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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학습은 반드시 법을 배워내야 한다

글/ 파룬따파 신수련생

[밍후이왕] 나는 새로 법을 얻은 제자다. 사존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더욱 잘하기 위해서는, 법공부를 잘해야만 더 잘할 수 있고, 이 역사적 사명을 완수할 수 있다.”[1] “여러분이 법공부를 많이 하고, 진상을 많이 알리며, 매 개인의 수련의 길을 잘 걷기를 희망한다.”[2] 사존께서는 경문에서 이미 여러 차례 법학습을 잘하라고 말씀하셨다. 이 두 경문을 볼 때 “법공부를 잘하고”, “법공부를 많이 하고” 이 몇 글자가 특별히 커 보였는데 이것은 나를 일깨워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여러분과 나의 깨달음을 교류하고자 한다.

나는 이전에는 법공부를 잘하는 것이 ‘전법륜’과 신경문 등을 많이 읽고, 베껴 쓰고, 암기하는 것이라고 인식했다. 대법서적을 읽는 일은 동수들이 매일 반드시 해야 할 일이지만 어째서 읽기만 하는가? 사존께서는 법에서 말씀하셨다. “모두 염(念)해 마비됨으로써 아무것도 모르며, 일념(一念)이 만념(萬念)을 대체하여, ‘아미타불’의 매 한 글자가 눈앞에 모두 나타날 수 있다. 이것이 공부가 아닌가? 시작하자마자 여기에 도달할 수 있는가? 도달하지 못하며, 도달하지 못하면 틀림없이 입정(入靜)할 수 없는데, 믿어지지 않으면 한번 시험해 보라. 입으로는 거기에서 한번 또 한 번 이어서 염하지만, 마음속으로는 무엇이든 다 생각한다. ‘우리 직장의 상사는 왜 날 이처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며, 나에게 이번 달 상여금을 이렇게 적게 주는가.’ 생각할수록 화가 나서 야단이지만 입으로는 아직도 염불하고 있다. 당신이 말해 보라. 연공(煉功)할 수 있겠는가? 이것은 공부의 문제가 아닌가? 이것은 당신 자신의 마음이 깨끗하지 못한 문제가 아닌가?”[3] 그럼 우리 수련인이 ‘전법륜’을 읽을 때 일심불란에 도달할 수 있는가? 매 글자가 눈앞에 나타날 수 있는가? 할 수 없다면 법공부를 잘하고, 법을 배운다고 말할 수 없다.

나는 집에서 법공부를 할 때는 보통 속도로 읽었는데 하루에 몇 강을 배우면 임무를 완성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당연히 일부 법리를 깨달았지만 공부하는 과정에서 주의력이 떨어졌고, 한 페이지를 읽었지만, 입만 움직였고 읽은 것이 무엇인지 전혀 몰랐다. 대부분의 페이지는 주의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머릿속에서 ‘오늘 하루가 아직도 안 끝났네, 월급이 아직 입금되지 않았네, 오늘 몇 사람에게 진상을 알리고 삼퇴시켰는데 왜 탈퇴를 하지 않지, 이 동수의 의견에 나는 동의할 수 없다. 어째서 나에게 이렇게 대하지’ 등의 생각을 했다. 어떤 때는 이것이 모두 사상업력이고 배척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배척하면서 이미 몇 페이지를 읽었고, 얼마 후에 또 불쑥 튀어나왔다. 그럼 우리가 읽은 몇 페이지는 정신이 나간 상태에서 읽었는데 법공부를 했다고 할 수 있는가? 우리 수련에 작용을 일으킨다고 할 수 있는가? 단지 오늘 5조 공법을 다 연마했고, 한 강을 다 읽었고, 사람을 구하는 여러 가지 일을 많이 했다고 해서 만족할 수는 없다. 나는 아주 많은 수련생도 이런 것을 보았다. ‘전법륜’을 비교적 빨리 읽고, 대충 읽고, 나는 오늘 한 강을 읽었고, 이번 주에 한 권을 읽었고, 이번 달에 세 번을 읽었으며, 수량과 속도를 추구하고 아주 빨리 대충 읽는다. 심지어 어떤 때는 무엇을 읽었는지도 모른다.

밍후이왕 교류문장 중에 수련생이 쓴 글이 있었는데 우리가 경건하고 겸손한 마음을 품고 존경하는 마음으로 사부님과 대법을 대할 때 법은 우리에게 펼쳐진다고 했다. 그럼 우리가 법을 읽을 때 신문을 보거나, 뉴스를 보고, 속인의 책을 읽듯이 그렇게 빨리 몇 글자를 읽는다면 얼마나 많은 구절이 관성에 따라 읽히는가? 매 구절이 마음에 들어가겠는가?

사존께서 말씀하셨다. “또 여러분에게 알려주는데, 나는 불법의 위력, 나 자신의 많은 능력을 모두 그 책 속에 넣었으며, 이 법 속에 넣었다. 비디오테이프, 녹음테이프와 이 책을 막론하고 당신이 오직 보기만 하면 당신은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당신이 오직 보기만 하면 당신의 병은 없어질 것이다. 당신이 오직 수련만 하면 당신의 신체는 본질적인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당신이 오직 수련을 견지한다면, 당신은 능력이 있을 것이고, 당신은 볼 수 있을 것이며, 당신은 들을 수 있을 것인데, 당신은 대법의 홍은(洪恩)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4]

우리의 수련을 지도하고, 우리가 원만하도록 지도하는 대법을 진지하게 읽어야 하지 않는가? 일심불란으로 보고 읽어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최근에 동수의 일깨움을 통해 학습 방식을 바꾸었다. ‘전법륜’을 읽을 때 한 글자 한 글자씩 읽고 소리를 내어 읽는다. 자신이 읽는 모든 글자가 무엇인지 알게 했더니 수확이 아주 크고 정신이 팔리지도 않는다. 게다가 나는 지금 세로판 ‘전법륜’을 본다. 가로판은 눈이 습관적으로 좌우로 움직여 아주 빨리 보게 된다. 심지어 많은 동수는 십몇 년 동안 ‘전법륜’을 읽었기 때문에 눈이 아주 익숙해져서 무의식적이고 관성적으로 읽어 나간다. 하지만 세로판 ‘전법륜’은 눈이 상하로 움직이는 것이 적응되지 않아서 자세히 보게 된다. 이렇게 함으로써 나는 매 글자의 뒤에 무수한 부처가 있는 것을 보았는데 층층 층층의 불(佛)이었다. 나는 천목이 열렸기 때문에 마음속이 아주 차분하거나 마음이 정(定)해질 때 다른 공간의 광경을 아주 정확하게 본다. 나는 법학습 소조에서 단체 법공부를 할 때 천천히 읽자고 건의했다. 글자가 마음에 들어오게 읽는지, 정신이 팔리지 않는지는 자신이 마음속으로 잘 알기 때문에 모두 한번 시도해 보는 것도 괜찮다고 했다. 두 시간 동안 단체 법학습에서 한 강을 읽지 못하더라도 모두 시간을 틀어쥐고 법공부했다. 두 시간은 모든 사람에게 아주 소중했다. 단체 법공부는 반드시 진지해야 한다. 흐리멍덩하게 두 시간 동안 읽거나 임무를 완성하듯이 해서는 안 된다.

두 번째로, 나는 처음 미국에 왔을 때 돈이 없었기 때문에 친척 집에 머물렀다. 사람도 낯설고 땅도 익숙하지 않아서 친척은 나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는데 차를 사고, 은행에 계좌를 만들고, 세를 얻는 일 등이었다. 나중에 나는 수입이 좋고 별로 힘들지 않은 직업을 찾았지만, 친척 집이 운영하는 점포에서는 일손이 필요했다. 나는 이 직장을 그만두고 아침 일찍 일어나서 밤늦도록 기름 난로를 씻고, 솥을 닦고, 고기를 써는 등의 부엌일을 하는 그녀를 도우러 갔다. 6, 7시간 동안 서서 하는 일이라서 허리가 참을 수 없을 만큼 아팠다. 저녁에 집에 가면 12시였지만 부르면 바로 출근해야 했고 일이 있는 대로 가게에 가야 했다. 위에서 말한 직업에 비해서 힘들고 받는 돈도 적었다. 나는 당시 마음에 조금 평형을 잡지 못했고, 나를 왜 이렇게 대하는지 남을 원망했다. 나는 전에 중국에 있을 때 회사에서 사무실 일을 했는데 미국에 와서 하층 노동자가 되었다. 친척은 내가 독하고 인색하다고 원망했다. 그녀는 자신의 딸을 부려먹는 것도 서슴지 않았고, 힘든 일은 모두 내가 해야 했다. 직장 동료와 낯선 사람들도 가끔 나에게 억울한 일을 겪게 했기 때문에 신체와 심리적으로 참기 힘들었다. 가족과 통화할 때 부친이 말씀하셨다. “너는 속인이 겪지 못하는 고생을 겪어야 한다. 너는 중국에서 공산당에 습관이 되어 무슨 일이나 대강하고 고생할 줄 모른다.” 순간 나는 사부님께서 아버지의 입을 빌려 나에게 말씀하신 것을 알았다. 분명히 이것은 나 자신의 문제였다.

그날 나는 책을 펼쳤는데 제3강 중 한 단락이었다. “연공(煉功)은 德(더)를 중시해야 하고, 좋은 일을 해야 하며, 선(善)을 행해야 하는데, 곳곳마다 일마다 모두 이렇게 자신에게 요구해야 한다. 공원에서 연마(練)하든 집에서 연마하든, 몇 사람이나 이렇게 생각하는가? 어떤 사람, 그 또한 무슨 공을 연마하는지 모르겠는데, 한편으로는 연마하면서 흔들거리고, 입으로는 또 말을 한다. “참! 내 며느리는 내게 정말 효심이 없다, 우리 시어머니는 왜 그리 못됐을까!” 어떤 사람은 직장에서부터 국가 대사에 이르기까지, 그가 얘기하지 않는 것이 없는데, 그의 개인 관념에 부합(符合)되지 않으면 더욱 화가 나서 야단이다. 당신이 말해 보라. 이것이 연공(煉功)인가?”[3]

이 법은 나를 말하고 있음을 알았다. 우리는 법이 사람을 연마시키는 공법이고, 24시간 내내 기제가 우리를 연마시킨다. 우리가 연공하지 않을 때도 공은 우리를 연마시키고 있는데 사실 시시각각 연공하는 것과 같다. 하지만 나는 선하지 않은 염두가 나오고, 심성이 떨어지거나, 자신을 속인으로 대하는 때가 있다. 그 후 나는 계속 법공부를 했고, 대법에 따라 자신을 조정했다. 이것은 소업하는 것이고 다른 사람이 나에게 더(德)를 주는 것임을 알았다. 다른 공법은 모두 몇 세대에 걸쳐 몇 번의 목숨을 갚아야 수련할 수 있는데 나는 이번 세에 완전히 갚는데도 이런 고생을 못 견디겠는가? 시시각각 자신의 심성을 지키고 선해야 한다. 이런 선하지 않은 염두를 가지고 연마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 생각하자 이 관은 지나갔다. 나는 고생을 마다하지 않고 계속 친척 가게에서 아르바이트했는데 허리도 아프지 않았고 친척도 나에게 잘 대해 주었다. 그날 저녁 내 천목이 또 열렸다. 좋지 않은 물건이 신체에서 한 덩이 제거되었고 발정념 할 때 공능이 증강되었다. 확실히 그런 해골과 악귀들이 수련인을 보고 후다닥 달아났는데 나는 병을 들고 그것들을 물로 만들었다.

한번은 내가 며칠 돈을 모아서 미화 20달러를 써서 잠옷을 샀다. 하지만 저녁에 바지에 구멍이 난 것을 알고 분명히 살 때부터 이랬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반품하러 가려고 했지만, 생각을 바꿔보니 내가 하루 저녁을 입었는데 반품하면 이득을 보는 것이 아닌가? 이 작은 구멍은 바느질하면 꿰맬 수 있는데 손해를 좀 보면 어떤가. 비슷한 이런 일이 아주 많이 발생했다. 번거로운 일에 부딪혔을 때 마음속으로 불안정하고 항상 누군가의 어떤 일을 생각할 때 반드시 천천히 한 글자 한 글자 진지하게 ‘전법륜’을 읽는다. 속도를 추구하지 않고, 몇 페이지를 읽었는지 추구하지 않는다. 진심으로 학습하고, 잡념을 품지 않고 한동안 읽으면 이 단락은 나에게 해당되고 내가 마주친 번거로운 일을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심성관을 넘으면 마음을 안정시키고 생각하고 깨닫게 한다. 법은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준다. 계속해서 읽어 내려가고 이렇게 법공부하면 법은 반드시 부동한 층차에서 지도 작용을 일으킨다.

사존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신, 노(新老) 수련생이 모두 법(大法) 중에서 수련할 수 있고, 모두 공성원만(功成圓滿)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여러분이 돌아가서 시간을 다그쳐 착실히 수련하기를 희망한다.”[3]

대법 중에서 수련하는 것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우리의 생명은 모두 사부님께서 주신 것이고, 우주 중에서 생긴 것이다.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과 모든 일은 우리의 심성을 제고하기 위한 것이고 모두 좋은 일이다. 그렇다면 문제에 부딪혀 대법에서 찾으면 반드시 해결할 수 있다. 동수와 가족에게 하소연할 시간을 갖거나 기분이 울적해지는 것보다 성실하고 착실하게 천천히 법을 읽고, 자신의 비정상을 깨닫고 다시 이어서 다음 단락을 읽으면 부족을 깨달을 수 있다. 안으로 찾고 법에 비추어 행하는 것이 바로 대법 중에서 수련하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바로 실수(實修)라고 생각한다. 대법만이 이런 위력이 있다.

관을 넘을 때 반드시 법공부를 하고 법에 비추어 행하면 이 관을 분명히 넘을 수 있고 우리는 모두 대법 중에서 수련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떻게 법공부를 하는가가 아주 중요하다. 글자마다 마음에 들어가는 것은 어렵지 않다. 기꺼이 시간을 할애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개인이 진정으로 ‘전법륜’을 학습했을 때, 수련인이 사람을 구하는 일을 했다고 할 수 있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속인이 사람을 구하는 일을 하는 것이고 복보를 쌓는 것에 불과하다. 그렇게 시간을 모두 낭비하면 사존께서 우리를 보시고 초조해하신다. 실수(實修)하여 자진의 층차를 제고해야만 신의 길을 걷는 사람이다.

개인의 얕은 인식이므로 옳지 않은 부분이 있다면 동수들의 자비로운 시정을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신경문: 대법제자는 사명을 이행하고 있다
[2] 리훙쯔 사부님 신경문: 남미 법회에 보냄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
[4] 리훙쯔 사부님 저작: 싱가포르 법륜불학회 설립식에서의 설법

 

원문발표: 2019년 11월 1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11/10/39561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