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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력에 대한 얕은 깨달음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정법시기 대법제자에게 있어서 하는 일체는 모두 협력하고 있는 것으로 큰 면에서 보면 사부님의 정법에 협력하고, 작은 면에서는 수련생 사이에 법을 실증하는 중에서의 협력이다. 협력을 잘할 수 있을지는 자신의 수련 경지에 달렸다.

1. 사부님께 협력

여기에서는 자아를 내려놓는 것이 가장 관건이다. 자아를 내려놓지 못하는 것은 자신의 사상 중에 자아가 있기 때문이며 이 ‘자아’는 진정한 자신―주왠선이 아니며 그것은 후천적으로 형성된 것이다. 주왠선이 그것을 내려놓으려 할 때 그것은 긍정코 달가워하지 않을 것이며 당신이 내려놓는 것을 가로막아 나서며 당신의 대뇌에 각종 내려놓을 수 없는 이유가 반영돼 나오게 한다.

우선 그것은 ‘자아’를 내려놓는 것을 두려워한다. 자신을 고려하지 않아 상처를 입으면 어떻게 하는가? 하는 우려가 있다. 또 하나는 그것도 ‘자아’를 내려놓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으며 자신에게 어떤 장기가 있는데 발휘하지 않으면 자신을 실증하지도, 과시하지도 못하는데 이 장기는 헛된 것이 아닌가? 그것은 명과 칭찬을 구할 것이고 자신이 대단함을 실증하려 한다.

여기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주왠선에서 반영되는 염두와 ‘자아’가 반영되는 염두는 모두 같은 대뇌에서 반영되기에 만약 신경 써서 구분하지 않으면 매우 쉽게 모두 진정한 자신의 염두로 여기게 된다. 자신이 두려워하고, 자신이 구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 최종적으로 자신이 내려놓지 않으려 하는 것으로 여겨져 마음으로 매우 번뇌하며 내가 어째서 내려놓지 못하는가 하고 말한다?!

진정한 자신인 주왠선은 완전히 무사위타(無私爲他)이며 대뇌에 무엇을 두려워한다든지 무엇을 구한다든지 하는 염두를 전혀 반영하지 않는다. 대뇌에 무엇을 두려워한다든지, 무엇을 구한다든지 하는 염두가 반영될 때 단연코 그것은 자아가 반영한 염두로써 자사자리(自私自利) 한 것으로 이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때에는 사부님께서 우리를 도와 자아를 제거해주실 수 있으며 다른 한 가지 방법은 즉시 깨끗이 제거하는 것이다. 당신이 그것을 깨끗이 제거하면 그것이 이기적인 염두를 반영하지 않으며 주왠선만 남게 되기에 당신이 하는 일은 완전히 법에 있다.

여기에 하나의 문제가 있는데 사부님께서 우리를 도와 자아를 제거해주셨고, 혹은 우리 자신이 자아를 깨끗이 청리한 후 심태를 바로 했으나 얼마 안 돼 또 이기적인 마음이 있고 자아가 다시 나타난다. 이는 사부님께서 제거해주신 것, 당신이 깨끗이 청리한 것은 단지 눈앞 한 층의 것이기에 당신이 제고된 후 다음의 층에 또 있다. 대법 수련은 바로 이러하며 한층 한층 안에서 밖으로 향하여 수련한다. 그 때문에 많은 수련생은 이런 느낌이 있다. 늘 수련하고 있으나 뚜렷한 제고를 볼 수 없고 마치 모든 사람 마음이 다 있는 것 같다고. 이는 모두 정상이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물론 우리 일부 수련생은 아주 잘했지만, 잘한 수련생을 포함하더라도 원만의 정도에는 이르지 못했다. 과거의 수련인은 집착을 하나씩 하나씩 제거했다. 당신들은, 거의 모든 집착을 다 가지고 있는데, 그것들을 한층 한층 약화시키고, 약화시키고, 약화시키고, 약화시켜, 갈수록 더 약해지게 하고 갈수록 더 적어지게 하는 것이다. 나는 당신들에게 이렇게 해주는데, 대법제자가 원만에 이르기 전에 속인 중에서 정상적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정상적으로 사람 무리 속에서 사람을 구할 수 있도록 했다. 동시에 바로 이런 다 제거하지 못한 사람 마음이 있기에 또한 당신으로 하여금 사람 마음의 교란 중에서 수련할 수 있게 하고, 시시각각 자신을 각성하고, 자신을 수련하며, 대법제자의 책임을 완성하도록 하는데, 이것이 바로 위덕이고, 이것이 곧 대단한 것이며, 이것이 바로 당신들이 걷는 길이다.”[1]

그 때문에 대법 수련에서 동일한 사람 마음에 대해 번거롭게 여기지 말고 반복하여 끊임없이 닦아야 하며 수시로 안으로 찾아 끊임없이 자신을 내려놓아야 비로소 법을 실증하는 길에서 통과할 수 있다.

2. 수련생 사이의 협력

아래에 수련생 사이의 협력에 대해 말해보겠다. 바다가 수많은 하천을 수용할 수 있는 것은 박대한 흉금이 있고 용량이 커 포용능력이 강하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그것이 자신을 가장 낮은 위치에 놓을 수 있기에 수많은 하천을 바다에 흘러들게 할 수 있다.

대법제자에게 있어서 법을 실증하며 협력하는 중에서도 마땅히 바다와 같은 흉금이 있어야 하며 능히 수련생의 부족한 점을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상대방에게 어디에 부족한 점이 있다면 묵묵히 그것을 원용하고 보완해 정체로 법을 실증하는 일을 잘해야 한다. 당신이 누구이든지 나는 당신의 좋은 면만 볼 것이며 오직 당신이 법을 실증하려 한다면 나는 당신에 대해 원용하고 협력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자신을 낮은 위치에 놓아야 한다. 만약 자신을 높은 위치에 놓고 자신을 어떻게 대단하며 다른 사람에 비해 강하다고 여기면 타인에 대한 협력을 달가워하지 않게 되며 타인이 마땅히 자신에게 협력해야 한다고 여기게 되는데 이렇게 되면 협력을 잘할 수 없다.

사실 당신이 장래에 수련에서 원만해 위대한 신으로 됐다고 해도 당신의 위에는 또 무수한 더욱 위대한 신이 계시며 그들의 눈에서 당신은 여전히 보잘것없는 존재이며 단지 우주 중에서 하나의 일반적인 미립자에 불과하다. 그 때문에 어떤 생명이든지 자신이 우주에서 어떻게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반대로 자신은 단지 우주에서 하나의 작은 미립자에 불과하다고 의식해야 한다. 이런 매우 작다는 심태를 가져야 잘난 척하거나 자기중심적이지 않을 수 있고 자신이 어떻게 대단하다고 여기지 않을 수 있으며 겸손하게 타인과 지낼 수 있고, 타인을 존중하고 소중히 여기며 선하게 대할 수 있으며, 사람들과 조화롭게 아름답게 지낼 수 있다. 수련에서 집단과의 관계를 잘 처리해야 하는데, 왜냐하면 생명은 집단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만약 우주에 오직 당신 하나의 생명만 있다면 당신은 수련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집단과의 관계 문제가 없기에 선과 악에 대해 말할 나위가 없기 때문이다.

수련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겸손한 심태가 있어야 자신을 낮춤에 있어서 기꺼이 하며 쟁투하지 않고 타인과 비교하지 않으며 타인을 업신여기지 않고 또 타인을 질투하지 않는다. 그리고 불복의 마음이 없고 자신을 과시하지 않으며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자신을 실증하려 하지 않으며 또 교만하지 않고 자심생마하지 않으며 사람을 미혹하여 난법하지 않게 되고 비로소 진정으로 경사경법, 신사신법해 법에 따라 행할 수 있다.

구세력은 교만으로 감히 정법을 교란했고 아울러 대법제자에 대해 질투했으며 그 결과 멸망을 자초했다. 대법제자가 법을 실증하는 중에서 자신을 과시, 자신을 드러내고 자신을 실증하는 것은 모두 자신을 높은 위치에 놓은 표현이다. 특히 국외 대법제자가 법을 실증하는 중에서 많은 수련생은 좀 학식과 능력이 있어서 자신의 방법이 좋다고 여겨 자신의 견해를 견지하며 자신을 낮추려 하지 않고 한발 물러서려 하지 않아 최종적으로 일을 성사하지 못하는 결과가 초래돼 법 실증을 지체했으며 사악의 웃음거리를 샀다.

나는 어려서부터 농촌에서 자랐고 가정이 매우 빈곤해 마을에서 타인의 업신여김을 당했고 늘 타인에 비해 한 단계 낮은 지위에 있었으며 마음에서 열등감과 불복의 감정을 느꼈고 이런 사람 마음이 늘 마음속 깊이 묻혀있었다. 나중에 대법을 수련하고 박해가 발생한 이후 명예와 경제상황, 지위에서 모두 손실을 보았고 사람들이 사당 요언의 선전에 독해돼 대법제자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고 심지어는 무시했다. 이렇게 나는 다시 타인으로부터 업신여김을 당하는 국면에 직면해 늘 타인보다 한층 낮은 위치에 있으면서 사람에게 업신여김을 당할까 두려웠고 타인보다 한층 낮은 단계에 있기 싫은 사람 마음이 또 뒤집어져 나왔다. 일부 사람은 전에 만나면 즐겁게 나와 인사했으나 지금은 만나면 알지 못하는 사람 마냥 대꾸마저 하지 않았다. 이때는 매우 속상함을 느꼈다. 나중에 나는 이 문제에 겨냥해 안으로 찾았는데 내가 타인에게 업신여김을 당하고, 다른 사람에 비해 한층 낮은 단계에 있는 것을 싫어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내가 자신을 낮은 위치로 놓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배후의 원인은 내가 자신이 매우 작다고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능히 실질적으로 자신이 우주에서 일반적인 매우 작은 입자라고 인식했을 때 그때부터 자신을 가장 낮은 위치에 놓고 선타후아, 타인을 위에 자신을 아래에 놓아 타인보다 한층 높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또 타인과 동등한 위치에 있으려고 하지 않았으며 자신을 타인보다 한층 낮은 위치에 놓고 자신을 모든 사람의 밑에 놓자 타인이 자신을 업신여기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됐고 문제가 해결됐다.

만약 자신을 타인보다 강하다고 여기면 자신을 높은 위치에 놓으려 하고 자신을 과시하며 자신을 드러내려 하고 자신을 실증하려 할 것이다. 만약 자신이 타인보다 부족하지 않다고 여겼는데 타인이 자신을 초과했을 때는 질투하고 불복할 것이다. 만약 자신이 타인보다 부족하지 않길 바라면 타인이 자신을 업신여기고 무시하며, 푸대접하고 경시하며, 조롱하고 대꾸하지 않는 것을 두려워할 것이다. 오직 자신에 대해 매우 작다는 심태를 갖추고 철저히 자신을 낮은 위치로 놓을 때 이런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

3. 늘 자신을 실증하려 하다

아래에 자신을 실증하는 문제에 대해 말해보겠다. 대법제자에게 있어서 우리의 생명은 대법에서 내원했고 우리 역시 법 중에서 하나의 입자로 우리와 대법은 일체이며 대법을 위해 한 일은 자신을 위해 한 일과 같다. 이렇게 해야 진심으로 법 실증을 할 수 있는데 왜 일부 수련생은 자신을 실증하려 할까? 자신을 대법 속에 놓지 못해 자신을 법에서 격리시켜 법은 법이고, 나는 나라고 생각하기에 자신을 실증하려 한다.

자신을 실증하는 문제를 조성한 다른 하나의 원인은 자신이 대단하다고 여겨 법실증에서 일부 면에서 장기가 있어 타인에 비해 강하다고 생각하며 자신이 잘 수련했고 대단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정법이 필요로 한다면 당신은 그것을 마땅히 잘해야 하는바, 이는 당연한 것이다. 또한 자신의 신분을 내세우지 말아야 하고 또 자신은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생각을 말아야 한다. 당신들은 모두 하나의 입자일 뿐, 나의 눈에는 누가 누구에 비해 나은 것이 없다. 왜냐하면 당신들은 모두 내가 동시에 건진 것이기 때문이다.(박수) 어떤 사람은 이 방면에서 능력이 좀 있고, 어떤 사람은 저 방면에서 능력이 좀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당신은 허망한 생각을 하지 말라. 당신은 자신이 이처럼 큰 능력이 있어 어떠어떠하다고 말하는데, 그건 법이 당신에게 부여한 것이다! 당신은 능력이 없어서도 안 된다. 정법이 필요에 따라 당신의 지혜를 그 경지에 도달하게 한 것이므로, 당신은 당신 자신이 어떻게 능력이 있다고 여기지 말아야 한다. 어떤 수련생은 나에게 그의 능력을 보라고 하는데, 사실 내가 생각하건대 모든 것은 내가 준 것이므로 볼 필요가 없다.”[2]

대법제자에게 있어서 우리의 일체는 대법에서 내원하며 우리의 모든 능력과 생명을 포함해 무변한 대법 앞에서 우리는 단지 하나의 일반적인 미립자에 불과하며 자신을 실증해야 할 어떠한 이유도 존재하지 않아야 법실증에 있어서 진심으로 사부님의 정법에 협력할 수 있다. 자신을 실증하면 진심으로 사부님의 정법에 협력하는 것이 아니며 바꿔 말하면 사부님에 대해 두 마음을 품는 것으로 마음이 바르지 않은 표현이다. 어떤 때 쓴 글이 밍후이왕에 발표되면 자신이 좀 대단하다고 느껴진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런 일이 아니었다. 내가 만약 대법을 수련하지 않았다면 글 작성에서 한마디도 적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글을 써낼 수 있음은 내용은 모두 대법에서 내원하며 또 사부님께서 그때 점화를 주셨기 때문으로 실질에 있어서 사부님께서 제자를 성취시키는 것으로 나는 단지 사부님께 협력해 자신을 닦았을 뿐으로 제자의 본분을 한 것이다. 만약 내가 대법을 수련하지 않았다면 글을 쓰기는커녕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므로나의 사부님에 대한 감사와 은혜의 마음은 언어로 표현할 방법이 없다.

사실 다른 수련생도 마찬가지로 사부님에 대한 감사와 은혜의 마음을 간직하고 있으며 실제 행동으로 옮겨야 하고 입은 은혜에 대해 갚을 줄 알아야 하고 진심으로 조사정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찌 사부님의 자비로운 구도에 떳떳할 수 있겠는가?

아마 일부 수련생이 질문할 것이다. 그럼 우리 대법제자가 모두 자신을 매우 작다고 여기고 자신을 가장 낮은 위치로 놓으면 법을 실증하는 중에서 어떻게 신적(神跡)을 나타낼 수 있고 주인공 역할을 할 수 있겠는가? 자신을 매우 작다고 여길 때 법을 크게 볼 수 있고 기쁜 마음으로 법의 위대함을 실증할 수 있다. 그때는 더는 자신이 어떻게 대단함을 실증하려 하지 않는다. 자신을 낮은 위치로 놓으려 할 때 자신의 일체를 깡그리 버리고 완전히 타인을 위할 수 있고 각자(覺者)의 위대한 경지를 성취할 수 있으며 법력이 자신의 몸에서 펼쳐질 수 있고 비로소 신적이 나타날 수 있으며 주인공 역할을 할 수 있다.

4. 경지를 보다

법 앞에서 자신이 겸손함을 알고 스스로 노력해 위로 수련해야 함을 알며 끊임없이 자신을 순정히 하려는 이런 심태라야 법의 위력이 자신의 행동을 통해 체현될 수 있고 ‘대법제자’로서의 주인공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이는 또 하나의 어떤 문제를 설명하는가? 자신이 처한 위치가 낮음은 수련한 경지가 낮은 게 아니다. 예를 들어 여러 명이 같은 항목에서 법을 실증할 때 책임자 역할이 있고 일반 직원 역할이 있다. 자신이 그곳에서 일반 직원 역할일 때 위치에서는 책임자에 비해 낮으나 수련의 경지에서는 그보다 낮다고 할 수 없고 오히려 그보다 높을 수 있다. 바꿔 말하면 장래에 당신이 원만하는 위치는 책임자보다 더 높을 수 있다. 때문에 법실증 항목에서 위치 고저는 모두 일시적이며 장래에 원만한 후에 위치 고저가 영구적인 것이다. 그러할진대 대법제자가 법실증 협력에서 불복의 마음을 가지지 말아야 한다. 즉 나보다 수련을 잘하지 못했는데 어찌하여 나를 관리하려 하는가? 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자신이 그의 관리를 받음은 법실증에서 협력해야 할 필요성이 있어서이지 자신보다 수련을 더 잘해서가 아니다. 비록 그가 자신보다 수련을 잘하지 못했으나 그의 배치에 따를 수 있고 그에게 협력해 법실증의 일을 잘한다면 개인의 득실에서 따지지 않고 정체에 원용하는 표현으로 경지가 고상함을 설명한다.

수련에서 가장 해내기 어려운 점은 자신을 내려놓는 것으로 수련에서 자신을 내려놓을 수 있는지는 전반 수련에서 중요하다. 마음으로 자신을 높게 보는 사람은 자신을 내려놓기 매우 어려운데 마음에서 달갑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을 매우 작게 여길 때 자신을 내려놓기가 아주 수월하며 자신을 내려놓으려는 정념이 강해지면 능히 자신을 내려놓고 완전히 타인을 생각할 수 있다.

선(善)을 수련하는 입장에서 그 물을 바라보자. 어디에 가든지 자신을 가장 낮은 위치에 놓을 수 있고 전혀 남과 높낮이를 따지지 않으며 소리 없이 만물을 윤택하게 하고 배를 띄울 수 있으며 사람의 더러운 것을 씻어내고 생명을 양육하며 장시간 인류의 생존에 협력해왔으나 어떤 보답을 구하지 않는다. 진정한 협력은 완전히 이기적인 마음이 없는 심태로 진심으로 타인에게 협력하는 것이다. 즉 자아를 내려놓을 수 있고 타인과 정체를 도와 일을 이뤄내 사부님께서 원하시는 바를 원용할 수 있다. 이렇게 하면 법실증의 일을 잘할 수 있고 참여한 모든 사람이 그 속에서 위덕을 세울 수 있다. 우선 타인을 성취하고 최종적으로 또 자신을 성취하는 것이며 무사무아, 선타후아의 경지에 이른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상은 자신이 현 단계 수련에서 얕은 깨달음으로 적절하지 않은 점은 자비로 지적해주시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경문: ‘2015년 미국서부법회 설법’
[2]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2003년 정월대보름 설법’

 

원문발표: 2019년 11월 1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이성(理性)인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11/16/39583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