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섣달그믐날 저녁 식사로 야기된 이야기

글/ 해외 대법제자

[밍후이왕] 비록 삶이 고달프고 힘들지만 법학습 중에서 나는 자신의 사명이 중대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최근 시아버지께서 대법 수련에 들어서셨는데, 이건 3년 전 섣달그믐날 저녁 식사 한 끼로 인해서다.

남편은 형제가 둘인데 그와 남동생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남편은 항상 “내게는 이 동생 하나뿐이야”라고 말한다. 뜻인즉 그들이 어떻든 형수로서 내가 마땅히 시동생을 너그럽게 봐주고, 수련생으로서 선하게 대해야 한다는 뜻이다. 나와 아이를 제외한 다른 가족들은 모두 1998년에 법을 얻은 노 제자들이다. 시아버지만은 예외로 늘 “나는 수련하지 않지만 이미 도(道)중에 있는 사람이지”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이국 타향에서 우리 동서지간은 마땅히 가장 친해야 했다. 게다가 우리는 한 고향 사람이고 또한 수련생이다. 하지만 동서와의 연원이 얼마나 깊은지 관을 한고비 또 한고비를 넘게 됐는데, 나중에는 이 관을 3년이나 끌게 됐다. 2016년 섣달에 시부모님이 천릿길을 마다치 않고 손자를 보러 해외에 오셨다.

요리사인 나와 남편은 다른 사람에게 밥을 해주고 돈을 벌어 가족을 부양하는데, 우리 집 다섯 식구를 부양할 뿐만 아니라 시동생 가족도 돌봐야 했다. 섣달그믐날, 나와 남편은 다른 집에 밥을 지어주러 갔고, 시동생 부부는 집에서 할 음식을 준비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우리 둘이 일을 바쁘게 끝내고 9시가 넘어서 집에 돌아와 보니, 시동생 부부는 아무것도 해놓지 않았고 동서는 점심때 먹었던 것을 데우고 있었다. 그녀는 손에 든 냄비를 마구 흔들며 화를 냈는데, 왜 그런지 알 수 없었다. 연로하신 시부모님과 배고프다고 칭얼대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하루에 3시간밖에 자지 못했던 나는 저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12시 종소리가 울리기 전에 다 준비했다.그 당시 그믐날은 좀 특별했는데, 우리 두 가족 외에도, 연로하신 시부모님께서 먼 길을 오셨고, 우리와 같은 신분의 중국 수련생 두 분을 초청했다. 우리는 비록 가난하지만, 저녁 식사를 그래도 최대한 풍족하게 만들었으며 요리에는 새우 8마리가 들어있었다. 두 집 아이가 다섯 명, 시부모님과 수련생 두 분 모두 14명이 있었지만 아무도 새우에 손대지 않았다. 모두 먹으면서 음식이 맛있다고들 했다.

아마도 내가 환희심이 일어나서인지, 갑자기 동서가 자신의 큰딸에게 하는 말이 들렸다. “봐 봐, 큰어머니가 널 어떤 눈으로 보고 있는지.” 보니 동서의 큰딸이 첫 번째로 새우를 집어먹고 있었다. ‘나는 전혀 본 적이 없는데 왜 그렇게 말하지?’ 나는 동서가 내게 억울한 누명을 씌웠다고 생각했고, 그녀가 이전에 내게 했던 억울했던 일이 생각나, 자신이 수련인이라는 것도 잊은 채 한마디 맞받아쳤다. “어떻게 밥을 먹으면서도 입을 못 막지?”

고개를 들자 시어머니가 눈물을 흘리시는 것이 보였고, 남편과 시동생 등 거의 모든 사람이 ‘이런 날, 이런 자리에서 그런 말을 하다니’라는 표정이었다. 창피함, 체면, 압력, 억울함 등 뭐라고 말할 수 없는 심정이었다. 마치 요리에 넣는 조미료처럼 신맛, 쓴맛, 매운맛이 다 있었다.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려 속으로는 원망을 품고 있었지만, 겉으로는 온화한 척 콜라가 담긴 컵을 들고 동서 곁으로 다가가 말했다. “미안해, 그렇게 말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사과할게.” 그녀는 한 글자 한 글자씩 또박또박 말했다. “저-는–언-니-와–안–마-셔-요!” 자아에 집착하는 간교한 사람 마음이 충격을 받으면서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그믐날 저녁 식사는 이렇게 끝나고 말았다.

식탁을 치울 때 시동생이 말했다. “형수가 수련을 잘했다고들 하지 않았나요? 제가 보기엔 별로네요. 그런 표현을 하는데도 수련을 잘한다고요? 다 불합격이에요!” 남편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얼굴은 잔뜩 부어있었다. 심지어 가장 사랑하는 큰아들조차도 매우 사정없이 말했다. “어머니는 어떻게 때와 장소도 가리지 않고 그렇게 아무 생각이 없으세요? 어떻게 할아버지 할머니의 심정도 생각하지 않으세요?” 나는 비록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굵은 눈물이 주르륵 흘렀고 모든 것이 눈물을 따라 쏟아져 나왔다.

나는 시어머니 앞으로 가서 말씀드렸다. “어머님, 죄송해요, 제가 잘못했어요, 저는 왜 못 참았을까요?” 시어머니는 말씀하셨다. “바로 사부님께서 법에서 말씀하신 ‘그러나 흔히 모순이 생길 때, 사람의 심령(心靈)을 자극하지 않으면 소용없고 쓸모없으며 제고하지 못한다.’[1]와 같지. 넌 정말 쉽지 않고, 너무 고생했어. 매일 3시간밖에 못 자고 나는 네가 억울하다는 걸 안단다. 그들이 널 어떻게 대하든 상관없이 열심히 일했지.”

수련은 쉽지 않았다. 그 후부터 동서와 서로 경계선을 긋고 상관하지 않았다. 사부님께서 여러 번 점화해주셨고, 이런 것을 반드시 닦아버려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속으로는 알고 있었지만, 체면을 내려놓지 못했다. 평소에 무슨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아이를 시켜 그들에게 보내줄 뿐이었다. 올해 이미 일흔이 훨씬 넘은 시어머니께서 갑자기 걸을 수 없었다가 법공부와 발정념 중에서 서서히 회복되신 후, 먼 길도 마다하지 않고 우리를 보러 또 오셨다. 나는 속으로 내가 집에 없을 때 동서가 시부모님을 보러 올 거로 생각했다.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와 시어머니께 동서가 보러 왔었는지 여쭈었더니 오지 않았다고 하셨다. 이 ‘오지 않았다’는 간단한 말에 마음이 매우 무거웠다. 이미 지난 3년간 사부님께서 몇 번이나 이 관을 넘기도록 안배하셨지만 모두 넘지 못했다. 이 사람의 마음을 숨기고 건드리지 않았다.

개변

한 달 전 어느 날 아침, 집을 깨끗이 청소하고 음식을 준비해놓고, 법을 외운 후, 사부님의 법상(法像) 앞에 무릎을 꿇고 사부님께 다음과 같이 말씀드렸다. “이 혈육 간의 정(情)관을 너무 오래 넘고 있습니다. 정법이 막바지에 이르렀는데, 이 마음을 저는 아직도 닦아 없애지 않았습니다. 온 가족이 저 때문에 함께 모일 수 없고, 가족이 수련인인데도 정체(整體)를 이루지 못하는 이것도 큰 누락입니다. 여행지 홍법(洪法) 중에서도, 일하면서 삼퇴(三退)를 권할 때도, 진상 전화를 걸 때도, 아무리 듣기 싫거나 아무리 사악한 말이라도 당당하게 마주할 수 있었고 자비롭게 사람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자신의 사명과 수련의 기준을 알고 있습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저는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렵니다. 오늘 이 관에서 합격한 제자로 되려 합니다. 사부님, 저를 가지(加持) 해 주십시오.”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사부님을 바라보니 사부님 법상 유리 액자에서 두 번 소리가 났는데 마치도 “좋아”라고 격려하시는 것 같았다.

일어서서 문 앞까지 걸어갔을 때, 자신도 모르게 다시 고개를 돌려 사부님 법상을 보았는데 사부님께서는 인자하고 자비롭게 거기에서 날 보고 계셨다. 비록 몇 초밖에 안 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난 비할 데 없는 자상함을 느꼈고 감동의 눈물을 머금고 동서네 집으로 향했다. 마음속에는 사부님의 법이 떠올랐다. 사부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수련은 곧 이 마난(魔難) 중에서 수련해야 하며, 당신이 칠정육욕을 끊어버릴 수 있는가 없는가, 담담히 여길 수 있는가 없는가를 본다. 당신이 그런 것들에 집착한다면 당신은 수련해 내지 못한다. 어떤 일이든지 모두 인연관계가 있는 것으로서, 사람은 왜 사람이 될 수 있는가? 바로 사람에게는 정(情)이 있으며, 사람은 바로 이 정을 위해서 산다.”[1] “만약 이 정을 끊어버리지 못하면 당신은 수련하지 못한다. 사람이 이 정에서 뛰쳐나왔다면 누구도 당신을 움직이지 못하며, 속인의 마음은 당신을 움직이지 못하는데, 그것을 대체하는 것은 자비이며, 더욱 고상한 것이다.”[1]

난 동서네 집에 가서 말했다. “동서, 내가 나빴어. 수련인으로 놓고 말하면 대법의 기준에 부합되지 않았고, 속인으로 놓고 말하면 형님의 책임을 제대로 하지 못한 거야. 내가 잘못했어. 오늘 점심에 가족 모두 함께 와. 오랜만에 단란하게 모여 즐겁게 식사하자.” 우리는 함께 울었고 악수하며 화해했다.

식사 후 우리는 다음 날 온 가족이 함께 법을 배우기로 약속했고, 다음날 나는 ‘전법륜(轉法輪)’ 책을 가져왔다. 네 사람인데 다섯 권을 들고 오면서 시아버지를 바라봤다. 평소 우리가 법공부를 한다고 하시면 시아버지는 자리를 뜨셨는데 오늘은 움직이지 않으셨다. 나는 두 손으로 ‘전법륜’을 받쳐 들고 시아버지께 건네 드리면서 말씀드렸다. “저희와 함께 사부님의 법을 학습하시는 게 어떠세요?” 시아버지는 “좋아!”라고 하셨다. 가족들은 모두 즐겁게 웃었지만 나는 울었다. “아버님, 죄송해요. 만약 제가 좀 더 일찍 이 정, 사람의 마음, 이 집착을 내려놓았다면, 어쩌면 아버님께서 3년 일찍 수련하셨을 거예요.”

남편이 말했다. “사부님의 특별한 배치네요. 축하해요.” 시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우리 큰 며느리는 수련을 정말 잘했구나. 매번 너와 통화할 때마다 네 심성이 제고된 걸 느낄 수 있었단다. 고맙구나. 우리 사이에도 불쾌했던 적이 있지 않았니? 대법은 참 신기하고 사부님께서는 너무 자비로우시구나! 너의 변화가 대법과 21년이나 거리를 두었던 시아버지를 수련에 들어서게 할 줄 누가 알았겠느냐? 이것은 우리 집의 큰 경사다. 정말 좋구나. 사부님 감사합니다!”

말수가 적은 시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이 대법은 정말 대단하구나. 난 며느리의 변화에 감동했어. 도도하고 혼자만 잘난 사람이 이렇게 크게 변화할 줄이야, 나도 수련할 거야.” 우리 가족 모두는 약속이나 한 듯이 모두 합장했고 사부님께 감사드렸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그것들이 보건대, 당신이 나를 구할 수 있으려면, 당신은 나의 층차에 도달해야 하고, 이 위덕이 있어야만, 당신은 나를 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당신이 그 위덕이 없고 당신이 나만큼 높게 도달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나를 구할 것인가? 그래서 그것은 당신에게 곤두박질치게 하고 고생을 겪게 하여, 당신의 집착을 제거하게 한다. 그런 다음 당신의 위덕이 세워지고, 당신이 어느 층차로 수련되면, 당신이 비로소 그것을 구할 수 있으므로 모두 이렇게 한다.”[2] 시아버지는 늘 자신은 수련하지 않지만 도(道) 중에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정법 막바지에 들어오시게 됐다. 온 가족은 하나의 정체가 됐는데, 모두 사부님의 홍대한 자비였다.

나는 사부님의 법을 여러 번 읽었다. “진정하게 당신 자신을 수련하며, 모순에 부딪히고 문제에 부딪히면 자신의 어디가 잘못됐는지 살펴보고, 내가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법으로 가늠해야 한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이것이 바로 수련이 아닌가?”[2] “언짢은 일에 부딪히고, 당신을 화나게 하는 일에 부딪히며, 개인이익과 자아가 자극받았을 때, 당신이 안에서 찾아보고, 자신을 수련하며, 자신의 누락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갈등 속에서 당신이 정말 무고(無辜)하다 해도 ‘오, 알겠다. 내가 틀림없이 무언가 잘못했구나. 설사 정말로 잘못이 없다 해도, 아마 이전에 빚진 업을 갚는 것일 수도 있는데, 나는 그것을 잘해서 갚아야 할 것을 갚겠다.’고 하면 된다. 끊임없이 이러한 문제에 부딪히고, 끊임없이 이러한 일에 부딪히며, 끊임없이 당신 자신을 수련한다. 만약 수련인이 문제를 이렇게 보고, 바른 이치(正理)로 자신을 수련한다면, 당신들이 속인 중에서 부딪힌 언짢은 일은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당신이 수련하고자 하고, 당신이 삼계를 벗어나고자 하며, 당신이 당신 본래의 곳으로 되돌아가려 하고, 당신이 당신 그 지역(一方) 세계의 중생을 구도하려 하며, 당신이 정말로 조사정법 하려 하면, 이것은 당신에게 편의를 제공해 주고, 당신에게 진정하게 자신을 수련하게 하는 것이 아닌가?”[2]

나는 이번 가정관 중에서 수련 중 자신의 행위가 가족과 친구, 그리고 이웃에 미치는 영향, 특히 자신과 친한 사람들이 수련에 들어설 수 있는가에 얼마나 중대한지 깊이 깨달았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서: ‘전법륜’
[2] 리훙쯔 사부님의 저서: ‘각 지역 설법 11-대법제자는 반드시 법 공부를 해야 한다’

 

원문발표: 2019년 10월 2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10/22/39455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