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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慧법회| 선념과 자비로 세인을 구도하다(하)

글/ 중국 대법제자 구술(수련생 정리)

(윗글에 이어)

검은 소굴에서 법을 실증하다

정념이 부족할 때는 위험에 빠질 수 있다. 2011년이 아직 3일 남았을 때 나는 새해에 시간을 내기 어려우니 이번에 좀 더 많이 배포하자고 생각했다. 사실은 일하는 마음을 냈고, 자료를 배포할 때 발정념도 하지 않았다. 배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한 보안요원이 발견하고 나의 손을 움켜쥐며 말했다. “아무리 찾아도 없더니 오늘 나한테 잡혔군.” 그리고는 파출소에 전화를 걸었다. 함께 왔던 수련생이 소리를 듣고 달려와 보안에게 말했다. “이렇게 나이가 많으니 그냥 놓아주세요.” 보안이 말했다. “그런다고 놓아줄 수 있겠어요? 못 놓아줘요.” 나는 수련생까지 말려들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 큰 소리로 말했다. “당신은 참견하지 마세요. 나는 당신을 모르니 빨리 가세요.”

이후 나는 진상을 알리기 시작했다. 당시는 저녁 8시가 넘었는데, 작은 공원에서 잠깐 사이에 50~60명이 에워싸고 조용히 내 말을 들었고, 아무도 참견하지 않았다. 보안도 제지하지 않았다. 원래는 파출소에서 그곳까지 7~8분 거리였지만, 경찰차가 꾸물거리며 오지 않았고, 내가 해야 할 말을 마친 다음에야 경찰차가 왔다. 그때는 이미 두 시간이나 지난 뒤였다.

파출소에서 경찰이 나를 심문하기 시작했고, 자료가 어디에서 나왔는지를 물었다. 내가 말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해 줄 수 없어요. 내가 만약 말을 하면 배신자가 될 테니 그런 일을 할 수 없어요.” 경찰은 심문하면서 나를 한숨도 재우지 않았고, 이튿날 나를 간수소로 보냈다. 파출소 문을 나오자마자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음침한 하늘이 보였고, 온 하늘이 잿빛으로 뒤덮여 있었다. 당시 나는 하늘도 나의 불공평을 대변한다고 느꼈다. 간수소에서 신체검사할 때 여태껏 없었던 고혈압인 최고 220, 최저 180이 나왔다. 그래도 간수소에 들어갔지만, 감옥 경찰이 몹시 걱정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어떤 환경이든지 사악의 요구, 명령과 지시에 협조하지 말라.”[2] 간수소에서는 날마다 감옥의 규칙을 외우게 했는데, 나는 사부님의 ‘논어’를 외웠다. 그들은 나에게 약을 먹였고, 나는 곧 뱉어냈다. 내가 코를 골아서 잘 때 옆에 있는 사람이 나를 흔들어 깨웠기 때문에 나도 몹시 미안했고, 다른 사람의 휴식을 방해할까 봐 걱정되었다. 이튿날 감옥 경찰이 감방에 와서 물었다. “저녁에 누가 코를 골았지?” 내가 말했다. “내가 골았어요.” 감옥 경찰이 큰소리로 다른 사람에게 말했다. “내가 알려주지. 할머니가 코를 골 때 누구든 다시 건드리면 한평생 못 나갈 줄 알아.” 그때 이후, 감방 사람들은 나에게 깍듯이 예의를 갖추었고, 화장실에 갈 때도 와서 나를 부축했다.

나는 감방을 한 번 바꾸었는데, 첫 번째 감방에서는 5일 동안 머물면서 다섯 명을 탈퇴시켰고, 두 번째 감방에서는 19일 동안 있으면서 13명 중9명을 탈퇴시켰다. 나는 감옥에 있는 동안 시시각각 자신의 언행에 주의했고, 일용품을 넉넉하게 사서 곤란을 겪는 사람에게 주었다. 진상 알리기는 아주 순조로웠다.

두 번째 감방의 감방장은 20여 세의 여자였는데, 싸움을 한 혐의로 중형 판결이 예상되었다. 그녀가 말했다. “그들은 모두 내가 15년 이상 형을 받을 거라고 하는데, 어떻게 하죠?” 나는 계속 그녀에게 진상을 말하면서 알려주었다. “파룬따파가 좋다는 걸 믿으면 모든 일이 바뀔 거예요.” 그녀는 깊이 인정했다. 그녀는 다른 사람을 대단히 엄하게 대했지만, 나에게는 너무나 좋았다. 땅콩과 오리알은 감방에서 아주 귀했는데, 나에게 나누어 주었고, 자신이 먹는 컵라면도 가끔 나에게 일부를 나누어 주었다.

나는 2년의 노동교양 판결을 받았지만, 사부님의 보호 아래24일 만에 외부 집행의 형식으로 간수소를 벗어났다. 헤어질 때 감방장이 나에게 말했다. “한번은 감옥 경찰 사무실에서 할머니 문서를 봤다가 중형 판결을 받게 된 걸 알고는 놀라서 움직일 수가 없었는데, 이렇게 빨리 나갈 줄은 몰랐어요.” 내가 말했다. “내가 말했잖아요? 누가 말해도 안 되고, 대법 사부님 말씀대로 된다고.” 나는 그녀에게 돈과 보살펴 줄 사람이 없는 것을 보고 그녀에게 말했다. “대법이 좋다는 것을 믿으면 언제든 도와주는 사람이 있어요. 내가 나간 뒤에 용돈을 보내 주고, 무슨 옷이 필요한지 말하면 사줄게요.” 그녀가 말했다. “고마워요, 이모. 저한테 하신 말씀을 모두 기억하고 있어요.”

나는 돌아온 후 3일째 되는 날, 바뀐 계절에 맞는 옷 몇 벌을 사고, 5백 위안(한화 약 8만 원)을 보태어 딸을 통해 그녀에게 전달했다. 딸이 간수소에 가서야 알게 된 것은 그녀가 복을 받아 내가 나온 다음 날 석방됐다는 것이었다. 대법제자가 말한 것을 실천해야 하므로 나는 다시 그녀에게 연락해 물건과 돈을 직접 전해주었다. 그녀는 커다란 감동을 하고 울면서 말했다. “저는 지금 파룬궁이 모두 어떤 사람인지 알았어요.”

병업관을 넘다

사부님의 자비로우신 보호로, 나는 여러 차례의 병업관을 모두 돌파했다. 병업관을 넘을 때 수많은 신기한 일이 나타났다.

한번은 나에게 오십견이라는 병업 가상이 나타나 팔을 들어 올릴 수 없어 자료 배포에 큰 불편을 겪었다. 나는 곧 사부님께 부탁드렸다. “사부님, 제가 나가서 자료를 배포하는데, 팔을 들어 올리지 못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사부님께서 빨리 낫게 해 주십시오.” 다음날 바로 좋아졌다.

한번은 하늘에서 눈발이 날려 베란다가 아주 미끄러웠다. 내가 눈을 치우려고 밖으로 나오자마자 발뒤축이 미끄러지면서 온몸이 꼿꼿하게 펴진 채 땅 위로 넘어졌다. 오장육부가 모두 부서지는 느낌이 들었고, 아파서 견디기가 어려웠다. 당시 나는 곧 사부님의 법을 생각했다. “좋고 나쁨은 사람의 일념(一念)에서 나오며, 이 일념의 차이가 부동(不同)한 후과(後果)를 가져올 수도 있다고 한다.”[1] 나는 곧 사부님께 말씀드렸다. “사부님, 저한테 어떤 누락이 있든지 대법 속에서 바로잡을 것이며, 사악이 저를 박해할 어떤 구실도 절대 허락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집 안으로 어떻게 들어왔는지를 모른다. 집으로 들어와서는 사부님의 법상 앞으로 가서 사부님 앞에 머리를 숙이려 했지만, 머리가 숙어지지 않았다. 나는 남편에게 나를 부축하게 해 바닥에 깐 잠자리로 올라갔는데,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고강도 발정념을 했다. 밤에 남편이 내 몸을 뒤집으려 했지만, 너무나 아파서 뒤집을 수가 없었다. 나는 남편에게 MP3를 가져오게 해 사부님의 설법을 듣기 시작했다. 매일 아주 적게 자고 3 강의를 들었다. 일어날 수 없어 작은 전자책으로 3 강의를 읽었다.

이튿날 수련생 두 명이 왔고, 세 사람이 힘을 모아서야 내 몸을 뒤집었다. 남편은 내가 그렇게 고통받는 것을 보고 병원에 가자고 했다. 내가 말했다. “내가 병원에 가면 이 일생에 영원히 일어나지 못해요. 안심하고 있으면 며칠 뒤에 좋아져요.”

나는 매일 법공부 외에도 안을 향해 찾았고, 며칠 전 사위에게 진상을 알릴 때 사위가 사당의 독해(毒害)를 깊게 받아 진상을 듣지도 않고, 이지가 흐려 대법을 멸시하며 모욕하는 바람에 내가 몹시 화를 내며 연장자의 말투로 몇 마디 훈계했는데, 선한 마음으로 대하지 않고, 참음을 해내지 못해 사악에 틈을 타게 했음을 찾아냈다.

찾아낸 다음, 스스로 자신을 더욱 엄격하게 요구하자 신체가 아주 빨리 회복되기 시작했다. 3일 후에는 내려가 연공을 했는데, 제1장 공법을 한 시간 넘게 연마하니 온몸의 옷이 흠뻑 젖었다. 이후 나는 잠들 수 있었다. 4일째 되는 날, 내가 제2장 공법을 연마하기 시작했는데, 각 동작을 4분밖에 할 수가 없었다. 5일째 되는 날, 나는 제3, 4장 공법을 연마하기 시작했다. 나는 허리를 굽히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참기 어려운 것도 참을 수 있고, 행하기 어려운 것도 행할 수 있다.”[3] 나는 곧바로 도대체 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시험했다. 제4장 공법이 정말 굽혀져 내려갔다. 그때부터 날마다 좋아졌다. 십여 일 후, 나는 자유롭게 걸어 다닐 수 있었다.

여동생이 나를 크게 걱정했으므로 나는 동생을 안심시키기 위해 동생에게 갔다. 그날 가부좌를 40여 분 동안 했고, 보름이 지나자 정상이 되었다. 남편이 감격하여 말했다. “이건 정말 신기해. 이렇게 빨리 회복되다니. 보통 사람이라면 죽거나 식물인간이 됐을 거야.”

2013년 봄 어느 날, 나는 갑자기 혈뇨가 나오고 허리가 아파서 몸을 일으킬 수가 없었다. 이튿날에는 고열이 나고 입술까지 갈라졌다. 밥을 조금도 못 먹었고, 먹기만 하면 구역질이 났다. 그때 한 노년 수련생이 나를 보러 왔다가 날마다 나를 위해 발정념을 했지만, 고열은 계속됐고, 나중에 그녀는 일이 있어 하루 동안 집으로 갔다.

남편은 내가 위독하다고 생각해 기어이 병원에 데려가려고 했다. 내가 말했다. “신경 쓰지 말아요. 나한테 누락이 있는데, 내가 법에 있지 않은 것을 찾아서 고치면 바로 좋아져요.” 남편이 말했다. “당신은 열이 이 지경인데, 뭘 찾아요? 그래도 병원에 안 가요?” 내가 말했다. “나한테는 사부님께서 계시니까 나는 사부님께서 관할하세요. 병원은 나를 책임질 수 없고, 내 병을 고치지도 못해요.”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여러분 알다시피 우리는 수련(修煉)이다. 기왕 수련인 이상 우리의 수련 이 길에는 우연한 일이 없다.”[4] 나는 세밀하게 안을 향해 찾기 시작했고, 속인 시절에 한 일까지 하나씩 찾았다. 결국 지난번에 박해받은 후, 남편이 걱정하면서 나에게 나가서 진상을 알리지 못하게 했고, 내가 두려워하는 마음과정의 교란을 받아 점점 태만해졌다는 것을 찾아냈다. 나는 사부님께 말씀드렸다. “사부님, 제가 잘하지 못해 사악에 틈을 타게 했습니다. 제가 나으면 반드시 잘하고, 절대 저 때문에 걱정하시지 않게 하겠습니다.” 집착을 찾자 나는 즉시 좋아졌다.

이튿날 수련생이 돌아왔고, 우리가 함께 밥을 먹을 때 그녀가 나에게 한 입 먹여 주었다. 내가 말했다. “다시 좀 더 주세요.” 그녀가 놀라워하며말했다. “먹을 수 있어요?” 내가 말했다. “먹을 수 있어요. 저는 나았어요.” 보름 후, 나는 완전히 나았다. 몸이 좋아진 후, 나는 즉시 법 실증에 합류했다.

제가 생명의 위험에 빠졌을 때 여러 차례 저를 구해주신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나는 병업관을 만났을 때 반드시 안을 향해 찾고, 반드시 안을 향해 찾아야 하며, 문제를 찾아낸 후에는 반드시 제거해 약속을 실행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찾지 않은 것과 같다는 것을 모든 수련생에게 말해주고 싶다. 나는 이 기회를 빌려 당시 나를 도와주신 노년 수련생에게 감사드린다.

해외에서의 생활과 진상 알리기에 미련을 두지 않다

나는 2013년, 2017년, 2018년, 세 차례 해외의 친척을 방문해 매번 수개월을 보냈다. 지금 회상하면 나는 그곳의 생활을 그리워하지 않고, 그곳의 환경을 그리워하지 않지만, 가장 잊지 못할 것은 그곳에서 전화를 걸고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한 일이다.

2013년, 나는 진상전화 항목에 참여해 두 달 동안 2백여 명에게 탈퇴를 권했는데, 감동적인 일이 아주 많았다. 한번은 지린 대학의 한 학생에게 전화를 걸어 기본적인 진상부터 시작해 30분 넘는 이야기를 모두 마친 다음에 말했다. “저는 완전히 여러분을 위하고, 개인적인 사심은 조금도 없어요. 바로 나중에 대겁난이 왔을 때 여러분이 피할 수 있게 하려는 거예요.” 그 아이는 크게 감동하여 삼퇴를 했다. 내가 말했다. “학생 기숙사에 있는 다른 친구들도 오라고 해요. 할머니가 친구들한테도 말해줄게요.” 그러자 많은 사람이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할머니는 말할 필요 없어요. 우리는 모두 들었고, 모두 탈퇴할게요.” 그렇게 기숙사의 여섯 명이 차례대로 본명으로 삼퇴를 했다. 마지막에는 학생들이 전화 끊기를 아쉬워하며 말했다. “우리는 할머니 이야기를 들으니까 정말 기분이 좋아요.”

또 한번은 전화를 걸자 한 중학교 교장이 받았다. 처음에 그는 달가워하지 않고 말했다. “나는 예수를 믿어요.” 내가 말했다. “예수를 믿는 것과 진상을 듣는 것은 모순되지 않아요. 예수도 위대한 신이라 나는 당신의 신앙을 반대하지 않아요. 내가 말하려는 건 평안을 보전하는 거예요. 당신이 좋은 사람이기 때문에 내가 알려주는데, 파룬궁은 불법(佛法) 수련이고, 공산당이 파룬궁을 그렇게 잔인하게 박해해서 수많은 선량한 사람이 박해로 사망했는데, 신불이 징벌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당신은 당원이고, 그의 한 분자예요. 당신이 탈퇴하면 장래의 대겁난에서 멀리 벗어날 거예요.” 그가 말했다. “우리 아들이 내년에 대학 시험을 치는데, 아들 앞길에 영향을 줄까 봐 걱정되네요.” 내가 말했다. “영향이 없고, 반대로 아이한테 아주 좋아요. 이 일에 뭘 걱정하세요?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당신이 알지만, 나는 당신이 누군지도 몰라요.” 그가 말했다. “이모, 저는 알아들었어요. 이모 말을 듣고 탈퇴할게요.” 이후 그는 자기 아내를 불렀고, 그녀도 탈퇴했다.

이와 비슷한 사례는 아주 많은데, 단지 정념을 강하게 하고 신사신법하면 진상 알리기도 특별히 어려운 것은 아니다.

나는 또 해외의 관광지와 대학 교정에서 진상을 알렸는데, 2017년에 2백여 명을 탈퇴시켰고, 2018년에는 5백여 명을 탈퇴시켰다. 한번은 학교 졸업식에서 진상을 알려 두 시간 동안 30여 명을 탈퇴시켰다. 학생들은 특히 성실하며 꾸밈이 없고 관념이 적어 한마디만 하면 받아들였다. 대학생 7명이 교정에서 쉬고 있었는데, 내가 가서 진상을 알리자 처음에는 아주 예민하게 반응하며 파룬궁에 대해 많은 의문을 제기했다. 나는 그들의 집착을 살피며 그들의 질문에 일일이 해답해 주었다. 그들은 나를 에워싸고 아주 진지하게 들었다. 한 학생이 말했다. “우리는 파룬궁이 분신자살한 줄로만 알았는데, 원래 진상은 이랬네요. 우리는 모두 알았어요.” 몇 사람은 모두 삼퇴를 했다.

한번은 관광지에서 지난(濟南) 출신 여성에게 진상을 알렸는데, 파룬궁 이야기를 꺼내자 안색을 바꾸며 말했다. “그런 이야기는 하지 마세요. 나는 안 들어요. 파룬궁에 무슨 좋은 게 있어요?” 이어서 끊임없이 대법을 모욕하는 말을 했다. 나는 즉시 손짓으로 그녀의 말을 제지하며 말했다. “아가씨, 당신이 탈퇴하든, 안 하든 상관없어요. 하지만 죄를 지을 필요는 없어요.” 내가 말을 아주 엄숙하게 했지만, 그녀를 위하는 마음이 우러나오자 그녀는 단번에 멍해져 더 말을 하지 않았다. 내가 말했다. “제가 왜 당신에게 진상을 알리겠어요? 파룬궁은 불법(佛法) 수련이기 때문에 만약 당신이 신불에게 불경한 행동을 한다면 장래에 아주 위험해요.” 이어서 내가 진상을 좀 더 깊이 있게 알려주자 점점 안색이 밝아지다가 그녀가 말했다. “이모, 정말 미안해요. 원래 파룬궁이 이랬네요. 저는 당원인데, 그럼 저를 탈퇴하게 해 주세요.” 헤어질 때 그녀는 다시 나에게 감사의 말을 했다.

한번은 관광지에서 청년 4명에게 진상을 알렸는데, 그들은 듣지 않을 뿐 아니라, 온갖 모욕적인 말을 했다. 한 사람은 경찰 흉내를 내며 나를 위협했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진상을 말해주었다. 나중에 그들은 듣지 않다가 떠나버렸다. 며칠 후, 내가 또다시 그곳에서 그들을 만났는데, 그들이 멀리서 나를 불렀다. “할머니, 와보세요.” 내가 가니 그들의 태도가 달랐다. 내가 그들에게 물었다. “그날 할머니가 말한 것 생각해 봤어?” 그들이 말했다. “우리가 생각해 봤어요. 우리를 탈퇴하게 해 주세요. 우리는 모두 탈퇴에 동의해요.” 내가 물었다. “너희는 나한테 진실한 말을 해야 해. 너희는 무슨 일을 해?” 그들이 말했다. “할머니, 제가 보기에 할머니는 아주 선량하니까 진실을 말할게요. 우리는 모두 탈주범이고, 대륙에서 마약을 팔았어요.” 내가 말했다. “너희는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어? 그건 커다란 범죄야.” 그들이 나에게 물었다. “할머니, 저희가 탈퇴한 후에는 파룬궁이 저희를 보호해 주나요?” 내가 말했다. “너희가 한편으로는 죄를 짓고, 한편으로는 신불의 보호를 구한다면 신은 너희를 보호하지 않을 거야. 전제는 너희가 다시는 죄를 짓지 않고, 지금부터 잘못을 고쳐 바른길로 돌아오고, 자기 힘으로 생활하고, 대법을 인정하는 건데, 그러면 너희 운명이 바뀔 거야.” 그들은 진상을 알고 나서 기쁘게 삼퇴를 했다. 내가 떠날 때 그들은 헤어지기를 아쉬워했다. 며칠 후 또다시 그들을 만났는데, 그중 한 명이 다른 한 명을 가리키며 말했다. “할머니, 얘가 어제 할머니가 생각난다고 말해서 제가 관광지에 가면 할머니를 볼 수 있다고 했어요. 그래서 관광지에 와서 할머니를 찾았어요.” 그때 나는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자비는 천지에 봄이 오게 하고 정념은 세상 사람을 구하는도다.”[5]에 대해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진상 화폐로 진상을 알리다

나는 또 내가 어떻게 진상 화폐로 진상을 알렸는가를 말하려 한다. 처음에 나는 진상 화폐를 크게 중요시하지 않았는데, 한 사람에게 진상을 알릴 때 그가 파룬궁이라는 말을 들어봤다고 말했다. 내가 물었다. “어디에서 들었어요?” 그는 돈에 적힌 것을 봤다고 말했다. 나는 진상 화폐가 사람을 구하는 힘도 원래는 아주 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사부님의 설법을 읽었다. “이 방법은 정말로 좋다고 나는 말한다. (박수) 이 돈을 버리자니 버릴 수 없고 소각하자니 또 소각할 수도 없다.”[6] 사부님께서 긍정하셨으니 나는 진상 화폐로 진상 알리기 시작했다.

나는 먼저 채소를 팔고, 과일을 파는 노점상부터 시작했다. 평소 물건을 살 때 나에게 거스름돈을 주려고 하면 사양했고, 그들과 이야기할 때도 그들을 아주 존중하면서 점점 거리를 좁혀 나갔다. 그들은 나를 아주 친절하게 대했다. 이후 내가 진상 화폐로 물건을 사도 그들은 반대하지 않았다. 나는 그들이 한가한 시간에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받았다. 나는 그들이 대법을 인정한 후에 그들에게 말했다. “제가 좋은 돈을 드릴 텐데 필요하세요? 이 돈을 쓰는 사람은 복을 받아요.” 그들이 말했다. “그럼 앞으로 우리한테서 바꾸세요.”

몇 차례 바꾼 후, 그들도 직접 이익을 경험했다. 나는 10일마다 가서 그들을 만났고, 그들은 내가 말하기도 전에 주동적으로 물었다. “가져왔어요?” 내가 묶음을 주면 그들이 바꾸어 주었는데, 한 번에 최소한 백 위안이었고, 대부분 1위안(한화 약 170원)짜리였다. 설이나 명절에는 3백, 5백, 가장 많을 때는 천 위안이었다. 2017년부터 지금까지 내가 바꾼 1위안짜리 진상 화폐는 3만여 장, 5위안짜리는 4천여 장, 10위안짜리는 2천여 장이다. 아주 멀리에서 신권을 바꿔와 진상 화폐로 제공하며 고생을 마다하지 않은 수련생에게 깊이 감사드린다.

정에서 벗어나 남편의 사망을 담담하게 대하다

많은 해를 보내는 동안 남편은 가끔 나의 진상 알리기를 원치 않았지만, 관건이 되는 순간에는 그래도 나를 적극 지지한 사람이었다. 한번은 내가 간수소에서 돌아왔을 때 ‘6·10’이 70여 세인 남편을 주민위원회로 불러 나를 세뇌반에 보내겠다고 했다. 남편은 그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당신들 누가 감히 아내를 움직이는지 볼 거야. 아내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내가 당신들과 끝장을 볼 거야.” 이튿날 ‘6·10’이 일부러 집에 와서 남편에게 말했다. “화를 푸세요. 우리는 안 보낼 겁니다.”

남편은 확고하게 정의를 추구하는 사람이었고, 어떤 수련생에게든 곤란이 닥치면 도왔다. 한 수련생이 노교소에 갇혔을 때 그는 늘 돈과 물건을 보냈다. 한 수련생은 검은 소굴에서 돌아와 생활비가 없었는데, 그가 사심 없이 돈을 주어 곤란을 해결해주었다.

2007년에 남편도 법을 얻었지만, 진상 알리기와 발정념을 거의 하지 않고, 많은 일을 법에 따라 하지 않고, 만고의 이 기연을 붙잡지 않아 2016년에 세상을 떠났다. 우리는 50여 년을 함께 생활했고, 늘 아주 좋은 감정을 유지해 그가 세상을 떠난 것은 나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당시 집에서 어떤 물건을 보든, 어떤 일을 하든, 모두 남편의 그림자를 기억할 수 있었다. 나는 이렇게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 사부님께 부탁드렸다. “사부님, 다시는 이런 것이 저를 교란하지 않도록 저를 도와주십시오.” 나는 이런 교란에서 벗어나려면 법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이후 나는 그가 생각날 때마다 법공부를 대량으로 했다.

나는 점점 남편에 대한 정을 내려놓았다. 나는 내가 대법제자이므로 인간의 일체에 집착하지 않고, 구세력에 어떠한 구실도 주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묘비를 새길 때 딸에게 말했다. “너희 아버지 큰일을 치르면서 다른 어떤 것도 가능하지만, 묘비에는 아버지 이름을 중간에 넣고, 내 이름 자리는 남기지 말자.” 딸은 울었다. 내가 말했다. “이렇게 하는 건 나한테 신앙이 있기 때문이야. 나는 너희가 내 신앙을 존중해 주길 바란다.” 매장하는 날, 친척들이 모두 왔다. 내가 첫 번째로 남편의 묘 앞에 갔을 때 내가 말했다. “영감, 내가 했던 모든 일을 당신이 이해해 줄 수 있길 바라요. 우리의 약속은 여기에 있지 않고, 더 아름다운 곳에 있어요.”

대법이 없었다면 나는 걸어오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 나는 혼자 약 200㎡의 건물에서 매일 아주 넉넉한 생활을 한다. 사부님을 굳게 믿어 어떤 곤란도 넘어올 수 있었다. 여기에서 나는 다시 한번 사부님의 보살핌에 감사드립니다!

수련은 이제 23년이 되었고, 내가 비록 약간의 일을 했지만, 오늘까지 걸어올 수 있었던 것은 날마다 법공부와 수련을 견지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정진하는 수련생과 비교하면 여전히 차이가 크며, 현재도 여전히 많은 마음을 버리지 못해 계속해서 제고해야 한다. 이렇게 여러 해 동안 저를 보호해 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제가 비록 잘하지 못하지만, 앞으로 더욱 정진해 사부님의 기대를 절대 저버리지 않기로 했습니다. 다시 한번 사부님께 절을 올리며, 저를 도와주신 모든 수련생께 감사드립니다!

처음 쓰는 원고이니 부족한 곳이 있다면 자비로운 지적을 바랍니다.

허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서: ‘전법륜’
[2] 리훙쯔 사부님의 저서: ‘정진요지2-대법제자의 정념(正念)은 위력이 있다’
[3] 리훙쯔 사부님의 저서: ‘전법륜 법해’
[4] 리훙쯔 사부님의 저서: ‘뉴질랜드법회설법’
[5] 리훙쯔 사부님의 시: ‘홍음2-법정건곤’
[6] 리훙쯔 사부님의 저서: ‘로스앤젤레스시 법회 설법’

(밍후이왕 제16회 중국대륙 대법제자 수련심득 교류회)

 

원문발표: 2019년 11월 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밍후이대륙법회>제16회(2019년)
원문위치: http://big5.minghui.org/mh/articles/2019/11/7/39550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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