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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망하는 마음을 닦아버린 체험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공산주의 최종 목적’ 책에서 명확하게 지적했다. ‘원망’은 일종 물질이고 그것은 생명이 있다. 혹은 ‘원망’이 바로 생명이고 공산 악령을 구성한 근본 요소다. 악당 문화에 잠겨 있는 중국인의 머릿속에 너무 많은 원망의 요소가 있다. 가진 사람을 무조건 미워하는 ‘질투병[紅顔病]’에서부터, ‘아버지 비교하기’ 등 단어가 유행하는 등 현상은 현대인들의 비뚤어진 심리 상태를 반영하고 있다.

원망과 질투는 쟁투심과 서로 연결돼 있고 정(情)의 견제를 받는다. 구우주의 사(私)에서 나온 것이고 수련인이 반드시 제거해야 할 집착심이다. 매번 발정념할 때 나는 그것을 정념으로 제거해야 할 주요 대상으로 삼았다. 하지만 시험이 갑자기 왔을 때 여전히 아등바등 사람 생각에서 신의 생각으로 가는 과정을 겪고 나서야 층층의 깊이 뿌리박은 원망을 벗겨내고 대법 수련자의 자비와 원용(圓容)을 보여주고 대법의 아름다움을 실증할 수 있었다.

다음은 내가 원망하는 마음을 닦아버린 두 가지 일을 써 사존께 보고하고 수련생들과 교류하려 한다.

1. 오빠와 올케언니에 대한 ‘원망’을 제거하다

오빠의 두 눈이 완전히 실명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내가 몹시 슬퍼하지 않은 것이 이상했다. 오빠를 봤을 때도 언니들처럼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은 다 업력 때문이기에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내가 ‘정’을 담담하게 내려놓았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남편이 나에게 말했다. “당신 왜 큰처남을 그렇게 대해?” “내가 어쨌는데요?” “됐어, 어쩌지 않았어. 아무튼, 그는 당신 오빠야.” 내가 언짢아하는 것을 보고 남편은 몸을 돌려 나갔다.

나도 나의 태도에 놀라 왜 그런지 자문했다. 어디에서 나온 분노인가? 자세히 안으로 찾아보니 깊이 숨어있는 원망하는 마음을 보았다. 오빠와 올케언니가 부모님을 부양하지 않고 부모님이 돌아가실 때까지 봉양하지 않았으며 장례를 잘 치르지 않아 원망했다. 오빠가 부모님을 그의 집에 모셔갔다 해도 나는 안심하지 않았을 거다. 올케언니가 부모와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세상 뜬 후에도 그들은 묘지에 가서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 부모님이 살아계시던 어느 해, 사촌 오빠의 전화를 받았다. 우리 자매에게 얼른 돌아와 부모님 일을 상의하자고 했다. 나와 언니가 급히 눈이 오는 걸 무릅쓰고 집에 돌아가 보니 연로한 부모님께서 솜옷을 입고 이불을 감싸고 차가운 바닥에 누워있었다. 난로의 불은 꺼진 지 오래됐다. 그때부터 한 가닥 ‘원망’이 내 마음을 뚫고 들어왔다.

일은 이랬다. 당시 올케언니가 어머니와 몇 마디 다투어 아버지는 홧김에 말씀하셨다. “자네 가게. 우리를 돌보지 않아도 되네!” 이렇게 올케언니는 다시는 부모님을 돌보지 않았다. 사촌 오빠는 우리 자매에게 부모님을 모셔가게 하려고 부른 것이었다. 그러나 두 언니는 현지에 있지 않고 한 언니는 시부모를 돌보고 있었고 나만 혼자 딸을 데리고 집을 임대해 살았다. 부모님은 여든이 다 되어가는 분인데, 각종 질병에 시달리고 있었다. 부모님을 돌보고 치료에 편리하게, 나는 돈을 빌려 병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집을 샀다. 그 후 부모님은 병이 있어 병원에 입원한 이외에 우리 집에서 사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는 아예 이사해 나와 같이 사셨다.

나는 출근하느라 바쁜 데다 어머니까지 돌보느라 심신이 고달팠다. 그러나 오빠는 자기네 살림만 하고 줄곧 상관하지 않고 묻지도 않았다. 한 번은 퇴근해 집에 돌아오니 어머니가 넘어지신 것을 발견했다. 어머니가 며칠이나 걷지 못해 나는 매우 괴로웠다. 오빠는 문안 한번 온 기억이 없었다. 이후에 어머니가 누워 걷지 못하게 되자 우리 자매 몇 사람이 번갈아 가며 어머니를 돌봐드렸다. 한평생 고생하신 어머니는 자식의 보살핌을 받는 편안한 생활을 하셨다. 그러나 어머니는 딸 집에 있는 것이 상식에 맞지 않는다는 관념이 있어서 늘 아들을 생각했고 아들이 보러 오기를 기다리셨다. 하지만 내가 알기로는 오빠는 항상 돌아와서 일하거나 술을 마시거나 놀면서 어머니를 보러 오는 경우는 드물었다. 한 번은 80이 넘는 어머니가 돌아가려는 오빠를 간절히 바라보며 말씀하셨다. “나는 아들 집 아랫목에 잠시 앉아있고 싶어.” 그러나 오빠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웃기만 하고 갔다.

두 번째로 오빠를 원망한 것은 아버지의 책임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 올케언니는 오빠의 두 번째 아내다. 이 올케언니 아들을 결혼시켜주려고 오빠는 돈을 빌려 땅과 집을 사서 결혼시켜주었다. 또 명령조로 우리 고모들에게 모두 적어도 500위안의 축의금을 내라고 했다. 오빠는 본인의 모든 저축을 다 썼을 뿐만 아니라, 3년간 의붓아들의 대출금을 다 물어주고 반년 후에는 눈이 실명되어 친아들에게는 돈 한 푼 주지 못했다. 갓 대학을 졸업한 조카는 아버지 도움을 받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아버지를 치료하고 봉양하느라 걱정해야 했다. 나는 조카 때문에 오빠를 원망했다. 오빠가 안팎을 가리지 않고 좋은 마음의 한계선이 없다고 원망했으며, 올케언니가 너무 이기적이고 자기만 생각하고 심술궂다고 원망했다. 심지어 하늘이 언젠가 응보를 내리리라 생각했다. 얼마 되지 않아 올케언니가 아들을 도와 곡식을 말려주다 넘어져 손목뼈가 부러진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내가 잘못했다는 것을 인식하고 놀랐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사람의 불성은 선(善)으로서, 자비로 표현되며 일을 함에 우선 남을 고려하고 고통을 참고 견딜 수 있는 것으로 표현된다.”[1] 대법에 대조해보니 나에게 강렬한 원망하는 마음이 있었다. 선하지 않고 질투심도 있었다. 그것이 바로 마성이다! 법의 요구에 따라 나는 올케언니의 각도에서 생각했다. 올케언니는 불운한 사람이다. 전 남편이 늘 올케언니와 아들을 때렸다. 아들은 늘 맞아 땔나무 더미에서 밤을 지냈다. 가정교육이 부족하여 그는 성격이 완고하고 비열했으며 걷잡을 수 없이 방탕했다. 오빠도 나에게 말한 적이 있다. “아이의 양육권을 그의 아버지에게 주었지만 나는 그의 어머니와 결혼했으니 그를 상관하지 않을 수 없어.” 오빠는 올케언니를 이해했다. 아이가 밖에서 일을 저질러 평생을 망쳐서는 안 되기에 올케언니의 시름을 놓게 하느라 얼른 가산을 마련해 결혼시켜 준 것이다. 가정을 꾸리면 아내가 있고 가정의 단속이 있으면 심성이 천천히 평온해질 수 있다. 오빠는 얼마나 선량한 사람인가! 그는 의붓아들을 위해 이렇게 많은 것을 했지만 의붓아들은 ‘아버지’라고 부른 적이 없다. 오빠 앞에서 다른 사람을 ‘의부’라고 부르기도 했다. 해마다 봄 파종, 가을 수확할 때 오빠는 먼저 의붓아들 일을 해준 다음 자기 땅 일을 했지만, 오빠는 원망하지 않았다.

이런 일을 생각하니 나는 수련인으로서 속인보다도 못했다. 지금 나는 시간이 나면 오빠와 올케언니를 보러 간다. 빈손으로 가지 않았고 그들을 우리 집으로 초대해 음식을 대접하고 일상사를 이야기했으며 그들을 데리고 외식하면서 그들에게 배려를 느끼게 했다. 올케언니도 예전처럼 우리를 보면 불만이 가득하지 않았다. 우스갯소리로 지금처럼 이렇게 편안하고 한가롭지 않았다며 오빠와 손잡고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고 말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상유심생(相由心生)’[2]을 알려주셨다. 사부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관념이 바뀌고 부패된 물체 없애니”[2]. 나는 이 법리를 더 깊게 이해하게 됐다.

2. ‘무쇠가 강철로 되지 못함을 안타까워하는’ 정을 내려놓다

속담에 “대단한 능력이 없으면 함부로 일을 맡지 마라”라는 말이 있다. 사람에게 재능이 있어야 사회에서 발붙일 수 있다는 말이다. 딸은 회계를 배웠기에 나는 딸에게 졸업한 후 일자리를 찾는 데 사용하게 회계사 자격증 시험을 치라고 독촉했다. 그러나 딸은 중시하지 않았다. 세 번 시험 쳤는데 통과하지 못했다. 나의 독촉 하에 또 한 번 공무원 시험을 쳤는데도 합격하지 못했다. 또 모집 시험에 참여했는데 겨우 20 몇 점을 맞았다. 나는 결국 화나 자질구레한 일을 전부 말하며 딸을 한바탕 훈계했다. 딸도 도리에 어긋났다고 생각했는지 올해 다시 한번 시험을 치겠다고 했다.

하지만 책만 사 와서 공부하지 않자 나는 또 잔소리하기 시작했다. 결국, 어느 날 딸이 나에게 소리를 질렀다. “나를 상관하지 않으면 안 돼요? 시험을 치지 않아도 굶어 죽지 않아요! 어머니가 어디 수련인 같아요? 나에 대한 정을 빨리 내려놓으세요!” 이는 사부님께서 딸의 입을 빌려 나를 깨우쳐주신 것으로 생각하고 나는 안으로 찾기 시작했다. 표면적으로 나는 딸의 미래를 위해 생각하는 것 같지만 깊이 파보면 딸에게 그럴듯한 일자리가 있어야 동료, 친구 앞에서 체면이 선다고 생각하는 허영심, 명리심이 있었다. 사람의 일생은 모두 안배된 것이라는 것을 잊고 후천적인 관념과 소위 인생 경험으로 딸을 지도하려 했다. 내 모든 행위는 딸의 운명을 바꿀 수 없고 자기 집착만 가중시킬 뿐이다.

직장 일을 연상하면 학생을 대할 때도 나는 ‘무쇠가 강철로 되지 못함을 안타까워하는’ 설교와 징벌을 했다. 모두 원망, 쟁투, 이기심, 독선, 등 집착이 숨어있었다. 이런 것은 구우주의 부패한 물질이고 공산 악령이 내 생명에 주입한 독극물이다. 목적은 나를 수련 성취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나는 강대한 정념을 내보내고 확고하게 그것들을 제거했다!

내가 이런 누락을 인식한 후 딸은 스스로 일자리를 찾았고 자주 나에게 전화해 편안히 지낸다고 전했다. 내 마음은 다시 평온해졌다.

나를 ‘원부(怨婦)’에서 ‘혜녀(惠女)’로 변하게 한 대법에 감사드린다. 이 정법 최후의 시각에 사부님의 타이름에 따라 좋은 사람보다 더 좋은 생명이 되어 주위 사람들이 내 몸에서 선량, 진실과 관용을 보게 하겠다. 악당의 거짓말을 폭로하고 파룬따파의 아름다움을 실증해 더 많은 중생을 구하겠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서: ‘정진요지-불성과 마성’
[2] 리훙쯔 사부님의 저서: ‘각 지역 설법 10-따지웬(大紀元)회의 설법’
[3] 리훙쯔 사부님의 시: ‘홍음-신생’

 

원문발표: 2019년 10월 1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10/13/39451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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