 어머니(이미 세상을 떠났음)가 당신이 지은 새집에 있어요, 당신이 형님을 업신여기니 어머니가 형님 집에 들어가지 못하잖아요.”라고 말했습니다.

설이 지난 다음 시동생은 집을 허물려고 물건들을 우리 집 지붕 위에 놓으려고 했습니다. 우리 집은 평지붕이었는데 남편이 허락하지 않아 저는 남편에게 놓게 해주라고 권했습니다. 그렇게 시동생이 집을 다 허물자 집안일도 별일 없었습니다. 나중에 우리 두 집은 사이가 좋아, 시동생은 자기네 작은 밭을 우리 집에 주어 부치게 했습니다. 모두 대법 사부님께서 저에게 ‘진선인’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쳐서 이 갈등은 없어졌습니다.

옛 수련생들을 되찾아 법공부팀을 계획대로 진행하다

박해가 발생한 후 어떤 수련생들은 집 안에 숨어서 감히 수련생들과 접촉하지 못하고, 또 어떤 사람은 가족들이 볼까 봐 수련생들과 접촉하지 못하였습니다. 제가 여러 번 납치되고 강탈당해 수련생들은 저를 보면 감히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그들을 찾으려고 방법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의 집 작은 채소밭에서 수확한 강낭콩을 아까워하지 않고 이런 수련생들에게 가져다주면서 그들이 대법에서 벗어나지 말고 계속 수련하도록 격려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사부님의 새 경문이 발표되면 저는 바로 그들에게 갖다주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이 방면에 대한 저의 열정과 응집력을 보시고 이 길을 배치해 주셨습니다. 신변에 있는 수련생들을 찾아 모두 수련의 길로 들어서도록 저를 이끌어 주셨습니다. 한 수련생은 저에게 “당신은 그들을 찾지 말아요. 그들이 대법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보세요? 시간이 있으면 나가서 한 사람이라도 구합시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한 사람이라도 찾을 수 있다면 찾아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진수(眞修)제자를 한 명이라도 떨어뜨리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예전의 A 수련생을 보러 가서 그가 대법수련에 돌아오도록 권했습니다. 그가 돌아온 후 시(市) 문화부장인 그의 남편도 법을 얻었습니다. 그녀의 남편은 밖에서 연공하는데 누구도 감히 관여하지 못했습니다. 한번은 그가 히터에 머리를 부딪혔는데 아무 일도 없었으며, 혹도 생기지 않았습니다.

저는 또 B 수련생 부부를 찾아 그들이 대법수련에 돌아오도록 했습니다. 그들은 TV를 보고 있었는데 제가 가도 거들떠보지 않았습니다. 저는 포기하지 않고 여러 차례 그들을 찾아가자 마지막에 그들은 돌아왔습니다. 그들의 아이도 모두 대법을 선하게 대하고. 또 대법제자를 도와 이것을 수리해주고, 저것을 정리해주는데 밤중까지 해주어도 1전 한 푼 받지 않았습니다.

C 수련생은 외지에 있는 아들 집에서 돌아온 후 저를 찾아 연공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저에게 있는 대법자료를 전부 그에게 주었습니다. 그는 1년을 수련하고 나서 또 아들 집에 갔는데, 이번에 아들 집에서 넘어져 다리를 다쳤습니다. 돌아온 후 다시는 가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이 몇 년 동안 저는 줄곧 그를 포기하지 않았고, 그도 줄곧 저를 따라 수련했습니다. 돌아와서 홍반성 낭창에 걸렸지만 약 한 알도 먹지 않고 나았습니다. 그의 아들은 외지 성에 있는 공안국의 하급 책임자인데 그의 어머니의 변화를 보고 마음속으로 매우 기뻐 그의 어머니를 보러 왔습니다. 돌아갈 때 사부님께 향을 피우고 절을 하면서 그의 어머니를 구해준 사부님의 자비에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진상을 안 후 또 ‘삼퇴’까지 하였습니다.

D 수련생의 딸은 외지에서 출근하는데 부인병에 걸려 생리가 정상이 아니었습니다. 생리가 오면 배가 아파서 온 바닥에서 뒹굴고, 땀방울이 콩알처럼 흘러내렸는데 많은 돈을 써도 낫지 않았습니다. 딸의 의사 친구는 그에게 치료가 잘되지 않고, 또 악화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D 수련생은 딸에게 대법을 배우라고 해도 그는 듣지 않았고, 그는 저와 한담을 하려고 했습니다. 저는 그에게 파룬따파와 대법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면서 어떤 병은 의학으로 치료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대법을 배우는데 돈 한 푼도 들지 않고, 또 그 어떤 대가도 지불할 필요 없이 자신의 건강만을 위해서 하면 되는데, 좀 일찍 일어나 대법책을 보고 연공을 하면 스스로 체험하여 알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자기도 배우겠다고 말했습니다. 한동안 배우고 나서 다시 부인과에 가서 검사하자 수술할 필요 없이 많이 나아져서 의사도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다 나은 후 그는 법공부와 연공을 느슨히 하자 또 병이 발작했습니다. 저는 그에게 “수련은 대충대충해서 될 일이 아니니 사부님께 무릎을 꿇고, 잘못을 인정하고, 다시 수련하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또 열심히 법공부와 연공을 하기 시작했고, 또 상대를 찾아 결혼까지 했습니다. 그 후로부터 생리가 정상이어서 그의 남편도 지지했는데, 그가 연공을 할 때면 TV볼륨을 낮추었습니다. 어느 한번 그는 저에게 전화로 “아주머니, 마음 놓으세요, 말한 대로 할 거예요!”라고 했습니다. 그 뜻은 그가 확고하게 수련해 나갈 것이라는 말이었습니다.

어느 날, 저는 예전의 F 수련생 집에 갔습니다. 반나절이나 문을 두드려서야 그는 문을 열었습니다. 문이 열리자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수련생의 배가 많이 부어있었고, 기운도 없었습니다. 저는 “왜 발정념을 하지 않았어요?”라고 말하자 그는 어떻게 발정념을 해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저는 그에게 펜을 가져와서 제가 말한 대로 적도록 했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발정념에 관한 한 단락의 법을 외우자 그는 받아 적었습니다. 이틀 후 다른 수련생의 집에 가자 뜻밖에도 F 수련생이 거기에서 법공부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렇게 빨리 좋아질 줄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F 수련생은 저에게 “그날 당신이 사부님의 그 단락 법을 외울 때 제가 받아 쓰자 저의 몸에 있던 냉기가 아래로 내려갔습니다. 다 쓰고 나자 얼마 안 있어 온몸이 편해지면서 나아졌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한 노년 수련생의 남편은 그녀를 아주 엄하게 대했습니다. 제가 가는 횟수가 많아지자 그는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저의 며느리에게 신경문을 그 수련생에게 몰래 보내주도록 해서, 수련생이 천천히 확고해지게 했습니다.

어느 해 ‘5.13’에 저는 수련생들을 모두 불러 사부님의 생신을 축하드렸습니다. 저는 사부님께 큰 생신 케이크를 사서 올렸습니다. 수련생들이 모두 와서 함께 모이니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이것은 대법이 박해 이후, 처음 모이는 자리여서 모두 기뻐했습니다.

1999년 7월 20일, 장쩌민은 파룬따파를 수련하는 좋은 사람들에 대해 잔혹한 박해를 발동했습니다. 또 대법 사부님이 ‘부정 축재’를 했다고 모독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렇게 오랫동안 수련했지만,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1전 한 푼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대법을 배워 신체가 좋아져서 혼자서 세 사람의 일을 하고, 또 집에 의료비를 절약해 주었습니다. 경찰이 우리 집에 와서 가택수색을 하여 녹음기, 대법책 등을 한 차 실어가고, 또 거의 2만 위안(약 336만 원)이 되는 돈을 강탈해 저의 남편은 매우 놀랐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저는 창문을 닫고, 저녁에도 여전히 수련생들이 우리 집에 와서 법공부를 하도록 했습니다. 제가 불법으로 감금된 기간을 제외하고 밖에 어떤 상황이든 우리 집 법공부팀은 여태껏 중단된 적이 없었습니다. 단체 법공부는 사부님께서 제자에게 남겨준 수련의 길입니다. 사부님께서 우리를 보고 계시기에 저는 사부님의 말씀을 듣고 단체 법공부를 견지하였습니다.

올해 우리 지역의 법공부팀은 교란을 받아 경찰이 대법책을 빼앗아 갔습니다. 수련생들은 저에게 법공부팀을 며칠 멈추자고 했지만 저는 “괜찮습니다, 법공부팀은 ‘7.20’부터 현재까지 전부 사부님께서 계속 지지해 주시고, 보호해주셔서 괜찮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이 의념을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 한번 멈추면 속임수에 걸리게 된다.”라고 생각했습니다.

한번은 수련생들이 모두 우리 집에 왔는데 우리 집 아파트에서 누군가 앉아 있다가 나중에 우리 집 문 앞에 앉아 가지 않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수련생들은 미행하는 사람이 아니냐고 말했지만 저는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그가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말자. 그가 무슨 사람이든 그도 중생이다. 그가 우리의 수련을 교란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 그가 죄를 범하게 하면 그가 파멸된다.” 저는 발정념으로 그의 배후에 있는 사악한 요소를 제거하고, 어떤 방식으로든 그가 떠나도록 사부님께 부탁했습니다. 저는 전부 선념(善念)으로 발정념을 했습니다. 그러자 잠시 후 그 사람은 전화를 받고 가버렸습니다. 그다음 우리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했습니다.

저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확고한 생각이 있었습니다. 법공부팀을 견고하게 앞으로 나아가게 해서, 법정인간(法正人間)시기가 올 때까지 계속 견지하는 것입니다!

내가 연공을 하자 전 가족이 모두 수혜를 얻다

제 가족은 네 식구인데 저의 남편만 아직 대법수련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두 며느리도 모두 수련에 들어왔고, 저의 집 다른 친척도 수련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장쩌민의 사악한 집단이 파룬궁을 박해한 후 어떤 사람은 수련을 포기했습니다. 고향 집에 돌아와서 저는 둘째 언니에게 MP3를 사주어 사부님의 설법을 듣도록 했는데, 그는 잘 듣지 않고 MP3를 아이에게 가지고 놀도록 했습니다. 결과 저의 둘째 언니는 뇌졸중에 걸려 길을 걷지 못했습니다. 저는 그에게 호신부를 주면서 진심으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읽으면 사부님께서 언니를 돌봐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언니는 정말로 진심으로 “저의 동생은 대법을 수련합니다. 리 선생님께서 저를 돌봐주십시오.”라고 말하면서 또 “파룬따파하오!”를 여러 번 읽었습니다. 후에 점차 회복되어 침대에서 내려와 밥을 지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가 가족들에게 진상을 알릴 때 저의 어머니도 저를 도와 진상을 알렸습니다. 저의 어머니는 저의 언니에게 “어서 너의 동생과 함께 파룬궁을 연마해라. 동생이 얼마나 건강한지 보아라. 아무리 일을 해도 힘들어하지 않는다!”라고 말했습니다. 저의 어머니는 심장이 좋지 않고, 기관지도 좋지 않아 가래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 저의 어머니는 큰손이 심장 부위에서 아래로 한번 긋는 것을 보았는데 그 후부터 저의 어머니 심장병이 나아졌습니다. 나중에 또 검고 누런 두 개의 혹을 토하고 난 후 가래가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저의 셋째 숙모는 불면증이 있었는데 ‘파룬따파하오’를 읽고서 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저의 셋째 숙부는 교장인데 뇌졸중 증세가 조금 있어, 연공할 때 빠오룬(抱輪)동작을 하면 손이 기울었지만, 며칠 연공하자 바로 손동작이 정상으로 되었습니다.

어느 해, 저는 고향에 가서 ‘삼퇴’를 하면 평안을 보존한다고 말해 80여 명의 우리 대가족을 사악한 당 조직에서 탈퇴시켰습니다. 저는 고향에서 두 달이나 있으면서 어느 집에 일이 있으면 도와주었는데 집안을 정리해주거나 밭에 나서 목화를 따주기도 했습니다. 저는 목화를 따서 밭머리에 가서 다시 쏟아붓는데 그러면 목화에 흙이 묻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목화가 너무 무거워 중도에서 쏟아붓지 않으면 허리가 아파 참을 수가 없다고 중도에서 목화를 쏟아붓습니다. 그러면 목화에 흙이 묻어 깨끗하지 못합니다. 저의 형제 며느리는 저에게 허리가 괜찮은지 물었는데 저는 괜찮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글을 쓸 줄 모릅니다. 당단대(黨團隊) 탈퇴를 그들 스스로 쓰도록 하고, 크게 쓴 다음 모두 “탈퇴! 탈퇴! 탈퇴!”라고 말하게 하였습니다. 고향에서 누가 저에게 돈을 주면 저는 받지 않았고, 도저히 사양할 수 없을 때는 저는 돈을 어머니에게 주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어머니 집 안팎을 깨끗이 정리해주었는데,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저의 어머니는 울면서 “네가 제일 좋구나”라고 말했습니다.

저의 남동생은 제가 대법을 배워서 살림할 줄 모른다고 저와 다투었습니다. 저는 그에게 물었습니다. “내가 어찌하여 살림을 할 줄 모르니? 대법을 배워 건강한 몸으로 혼자서 세 사람의 일을 하고 있다. 신체가 나쁘면 감당할 수 있겠니?” 그러자 남동생은 아무 말도 없었습니다. 올해 가족들과 함께 아주 먼 곳으로 여행을 갔습니다. 저의 조카들은 모두 걸어서 힘들어했는데 저에게 힘들지 않은지 물어 저는 힘들지 않다고 했습니다. 집에 돌아오자 조카들은 모두 지쳐서 드러누웠는데 저는 집에 있는 사람들이 바오쯔(包子, 찐빵) 빚는 것을 보고 손을 씻고 도왔습니다. 그들은 저의 변화를 보고 모두 놀랐습니다. 조카는 “고모, 무슨 공(功)인지 저도 연마할게요, 연공을 가르쳐 주세요.”라고 말하면서 또 저의 대법책 ‘전법륜’을 달라고 했습니다.

남동생은 정공(靜功) 할 때 가부좌를 했는데, 뚱뚱하여 가부좌하자 바로 뒤로 벌렁 넘어져 모두들 우습다고 한바탕 웃었습니다.

파룬따파가 좋다는 것을 행동으로 실증하다

어느 해에 저의 둘째 큰아버지네 오빠가 병에 걸려 외지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둘째 형님은 몸이 좋지 않았고, 둘째 오빠는 다른 친척이 없어 저에게 간호를 좀 해 달라고 해서 저는 서둘러 갔습니다. 둘째 오빠가 있는 병실은 2인 1실이어서 두 집의 간병인은 침대 하나만 사용해야 했습니다. 규정에 따라 두 집의 간병인은 교대로 하루씩만 침대에서 자기로 했습니다. 그 집의 아들은 샤오훙(小紅)이라고 불렀는데 그는 침대가 그들의 병상과 가까워서 자기네가 사용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둘째 오빠의 딸과 샤오훙은 침대 때문에 싸우기까지 했습니다. 저는 둘이 또 싸울까 봐 그들을 떼어놓고, 조카에게 나중에 밤에 오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샤오훙에게 “자네는 침대에서 휴식해요, 내가 복도로 나갈게요. 자네 어머니는 아들밖에 없으니 감기에 걸리지 말아요. 감기에 걸리면 자네 어머니를 간호하지 못해요”라고 하자 샤오훙은 매우 감동했습니다. 어느 날 샤오훙은 “오늘 밤은 당신이 침대에서 주무세요. 제가 밖에서 휴식할게요.”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에게 “아주머니는 대법을 배우기 때문에 괜찮으니, 샤오훙이 침대에서 자요.”라고 했고 그는 “정말 감사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각 방면에서 상대방을 위해 생각했습니다. 싱크대나 전기 플러그를 그의 집에서 먼저 쓰도록 했습니다. 둘째 형님은 추운 날에 바람이 씽씽 부는 복도에서 내가 자는 것을 보고 저에게 라면을 끓여 왔습니다. 저는 아까워하지 않고 고용한 간병인에게 주었습니다. 둘째 형님은 형편이 어렵기에 저는 돈을 절약하려고 집에 가서 식사했습니다. 그러자 둘째 형님은 매우 감동하였습니다.

병실에 오는 사람마다 저는 그들에게 대법이 좋다는 것을 알렸습니다. 옆 병실의 사람들도 제가 좋다는 것을 다 알았고, 원장님까지도 알았습니다. 사람들이 저에게 훌륭하다고 하면 저는 파룬따파를 배워서 그렇다면서 그렇지 않으면 남에게 양보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당시 두려움이 없이 사람을 보기만 하면 대법이 좋다고 말했습니다. 샤오훙의 매형은 저에게 “우리 처남은 누구도 감히 건드리지 못하는데 당신의 말을 듣네요. 당신이 말하자마자 그가 듣는 것을 보니 당신은 참 좋은 사람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우리 두 집은 정말 사이가 좋았습니다. 그동안 샤오훙도 변했습니다. 저는 그에게 ‘진선인’에 따라 자신을 요구하는 이치를 말해주었는데 그는 인정하고 듣기를 원했습니다. 샤오훙은 “아주머니, 제가 아주머니를 너무 늦게 만났네요. 일찍이 만났더라면 사고를 저지르지 않았을 텐데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제야 샤오훙이 살인범이고, 그의 집에서 돈을 써서 다른 사람에게 죄를 뒤집어쓰게 했고, 그 후에 장사하면서 누구도 감히 그를 건드리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나중에 내가 떠나게 되자 샤오훙과 그의 누나는 모두 울면서 저의 전화번호를 달라고 했고, 샤오훙은 반드시 저를 찾아오겠다고 말했습니다.

간호를 다 한 후 둘째 큰아버지네 오빠와 둘째 형님은 저에게 1,000위안(한화 약 16만 원)을 주었지만 저는 받지 않았습니다. 둘째 형님네 아이는 너무 감동되어 “셋째 아주머니는 정말로 좋아요!”라고 했습니다. 대법이 저를 개변시켰고, 저를 안 사람들은 모두 대법이 좋다고 말했습니다. 나중에 둘째 형님을 제외하고 둘째 오빠네 가족들은 모두 ‘삼퇴’를 했습니다.

저는 아이 돌보는 일을 찾았습니다. 아이가 9개월이 넘었지만 여위고 작았습니다. 가족들은 아이가 산소 시험관에서 태어나서 겨우 한 달 만에 살아났는데 지금까지 밥을 먹기 싫어한다면서 아이에게 밥을 먹이는 게 큰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맛있는 음식을 아이에게 다른 방식으로 먹였습니다. 아이를 달래면서 한입씩 먹였는데 반 정도 먹고는 싫어했습니다. 저는 방법을 생각해서 아기가 계속 먹도록 했는데 아이는 얼른 와서 배불리 먹었습니다. 얼마 되지 않아 아이는 하얗게 살이 쪘습니다. 아이 엄마는 저에게 어떻게 먹였는지 물었는데 저는 정성을 들여서 먹였다고 했습니다. 저는 온종일 기뻐서, 아이를 보면 즐거웠는데 아이도 즐거워했습니다. 저는 이 아이를 3년 반 동안 보았습니다. 그동안 이 아이는 약 한 알도 먹지 않아, 가족들은 매우 감동했습니다. 사실 저는 아이를 돌볼 줄 모릅니다. 자신의 아이에게도 참을성이 없었습니다. 대법이 저를 개변시켜, 저는 세심하게, 인내심을 갖고 아이를 보았을 뿐입니다.

아이가 커서 유치원에 가야 했습니다. 아이의 가족들은 저와 헤어지는 것을 못내 아쉬워했지만 저는 그 집에서 일할 수가 없었습니다. 설이나 명절이 되면 그들은 직장에서 나누어준 물건을 저에게 보내오기도 했습니다. 저의 집 아이가 결혼할 때 그들은 모두 왔습니다. 한번은 제가 박해를 받아 불법으로 성(省) 마약중독자 재활원에 감금되었는데 아이의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가 모두 저를 보러 왔습니다. 아이의 외할머니는 울면서 “이렇게 좋은 사람을 여기에서 고생시키면 안 되네!”라고 말하면서 그의 가족 중에 성에 사람이 있으니, 사람을 찾아 저를 나오도록 하겠다고 했지만 저는 그들에게 사람을 찾지 말도록 했습니다.

아이의 집에서 몇 년 동안 저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집에 온 손님들에게도 진상을 알렸습니다. 무릇 저의 진상을 들었던 그 집의 친척이나 친구들은 모두 시원스럽게 ‘삼퇴’를 하였습니다.

진상을 알리는 중에서 제고되다

진상을 세인에게 알리기 위해 저는 나가서 자료를 배포하고 스티커를 붙였습니다. 처음 나갔을 때는 속으로 매우 두려웠습니다. 한번은 나가서 스티커를 붙였는데 뒤에 사람이 있는 것을 보고 겁에 질린 저는 스티커 한 장을 입에 넣고 씹어 삼켜버리기까지 하였습니다. 아무리 두려워도 저는 나가야 했습니다! 나가는 시간이 많아지자 두려운 마음도 제거되었습니다.

또 한번은 나가서 진상자료를 배포하다가 조심하지 않아 계단에서 넘어지는 바람에 발이 단번에 거꾸로 발바닥이 위로 향했습니다. “사부님, 저는 걸어야 합니다!”라고 말하고 힘을 다해 발을 돌렸는데 아프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배포했습니다. 다 배포하고 나서 돌아보니 우리 집과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이렇게 늦었는데 어떻게 집으로 돌아가지? 이 일념을 발하자 발이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짐수레가 와서 저는 3위안(약 500원)을 주고 짐수레에 앉아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이튿날 보니 발목이 검게 변했습니다. 그런데도 자료가 오자 저는 또 나가 배포했고, 다 배포하고 나니 온몸이 편해졌습니다.

경찰은 우리 집 앞에서 1년 동안 웅크리고 앉아 있어도 내가 나가 자료 배포하는 것을 막지 못했는데 이것은 사부님께서 저를 보호해주셨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저는 전화로 사람 구하는 것을 배워 ‘삼퇴’를 권했는데 몇십 명의 사람들을 탈퇴시켰습니다. 저는 글자를 쓰지 못해 동료 수련생보고 저를 도와 써달라고 부탁했는데 그 수련생은 매우 바삐 보냈습니다. 한번은 그 수련생이 저보고 “당신은 낫 놓고 기역 자도 몰라요?”라고 말했습니다. 당시 저는 화가 나서 마음속으로 “내가 쓸 줄 알면 당신에게 부탁하겠어요?”라고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이것은 사부님께서 저를 깨우쳐 주신 것이 아닌가?! 저는 핸드폰에서 원하는 글자를 찾아 손으로 쓰는 것을 배웠습니다. 획수가 많은 것은 핸드폰으로 글자를 확대하여 누구에게도 부탁하지 않았습니다. 동료 수련생이 누가 써준 글자인지 물어 저는 제가 쓴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 수련생은 “필력이 있게 아주 잘 썼어요.”라고 말했습니다. 모두 사부님께서 저에게 지혜를 열어주신 것이었습니다.

수련생의 일은 바로 나의 일이다

한 수련생은 핍박으로 떠돌아다니다가 몸에 좋지 않은 상태가 나타났습니다. 온몸이 아파서 허리를 펴지 못했고, 마치 심한 감기에 걸린 것처럼 온종일 흐리멍덩했습니다. 사부님의 설법 비디오를 서서 보아도 잠을 잤습니다. 저의 집에 두 달 넘게 있으면서 저는 여태껏 그를 나무라지 않고, 관심과 격려를 해주면서 그와 많은 교류를 했습니다. 저는 그를 데리고 법공부와 발정념을 많이 하고, 연공은 하루에 두 번이나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늘 자고 싶어 했습니다. 때로는 저에게 10분만 누워있게 해 달라고 했는데 저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누워있으면 구세력의 박해를 승인하는 것이기에 느슨해지지 말고 견지해야 한다고 격려했습니다. 수련생은 고생을 참으면서 아무리 어려워도 모두 견지했습니다. 그리하여 아주 빨리 주의식이 강해져서 건강이 완전히 회복되었습니다.

또 한 수련생은 식사하지 못해, 몹시 여위어 엎드려 있었습니다. 우리 집에 온 지 한 달이 되었는데도 휘청거려, 엎드려 있으면서 일어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에게 “앞은 온통 밝은 빛이 있고, 뒤에는 천 길 낭떠러지가 있는데. 당신은 앞을 향해 갈 것인가, 아니면 뒤로 후퇴할 것인가?”라고 했습니다. 그는 기어 일어나 법공부, 연공, 발정념을 견지했습니다. 동시에 자신이 이 몇 년 동안의 이익에 대한 집착과 두려운 마음 등을 찾았습니다. 사람이 좋아지니 식사도 할 수 있었습니다. 주민센터에서 그의 집에 와서 소란을 피워도 그는 사악과 협조하지 않았습니다.

수련생의 일은 바로 저의 일이기에 우리는 함께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사부님은 저에게 너무 자비로우셨습니다. 저는 고집이 세고, 삐딱하고 또 교양도 없어 사부님께 많은 심려를 끼쳐 드렸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마음을 놓으십시오. 어찌 되었든 저는 진심으로 다른 사람을 성의껏 구하겠습니다. 그리고 더 침착해져서 앞으로 사부님께서 다시는 저를 위해 많은 심려를 끼쳐 드리지 않도록 주의하겠습니다. 모두 사부님께서 하시는 것이고, 사부님께서 저를 이끌어 줄곧 걸어온 것입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밍후이왕 제16회 중국대륙 대법제자 수련심득교류회)

 

원문발표: 2019년 11월 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11/9/39556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