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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慧법회| 세 번의 신기한 경험

글/ 안후이(安徽) 대법제자 형란(馨蘭)

[밍후이왕]

자비로우신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1950년대 중반에 저는 완난(皖南) 산악지구 극빈가정에서 태어나 환경이 지저분하고 옷차림이 허름하여 1년의 대부분을 맨발로 신발이 없어 신지 못했습니다. 밤에는 어린 제가 막 잠이 들면 검은 동굴 속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것을 느꼈고 놀라서 깨어나 연로하신 어머니가 어두컴컴한 등잔불 밑에서 실을 짜는 모습을 보고서야 안심하고 잠이 들었습니다. 사악한 중국공산당의 인재가 조성한 3년의 대기근에 저는 피골이 상접할 정도로 배를 곯았지만, 오히려 기적적으로 살아남았습니다. 법을 얻게 될 운명의 생명은 신께서 알아서 배치해주시고 가정의 빈곤함은 제가 고생을 하여 소업하기 위한 것이며 이후 저의 수련에 필요한 선량하고 인내하는 품격을 다지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매우 어렸을 때부터 저는 학교에 다니며 공부하는 것을 갈망했습니다. ‘문화대혁명’으로 인해 저는 16살 되던 해에야 정식으로 중학교에 다녔습니다. 학비를 내고 식권을 살 수 있도록 저는 산에 올라가 약초를 캤고 강에 내려가 자갈을 주워 팔았습니다. 간고함 속에서 저는 괴로움과 고생을 참고 견딜 수 있는 품격을 연마해냈습니다. 저는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우수한 성적으로 학교에 기간제교사로 남았습니다. 월급은 28위안(한화 약 4600원)이었고 부모님과 저의 네 형님네 각 가정의 생활을 크게 개선시켜 주었습니다. 1977년에 대입제도를 부활시켜 그해 11월 중순에 첫 시험이 시작되었고 저는 40여 일 밤의 노력으로 첫 번째 입학시험에 합격했습니다.

저의 결혼은 순탄치 않아 어쩔 수 없는 가운데 저는 어린 아들과 편모 가정으로 살았는데 그때 저는 겨우 30대 초반이었습니다. 결혼의 시련에서 벗어나자 또 다른 고난이 뒤따라왔습니다. 저의 직장은 3선 지구(三線地區) 군수업체였고 학교는 공기업 교육부문에 소속되어 있었습니다. 저의 직장의 공기업 자제학교 교장 및 더 작은 관원은 모두 관계나 돈으로 바꾸었고 이런 ‘관리’들은 가르치는 법을 모르며 온종일 먹고 마시며 부정한 돈을 벌었습니다. 저는 ‘관리’들에게 먹고 마시는 것을 접대하지 않았고 또 ‘관리’들에게 선물을 보낼 돈도 없었습니다. 또한, 저는 천성적으로 떳떳한 사람 기개를 지녔기 때문에 회사 업무에서 배척당하고 억압을 당하여 온종일 저의 마음은 너무 피곤했고 상처를 입게 되었습니다.

제가 매일 힘겹게 버티며 살아가고 있을 무렵 1996년, 저는 운 좋게도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얻었습니다. 그날, 저는 보서 ‘전법륜’을 얻어 단숨에 다 읽어보았습니다. 이날 저는 장을 봐서 밥하는 것을 잊어 아들에게 남은 밥을 먹게 했고 자신은 밥을 먹지 않았는데도 배고픔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이후부터 저는 수련의 길을 걷게 되었고 인생의 고난의 근원을 깨닫게 되어 더는 인간의 고해 속에서 가라앉고 싶지 않았으며 반본귀진하여 대법 속에서 수련하고 사부님 따라 집으로 되돌아가고 싶었습니다. 저는 사부님이 생겨 기분이 매일 즐겁고 상쾌했습니다. ‘관리’들의 저에 대한 모욕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고 권위적인 인사가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한 저의 아들을 업신여기고 괴롭히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으며 즐거운 기분에 간단한 식사마저도 매우 맛있게 먹곤 했습니다.

1999년 7월 20일, 풍운이 돌변하여 대마두 장쩌민(江澤民)을 우두머리로 우리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는 수련자에 대하여 잔혹하게 공격했고 우주 대법과 위대하신 사부님에 대하여 천지를 뒤덮는 요언을 날조하여 모독했습니다. 거대한 시련 속에서 저는 더욱 사부님을 확고하게 믿었고 좋은 사람이 되는 것에는 잘못이 없으며 ‘진선인(眞善忍)’은 잘못이 없다고 믿었습니다. 아래에 제가 사부님을 바짝 따라 중생을 구도한 몇 개의 단편 이야기를 말씀드리겠습니다.

한 켤레의 털 구두가 내가 사악한 포위망을 벗어나도록 도와주었다

2000년 신정에 새로운 세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사악한 공산당이 대법과 사부님을 모함하고 대법제자를 박해하던 어려운 시각에 수련생들은 모두 이 시각 우리는 쓰러져서는 안 되며 마땅히 걸어 나와 법을 실증해야 한다고 인식했습니다. 우리는 60여 명의 대법제자가 성시의 번화가에서 단체 연공을 했습니다. 이때 마침 각 대형 상가에서 세일을 했고 조수같이 밀려오던 도시의 쇼핑객들은 멀리서도 곧장 하늘까지 울려 퍼지는 연공음악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가까이 오면 몇십 미터 길이의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현수막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번에 저는 연공 상태가 특히 좋았고 파룬이 회전하여 저는 거의 날아오를 것만 같았습니다.

우리가 한 시간의 동공을 마치고 제가 눈을 떠서야 경찰이 이미 우리를 겹겹이 포위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한 두목이 목이 쉬도록 우리에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당신들은 누가 우두머리야?” 한 여자 수련생이 낭랑하게 대답했습니다. “우두머리는 없어요. 말단도 없어요!” 경찰관이 소리쳤습니다. “똑바로 서, 잘 서. 사진 찍어.” 저의 옆에 서 있던 한 남자 수련생은 머리를 들고 가슴을 폈습니다. 녹음기를 들고 현수막을 건 두 남자 수련생은 물처럼 고요했고 태산처럼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경찰관의 카메라는 탐조등처럼 우리 매 대법제자의 얼굴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이때 저는 갑자기 잡혀가면 안 된다고 아들은 날이 밝지 않을 때 자전거를 타고 몇십 리 밖에 있는 고등학교에 갔다가 매일 매우 늦게 집으로 돌아오는데 아이의 학업에 영향을 주면 안 되며 저는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염두가 나오자 저는 성큼성큼 사악의 포위망 밖으로 걸어나갔습니다. 제가 발에 신고 있던 하이힐의 낡은 털 구두는 평소에 길을 걸을 때 쿵쿵 소리가 났지만 제가 경찰관을 향해 걸어갈 때는 오히려 소리가 나지 않았으며 두 발은 딱딱한 시멘트 바닥 위를 걷고 있지 않고 마치 부드러운 카페트 위를 걸어가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경찰관의 포위망까지 걸어갔을 때, 두 명의 경찰관은 몸을 옆으로 하고 자진해서 길을 비켜주었습니다. 제가 포위망을 빠져나와 안전지대로 걸어갈 때 털 구두는 또 쿵쿵 소리를 냈습니다. 날이 거의 밝아질 무렵 저는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몇 명의 수련생들은 구치소로 납치를 당했고 나중에 어떤 수련생은 세뇌반으로 수감되었으며 어떤 수련생은 불법적으로 노동교양을 당했습니다.

“이 큰 버스는 당신을 위해 운전합니다”

2008년 여름, 저는 진상자료, ‘9평 공산당’, 진상 시디를 갖고 몇백 리 떨어진 고향 다볘산(大別山) 지역으로 갔습니다. 저도 고향 친척들이 진상을 알고 구도 받기를 바랐습니다. 제가 ‘9평 공산당’을 오래된 고향 사람들에게 선물했을 때, 일부 ‘문화대혁명’을 겪어온 고향 사람들은 놀라서 감히 받지 못했고 장기적으로 사악한 공산당의 요언으로 미혹된 선전과 폭력적인 통치를 받아온 친척과 친구들은 놀라서 감히 저를 고향 집에 머물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종적을 감추는’ 방식으로 진상을 집집마다 나누어주었습니다.

어느덧 2009년 여름이 되었고 저는 다시 한번 진상자료, ‘9평 공산당’, 시디 등 한 가방을 준비하여 여전히 고향에 가서 진상자료를 나누어주었습니다. 약 한 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하여 승차권을 사고 완난 방면으로 가는 시외버스를 타려던 중, 갑자기 안전 검사원에게 가로막혀 저의 어깨에 메고 있는 가방을 내려놓고 가방을 검색기에 넣고 검사하려 했습니다. 저는 즉시 의념이 반응했습니다. ‘이 가방을 어떻게 당신들이 검사하게 할 수 있는가!’ 정념이 나오자 안전 검사원은 갑자기 얼굴에 미소를 띠며 저를 힘껏 밀었고 저는 비틀거리며 하마터면 넘어질 뻔하면서 사람과 가방이 순조롭게 검색하는 곳을 밀쳐져 지나오게 되었습니다. 1분 만에 이 관을 넘었고 내심은 사부님께서 제자를 보호해주시는 것에 얼마나 감격했는지 모릅니다!

몇 시간 동안의 장거리를 거쳐 다시 완난 고향에 왔습니다. 가족과 고향 친척들에게 번거로움을 보태지 않을 것을 고려하여 저는 잠시 사람이 거주하지 않는 낡은 집에 숨었고 집 뒤의 배수구에서 기다렸는데 주변은 모두 잡초와 수목이 무성했습니다. 저는 발정념을 하고 법을 외웠으며 ‘홍음’을 외우면서 밤이 깊어가는 시간을 기다렸습니다. 약 밤 11시 무렵, 저는 가방 안에 있는 진상자료, ‘9평 공산당’, 시디, 진상 호신부 등을 집집마다 배포했습니다. 매우 빠르게 진상자료를 순조롭게 배포 완료했습니다. 저는 날이 밝아 그들이 문을 열 때, 바로 진상자료를 보고 그들이 진상을 알게 되어 더는 사악한 공산당의 거짓 선전을 듣지 말며 자신의 미래를 위해 엄숙한 선택을 하기를 희망했습니다.

그날 밤, 저는 재빨리 걸어서 되돌아갔고 큰 산에는 밤이면 차가 매우 드물게 있었습니다. 여자인 저 혼자서 산속을 걸었고 산을 휘감으며 나 있는 도로를 따라 앞으로 나아갔는데 조금도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저는 사부님이 바로 저의 곁에 계신다고 깊이 믿었습니다. 높은 산에는 가끔 들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려와도 저는 두렵지 않았고 들짐승은 감히 대법제자 가까이 오지 못한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어떤 때에는 현지 공안 순찰차를 만났지만 우리는 서로 상관하지 않고 각자 갈 길을 갔습니다. 큰 산길은 오르막과 내리막의 기복이 있었고 저의 두 다리는 점점 뻐근해졌습니다. 시간을 서두르기 위해 저는 견지하면서 마음속으로 사부님의 법을 외웠습니다. “대각자는 고생을 두려워하지 않나니 의지는 금강으로 만들었구나 생사에 집착이 없나니 정법의 길은 탄탄하여라”[1]. 저는 한편으로 갈 길을 서두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발정념을 했습니다. 약 30리의 길을 걸어 큰 산을 벗어나 다른 한 마을에 도착해 저는 앉아서 날이 밝기를 기다렸습니다.

날이 밝자마자 저는 힘들게 바닥에서 기어 일어나 버스를 찾았습니다. 몇 걸음 걸어가자 곧 도시로 가는 버스 한 대를 보았고 운전기사는 문 입구에 서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버스에 올라타서 요금을 내고 자리에 앉아 잠을 자려고 준비하는데 갑자기 차 안에 한 남자 청년이 다가왔습니다. 그는 향긋한 요우티아오(油條)를 먹으면서 한편으로는 미소지으며 저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보세요. 당신이 얼마나 위대한가요. 이 큰 버스는 당신 한 사람을 위해서 운전해요.” 당시에 저는 몹시 피곤하여 이것은 사부님께서 속인의 입으로 저를 격려해주신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저는 예의로 대답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차가 앞으로 가면 승객이 있을 거예요.” 말하다 보니 이 사람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큰 버스는 저 한 사람만 태우고 도시를 향해 질주했습니다. 저는 자신의 아픈 두 다리를 감싸 안고 앉아 잠이 들었습니다. 나팔 소리가 저를 잠에서 깨어나게 했고 차는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저는 눈을 떠보니 차 안에는 승객이 가득 앉았습니다. 이번 고향행은 20시간 동안 몸이 비록 좀 피곤하고 발에는 피멍이 들었으며 발가락 열 개는 모두 퍼렇게 멍이 들었지만, 저의 마음은 오랫동안 즐거웠습니다.

박해를 부정하고 ‘전근’에 성공하다

2002년 말, 사악한 공산당 정부에서 문건을 하달했습니다. “공기업 자제(子弟)학교는 기업에서 벗어나게 되고 자제학교 및 교직원은 사회공립학교로 전환하여 ‘전근’이라고 약칭한다.” 우리 시정부는 실행했고 실시문건 중 한 조항이 있었습니다. “처벌을 받은 적이 있는 교사는 전근을 시켜주지 않는다.” 이 규정은 실질적으로는 파룬궁(法輪功) 수련생의 직업을 박탈한 것입니다. 이것은 완전히 구세력이 나쁜 사람을 이용하여 대법제자에 대해 박해하는 것입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무리한 상해(傷害)에 직면하거나 대법(大法)에 대한 박해에 직면하거나 우리에게 강제로 주어진 불공정에 직면할 때, 예전의 개인수련처럼 그렇게 대하여 일률적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대법제자는 현재 정법시기에 처해있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 개인의 집착과 잘못으로 나타난 문제가 아니라면, 그것은 반드시 사악이 교란하거나 나쁜 일을 하는 것이다.”[2]

사부님의 말씀은 저의 정념을 확고하게 했고 구세력이 박해에 참여하는 것을 확고하게 부정했습니다. 학교 책임자는 남의 재앙을 보고 고소해 하며 떠들었습니다. “시정부의 문건인데 고칠 수 있겠어요?”

저는 학교 책임자의 심한 저항을 뚫고 자전거를 타고 각급 책임자를 찾으러 갔습니다. 먼저 저를 납치했던 공안국 모 과장을 찾아가 저는 말했습니다. “2000년 말, 당신들은 저를 납치하여 구치소에 저를 수감했었지요. 지금 공기업 학교는 공립으로 바꾸는 것을 계획 중인데 시정부 문건에서는 처벌을 받은 적이 있는 교사에게는 전근시켜주지 않는다고 규정되어 있네요. 저의 일자리가 없어지면 당신들이 저에게 해결해줘야 해요.” 그가 말했습니다. “시정부의 이 문건은 당신들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들에 대한 것이 아니에요.” 저는 말했습니다. “시정부의 문건에서는 이렇게 말하지 않았나요.” 그는 생각하더니 저에게 말했습니다. “제가 구치소에 있는 공문서를 꺼내 와서 소각해 버리면 안 돼요?” 저는 확고하게 대답했습니다. “안 돼요! 파룬궁 수련생들은 진선인(眞善忍)의 표준으로 사람이 되고 있는데 구치소에서 저의 공문서를 소각하는 것은 진실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당신들이 저를 박해했던 증거를 없애버리는 것이 되어버리잖아요. 파룬궁은 언젠가는 억울한 누명이 벗겨질 거예요.” 그리하여 그는 전화를 들고 ‘610’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는 먼저 제가 반영한 상황을 말했고 이어서 말했습니다. “이 번거로운 일은 당신들이 벌인 거예요. 문제는 당신들이 해결해요.” 상대방이 말했습니다. “모모 선생님의 책임자는 정말 훌륭하시네요. 이미 와서 상황을 보고했어요. 우리는 마침 상급 책임자에게 보고하려고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어요.” 이 공안국 과장은 확고하게 말했습니다. “당신들은 이후에 다시 우리에게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을 붙잡으라고 하지 말아요. 우리는 안 할 거예요.”

저는 자전거를 타고 또 ‘610’을 찾아갔습니다. 그들은 저를 보고 몹시 긴장했으며 저에게 물을 따라주고 앉게 했으며 말하는 태도가 많이 정중해졌습니다. 저를 학생과 학부모에게 깊이 사랑받는 합격한 선생임을 내심 인정했고 저의 직장 책임자와 그들이 상급 책임자에게 보고한 것을 저에게 보여줬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저 하나만 좋은 사람인 것이 아니라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은 모두 사회적으로 진정한 좋은 사람입니다!” 그들은 내심으로부터 인정했습니다.

이어서 저는 시정부와 도시 교육위원회에 가서 관련 책임자를 찾아 알렸습니다. 교육을 담당하는 시장을 찾기가 쉽지 않아서 진상 편지를 써서 그녀에게 부쳤습니다. 시 교육위원회 주임을 만났고 그의 태도는 매우 좋았으며 저의 반영을 열심히 듣고 마지막에 대답했습니다. “반드시 당신에게 올바르게 해결해주겠어요.”

이 기간에 저는 또렷한 꿈을 꾸었습니다. 한 더러운 도랑 하나가 있었습니다. 저의 온몸은 도랑 속에 매달려 있었고 자신의 몸이 더러운 도랑에 빠지지 않기 위해 저는 도랑의 한쪽에 있는 제방에 등을 바짝 붙였으며 두 발은 도랑의 다른 한 제방을 딛고 옆에서 매우 자비롭게 저를 바라보고 있는 한 동료를 보았습니다. 그녀가 저를 당겨주도록 저는 오른손을 내밀었지만, 그녀는 아무런 힘이 없어서 저를 당겨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갑자기 다른 한편에 한 남자가 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약 30대의 모습이었고 양복을 입고 있었으며 매우 엄숙하지만, 매우 자비롭게 저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가 저를 당겨주기를 바라면서 저는 왼손을 그를 향해 내밀었지만, 그는 저의 손을 당기지 않았고 순간 저의 곁에 서서 제 어깨 위의 옷을 손으로 잠시 위로 들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되었고 스스로 힘껏 발버둥을 치기 시작하며 더러운 도랑을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깨어난 후 깨달은 것은 사부님께서 제자를 도와주신 것이며 이 난을 저는 매우 빠르게 건너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어서 저는 더 정념이 생겨 다시 시 교육위원회를 찾아갔고 주임은 만나자마자 말했습니다. “문제없어요. 당신의 전근은 문제없어요.” 그리고 저의 업무 및 품성에 매우 좋은 평가를 해주었습니다. 며칠 만에 시정부는 저의 직장 및 관련 책임들에게 ‘모 직장 파룬궁을 수련하는 모모 교사에게 전근을 시켜줄 것이며 가능한 한 빠르게 전근 수속을 처리할 것’이라고 회의에서 통지했습니다. 우리 학교의 선생님들은 이 통지를 듣고 감격의 박수를 보냈습니다. 이 기간에 저의 직장 책임자 및 본 시의 학생 및 전근 처리 담당자들은 모두 저를 위해 상급 책임자에게 문제를 보고했고 파룬궁을 수련하는 제가 좋은 선생님이라는 것에 만장일치로 동의했습니다. 직장 책임자는 그 일주일 동안 낮에는 각급 정부에 달려갔고 밤에는 사무실에 돌아와 각급 정부에 보고를 작성하면서 파룬궁을 수련하는 저는 좋은 사람이고 우수교사라는 것을 반영하여 전근시켜 달라고 강력히 요구했습니다. 저의 한 동료가 나중에 저에게 알려주었습니다. “파룬궁은 정말 신기해요! 저는 당신을 전근시키는 일을 준비하기 위해 하루 휴가를 내서 그 책임자들을 만났어요. 시교육위원회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제가 찾아야 하는 책임자들이 마치 회의를 열듯이 잇달아 나왔어요. 원래는 하루 동안에도 모두 말하기 어려운 일을 결국 두 시간도 채 안 돼서 전부 말할 수 있었어요.”

저는 1996년 10월부터 파룬따파를 지금까지 수련하여 이미 23년이 되었습니다. 이 23년의 수련 이야기는 너무 많아 수련생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은 일도 많습니다. 수련의 길은 비록 험난했지만, 사부님의 보호가 있으셨고 정념이 족하여 건너지 못할 관이 없었습니다. 저는 자신이 반드시 사부님 따라 끝까지 걸어갈 수 있다고 확고히 믿습니다.

한번은 수련생이 저에게 어떤 집착심을 제거하기 가장 어려운지 물었고 저는 말했습니다. “원망하고 미워하는 마음입니다.” 저는 평소에 저에게 시련을 조성한 사람을 원망하고 미워합니다. 사부님께서 제자에게 “수련인은 적이 없으며”[3]라고 알려주셨습니다. 대법을 수련하는 저는 자아를 내려놓아야 하고 마땅히 저에게 시련을 만들어 준 그런 사람들을 선하게 대해야 하며 그들이 대법제자의 선량함을 느낄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저는 반드시 사부님의 말씀을 잘 듣고 원망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닦아 없애겠습니다.

위대하신 사부님 안심하시기 바랍니다. 제자인 저는 시시각각 당신의 제자이며 영원히 당신의 제자입니다. 사부님께서 제자에게 맡겨주신 세 가지 일을 잘하여 정진에 정진을 더하겠습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시사: ‘홍음2-정념정행’
[2]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2-정법(正法)과 수련’
[3]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3-세간을 향해 바퀴(輪)를 돌리노라’

(밍후이 제16회 중국대륙 대법제자 수련심득교류회)

 

원문발표: 2019년 11월 4일
문장분류: 明慧주간>제930회 밍후이왕 제16회 대륙법회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11/4/395389.html
영문위치: http://en.minghui.org/html/articles/2019/11/11/18068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