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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체 업무에서 서약을 실천하다

글/ 뉴욕 대법제자

[밍후이왕]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중국에서 나와 직접 매체에 들어간 저는 비교적 오랜 시간이 걸려서야 마음을 정착하였습니다. 오늘은 매체에서 몇 년간의 경험을 사부님께 보고 드리고 수련생 여러분들과 의견을 나누고자 합니다. 법에 있지 않은 곳은 여러분들께서 자비롭게 시정해주시기 바랍니다.

박해당하기 전, 저는 매체에서 일한 적이 있었고 중국 국내의 몇몇 유명 언론인들로부터 전문적인 기술을 배운 적도 있었습니다. 이런 경험은 저를 자아에 매우 집착하게 했습니다. 매체에 오기 전 저는 자신이 매체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이미 상상하고 있었습니다.

매체에 들어간 후, 전반 환경은 제가 상상했던 것과 너무 달랐습니다. 미국에 와서 매체에 막 들어온 그런 열정과 흥분은 이내 사라졌습니다. 온종일 기분이 저조하였고 시간이 지날수록 저 자신이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며 맹목적으로 일하는 것 같아 매체를 떠나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매일 억지로 회사에 갔고 표면적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으나 실제로는 불편했습니다. 사람은 매체에 있지만, 오히려 밖에 동떨어져 있는 그런 느낌은 지금 생각해도 여전히 매우 괴롭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때론 매체에서 당신들을 쓰고, 때론 항목에서 당신들을 쓰는데,당신들의 생각, 그런 당 문화의 극단적인 작법ㆍ거짓말ㆍ대충대충 하는 업무 작태는 정말로 그들로 하여금 못 견디게 한다.”[1]

사부님의 이 단락의 설법은 마치 저를 말씀하시는 것 같아 저는 천천히 자신을 바로잡기 시작했습니다.

2017년 11월, 출근길에 회장을 만났습니다. 그는 서양의 주류 매체들은 매일 ‘오늘 뉴스는 무엇을 보는가’(대략적인 뜻) 코너를 매일 만들고 있으며 인터넷에서 매우 인기 있다고 말했습니다. 회장은 제게 해보라고 제안했습니다. 저는 받아들였지만, 마음속으로는 ‘나에게 읽게 하고 녹음하게 해도 다 되지만 원고는 누가 작성하는가?’라고 생각했습니다. 게다가 당시에 저는 여전히 언젠가 곧 매체를 떠나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는 이것이 ‘공산당 문화(黨文化)’의 표현이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이 일이 있고 난 뒤 저는 잊었지만, 회장은 잊지 않았습니다. 며칠 지나서 그는 제 자리로 와서 저에게 물었습니다. “준비는 어떻게 되고 있나요?” 저는 난처해하며 아직 잘 생각해보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회장은 바로 협조인을 찾아서 우리에게 서둘러 해야 한다고 알려주었습니다. 저는 그제야 회장이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하려고 한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갈피를 잡지 못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고, 회장이 원하는 형식이 무엇인지도 몰랐습니다.

또 며칠 뒤,회장이 와서 말했습니다. “이번 주에 저는 성과를 봐야겠습니다.” 저는 자발적으로 가서 협조인을 찾아 논의하며 말했습니다. “아니면, 해볼래요?” 일시적으로 원고를 작성할 사람을 찾지 못해 저는 말했습니다. “아니면, 제가 작성해볼까요?” 사실 자발적으로 자청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자신이 없었습니다. 예전에 중국 매체에 있을 때는 거의 모두 다른 사람이 잘 작성한 것을 저는 따라서 읽었습니다.

협조인은 저를 도와서 주제를 선정하고 원고를 심사하는 매우 경험이 있는 수련생 한 명을 찾았고 저를 도와 녹음 제작하는 다른 수련생 한 명도 찾았습니다. 이렇게 우리 네 사람으로 구성된 작은 프로그램 ‘뉴스 포인트(新聞看點)’가 추진되었습니다.

저를 도와 원고 심사하는 수련생이 외지에 있어서 인터넷을 통해서만 연락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자신이 공산당 문화가 매우 심한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가 문제가 있는 곳을 제기하면 저는 모두 성심껏 받아들이고 수정했습니다. 초기 단계에서는 반복적으로 한 문장을 여러 곳 수정해야 했습니다.

수련생이 원고를 심사할 때면 직접 수정하지 않고 저에게 어느 곳에 문제가 있는지 알려주어 제가 스스로 수정하게 했습니다. 한 번에 안 되면 두 번,두 번에 안 되면 세 번에 걸쳐서 했습니다. 이것은 당연히 시간을 많이 들여야 했지만, 오히려 저는 끊임없이 자신의 문제를 발견했습니다. 그녀는 긍정하거나 요구하는 말투를 매우 적게 사용하면서 저와 의견을 나누었을 뿐만 아니라 가능한 논의하는 말투였습니다. 매우 분명한 일이라도 그녀는 논의하는 말투를 사용했습니다.

수련생은 사람에게 강요하는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저에게 자신의 문제를 인식하게 했습니다. 이전에 저는 사람과 지낼 때 특히 가족과 함께 있을 때 모두 남에게 강요했습니다. 남이 저의 의견을 듣지 않기만 하면 저는 화가 나서 야단이었습니다. 수련생은 제가 원고를 작성할 때 지나치게 ‘절대적’이라고 여러 차례 지적했고 제가 말을 할 때 여지를 남겨야 한다고 반복적으로 알려주었습니다.

수련생과 오랜 기간 의견을 나누면서 저는 그녀의 모습에서 자신과의 격차를 자주 보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도움으로 저의 습작은 조금씩 제고되었습니다. 비록 여전히 문제가 있지만 이미 매우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아내가 말했습니다. “당신은 공산당 문화가 이렇게 심한데 누가 당신과 협력하겠어요. 매우 큰 용량이 있어야 하겠어요!”

작년 3, 4월이 되었을 무렵, 갑자기 원고작성이 매우 어렵게 느껴졌습니다. 저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다고 생각했고 매일 너무 피곤했으며 심지어 출근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일요일에 침대에 누워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고 조용히 누워만 있고 싶었습니다.

저는 다시 회사를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내와 말했습니다. 그녀는 위로하거나 격려하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녀가 물었습니다. “많이 힘들죠.제가 당신을 보더라도 많이 힘들어요. 그런데 당신은 무엇을 하러 온 것인가요? 사부님께서 당신에게 이만한 능력을 주신 것은 당신에게 매체에서 사용하라고 주신 것이 아닌가요?” 이상한 일이지만 집에 오기만 하면 매우 피곤했지만, 다음날 출근해서 업무에 몰입하기만 하면 피곤한 느낌이 사라지곤 했습니다.

원고를 심사하는 수련생도 대략 저의 상태가 매우 좋지 않다는 것을 느꼈을 것입니다. 하루는 그녀가 저에게 자신은 매일 아침 모두 일어나서 우선 법공부를 한 다음 다시 일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저에게 아침에 먼저 30분 법공부한 다음 다시 원고를 작성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그녀는 짧은 시간 내에 두 편의 원고를 작성하는 것은 인간의 능력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일이고 반드시 사부님의 가지가 있어야만 비로소 가능하며 신의 도움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저를 매우 감동케 했습니다. 이전에는 모두 전철에서 뉴스를 훑어보았습니다. 다음날부터 저는 전철에서 법을 외우기 시작했습니다. 집을 나서자마자 저는 곧 한 번씩 ‘논어(論語)’와 기타 외울 수 있는 경문을 외웠습니다. 그날 비교적 순조롭게 원고를 완성했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격려해주고 계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이렇게 견지해오고 있습니다. 저는 이전보다 쓰는 것이 숙련되었고 수련생의 수정도 기존처럼 그렇게 많지 않은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전에는 두 편의 원고를 작성하려면 무척 힘이 들었습니다. 7시 무렵에 회사에 도착하여 오후 2시 넘어서까지 쓰야 비로소 원고 제출을 할 수 있었습니다.가장 길 때는 오후3시 반이 되어서야 원고를 제출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1시 무렵이면 원고를 제출할 수 있게 되었고 심지어 어떤 것은 발정념 시간 이전에 원고를 제출했던 경험도 있습니다.

어떤 때에는 수련생이 이것은 사부님께서 가지해주신 결과라고 말합니다. 어떤 수련생은 제가 이렇게 짧은 시간 내에 두 편의 원고를 작성한 것은 일반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또 어떤 수련생은 “정말 탄복해요.하루에 두 편의 원고를 작성하고 매일 견지하는 것을 저는 해낼 수 없어요”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저는 이 일체는 모두 사부님께서 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저를 통하여 글이 나타나게 한 것이며 이 과정에서 저 자신을 깨끗이 씻게 하는 것입니다.

한 번은 화제 하나를 작성하려고 반나절 동안 검색해보았지만 유용한 소재를 별로 찾지 못했고 작성할 만한 것이 없었습니다. 저는 초조해졌고 시간을 다그치기 위해 억지로 조금씩 작성했습니다. 그러나 머리는 오히려 줄곧 혼란스러워 명석한 갈피를 잡지 못했습니다. 점심 발정념 시간이 되어서 이 두 편의 원고는 몇백 자밖에 작성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멈췄고 따라서 발정념을 했습니다. 마지막 종이 울리자마자 저는 기존에 작성한 몇백 자의 글을 삭제하고 조금 전의 갈피에 따라 새롭게 시작했습니다. 40분 만에 2000자가 안 되는 한 편의 원고가 만들어졌습니다. 한 수련생과 이 일을 이야기하자 그가 말했습니다. “제가 듣기에도 너무 신기하네요.”

또 몇 번 유사한 경험이 있습니다. 컴퓨터가 낡아서 사용하던 워드 문서가 종종 다운되어 작성한 글마저 찾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매번 새로 작성한 것은 모두 매우 빠르게 써낼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기존 사고의 방향보다 조금 더 명석했습니다.

또 한 가지 일이 있었습니다. 처음에 이 프로그램을 하면서 제가 사용한 것은 거의 도태되다시피 한 컴퓨터였습니다. 타자에 문제가 없었지만, 영상 편집은 매우 느렸습니다. 그 단계에서 저는 늘 기술 수련생을 찾아가 컴퓨터 문제를 다루었고 기술부서의 단골손님이 되었지만, 문제는 늘 존재했습니다.

한동안 견지하다가 컴퓨터 문제가 갈수록 심해졌습니다. 당시에 저에게 줄 더 나은 컴퓨터가 없어서 아쉬운 대로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 번은 도저히 작업할 수가 없어서 또 기술수련생을 찾아갔습니다. 컴퓨터 사양을 검사한 후말했습니다. “이렇게 사용해왔어요?” 저는 말했습니다. “그럼요, 매일 그렇잖아요.” 그가 말했습니다. “그럼 이게 신통한 거네요? 이 final cut은 작동하려면 8기가 메모리를 필요로 하는데 당신의 컴퓨터에는 8기가 메모리밖에 없어요. 전혀 작동할 수 없다고요.” 그는 계속해서 두 번이나 말했습니다. “정말 신통하네요.”

당시 매주 저는 또 한 번씩‘핫스폿 인터랙티브(熱點互動)’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그날 업무시간은 모두 16시간 이상이었고 몇 번이나 거절하고 싶었습니다. 인사팀 관계자는 매우 놀라워하며 저에게 물었습니다. “지금 매우 잘하고 계시잖아요? 우리는 모두 당신이 요즘 눈에 띄게 발전하고 있다고 생각해요.왜 안 하려고 하세요?” 그녀는 제가 너무 피곤하게 느껴져서 거절한다는 것을 알고 말했습니다. “조금 피곤한 것뿐이잖아요?” 그녀는 저를 웃겼습니다. 아내도 말했습니다. “조금 피곤한 거죠.하지만 할 수 있다면 그래도 견지해서 해야 해요. 애초에 돈을 벌기 위해 당신은 무슨 고생이든 할 수 있었잖아요. 대법 항목인데 왜 견지할 수 없어요?”

그해 제가 감옥에서 나왔을 때 아내는 아직 집에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집에는 돈 한 푼도 없었고 쌀과 면 그리고 야채도 모두 누나가 사줬습니다. 돈을 벌기 위해서 저는 새벽 두 시에 일어나 차를 타고 매우 먼 곳에 가서 다른 사람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했습니다. 결혼식 사회 보는 일을 배우기 위해 겨울밤에는 집에 돌아오지 못하고 기차역 의자 위에서만 휴식할 수 있었습니다. 한 번은 집에 너무 늦게 돌아와 차에서 내린 곳은 집에서 20리 길(약 7.9km)이 더 남았습니다. 10위안(약1700원)을 아끼기 위해서 저는 두 시간 넘게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고 두 발에는 모두 물집이 생겼습니다.

사부님께서 “당신은 돈을 벌기 위해 그렇게 많은 고생을 하고, 당신은 다른 일을 위해 그렇게 많은 고생을 할 수 있는데, 당신은 당신의 수련을 위해서 좀 고생을 겪을 수 없는가?”[2]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안일한 마음이라는 것을 알았고 하나의 더 큰 그릇(容器)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작년 9, 10월, 한 프로그램의 메인 아나운서가 2개월 휴가를 내서 저에게 주말 메인 아나운서를 대신하게 했습니다. 이렇게 일주일 동안 저는 짧게 반나절만 휴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10월이 되어‘핫스폿 인터랙티브(熱點互動)’의 다른 사회자도 1주일 휴가를 내서 저에게 월요일과 금요일 두 번을 한 다음 이어서 다음 주 월요일 생방송을 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그 주의 수요일 오후, 저는 자신의 프로그램을 거의 완성할 무렵, 저녁에 해야 하는 ‘핫스폿 인터랙티브(熱點互動)’의 사회자가 갑자기 저를 찾아와 그녀가 몸이 매우 불편해 제가 그녀를 대신해서 밤 프로그램을 하기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생방송과 5, 6시간을 남겨둔 상황에서 저는 다소 긴장되었습니다. 다행히 화제가 낯설지 않았고 다른 수련생이 소재를 찾는 것을 도와준 덕분에 많은 시간을 절약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매우 빠르게 몇 가지 질문을 설정했고 또 프로그램 게스트와 연락했습니다. 사부님의 가지 하에 그날 밤 프로그램은 비교적 순조로웠습니다.

그 시간을 돌이켜보면 비록 길지 않지만, 강도가 높았습니다. 저는 매일 자신이 ‘속인이 일하는’ 상태에 빠지지 않도록 시간을 짜내어 법공부하고 연공합니다.

이 과정에서 저는 끊임없이 각 방면에서 피드백을 받습니다. 여기서 여러분과 두 가지 작은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프랑스 수련생이 소식을 전해와 조예가 깊은 한 매체 관계자의 피드백이라며 말했습니다. ‘뉴스 포인트(新聞看點)’는 또 하나의 고품격 프로그램이므로 “주제선정에 있어서 언어가 깨끗하고 사조가 순정해야 하며 풍격이 고상하고 미지근하지 말아야 합니다.” 동시에 그도 매우 좋은 제안을 했습니다. “합당한 이유가 있으면 목소리가 높지 않아야 합니다.” 저는 받아들였습니다.

2018년 10월 28일, 한 기자 수련생이 대통령 팀의 중국계 고문의 소식을 받았습니다. 수련생은 그 중국계 고문이 매일 중국어 자료를 수집해 대통령 팀에 정기적으로 의사 결정 참고용으로 제공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매일 모두 ‘뉴스 포인트(新聞看點)’를 보는데 이미 반년이 되었고 이 프로그램은 매우 잘 만들었다고 말했습니다.

올해 4월 1일부터 시작하여 프로그램의 방송 시간을 앞당겼습니다. 방송 시간을 보장하기 위하여 저도 자신의 업무 시간을 앞당겼습니다. 매일 새벽 2시 무렵이면 저는 뉴스를 훑어보기 시작하고 그다음 연공하고 나서 5시쯤에 집을 나섭니다.

올해 6월, 홍콩에서 ‘반송중(反送中: 홍콩 범죄인 인도 법안 반대 시위)’ 시위가 일어났습니다. 7, 8월에 협조인이 안배하여 저는 몇 번 생방송을 진행했습니다. 비록 매우 힘들었지만 매우 뜻깊었다고 생각합니다. 매번 생방송을 진행하고 난 후, 저에게는 모두 승리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사부님의 한 단락의 법을 인용해 수련생 여러분들과 서로 용기를 북돋우고자 합니다. “당신들 매 개인은 매체 중에서 모두 자기 수련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당신이 하는 이 일이 곧 당신 수련의 길이다. 이것은 틀림없다. 당신이 이 매체 중에서 어떠한 작용을 일으키든, 맡은 일이 무엇이든, 그것은 곧 당신 수련의 길이다.”[3]

사부님 감사드립니다!
여러분 감사드립니다!

주:
[1]리훙쯔(李洪志)사부님 경문: ‘2014년 샌프란시스코법회 설법’
[2]리훙쯔(李洪志)사부님 저작: ‘창춘(長春)보도원법회설법’
[3]리훙쯔(李洪志)사부님 경문: ‘2018씬탕런과 따지웬 법회’

(2019년 신탕런, 따지웬 법회 발언고)

 

원문발표: 2019년 12월 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해외법회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12/6/39661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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