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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인은 사부님께서 관여해주고 계신다

글/ 후베이 대법제자

[밍후이왕] 저는 올해 53세 퇴직노동자로 2008년부터 수련한 대법제자입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수련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했고, 무협 소설 보는 것도 좋아했으며, 신불이 존재한다는 것을 믿고, 사람은 각자 운명이 있다는 설도 믿었습니다. 불성이 있기에 수련생의 소개로 저는 자연히 파룬따파(法輪大法) 수련으로 걸어 들어왔습니다.

수련인은 사부님께서 관여해주고 계신다

2005년, 우리는 외지에서 일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이전에 공장에서 분배한 집의 모든 가구와 생활용품을 도둑맞아 빈집이 되었고, 이미 거주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4식구는 사촌 언니의 집을 빌려 살았고, 그 후부터 집은 우리에게 마음의 병이 되었습니다.

2006년 사촌 언니는 우리를 도와 중고 주택을 보다가 한 채가 마음에 들어 가격을 알려주었는데 5만5천 위안(약 9350만 원)이었습니다. 우리는 외지에서 7년 일하며 마침 그만한 돈을 저축했고, 바로 집을 구매했습니다.

2017년 하반기 도시재개발공사로 인해 우리가 사는 집은 철거하고 이사해야 했는데, 주택 건설은 기약도 없이 무소식이었습니다. 이것은 우리 4식구가 또 살 곳이 없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집을 사려고 하는데 단기간 어디에 가서 적당한 집을 찾을 수 있겠어요? 아무리 어려워도 찾아야 했고, 우리의 집을 평가한 후 우리는 도처에 가서 집을 알아보았지만, 결과가 없었습니다.

2018년 정월 우연한 기회에 사촌 형부가 친구를 식사에 초대했고, 그 자리에서 사촌 형부가 친구에게 집을 알아봐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말이 떨어지자마자 친구가 말했습니다. “저의 집을 구매해요. 어때요?” 그는 같은 단지에서 엘리베이터가 있는 집을 한 채 더 구매하여 이전 집을 세 놓았습니다. 사촌 형부는 그 집이 시 중심이고, 4층이며 주변 환경이 좋다는 것을 알고 즉시 승낙했습니다.

그러나 그 후 그 친구 부부는 외지 딸 집에 몇 개월 가 있었습니다. 이때 제가 집을 구매할 수 있는지, 집의 가격, 명의를 넘기고 세금을 얼마 내는지 등에 대해 아무런 언급이 없었고, 게다가 당시 시에서 대규모로 철거하기에 어떤 사람은 암암리에 투기하고 집 가격이 오른다고 하며 판매자가 마음을 바꿀지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이때 시 철거직원은 여러 번 찾아와 철거에 협조하라고 권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 수련인은 자신이 잘하면 모든 것은 사부님께서 배치가 있다고 믿었습니다! 저는 마찬가지로 사람 구하는 항목을 했습니다.

2018년 4월 하순 형부 친구가 외지에서 돌아와서 형부는 즉시 그들에게 집 구매를 상의했습니다. 평가받고 세금 내고 집 명의이전 등을 협상했으며, 각종 비용을 포함해 134평 집을 60만 위안(약 1억 2백만 원)으로 구매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의심할 여지 없이 좋은 소식입니다! 집 가격은 잘 협의가 이뤄졌지만 우리 수중에는 겨우 23만 위안(약 3910만 원)밖에 없었고, 모자라는 큰돈은 친척의 도움으로 곧 전부 모아 관련 절차를 하루 만에 끝마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집을 간단히 인테리어하고 이사했습니다. 막 새집에 들어가자마자 통지가 왔습니다. 오래된 집은 철거 착공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이 일을 아는 사람은 모두 우리가 운이 왜 이렇게 좋으냐고 말했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는 똑똑히 알고 있습니다. 자비로우신 사부님께서 저를 관여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제가 뒷걱정 없이 전심으로 법을 실증하는 일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해주신 것입니다.

수련인은 사부님께서 관여하고 계십니다. 남편이 집에 없지만, 집의 대소사는 모두 제가 질서정연하게 관리하고 있습니다. 저는 시시각각 자신에게 본말이 전도되지 않도록 일깨워주고, 사람을 구하는 항목은 예전과 변함없이 한 번도 빠뜨린 적이 없습니다. 다중 프로그램은 협력해야만 사람 구하는 항목을 해낼 수 있습니다. 저는 첫 번째 절차와 마지막 정리하는 일을 책임졌고, 비교적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 기간은 우리 집이 비상이었습니다. 저는 집을 구하는 일에 신경을 써야 했고, 주말에는 몇십 리 밖에서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에게 밥을 가져다줘야 했습니다. 비록 딸은 시집을 갔지만 혼자 집에서 가게를 개점하여 시간을 낼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또한 딸에게 매일 두 끼의 식사를 가져다주어야 합니다, 낮에는 항목에서 수련생에게 필요한 자료를 인쇄해서 책임지고 제공해줘야 하므로 밤에, 만든 완제품을 정리하고 포장해야 합니다. 정말로 시간이 긴박하게 느껴져 1분을 2분으로 쓰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한번은 주말에 있었던 기억으로, 그날 저는 새벽 3시 50분에 연공 후 6시 발정념을 하고 자료를 인쇄하러 나갔습니다. 10시쯤 자료를 가지고 와서 수련생에게 준 후 아들에게 줄 점심 도시락을 준비했습니다. 이때 남편은 고향에서 사촌 동생이 전화를 걸어와 고향에서 경관대도(景觀大道)를 수리한다며 우리 조상의 묘지를 이전해야 한다고 저에게 가보라고 했습니다. 남편은 외아들로, 외지에서 일했고, 그의 부모님은 이미 돌아가셨기 때문에 이 일은 누구에게 전가할 수 없어 제가 해야 했습니다. 저는 점심 도시락을 아들에게 전달해 주고 밥도 먹지 못하고 스쿠터를 타고 남편 고향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묘 이전을 돕는 현지 농민에게 음료수와 담배를 주었습니다. 고향에 돌아가 저는 제부(사촌의 배우자)를 찾아 묘를 이전하는 일을 상의했습니다. 그날 비석을 세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저는 또 제부에게 비석을 세우는 사람을 찾아달라고 했고, 오후에 숙련공은 비석을 잘 새겨서 저는 즉시 비석 세우는 배치를 저녁 무렵에 완공했습니다. 제가 집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저녁 8시였고, 간단히 밥을 먹고 낮에 수련생이 진상을 알리는 데 쓸 물품을 정리했습니다.

이런 특수한 상황에서도 저는 지금까지 수련인이라는 것을 잊은 적이 없고, 매일 법공부와 연공을 중단한 적이 없으며, 4번의 정각 발정념을 빠뜨린 적이 없고 여전히 시간을 내서 법을 외웠습니다.

법을 얻기 전에 저는 길을 느릿느릿하게 걸었으나, 지금은 발걸음을 재촉하며 걷고, 아무리 바쁘고 수고스러움이 많아도 저는 정념으로 대하며 원망의 말을 하지 않으며 시시각각 수련인의 상태를 유지합니다. 비록 잠을 아주 적게 자지만 정신 상태는 매우 좋으며, 안색도 좋고 마음이 유쾌합니다.

대법을 믿으니 남편 일이 순조롭다

남편은 직장에서 정리해고된 후 1999년부터 지금까지 외지에서 일했습니다. 먼저 목공회사에서 일하며 직원에서 반장까지 되었습니다. 제가 법을 얻은 후 그는 또 반장에서 주임으로 승진했습니다. 나는 언제나 남편에게 말합니다. “당신이 월급이 오르는 것은 당신이 저의 수련을 지지하고 대법을 알려 복을 얻는다는 것을 믿어서예요.” 남편도 친척 앞에서 말했습니다. “제가 외지에서 이렇게 순조롭게 지내는 것은 제 아내가 대법을 수련해서고, 대법 사부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남편은 휴가 때 집에 돌아오면 사부님께 감사를 표하기 위해 과일을 사 와서 직접 사부님 법상 앞에 올립니다.

십여 년 동안 남편은 같은 직종에서 몇 번 옮긴 적이 있었습니다. 매번 옮기면 직무가 더 높아졌고,봉급도 많아졌으며, 현재 남편은 이미 공장장의 자리까지 올랐습니다. 사실 2017년에 우리 집의 오래된 집이 평가받을 때, 남편의 봉급은 갑자기 월수입이 1만 위안(약 170만 원)에서 1만5천 위안(약 250만 원)으로 올랐습니다. 2018년 말 다른 사람의 소개로 한 목공회사 사장이 남편의 기술과 관리 수준을 보고 마음에 들어 했고, 가장 중요한 것은 남편 인품을 마음에 들어 하는 것입니다. 남편은 일을 열심히 했고, 사람 됨됨이가 충직하고 온후하여 그래서 그를 스카우트했으며, 조건은 연봉 24만 위안(약 4080만 원)에 별도로 보조금으로 6만 위안(약 1020만 원)과 매년 백 분의 8의 이윤을 얻을 수 있는 조건으로 그를 스카우트했습니다. 이렇게 계산해 보면 제가 집을 사고 남은 빚은 2019년 반년 안에 모두 갚을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집을 철거한다는 소리를 들어서부터 집을 구하고 집을 사고 인테리어하고 이사하는 일은 일반 사람으로 보면 몹시 어려워 보이는 일입니다. 우리는 전후 몇 개월의 시간만 걸렸으며, 모든 것이 순조롭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모두 대법제자가 운이 좋다는 것이고대법제자의 가족도 복이 있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친척이 우리 집 딸이 교육을 잘 받았다고 칭찬하다

제가 처음 법을 얻었을 때 사부님의 법으로 엄격하게 자신을 요구하고 ‘진선인(眞善忍)’으로 자신의 언행을 바로잡았습니다. 저는 아들과 딸이 있어 세상의 기풍이 나날이 미끄러지는 오늘 저는 자식에 대한 전통 교육을 느슨히 하지 않았습니다.

딸은 90년 이후에 태어났고, 법률전문을 배웠습니다. 딸아이는 천성적으로 말재주가 좋아 이치가 있다고 여기면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보고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대법제자 아이는 일반 사람처럼 그러면 안 되고 딸을 바로잡아야 한다.’ 저는 자주 딸을 교육하곤 했습니다. “어떤 일이든 ‘참음’이 있어야 하고, 자신이 이치가 없다고 하여 사리에 맞지 않는 말을 하며 억지를 써서는 안 된다. 사람에게 선(善)해야 하고, 네가 수련하지 않지만 ‘진선인’의 표준에 따라 해야 한다.” 항상 이렇게 교육하고 제가 아이를 은연중에 감화시켜 지금은 딸아이가 많이 바뀌었습니다. 한번은 딸이 저에게 말했습니다. “엄마, 지금 나의 제일 큰 변화는 참을 수 있다는 것이고, 가게에서 나는 어떤 사람이든 만날 수 있고, 어떤 듣기 싫은 말을 들어도 나는 태연하게 대할 수 있어요.” 딸은 예의 바르고, 초조해하지 않고 사람의 마음을 잘 이해합니다.

2016년 정월 아래층 예(葉) 할머니는 우리 딸에게 남자친구를 소개해주었습니다. 그녀는 저에게 말했습니다. “우리에게 이 두 여자아이가 있는데, 저는 당신 집 딸이 마음에 들어요. 보통 저는 이런 말을 하지 않아요.” 그녀의 소개로 두 아이는 전화, 영상통화를 통해 접촉했고, 서로를 알아본 후 만족을 느꼈습니다. 나중에 양가의 동의를 얻어 두 아이의 혼사를 정했습니다.

사위의 어머니는 일찍 돌아가셨고, 그의 아버지는 일 년 내내 외지에서 일했습니다. 아들의 혼사가 가까워져도 사돈댁에서는 아무도 일을 준비해 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제 남편이 외지에서 일하기 때문에 사돈은 아이들의 혼사를 상의하러 저를 찾아왔고, 예물이 얼마가 필요한지, 어떤 가구, 가전제품을 사야 하는지, 또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를 물었습니다. 지금 사회는 누가 딸을 시집보내면 걸핏하면 10만 위안(약 1700만 원), 20만 위안(약 3400만 원)을 요구합니다. 저는 수련인으로 일반 사람과 같이 물결치는 대로 따라가서는 안 되므로 대법제자는 세속을 초월해야만 합니다. 저는 사돈에게 말했습니다. “예물은 우리가 한 푼도 받지 않을 것입니다. 가구, 가전제품은 쓰던 것을 사용할 수 있으면 쓰면 되고, 결혼하기 위해 빚을 내서는 안 됩니다. 아이들의 장래 생활에 영향을 줍니다.” 저의 태도를 보고 사돈은 기뻐하며 말했습니다. “당신의 의견에 따라 하겠습니다. 안사람이 없기에 사돈께서 신경 좀 더 써주세요.”

우리 현지에 속어가 있습니다. “고개 들고 딸을 시집보내고 고개 숙여 며느리를 본다” 그러나 저에게는 그런 마음이 없으며,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슨 일이든 다른 사람을 위해 생각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남자 측의 경제 조건이 좋지 않아 새집 거실에 에어컨이 없어서저는 스탠드형 신식 에어컨을 만 위안(약 170만 원)에 혼수로 사주었습니다. 침구 용품은 모두 제가 가진 돈으로 해주었고, 마지막으로 우리는 딸에게 10만 위안을 혼수로 주었습니다. 시집가서 이 돈으로 주택대출금을 갚아야 한다고 딸에게 당부했습니다.

그 밖에 사돈의 연회석 예약을 해주고 결혼업체에 요청하여 커튼, 사문(紗門), 사창(紗窗) 등 비교적 많은 번거로운 일을 사돈을 위해 처리했습니다. 그중 어떤 비용은 모두 내가 냈으며, 저는 사돈에게 이런 것을 따지지 않았습니다.

절약하기 위해 저는 이전의 낡은 커튼을 떼어 여름에 햇빛이 쨍쨍한 베란다에 달았고, 다시 화장실의 낡은 커튼을 떼어 베란다의 측면에 달아 합리적으로 이용함으로써보기에도 좋고, 낭비하지도 않았습니다. 사돈 측에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모두 안팎으로 잘해두었습니다. 사돈은 집에 돌아온 후 제가 한, 뜻밖의 모든 것에 대해 만족해했습니다.

가장 만족한 것은 그의 집에 좋은 며느리를 맞이한 것입니다. 결혼 후 딸은 어른을 공경하고 예절을 지키며 사리에 밝았으며 사람의 마음을 잘 이해했습니다. 사돈과 사위는 모두 남쪽과 북쪽에서 일 년 내내 일했고, 일가족이 다 모여도 적게 모였으며, 딸아이는 평소 우리 집에서 살았습니다. 시아버지가 집에 돌아오려 하면 딸은 미리 시아버지의 침대를 잘 정돈하고청소하고살림을 꾸리며 노인을 돌봐주기 위해 그동안은 집으로 돌아가 거주했습니다. 딸은 시아버지가 외지로 일하러 떠날 때면 그에게 맛있는 음식을 사주고마실 것을 가지고 가도록 했으며 평상시 사흘이 멀다고 문안 전화를 했습니다. 한번은 사돈이 몸이 좋지 않아 집에 돌아와 입원했습니다. 딸은 시아버지를 부축하여 4층에서 한 걸음 한 걸음 내려가 병원으로 갔고, 병원에서 각종 검사를 마친 후 시아버지를 안정시키고 딸은 출근했습니다. 사돈은 두 딸이 모두 결혼하여 외지에 살고 있고, 평소에는 한 번 보기도 어려워 그를 돌보는 것은 더욱 말할 것도 없습니다. 딸은 시아버지에게 효도했으며, 사돈은 며느리가 딸보다 더 친근하게 느껴진다고 했습니다.

제 딸에 대해 언급하자면, 사돈의 모든 친척이 아이를 칭찬했습니다.사위의 제부는 회계사입니다. 그는 딸을 칭찬하고 또 칭찬했으며, 딸을 잘 교육했다고 칭찬해 주었습니다. 이런 여자아이는 현재 사회에 많지 않다고 했습니다. 마치 선비 가문의 교육을 받은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일가족에게 시간이 나면 반드시 그의 집에 놀러 오라고 재삼 초청했습니다.

사실 이 모든 것은 대법 사부님과 대법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眞(쩐)ㆍ善(싼)ㆍ忍(런)은 좋고 나쁜 사람을 가늠하는 유일한 표준이다”[1] 저는 대법제자입니다. 이것은 대법 법리로 자신을 지도하고 아이를 교육한 결과입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서: ‘전법륜(轉法輪)’

 

원문발표: 2019년 9월 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9/8/39244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