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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락이 있어도 교란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말에 관해

글/ 북미 대법제자

[밍후이왕] 악인이 자신을 박해하거나 신체가 엄중한 교란을 당할 때 적잖은 수련생의 교류문장에서 비슷한 말을 하고 있다. 즉, “내게 누락이 있더라도 사부님의 법에서 바로잡을 것이며 절대 교란과 박해를 허용하지 않는다”라는 말이다. 진심으로 바로잡을 수 있다면 당연히 좋은 일이지만, 수련생들이 구세력 요소의 배치와 교란만 부정하기를 강조하는 것을 자주 보게 된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사부님께서 법에서 강조하신 것은 모두 ‘안을 향해 찾는 것’이 근본이다.

(1) ‘2018년 워싱턴DC 설법’에는 이런 말씀이 있다.

제자: 대법제자가 마난을 겪을 때, 어떤 대법제자는 먼저 자기를 찾아서는 안 되고 마땅히 먼저 발정념을 해야 하며, 만약 자기를 찾으면 구세력을 따라 걷는 것이라고 여깁니다.

사부: 참, (사부님 웃으심) 나는 통상, 늘 말하기를, 문제에 부딪히면 우선 자기를 찾으라고 했으며, (사부님 웃으심) 자기에게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 보고, 자기에게 문제가 있으면 즉시 고치라고 했다. 발정념은, 어떤 일에 대해 마(魔)가 있거나 진짜로 마가 교란하는 것임을 당신이 진짜로 알았을 때, 당신이 그것이 진짜 그것임을 알았을 때, 당신은 발정념을 하라. 또한, 이 발정념은 아무거나 다 겨냥해서 발정념하지 말라. 원래 당신 자신이 잘못을 했음에도 발정념을 한다면, 당신의 정념이 이때 정말 작용을 일으킨다면 곧 당신을 다스릴 것이다. (사부님 웃으심)

(2) “아태지역 수련생회의 설법”에는 이런 말씀이 있다.

제자: 가끔 난에 부딪히게 되는데 자신의 업력인지 아니면 구세력의 배치인지를 모르겠습니다.

사부: 구세력의 배치이든지 아니면 업력이든지를 막론하고 우리는 우선 자신을 생각해야 한다. 나는 당신들의 발정념마저도 당신들에게 자신을 우선 청리하라고 하였다. 먼저 자신을 보고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면 잘 처리하라. 그때엔 구세력 그것도 방법이 없다. 그것이 당신의 약점을 잡지 못하면 자연히 물러나기 마련이다. 물론 지금 구세력은 물러나도 안 된다. 철저히 청리해야 한다. 발정념을 하여 자신을 청리한 후 그것을 청리하라. (박수)

(3) “북미 순회 설법” 중에는 이런 말씀이 있다.

제자: 두 가지 문제를 여쭙겠습니다. 하나는 국외 일부 대법제자들의 친척 친우가 모두 공법을 연마했지만, 나중에 박해가 온 후 점차 포기했습니다. 그들은 현재 마땅히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싶어 합니다. 다른 한 가지 문제는 일부 아주 정진하는 제자가 어떤 때 마치 아직도 비교적 엄중한 병업(病業)의 표현이 있는 것 같은데, 그들은 이것이 자신의 개인적인 업력인지 아니면 사악의 파괴인지를 알고 싶어 하는데, 그들은 마땅히 어떻게 이 일을 대해야 합니까?

사부: 첫 번째 문제에서 그들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는 그들 자신이 결정할 일이며 이것은 그들 자신을 보아야 한다. 두 번째 문제에서 어떠한 일에 부딪혀도 먼저 자신을 보아야 하며 이는 대법제자와 속인이 같지 않은 가장 큰 특징이다. 만약 우리 자신이 정말로 문제가 없다면 그것은 반드시 대법제자에 대한 그러한 사악의 박해이다. 특히 현재 정법시기에 대법제자의 업력은 이미 문제가 아니다. 청성(淸醒)하게 사악한 생명의 박해를 인식해야 하는바 그것들은 진정으로 나쁜 일을 하고 있다. 대법제자로서 가장 좋기에는 자신의 길을 바르게 걸어야 하며 사악에 박해당할 구실을 주지 말아야 한다.

내가 이해하기로는 자신이 길을 바르게 걷지 않았기 때문에 빌미를 잡힌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먼저 자신을 바로잡아야만 박해를 당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이지 바로잡지 않더라도 부정하기만 하면 교란과 박해를 제거할 수 있다고 하는 말이 아니다.

사부님께서 구세력의 배치를 부정하는 법을 말씀해주셨지만, 내가 이해하기로는 그것은 우리가 최대한 자신의 인식 제고를 통해 자신을 바르게 고쳐나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 구세력의 요소가 더는 구실을 빌미로 교란하지 못하게 해야 하고 그것의 교란을 제거해야 하는 것이다.

만약 ‘누락이 있어도 교란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난을 만났을 때 발정념과 ‘교란을 부정’하는 것만을 중시하게 되고, 안을 향해 찾아 교란당하는 진정한 원인을 찾는 것을 소홀히 하기 쉽다.

어떤 수련생은 신체상 엄중한 교란을 당하는 동료에게 바람을 넣으며 “누가 누락이 없을 수 있겠는가? 누구라도 누락이 있으며 누락이 있어도 교란할 수 없다”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이렇게 하면 실제로 난을 겪는 수련생에게 안을 향해 찾기를 쉽지 않게 하는 것이며, 진정하게 안으로 찾아 교란당하는 진짜 원인을 찾기 어렵게 한다. 그러므로 이렇게 하면 실제 수련생을 돕는 것이 아니다. 나중에난을 겪는 한 수련생이 사실은 몇 년 동안 진지하게 법을 배우지 않았고 연공도 하지 않았음을 알게 됐다. 이렇게 큰 누락이 있는데도 인식하지 못한 채 덮어놓고 발정념만 하면서 승인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 교란을 부정할 수 있단 말인가? 사실 유사한 정황을 많이 봤는데 확실하게 부정하지는 못했다.

분명 난 중에 안을 향해 찾기란 어렵고 고통스러우며 때로는 심지어 문제를 찾기도 쉽지 않다. 이때 만약 간단하고도 만능인 방법이 있다고 한다면, 예를 들어 발정념하고 부정하는 것이 그런 방법이라면, 사람들은 그것을 쉽게 지름길로 여길 것이다.

수련이란 매우 엄숙하며 대법제자에 대한 요구도 아주 높다. 오로지 착실하게 수련해야만 진정으로 제고할 수 있고 박해와 교란을 부정할 수 있다. 만약 발정념하고 교란을 부정하는 것을 수련의 지름길로 여긴다면 자신의 수련을 크게 그르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의 깨달음으로 단편적 견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원문발표: 2019년 11월 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 마당>이성적 인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11/1/39527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