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젊은 대법제자
[밍후이왕]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방금 대학 입시시험을 본 젊은 대학생입니다. 제가 태어날 때는 대법이 극히 엄중하게 박해당하던 때입니다. 대법을 수련하는 어머니는 저를 임신하고 천안문광장에서 납치되었는데, 저는 태어나지도 않고 구치소에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어머니는 여러 차례 불법적인 체포를 당했고 늘 집에 왔다가 1~2년이 멀다고 또 잡혀갔습니다. 그리하여 저의 어릴 적 시절은 아버지 있는 곳에서 지냈습니다.
법 얻기 전후의 나, 마치 서로 다른 사람처럼
아버지는 대법을 수련하지 않았는데 냉담하고 이기적이었고 집에는 항상 억압된 분위기가 가득 찼습니다. 가족은 다른 사람에게 적대감이 가득했고, 늘 남을 나쁘다고 생각해 악으로 남을 대했습니다. 이런 집에서 자라 저는 늘 마음이 초조하고 말투가 박정하고 온몸에 가시를 세웠는데 공부는 더 말할 것도 없었습니다. 수업 시간에 음식을 먹고 숙제는 다른 사람의 것을 베끼고 시험 볼 때는 책가방을 당기는 척하며 뒷사람 답을 베꼈는데, 이런 여러 가지 행위로 저는 마치 하나의 구할 방법이 없는 나쁜 학생이 된 것 같았습니다.
다행히 사부님의 보호를 받아 중학교 가기 전의 여름방학에 어머니가 돌아왔습니다. 그때부터 저의 생활은 대법의 빛 아래 밝아지기 시작해 환골탈태의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저는 어머니 있는 곳으로 전학 가서 중학교에 들어갔습니다. 처음에는 쉽게 초조하고 무엇을 해도 후련하지 않아, 초조한 마음으로 독한 말을 하고 공부는 더 하기 싫어했습니다. 어머니는 엄청난 포용심으로 저를 타이르고 격려해주었습니다.
대법을 배운 후 심신이 안정되고 많은 도리를 알게 되어, 점차 시비를 구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책에서 말한 것은 정말 맞고 대법은 너무 좋습니다. 특히 업력의 전환은 저를 흥분하게 했고, 일거사득(一舉四得)의 법리는 머리를 탁 트이게 했습니다. 대법은 저의 마음을 평화롭고 그렇게 쉽게 초조하지 않게 하고 밝아지게 했습니다. 사람이 한 좋고 나쁜 일은 자신에게 한 것이라는 것을 알고, 저는 성질을 함부로 내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않았습니다. 대법이 저의 지혜를 열어주어 공부가 정상적인 궤도로 진입했습니다.
공부 방면에서 어머니는 늘 제가 잘할 수 있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첫 번째 달 학부모 회의에서 어머니는 제게 제가 일등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했습니다. 저는 아예 믿지 않았습니다. 생각밖에 두 번째 달에 저는 반에서 일등, 세 번째 달에는 학년에서 일등을 했습니다. 이것은 정말 개천에서 용이 난 것입니다. 얼마나 신기합니까?
그때부터 저는 떨어지지 않고 줄곧 학년에서 앞 몇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고등학교에 가서 더욱이 매번 일등을 했습니다. 이것은 예전에는 감히 상상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대법이 제게 이런 복을 준 것입니다.
자신을 잘 수련해 학교에서 대법을 실증하다
성적이 좋아 중학교 2학년 때 제1회 단원을 선거할 때 저의 이름이 올라갔습니다. 이 일을 어머니에게 알리니 스스로 결정하라고 했습니다. 생각은 간단합니다. ‘대법이 이렇게 좋아 심신에 혜택을 입게 하는데, 공산당은 이렇게 좋은 법을 박해하니 그것은 당연히 나쁜 것이다. 내가 어떻게 그것의 조직에 가입할 수 있겠는가?’ 저는 마음을 정하고 담임선생님께 “선생님, 저 입단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선생님은 이 말에 놀라 눈알이 떨어져 나올 것 같았습니다. 선생님은 저를 사무실로 데리고 들어가서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이 애가 입단하지 않겠답니다.” 사무실에 있던 선생님들도 모두 놀랐습니다. “입단하지 않겠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가입하려고 해도 못 하는데.”
선생님은 제게 왜 입단하지 않는지 물었습니다. 저는 “공산당이 너무 나쁘다고 생각됩니다. 가입하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선생님은 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저를 타이르기 시작했습니다. 선생님이 뭐라고 해도 저는 한마디만 반복했습니다. “공산당이 너무 나쁘다고 생각됩니다. 가입하고 싶지 않습니다.” 당시에 저는 다른 말이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결국, 선생님은 방법이 없어 어머니께 전화했습니다. 어머니는 선생님께 누가 시킨 것이 아니고 아이 자기 생각이라고 말했습니다. “가입하든 안 하든 그것은 개인의 자유입니다. 아이가 가입하기 싫어하면 그냥 놔두세요.” 이렇게 저는 순조롭게 자신의 깨끗한 신분을 보존했습니다. 그 후 매번 선생님이 반에서 누가 아직 단원이 아니냐고 물으면, 저는 자랑스러워하며 고개를 들고 일어났는데, 저는 제가 이 일을 옳게 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올라갈 때 어머니는 중한 병업관을 넘고 있었습니다. 제 성적은 현지에서 가장 좋은 고등학교로 갈 수 있었으나, 저는 좀 차하지만 집에서 가까운 고등학교를 선택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저를 위해 안타까워하며, 제가 그 가장 좋은 고등학교에 가면 더 좋은 성적을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사부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당신의 것이라면 잃지 않을 것이고, 당신의 것이 아니라면 당신은 다퉈서도 얻지 못한다.”[1] “한 사람이 태어날(降生) 때 하나의 특수하고 시간개념이 없는 공간 중에 사람의 일생이 이미 동시에 존재하고 있는데, 어떤 사람은 일생뿐만이 아니다.”[1] 수련인의 일생은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것입니다. 어디에 가야 하면 어디로 가야 합니다. 아마 여기에도 나와 인연 있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저의 마음은 태연해 득과 실이 아주 태연하게 변해 따지지 않았습니다.
확실히 이렇습니다. 대법 중에서 얻은 지혜로 저는 영광스럽게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매번 전교 일등을 해 제가 법을 실증하는데 유리한 도구가 되었습니다. 성적이 좋고 성격이 온화한 학생으로서 각 과 선생님이 모두 저를 편애하고, 학교도 저를 중점으로 배양하며 많은 관심을 주었습니다. 학교에서는 어머니와 더 많이 소통해 저의 성적을 올리려 했고, 어머니에게 학부모 회의에서 발언해 저에 대한 교육 경험을 말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이런 기회를 빌려 어머니는 각과 선생님과 학교 지도자에게 우리 가정은 수련가정이라는 것을 밝히고 진상을 알렸습니다. 그들은 모두 어머니를 존경했고 대단하다고 칭찬하며, 여러 해 동안의 거대한 압력 아래서 여전히 자신의 신앙을 견지한다고 부러워했습니다. 어머니는 강당에서 태연하게 소개했습니다. “저는 대법을 수련한다는 이유로 노동교양을 받았습니다. 돌아온 후 대법 법리의 지도로 어떻게 아이를 교육해야 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어머니의 말에 적지 않은 학부모들이 놀랐지만, 그들은 다 알아들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제게 관심을 두거나 부러워하며 늘 질문했습니다. “너는 어떻게 공부를 그렇게 잘해?” 저는 솔직하게 대법을 수련해, 먹고입고쓰는 등 물욕(物欲)을 모두 담담하게 보고, 친구들처럼 무슨 명품을 사는데 집착하지 않으며, 자연스럽고 담담하게 본다고 말했습니다.
사실 확실히 이렇습니다. 저는 친척에게서 받은 설 용돈을 모두 어머니나 다른 수련생에게 주어, 녹음기를 사서 대법 진상 내용을 담아 속인에게 주거나 다른 대법을 실증하는 일을 하라고 합니다. 매번 어머니가 제게 새 옷을 사주려 할 때면 저는 옷이 있다고 하면서 얼른 어머니를 끌고 상점 문을 나갑니다. 저는 이런 일에서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중학교, 고등학교 때는 어머니가 젊었을 때 입었던 옷을 입거나 다른 사람이 준 헌 옷을 입었는데 몸에 맞기만 하면 됐습니다. 아주머니 수련생이 제게 새 옷을 사주어 저는 몇 번이고 돈을 돌려주려 하였지만, 아주머니는 제가 너무 고생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고생을 겪는 것은 좋은 일이고, 고상한 행위라고 여겨 아이에게 집착을 가해주지 말라고 당부했습니다.
먹는 것은 간단합니다. 심지어 어른 수련생이 와서 “엄마가 채소를 볶아주지 않냐?”라고 관심을 가지며 물었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자랄 때는 채소를 먹어야 한다며 어머니에게 저를 잘 보살피지 않는다고 질책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학교에 채소 반찬이 나오지만 저는 좋아하지 않습니다”라고 알려주었습니다. 어머니는 매일 아주 바쁩니다. 방금 무엇을 먹었는지 기억하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배고프면 배불리 먹기만 하면 됩니다. 사부님께서 일찍 법을 전하실 때 항상 라면을 드시던 일을 기억해, 학교에서 친구들이 음식배달을 시키고 몇 입 먹지 않고 버리면, 저는 그들에게 대법에서 안 법리를 말해줍니다. “이런 것은 모두 자신의 덕으로 바꿔온 것이야. 소중히 여겨야 해.”
저는 한 할머니 수련생이 대법을 실증하는 일을 도왔는데, 늘 저를 데리고 가서 먹을 것을 사주려고 했습니다. 그때 저는 11살이었습니다. 저는 할머니 뒤에서 한 바퀴 돌고 거절하지 못할 것 같아 “만두 먹고 싶어요”라고 말했습니다. 할머니의 소원을 풀어드리고 싶었습니다. 집에 간 후 할머니는 “이 아이는 햄버거 먹으러 가자니 안 가고, 아이스크림을 사 준다 해도 먹지 않아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어머니에게 조용히 말했습니다. “햄버거 먹으면 몇십 위안을 써야 하는데 물만두는 12위안(약 2천 원)이면 됩니다.”
수련인은 세상의 일체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더 넓고 깊은 우주관, 사유와 인식이 법 속에 있어, 속인의 고만한 인식을 훨씬 초월했고, 마음이 조용하기 때문에 전심전력으로 공부를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저는 수련인입니다.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공부는 학생의 본분이라 잘해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또 한 가지도 아주 중요합니다. 사이좋은 인간관계가 있어야 합니다. 평화로운 심태는 제게 많은 혜택을 보게 했습니다. 많은 본래 아주 우수한 친구들이 늘 친구, 선생, 학부모와 모순이 발생해 정서 기복이 크고 지나치게 따지고 제멋대로 하며, 자신의 요구에 도달하지 못하면 울고불고 화를 냅니다. 선생님도 자주 말합니다. “저도 학생들에게 수모를 당합니다.” 이는 자신의 공부에 큰 영향을 줄 것입니다. 저는 그들이 안타까워 제가 법에서 배운 처세 도리를 말해줍니다. 관용을 말하고 덕과 업을 말했습니다. 어떤 친구는 화나서 울면서 말했습니다. “네가 말한 관용은 너무 어려워.”
휴대폰과 웨이신은 현대사회 학생들에게는 골치 아픈 일입니다. 대법 수련생이라 사부님께서 지켜주고 계셔서 저는 짊어진 법 실증과 중생 구도의 사명을 알고, 거의 웨이신을 보지 않습니다. 안에는 친구들과 선생님들의 열띤 토론 등이 있지만 저는 상관하지 않습니다. 저의 휴대폰은 무음으로 해 놓아 공부할 때 정신을 집중해서 할 수 있습니다. 대법이 없으면 저도 많은 젊은이처럼 돌아오지 못할 깊을 수렁에 빠져매일 채팅이나 하고 있을 것인데, 너무 무서운 일입니다.
한 유명한 인권변호사가 저의 성적을 들은 후 말했습니다. “수련인의 아이들은 정말 좋습니다. 자제력이 높아요. 우리 애들은 안 됩니다. 휴대폰만 가지고 놀아요.”
담임선생님은 늘 저를 다른 학생이 노력해야 하는 목표로 삼게 합니다. “너는 누구와 아직 몇 점이 차이 난다.” 무형 중에 저는 많은 ‘적수’를 만들어 여학생들이 원망했습니다. “선생님, 선생님은 쟤한테만 잘해줘요.” 대법에서 질투심 문제를 배워 저는 ‘진선인(眞善忍)’의 표준으로 가서 일하고, 자신의 성적으로 자신을 과시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이 시샘하는 말을 하면 저는 화제를 돌리거나 그 친구의 장점을 인정해줍니다. 학생들이 함께 선생님과 다른 친구의 나쁜 말을 할 때 저는 되도록 선생님의 장점을 제시하며 학생들 사이의 모순을 약화합니다. 대법은 제게 포용하는 마음을 주었습니다. 바로 이 마음이 제게 따지지 않는 것을 배우게 했습니다. 고등학교에서 모순이 거의 발생하지 않았는데 이것도 대법을 실증하는 것입니다. 한번은 한 선생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는 성격이 이렇게 밝으니 이 법(파룬궁)은 반드시 좋을 것입니다.”
어머니와의 면담에서 선생님은 대법 진상을 더 많이 알게 되었고, 우리는 또 각과 선생님께 ‘9평 공산당’ 등 진상이 담겨 있는 USB를 선물했는데 선생님들이 모두 받았습니다. 그리하여 고등학교 2학년 때 학교에서 제게 입당하라고 할 때 제가 입당하지 않는다고 하니 선생님은 조금도 놀라지 않았습니다. 악당조직에 가입한 선생님과 학생들은 악당을 찬양하는 노래를 하지만, 저는 선생님을 찾아가 저는 그 노래를 할 수 없다고 하니 선생님은 “하기 싫으면 안 하면 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한 걸음 더 다가가 “선생님, 선생님도 하지 마세요. 그 노래하면 좋지 않아요”라고 말했습니다. 친구가 제게 왜 악당 노래 시합에 참가하지 않느냐고 물으면 저는 이 기회에 진상을 알려주었습니다. 저의 선생님들과 반 친구들은 모두 우리 가족은 대법을 수련한다는 것을 알고 있고 저의 신앙을 존중해 줍니다. 학교에서 저는 잘 생활했고 무시당하지 않았으며 나쁜 대우를 받지 않아, 선생님과 친구들의 호의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자신이 바르게 하여 사부님께서 제게 이 일체를 주신 것입니다.
고등학교 2, 3학년에 올라가서 공부량이 많아지고 대학 입시가 다가와 선생님들은 ‘공부를 잘해라’고 당부하고 긴장한 공부하는 상태에 이끌려 저는 공부에 많은 공을 들이고 법공부를 아주 적게 했습니다. 심지어 오랜 시간 법공부하지 않아 속인 중의 것을 대법 앞에다 놓았습니다. 사실 당시에도 잘못된 것을 알았지만 그 심한 집착심을 내려놓지 못했습니다. 장시간 법을 이탈해 마음도 들떠 있어 대법을 마주하지 못하고 부끄러웠습니다. 사람 중에서 수련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반드시 수시로 자신의 마음을 닦는 데 주의해야 합니다.
고등학교 졸업시험을 본 후 친구들은 외지에 놀러 다니며 시험 본 얘기는 아예 하지 않으며 긴장되어 일부러 회피했습니다. 성적이 나오기 전 모두 자신이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기를 기도했습니다. 저는 담담했고 다른 사람이 물어도 긴장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시험 보기 전에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사부님, 제가 어디에서 가장 큰 작용을 일으킬 수 있으면 어디로 가겠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이미 제게 다 배치해 놓으셨음을 믿었습니다.
점수가 아직 나오지 않았는데 모 명문대학 학생 모집팀의 선생님이 제게 말씀해주셨습니다. “그곳의 교육은 중국처럼 이렇게 들떠있지 않고, 그곳에는 미세먼지가 없습니다. 그곳에는 마르크스, 레닌, 모택동 이런 것을 배우지 않고 시간을 쓸모 있는 것을 배우는 곳에 사용합니다. 그곳의 학습 시설, 국제화 시야, 금액이 적당한 장학금 등. 어머니는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어머니는 마음 준비가 안 되어 있었습니다. 현지에 남아도 괜찮은 대학을 갈 수 있지만 이런 학교를 거절할 힘이 없었습니다. 저는 집착하지 않았습니다. 가든 남든 상관없습니다.
나중에 저는 어머니에게 알려드렸습니다. “어머니는 어머니가 결정하는 줄 아는 데 사실 아닙니다.” 이 한마디로 온갖 마난을 다 겪은 어머니는 마음을 풀고 점차 내려놓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그 학교에 붙어 모든 친척이 다 기뻐했습니다. 여러 해 연락하지 않던 친구들도 찾아오고 연락하며 제가 어려서부터 착했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아니라고 했습니다. 어릴 때는 문제아였지만 파룬따파(法輪大法)를 배우고 저의 품행을 제고한 것입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6년간 저는 약을 한 번도 먹은 적이 없고, 병원에 간 적도 없으며 학교에서 통일로 하는 예방접종도 맞지 않았습니다. 대법은 저의 신체를 철저히 개변시켜 놓았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저는 어린이병원의 단골이어서 해마다 몇 번씩 찾아갔습니다. 병에 걸려 괴로운 느낌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중학교 1학년에 막 올라갔을 때 온몸에 힘이 없었고 달리기는 반에서 꼴찌였습니다. 반에서 가장 뚱뚱한 여학생도 저보다 빨리 달렸습니다. 대법을 수련한 후 저의 신체는 강해졌습니다. 병업을 두 번 소업한 외에 병을 얻은 적이 없습니다. 달리는 속도도 상승하여 꼴찌에서 앞자리로 올라가, 체육 중학교 졸업시험 때 달리기 만점을 맞았습니다. 고등학교에 가니 체질이 더 좋아졌습니다. 봄가을 유행성 감기가 빈발할 때 교실에서 제 자리 주위의 친구들이 돌아가며 다 걸렸습니다. 이 친구가 나으면 저 친구가 걸리고 했는데 공부 양이 많아 휴가도 못내, 매일 누렇고 작은 얼굴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저는 반에서 많지 않은 ‘생존자’입니다. 다른 학생들이 괴로운 것을 보고 어렸을 때의 제가 생각나, 저를 이렇게 건강하게 만들어주신 사부님께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학교에서 진상을 알리다
학교에서도 저는 기회를 봐서 선생님과 학생들에게 진상을 알립니다. 한번은 국어 시간에 선생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모모의 ‘둥근 천장 아래’ 문장을 보았는데 정말 좋았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금지되었습니다.” 어떤 학생이 말했습니다. “대체로 금지된 것은 다 좋은 것들입니다.” 선생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보고 저는 선생님께 진상을 알려야 할 때가 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결정을 내리려면 큰 용기가 있어야 했습니다. 저는 머릿속으로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이 결정을 내리고 수업이 끝날 때까지 선생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심장이 쿵쿵 뛰며 손발이 차갑고 극도로 긴장되었습니다.
수업이 끝나는 종소리가 나고 학생들은 밥 먹으러 가고 몇 명은 선생님 곁에서 문제를 물어보고 있었습니다. 저는 옆에서 기다리며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은 마침내 저를 돌아봤습니다. 저는 쿵쾅거리는 심장을 억제하며 선생님께 말했습니다. “선생님,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말씀하신 파룬궁이 금지되었다는 말씀에 관해 이야기 나눠보고 싶습니다. 선생님은 이런 것에 대해 더 많이 알아야 하실 것 같습니다.” 선생님은 좀 놀랐습니다. 다른 학생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은 가지 않고 강당 주위에 서 있었고 이어서 선생님은 부드럽게 말씀하셨습니다. “좋아요, 말해 봐요, 들어줄게요.”
선생님의 온화한 태도는 저를 크게 격려해 주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긴장되지 않아 말문이 트였습니다. “파룬궁은 불법(佛法) 수련의 하나의 법문입니다. 사람에게 ‘진선인’에 따라 하는 좋은 사람이 되라고 합니다. 공산당이 거짓말로 모함한 것입니다. 공산당이 파룬궁을 박해하는 것은 그해 로마제국의 황제가 기독교 신도를 박해한 것과 같습니다. 마지막에 그렇게 강대하던 로마는 역병으로 망했습니다. 이것은 하늘이 그것을 벌준 것입니다. 박해 중에서 기독교 신도를 도운 사람들은 역병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은 들으시면서 질문을 했습니다. “천안문 분신은 어떻게 된 일이지요?” “그것은 거짓입니다. 공산당이 사람을 찾아 연출한 것입니다. 파룬궁은 자살하지 못하게 합니다. 자살은 죄입니다.” “그럼 왜 병을 보지 못하게 하나요?” “병을 보는 것에는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하나는 남에게 자신의 병을 봐달라고 하지 말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남의 병을 봐주지 말라는 것입니다. 파룬궁은 수련생에게 남의 병을 치료해주지 말라고 하는 것이지, 자신이 병이 있는데 병원에 가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 일문일답 중에서 사부님께서 제게 주신 지혜는 밀물처럼 들끓어 올라왔습니다. 평소에 제게 말하라면 이렇게 명백하게 말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제가 이 걸음을 내디디려고 결심하니 사부님께서 저를 가지[潮水]해 주시고 지혜를 주셨습니다. 마지막에 선생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이웃이 예전에 파룬궁을 수련했습니다.” 제가 얼른 받았습니다. “그 사람은 좋은 사람이었겠습니다.” “음, 그렇습니다. 사람은 확실히 좋습니다. 나중에 아마 잡혀간 것 같습니다.” 저는 목이 메 말했습니다. “잡혀간 사람들이 다 어떻게 되었는지 아세요. 각종 고문을 당하고 맞아 죽기도 하고……” 선생님은 매우 놀랐습니다. 선생님은 중국 사법의 어두운 일면이 얼마나 무서운지 모르고,중국에악당이 선전한 것처럼그렇게 문명하고 예절 바른 법과 질서가 있는 줄로 알고 있었습니다. “선생님, 제가 USB 하나를 드릴 테니 가져가서 알아보세요.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들은 모두 좋은 사람입니다.” 선생님은 진지하게 말했습니다. “좋아요. 시간 나면 볼게요.”
이때 밥 먹으러 갔던 학생들이 돌아왔고 선생님은 우리에게 빨리 가서 밥 먹자고 했습니다. 저는 남은 학생들과 함께 내려갔습니다. 그들은 모두 저와 선생님의 대화를 들었습니다. 저는 말할 때 그들을 피하지 않았고 그들도 저를 중단하거나 떠나지 않았습니다. 제 생각에는 그들이 소문을 내 우리 반 학생들이 저의 신앙에 대해 존중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저녁에 집에 돌아와 마음이 아직 가라앉지 않았는데 학생의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걱정하지 마, 우리는 모두 너를 지지해.” 저는 만감이 교차하였습니다.
수업이 없는 시간에 저는 한 수련생과 함께 진상 자료를 배포했습니다. 인상이 가장 깊은 것은 ‘진실한 장쩌민’ CD를 배포하러 부대로 간 일입니다. 문 앞에 총을 들고 보초를 서는 군인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자루를 메고 자연스럽게 대문으로 들어갔습니다. 건물마다 맨 위에서부터 내려오며 한 층씩 배포했습니다. 동작이 빠르게 가급적 자루 소리가 나지 않게 하고 걷는 것도 조용히 걸었습니다. 건물에 많이 배포하고 차에도 많이 배포했습니다. 그때 저는 아직 중학생이었습니다. 제가 아이였기에 주목받지 않고 의심받지 않았습니다. 세 번을 갔는데 다시 갈 때 우리는 멀리 숨어서 관찰했습니다. 문 앞에 출입하는 모든 사람의 신분을 검사하고 있어, 우리는 더 가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맺음말
수련인은 자신의 미래를 걱정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은 자신의 덕으로 깐 길입니다. 속세에서 우리는 지나가는 나그네일 뿐이고 진정한 집은 천상에 있습니다. 결국에 우리는 모두 그곳으로 가야 하는데 인간 세상의 득실을 따져서는 무얼 하겠습니까?
돌아보니 초등학교 때는 문제아였고 다행스럽게 대법을 얻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저도 현대사회의 비뚤어진 한 사람일 것입니다. 어머니가 중공의 검은 굴에서 돌아온 후 저를 대법 수련으로 데리고 들어가, 저의 6년 중 고등학교 시절은 미운 새끼오리에서 백조로 변했습니다. 사부님의 가르침과 수련 중에서 열린 지혜가 없다면 제게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 중학교 체험이 있겠습니까?
대법의 깊고 오묘함, 또 제가 아직 깨닫지 못한 내포, 이후 대학의 공부와 생활 중에서 저는 수련을 견지해 사부님의 요구에 따라 세 가지 일을 잘하고, 어디에 있든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는 것을 잊지 않고, 동시에 자신을 수련하고 집착심을 제거하겠습니다.
수련생께서 자비롭게 시정해주시기 바랍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轉法輪)’
(밍후이왕 제16회 중국대륙 대법제자 수련심득교류회)
원문발표: 2019년 11월 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밍후이대륙법회>제16회(2019년)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11/8/39545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