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산둥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34살의 남자로 후이(輝)라고 하며 2007년부터 대법을 수련했다.
나는 어릴 때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꿈을 자주 꿨다. 그 꿈은 또렷하고 진실했다. 그러다 어느 날 대법에 들어선 후에야 이 꿈의 의의를 알았다. “세인들은 대부분 천당에 있었으니 떨어져 내려와 새롭게 되어야 다시 하늘로 돌아가리 인간 세상에서 전전함은 법을 기다리기 위함이니 대법은 정각(正覺) 신선을 수련해 낼 수 있다네”[1]
1. 갖은 고초를 다 겪은 불운한 아이
나는 어릴 때부터 모든 친구 중에서 내가 가장 불행하고 불운한 사람이라고 느꼈다. 나쁜 일, 좋지 않은 일에 많이 부딪혔다. 친구들과 숨바꼭질하다 분뇨통에 빠졌고, 장난치며 쫓고 쫓기다가 머리가 부딪쳐 피가 났다. 땅에 앉아 놀다가 벌에 코를 쏘여 찐빵만큼 부었으며, 작은 강에서 물놀이하다가 발이 긁혀 피를 흘리기도 하는 등 재수 없는 일이 많았다.
한번은 옥수수를 널어 말리려고 어른과 함께 지붕에 올라갔다가 지붕의 작은 울타리를 넘어뜨리면서 땅에 떨어졌다. 다행히 엉덩이가 먼저 땅에 떨어져 다른 곳은 다치지 않았다. 또 한 번은 저수지에서 수영하다가 발이 물밑에 있는 물고기 그물에 걸려 벗어날 수 없었는데 그 순간 한 가닥 힘이 나를 수면 위로 밀어냈다.
나는 어릴 때 불행한 일이 많았기에 세상일이 공정하지 않다고 원망했으며 스스로 불운한 아이라고 여겼다.
가장 불운했던 일은 내가 6살 때 부모님이 이혼한 것이었다. 그때 다른 친구들은 따뜻한 가정에서 부모의 보호를 받으면서 자랐으나, 나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했기에 겁이 많아졌고 열등감과 반항심이 생겼으며, 내성적이고 말하기 싫어하는 성격을 형성했다. 8살 때 재가한 어머니를 따라 계부 집에 왔다. 말다툼하고 싸움질하고 맞고 욕먹는 것은 내 생활의 일부가 되었으며, 말다툼 중에 늘 상처를 입었다. 한번은 맞아서 온몸에 멍이 들었고 엉덩이가 부었으며 다리를 절뚝거렸다. 지금도 회상하면 여전히 눈에 선하다. 집에서 다투기만 하면 나는 부근에 있는 몇 개 마을의 동급생 집으로 도망가서 이 집에서 며칠 묵고 저 집에서 며칠 묵었다. 2주 동안이나 집에 들어가기 싫었던 때도 있었다.
10살 때의 겨울, 계부와 싸운 후 자전거를 타고 밖으로 나가 빙설이 두껍게 덮인 10㎞가 넘는 길을 달빛 아래 단숨에 달려 외할머니 집에 가서는 울며 하소연했다. 13살 때는 계부가 내게 칼을 던졌으나, 내가 위로 뛰어 칼은 가랑이 밑으로 지나갔다.
중학교에 다니던 때를 돌이켜보면 자주 무단결석하고 축구를 하러 갔다가 선생님에게 붙잡혀 사무실에서 오전 내내 벌섰다. 수업 시간에 장난치자 선생님이 나를 연단에서 찰 때도 있다. 동급생과 싸워 교도 주임에게 뺨을 맞기도 했으며, 동급생과 완제품 종이 상자를 훔쳐 팔기도 했다. 온종일 PC방에서 보낸 적도 있었다.
14살 때 가족은 나를 선반 작업장으로 보내 수습생으로 일하게 했는데 하마터면 손이 기계에 말려들어 갈 뻔했던 적이 여러 번 있었다. 기숙사에서 여러 연령대의 아저씨나 할아버지와도 싸웠고 맞기도 했으며 심지어 몽둥이에 맞은 적도 있었다. 인생의 온갖 고초를 그 나이에 이미 다 맞보았다.
어릴 때를 회상하면 위험이 닥칠 때마다 곤경에서 벗어나고 위험에서 벗어났던 것이 은연중에 운명의 배치가 있었던 것 같다.
2. 기연이 닿아 귀인을 만나서 바른길을 걷다
나는 14살 이전에는 내가 불운한 아이라고 여겼다. 다른 사람의 눈에는 내가 오만불손하고 배운 것도 없고 재주도 없는 전형적인 불량소년이었다. 나는 14살이 넘어서야, 그때 할아버지와 할머니, 고모, 이모, 친아버지, 친어머니가 나의 장래를 걱정했다는 것을 알았다. 친어머니는 아무런 대책이 없었고 친아버지도 내게 관여할 수 없었다. 한번은 이모가 멀리까지 친아버지를 찾아가서 빨리 조처를 하지 않고 나를 이대로 내버려 두면 나는 언제든지 감옥에 들어갈 것이라고 했다.
가족과 친척들이 나 때문에 가슴을 태우고 있을 때, 누가 배치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나는 할머니 집에서 내 이 세상의 귀인인, 도시에서 다년간 일한 고모할머니를 만났다. 내가 아주 어릴 때 만났던 적이 있었던 우리는 서로 알아보지 못했다. 고모할머니는 내게 누구 집 아이인지 물었다. 고모가 우리 집의 샤오후이(小輝)라고 했다. 고모할머니는 내 모습을 보고 내 상황을 알아본 후 말을 몇 마디 하지 않고 다른 방에 갔다. 그 후 고모할머니는 그때 자기의 느낌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너를 봤을 때 누가 거리에서 깡패를 데리고 온 줄 알았다. 머리를 길게 길러서 머리 한 가닥은 남색으로, 한 가닥은 황색으로 염색했으며, 가랑이가 넓어 신발까지 덮은 큰 나팔바지에 긴 허리띠를 걸치고 있었다. 네가 바로 너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몹시 아끼는 손자 샤오후이라는 것을 알고는, 또 네가 소년공이고 위험한 상태에 처해 있다는 것을 알고는 괴로워서 울고 싶었다. 그때 나는 ‘반드시 이 아이를 구하겠다’고 생각했다.”
그 후 나는 고모할머니의 조율과 배치로 소년공의 생활을 마치고 계부와 친어머니를 떠나 내가 늘 그리워하던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생활했다.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고모할머니의 주선으로 도시의 한 중등 전문학교에서 공부했다. 학교는 고모할머니 집에서 가까웠다. 입학하기 전에 먼저 고모할머니는 내가 원하지 않았으나, 나를 미용실에 데리고 가서 긴 머리를 잘라 상고머리로 만들었다. 그다음 도시의 친척에게 연락하여 내게 정상적인 아이가 입는 옷을 가져다주었다. 이리하여 나는 외관상으로 좋은 아이가 되어 학교에 갔다.
나는 주말에 늘 고모할머니 집에 갔다. 고모할머니는 내가 잘 생활하도록 돌보아주었을 뿐만 아니라, 좋은 사람이 되는 이치를 말해줄 때가 많았고 어릴 때부터 조금씩 쌓아온 불량한 습관을 바로잡아주었다.
3년간 중등 전문학교에 다니는 중에 고모할머니의 가르침으로 노인을 공경하고 선생님과 선배를 존중하며 다른 사람에게 잘 대하는 전통이 서서히 내 마음에 들어섰다. 변이된 예전의 언행과 관념도 차츰 고쳤다. 그때의 가장 큰 변화는 생부와 계부를 그렇게 미워하지 않았고 그들을 이해하고 포용하게 된 것이었다. 경솔하고 놀기를 좋아하던 행위도 버리고 착실하게 일하는 성실한 사람이 되었다.
3. 대법을 만나 새 생명을 얻다
나는 중등 전문학교에 다닐 때 무의식중에 프랑스의 예언가 노스트라다무스가 쓴 ‘제세기’를 보고 책 속의 정확한 예언에 감탄했다. ‘정말 신이 있구나!’ 나는 그때부터 신이 있다는 것을 믿었고 인생관과 세계관이 크게 변했다. 이 세계가 예전과 다른 것 같았다. 이 일은 내가 그 후 법을 얻는 데 기초가 되었다.
2007년 고모할머니가 내게 파룬따파(法輪大法)가 무엇인지 알려주었다. 대법이 박해받고 탄압받는 진상도 알려주었다. 나는 대법에 들어서서 법 공부하고 수련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때 순수한 마음으로 대법에 들어섰기에 심성이 빨리 제고되었다. 그때는 학교를 떠나 취직했던 시기였다. 시간만 나면 사부님의 ‘논어’와 ‘홍음’을 외웠다. 퇴근해서 외웠으며 길에서도 외웠고 시시각각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잊지 않았다. 평소 직장 일에서나 생활에서나 항상 법의 표준으로 나 자신을 단속했다.
어느 날 내가 일하는 호텔의 홀에서 붉은 종이 한 뭉텅이를 보았다. 가까이에 가 보니 백 위안의 돈이었다. 은행에서 갓 찾은 새 돈 같았다. 나는 누군가가 급하게 일을 보느라 바닥에 떨어뜨린 것으로 생각하고 재빨리 주워 로비에 맡기고 분실자를 찾았다. 그 돈은 거의 내 두 달 치 급여에 해당하는 금액이었기에 남몰래 주머니에 넣었다면 생활에 큰 도움이 되었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나는 수련인이고 대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사부님께서는 내게 ‘진선인(眞ㆍ善ㆍ忍)’을 가르치셨고 다른 사람을 생각하라고 가르치셨다. 다른 사람의 이익을 해쳐 가장 소중한 덕(德)을 잃어서는 안 된다. 돈을 맡기는 순간 말로 표현할 수 없이 기뻤고 마음이 편안했다.
고향의 농촌에서 땅이 개발되자 사람들은 자기 몫의 보상금을 받게 되었다. 내가 집에 없을 때 내 몫을 생부와 계모가 받아 갔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이 사실을 안 후 이 돈은 손자의 목숨과도 같은 것으로 생각하고 반드시 받아 와야 한다고 여겼다. 그리하여 울고 싸웠으나, 받아 오지 못해 촌 지도자를 찾아갔다. 하지만 이미 서명하고 돈이 지급되었기에 바꿀 수 없다고 했다. 희망이 없어지자 할아버지는 출근 시간에 내게 급히 전화하여 이 일을 알려주었다. 나는 평온하게 “저는 누구도 탓하지 않습니다. 할아버지도 자책하지 마세요. 그들이 가져갔으면 그만두세요. 그들에게 달라고 하지 맙시다.”라고 했다. 내가 대법을 수련하는 사람이 아니었다면 나는 집에 달려가 생부와 계모에게 내 몫을 달라고 했을 것이며, 심지어 크게 싸워 사이가 틀어지고 원수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사부님께서 내게 ‘진선인(眞ㆍ善ㆍ忍)’을 가르치셨고 대인지심(大忍之心)을 가르치셨으며, 평온한 마음으로 생활 중에 부딪힌 모든 일과 사람을 대하라고 가르치셨기 때문이다. 사부님께서는 “우리 수련인은 자연스럽게 되어감에 따름을 중시하는데, 당신의 것이라면 잃지 않을 것이고, 당신의 것이 아니라면 당신은 다퉈서도 얻지 못한다.”[2]라고 말씀하셨다. 누군가가 정말 당신의 것을 가져가고 당신을 해쳤다면 그는 잃는 것이 더 많을 것이다. 이것은 모두 초범적인 이치다. 나는 이 모든 것을 알기에 다투지 않았고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으며, 미워하지 않고 참았다. 가정의 전쟁이 대법제자의 일념 속에서 평정되었다.
지금의 중국은 직장에서 동료 사이에 서로 고발하고 상사 사이에도 서로 배척하며, 상급자와 하급자는 서로 불복하면서 암투를 벌이고 서로 속고 속여 모든 사람이 불안을 느끼고 있다. 다른 사람이 내게 번거로움을 주고 일을 더 시켜도 나는 평상심으로 대했고 편안한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내가 일을 더 한다고 해서 힘들어 죽을 지경이 되는 것도 아니고, 상사가 두어 마디 훈계한다고 해서 살갗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고 조급해하지 않고 원망하지 않았다. 이런 태도는 예전의 나와는 전혀 달랐다. 나는 법을 얻은 후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를 알았고 직면한 일을 어떻게 대할 것인지도 알았다. 이것은 모두 대법이 내게 준 것이다.
훗날 고향의 농촌을 개발하게 되어 나도 도시에서 고향으로 돌아와 공사 현장에서 창고를 관리했으며, 전체 공사 현장의 진․출입을 포함한 모든 자료를 관리했다. 속인 눈에는 이것은 수입이 짭짤한 보직이고 돈을 긁어모을 좋은 기회다. 아무렇게나 영수증을 하나 끊으면 몇만 위안을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수련인의 표준으로 나 자신을 단속하면서 물품을 가지거나 탐하지 않았고 뇌물을 받지 않았으며, 사리사욕에 눈이 멀어 법을 어기는 행위를 하지 않았다.
나는 고향에 집을 지으려고 했다. 현재의 사회 풍조에서 그때 내가 맡았던 직무를 맡은 사람이라면, 일반적으로 자기 돈을 들이지 않고 집을 지을 수 있다. 철근, 시멘트, 모래, 전선, 인력은 아무렇게나 영수증을 몇 개 끊으면 그 비용을 지출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대법을 수련하기에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대법으로 가늠해야 한다. 그래서 내 고향의 집은 내 급여와 할아버지, 할머니, 어머니가 지원해 준 돈으로 천천히 지었다. 마을 사람들은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많은 사람이 나를 바보라고 여겼다. 직위가 있는데도 그것을 이용하지 않고 자기 돈으로 집을 짓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것이며, 그 자리가 아깝다고 했다.
나는 이런 말을 듣고 다음과 같은 사부님의 말씀을 진정으로 이해했다. “우주의 연화(演化) 과정 중에서, 특히 현재 상품경제의 큰 물결로 진입한 후, 많은 사람의 도덕이 상당히 패괴(敗壞)되어 우주의 眞(쩐)ㆍ善(싼)ㆍ忍(런) 특성과 갈수록 멀어졌다. 속인 중에서 조류(潮流)를 따라 걸어온 사람들은 인류의 도덕이 패괴한 정도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아직도 좋은 일로 여기는데, 오직 心性(씬씽)을 수련해 올라온 사람이 돌이켜 보기만 하면, 인류 도덕의 패괴가 이처럼 두려운 지경까지 왔음을 비로소 인식할 수 있다.”[2] 나는 마음에 법이 있기에 다른 사람이 나를 뭐라고 해도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다.
그때 내 주위는 유혹으로 넘쳤다. 나는 법에서 정진하고 착실하게 수련했기에 정력(定力)이 매우 깊었다. 다른 사람이 밥을 먹자고 초대해도 나는 가지 않았고, 다른 사람이 마작하러 가고 노래 부르러 가도 나는 가지 않았으며, 무료 관광도 나는 가지 않았다. 이 거리 저 골목을 돌아다니고 잡담하고 오락하는 데도 나는 가지 않았다. 속인의 어떤 즐거운 일이든 다른 사람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여기는 일이라도 나는 거들떠보지 않고 사회의 일을 담담하게 보았다. 무슨 명이요, 이익이요 모두 마음에 두지 않았다. 세인이 다 도취한 것에도 나만은 도취하지 않고 깨어 있었다. 당시 바로 이런 느낌이었다. 법에서 느낀 것은 진실하고 아름다웠다.
많은 사람이 총망히 오가고 있다. 많은 사람이 바쁘게 오가는 중에서 끊임없이 공명과 이익, 관록(官祿), 부귀영화, 안일과 향락을 누리고 있다. 하지만 세월이 흐름에 따라 사람이 구한 모든 것은 결국 연기와 같아서 오래 가지 않는다. 대법에 들어선 그 순간 생명은 바뀔 것이고 대법에 들어서야 진정하게 생명의 의의를 인식할 수 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시: ‘홍음4-생명은 천상에서 왔다네’
[2]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轉法輪)’
원문발표: 2019년 12월 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12/5/39663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