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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실에서 인쇄소로, 인쇄소에서 방송국으로

한 입자의 수련의 길

글/ 홍콩 대법제자

[밍후이왕]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2015년부터5년간 홍콩 매체 항목에 참여하면서 저는 상상하기 어려운 수련의 길을 걸었고, 법 속에서 수많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지금부터 여러분과 함께 교류하려 합니다.

인쇄소 일을 시작하다

저는 학교에 다니는 동안 평소에는 법 공부와 연공 외에도 신문 보급소에서 진상 신문을 배포했고, 도로변 가게에 따지웬(大紀元) 신문을 배포했으며, 진상 거점에서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했습니다. 저는 이전에 외과 의사였는데 좀 더 깊이 공부하기 위해 의과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밟았습니다. 그런 속인의 직무와 인쇄소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습니다. 저도 이번 생에 인쇄소에서 일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수련인이기 때문인지, 수련의 길을 걷는 동안 상상도 못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어느 날,불학회 협조인이 저를 찾아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저에게 인쇄소에 사람이 부족한데 가서 도와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인쇄소 일은 모두 야근이고, 저는 낮에 공부해야 해서 그런 시간 배치가 얼마나 힘들지 생각만 해도 알 수 있었습니다. 저는 다른 수련생과 이 일에 관해 교류했습니다. 수련생은 저에게 공부하면서 신문을 배포하면 충분하고, 법 공부와 연공을 보장할 수 있다면서, 공장에 나가면 법 공부와 연공 시간이 없어 극단으로 나아가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협조인이 제 도움을 구하는 것은 틀림없이 사람이 몹시 부족하기 때문이고, 수련인이 어떤 일을 만나든 모두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시간 안배가 정말 아주 곤란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협조 수련인에게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습니다.

한 차례 가부좌하는데, 사존의 법이 한 구절 제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우리 法輪大法(파룬따파), 이 한 법문은 우주의 최고 표준-真(쩐)・善(싼)・忍(런)을 동시에 수련하므로, 우리가 연마(煉)하는 공(功)은 대단히 크다.”[1]

저는 홀연히 깨달았습니다. 제가 학교에서 진정하게 합격한 학생이 되는 것은 진(眞)을 수련하는 방면이고, 제가 인쇄공장에서 사람을 구하는 항목에 참가하는 것은 선(善)을 수련하는 방면이며, 현재 두 방면의 시간 배분에 곤란이 나타난 것은 바로 인내심을 이용해 곤란을 극복하는 것이니 인(忍)을 수련하는 방면이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진선인(眞·善·忍)을 함께 수련’하는 길이었습니다. 다시 다른 동료 수련생의 경험을 보면 모두 세 가지 일을 잘하는 동시에 각종 곤란을 극복하고 여러 방면을 잘 원용(圓容)하는 것이었으니, 바로 ‘진선인을 함께 수련’하는 길이었습니다. 제 마음은 활짝 트였습니다. 저는 그 협조 수련생에게 저의 결정을 분명히 알려주고 인쇄공장을 돕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렇게 낮에는 학교에서 연구과제를 수행하고, 저녁에는 서둘러 공장에 가서 인쇄 일을 했습니다. 일을 마치면 항상 새벽 4~5시였고,잠깐 눈을 붙이고는 서둘러 버스를 타고 등교했습니다. 연구가 많은 데다 보고서를 쓰고 시험을 칠 때는 24시간 동안 잠을 잘 수 없었고, 하루에 한 끼를 먹는 일이 자주 발생했습니다. 저는 곤란을 겪을 때마다 마음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우리는진선인을 함께 수련하고, 우리가 연마하는 공은 아주 크다. ’인쇄공장에서 처음 1년 반 동안은 미국 법회에 참가한 것 외에는 하루도 휴가를 내지 않았습니다.

인쇄공장에서 전문적으로 일하다

저는 인쇄공장에 다니는 동안 공장의 인쇄 담당자가 모두 속인이며, 인쇄기술을 가진 대법제자가 없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사존께서는 우리에게 알려주셨습니다. “사람 마음은 안정되지 못한 것으로, 속인에게 정념이 있으리라고 여기지 말라.”[2]

사악의 교란과 파괴를 한 차례 당하면서 인쇄공장에 아주 큰 변화가 일어나 공장 운영이 극도로 곤란해졌습니다. 저는 현실을 보며 큰 괴로움을 느꼈고, 스스로 기술력을 갖지 못하는 것이 항목에 커다란 누락임을 알았으며, 인쇄기술을 배워 부족함을 메우겠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생각을 일으키고 최종 결정하기까지 저는 사람 마음의 발악을 경험했습니다. 어려서부터 제 학습 성적은 아주 좋았고,유명한 의과대학에 진학해 졸업 후에는 외과 의사가 됐고, 계속해서 홍콩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었습니다. 공장에서 노동자가 되는 것은 저에게 상상도 못한 일이었습니다. 저는 공장에서 일손을 돕는 노동자 일을 계속할 생각이 없었고, 협조인도 이미 저를 따지웬 편집국에 배치하기로 계획하고 있었습니다. 인쇄노동자의 업무는 철야 작업을 하면서 기계, 잉크와 접촉하는 더럽고도 힘든 일이며, 그래서 많은 사람은 이 일을 회피합니다.

결국 저에게 결정을 내리게 한 것은 그래도 사부님의 설법이었습니다. “땅 위의 돌은 이리 차이고 저리 차이며 가지려는 사람이 없는데, 그러면 나는 그 돌을 줍겠다.”[1]

저는 깨달았습니다. 인쇄노동자의 업무는 곧 지상의 돌과 마찬가지로 이리저리 차이고 아무도 가지려 하지 않지만, 우리의 사람을 구하는 항목에서는 대단히 중요하며, 당면한 문제의 소재이니 그럼 저는 이 돌을 줍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법리가 명확해지자 다른 염려는 모두 사람 마음의 시험에 불과해 제 결심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항목 책임자에게 제 생각을 말하고 인쇄기술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현재 우리 인쇄공장에서는 이미 자체 인쇄 조직을 갖추어 신문을 독립적으로 인쇄할 수 있고, 게다가 독자적으로 기계를 가동해 신문을 찍을 수 있는 팀장 2명을 양성했습니다.

인쇄공장에서 얻은 수많은 것들

돌을 줍는 것이 아주 간단한 일로 보이지만, 정말로 현실과 맞닥뜨리게 되면 돌을 그렇게 쉽게 주울 수 없다는 걸 발견할 것입니다. 먼저 부딪히는 건 업무 환경입니다. 저는 이전에 수술실에서 무균 수술복을 입고, 무균 장갑을 끼고, 무균 기구를 사용했습니다. 지금은 코를 찌르는 기계 냄새를 맡으면서 늘 손 전체, 심지어 온몸에 잉크를 묻히고, 기계가 내뿜는 커다란 소음을 들으면서 기름 묻은 공구를 사용합니다.

이런 하늘과 땅의 차이를 정말 참아내기가 어려워서 저는 일하는 동안 퇴근 시간을 고대했고, 일찍부터 그런 고통을 줄이기 위해 공구 가게에서 방독 마스크와 안전모도 샀습니다. 가끔 저는 이 선택이 도대체 옳은지 틀렸는지를 스스로 반문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법리상에서는 그것들이 단지 사람 마음의 장애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이전의 신분과 직무를 여전히 마음에 두고 있었는데, 그것은 명리심이 드러난 것이었고, 주변 환경을 참고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관념이 충격을 받은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런 신분과 직무의 변화는 모두 인간의 득실이며, 연기처럼 사라지는 것으로, 기름얼룩과 열악한 환경도 시험이라고 자신에게 일깨워 주었습니다. 저는 수련인의 마음으로 일체를 대하고 이런 사람 마음을 버리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제가 점점 사람 마음을 내려놓고 그것들을 담담하게 보게 됐을 때, 저는 영욕에 흔들리지 않는 감각을 느꼈습니다. 사회로 시선을 돌리면 고위관리에서 서민까지 저는 구별 없는 평상심으로 각 계층을 대할 수 있게 됐습니다. 기름얼룩에 개의치 않고부터는 아주 담담하게 기계 속으로 들어가 수리할 수 있었습니다. 주변 환경에 대해서도 아주 강한 인내심을 갖게 되어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 없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대법 항목에 필요하다면 만약 다시 한번 선택한다고 해도 이렇게 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인쇄공장에서 일하는 동안 저는 또 아주 많은 다른 마음을 수련해 버렸습니다. 예를 들어 번거로움을 걱정하는 마음, 쟁투심, 일하는 마음, 타성 등등입니다. 인쇄공장에서의 경험을 돌아보면 그곳은 제 수련에 좋은 곳이었습니다.

사존께서 신변에 계시다

인쇄공장에서 일하는 것도 고되고 힘들기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사람을 구하기로 마음을 먹자 많은 신기한 일이 일어났고, 사존께서 신변에 계심을 체험하게 됐습니다. 간단하게 두 가지 예를 들겠습니다.

한번은 제가 인쇄기 위에서 위치를 옮기기 위해 계단으로 내려가다가 마음이 급해서 디딜 곳을 제대로 보지 않아 발을 헛디뎠고, 계단 위에서 반 미터 아래의 콘크리트 바닥으로 넘어졌습니다. 제가 즉시 기어 일어나자 옆에 있던 수련생이 괜찮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괜찮다고 했습니다. 저는 옷을 털고 일을 계속했습니다. 나중에 휴식 시간에 제가 그 일을 생각하니 정말 신기했습니다. 평소에는 넘어지거나 부딪힌 곳이 한동안 아팠는데, 이번에는 그렇게 높은 계단에서 콘크리트 바닥으로 떨어지고도 조금도 아프지 않았고, 당시 감각은 마치 쿠션에 떨어진 것 같았습니다. 저는 그것이 사존께서 저를 위해 자비롭게 난을 막아주신 것임을 알았습니다.

또 한번은 인쇄기 회로가 고장이 나서 기계 2대를 연결해 돌릴 수 없게 됐습니다. 전기 기술자를 불렀더니 회로 기판이 고장나 바꿔야 한다고 했습니다. 새 기판을 공장까지 빨리 가져와도 며칠이나 걸리고,그 며칠 동안은 1대로만 인쇄해야 했습니다. 배포하는 수련생들도 신문을 한 부씩 싼 다음 묶음을 만들어 달라고 했습니다. 업무량이 늘어 몹시 힘들었습니다. 저는 제가 수리해서 다른 수련생들의 부담을 덜어주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전기 회로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서 똑같은 기판 3개를 한 데 놓고 테스트 기기로 기판 위의 회로를 서로 비교하며 검사했습니다. 저는 문제가 있는 곳을 찾고 싶었지만, 온밤을 새워도 문제가 있는 곳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이튿날인 12월 9일에는 홍콩 파룬궁 수련생들이 국제 인권기념일을 맞아 반박해 집회와 행진을 했습니다. 행진하는 가운데 저는 배포하는 동료 수련생이 곤란을 겪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노인으로, 비바람을 무릅쓰고 신문을 배포하는 것이 몹시 고생스러웠습니다. 저는 정성을 다해 사존께 가지를 청하면서 기계가 정상적으로 가동돼 노년 수련생들을 너무 고생시키지 않게 해 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행진이 끝난 즉시 공장으로 돌아가 회로판을 끼우자 기계가 모두 정상적으로 돌아갔습니다. 당시 저는 벅찬 감동에 휩싸였고 사존께서 자비를 베풀어 기적을 보여주신 것임을 알았습니다. 이틀 후에 새로운 기판이 왔고 그 기술자를 불러 테스트를 부탁했습니다. 그는 지난 이틀 동안 신문을 어떻게 찍었느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제가 사부님께 간곡히 도움을 부탁드렸더니 기계가 괜찮아졌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대단히 놀라워하면서 이렇게 신기할 수가 있느냐고 말했습니다.

방송국 일에 참여하다

예상치 못한 일이 또 한 번 발생했습니다. 어느 날, 책임자가 저에게 홍콩 NTD TV에서 생방송,스튜디오 설치 등 업무를 확대해야 한다며, 확대 업무를 맡아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노대법제자로서 저는 책임자 업무의 중요성을 아주 똑똑히 알고 있었습니다. 당시 저는 많은 생각을 하지 않고 솔직하게 말했습니다. 저는 비록 제가 이 방면의 것을 잘 모르지만, 노력해서 배울 것이며 마땅히 해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먼저 득실을 걱정하는 마음이 올라왔습니다. 이것은 일반인들의 영역이고, 전기 기술은 요구 수준이 아주 높은 것인데, 제가 정말 감당할 수 있을지, 만약 잘하지 못하면 어떻게 할지 걱정됐습니다. 또 인쇄공장 일은 어떻게 할지, 방금 공장 일을 확대하기 시작한 데다, 제가 수련생을 교육하고,인쇄 팀을 만들어야 하는데, 지금 방송국에 들어가면 인쇄공장의 업무가 정체되는 것은 아닌지 마음에 걸렸습니다. 또한 지금 방송국 일을 제로에서 시작하고, 기술을 처음부터 배워야 하며, 업무에 맞는 사람들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지도 모르고, 이 일에는 반드시 팀워크가 맞아야 하고, 지금은 아무것도 없는데 나중에는 어떻게 할 것인지 등등을 걱정하는 마음이 올라왔습니다.

그런 혼란스러운 사람 마음은 저를 몹시 망설이게 했지만, 제 마음속 주관은 오히려 아주 명확했습니다. 수련인으로서 만난 모든 일은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아주 분명히 알았고, 이것은 사부님께서 저의 제고를 위해 새롭게 배치하신 수련환경이며, 혼란한 사람의 마음은 바로 제가 버려야 할 집착임을 알았습니다. 게다가 제가 인쇄공장에서는 주로 기계를 다뤘지만, 방송국에서는 사람을 대하게 되고, 사람 마음의 시험과 연마야말로 더욱더 어려운 수련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사람 마음의 교란을 제거해가며 방송 기술과 스튜디오 설계와 텔레비전 프로듀서 기술 등을 제로에서부터 착실하고 착실하게 배웠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를 끈기 있고 세밀하게 도와주시고,저의 기초적인 문제에 해답해 주신 뉴욕 본부의 수련생에게 큰 감사를 드립니다. 끊임없는 학습과 탐색과 실패의 경험을 종합하면 우리는 방송팀을 설립했을 뿐 아니라 대형 집회 행진 활동에서 여러 대의 카메라로 안정적인 생방송 촬영을 할 수 있게 됐고, 다시 하나의 화면으로 송출하게 했습니다. 홍콩의 진실한 상황을 가장 먼저 본부에 발송하고,전 세계에 발송하게 했습니다. 현재 스튜디오도 착착 건설되고 있어 아주 빨리 방송에 투입되어 중생 구도에 능력을 발휘할 것으로 믿습니다.

맺음말

지난 몇 년간 매체 항목 수련의 길을 회고하면 예측할 수 없는 일이 숱하게 발생했습니다. 저는 망망대해 속의 작은 배처럼 온갖 급류와 소용돌이를 겪었습니다. 저는 지금 그 일체에 대해 더는 뜻밖이라는 느낌이 없고, 그 한 걸음, 한 걸음이 사실은 모두 필연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의 입자가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수련의 길을 가면서 반드시 겪어야 할 것이었습니다.

사부님의 거대한 정법 형세 속에서 저는 하나의 입자로서 무조건 정법 형세의 필요에 응할 것입니다. 가야 할 곳이 있다면 그곳이 어디든 갈 것이며, 제가 해야 할 일을 모두 잘할 것이며, 어느 곳에 가든 제 마음은 한결같이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사부님과 법에 대한 믿음, 그리고 착실한 수련입니다!

이상은 제가 있는 층차에서의 얕은 깨달음이니 적절하지 못한 곳이 있다면 자비로운 지적을 바랍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주:
[1]리훙쯔(李洪志)사부님의 저서: ‘전법륜’
[2]리훙쯔 사부님의 저서: ‘정진요지3-청리’

(2019년 씬탕런,따지웬 법회 발언고)

 

원문발표: 2019년 12월 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교류>해외법회 원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12/5/39660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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