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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 속에서 안으로 수련한 체험

글/ 중국 대법제자 판구이

[밍후이왕] 나는 올해 68살이고 퇴직한 노동자다. 1998년부터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하기 시작했다.

2018년 11월 9일 시 악당 관계자는 대법제자 60~70명을 납치했다. 우리 지역 수련생 8~9명이 당일 성(省) 공안청 경찰에게 납치돼 성 구치소에 갔다. 나는 아주 빨리 수련생 구출에 참여했다. 가족과 연락하고 변호사에게 의뢰하는 등 일부 일을 했다. 성 소재지로 가는 길이 아주 멀어서 차를 타고 5~ 6시간 가야 했는데 몇 번 왕복하며 우여곡절이 많았다.

또 한 번 성 소재지에 수련생을 구출하러 갈 때 우리는 만날 시간을 약속했다. 나는 며느리에게 “이번에 가면 2~3일 걸린다. 너와 아이 둘이서 밥 먹기 불편하니 아직 시간이 있으니 물만두를 빚어줄게. 먹기도 편하고 넌 백김치 속을 좋아하니 마침 냉장고에 백김치 한 포기 있어서 만두를 빚어줄게”라고 말했다. 아이는 백김치 속을 먹을 수 없어서 두 가지 속을 해야 했다. 표고버섯, 브로콜리, 당근, 다진 고기를 섞어 작은 물만두도 빚어야 했다. 시간이 들고 힘들어도 며느리 혼자 아이를 돌보기가 쉽지 않으리라 생각하고 물만두를 해놓으려고 했다.

물만두를 절반 넘게 만들었을 때 수련생이 나를 찾아와 시간이 앞당겨졌다고 말했다. 원래 계획은 오후 2시에 출발하려 했는데 오전 11시로 변경됐다고 했다. 나는 얼른 물만두를 다 빚고 며느리 모녀가 점심때 먹을 것을 남기고 나머지는 냉동실에 넣어 얼렸다. 나는 밥도 먹지 않고 옷을 입고 수련생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그곳은 대법 책을 갖고 가기 불편하기에 전자책을 가져가야 했고 신분증도 필요했다. 나는 또 빠른 걸음으로 5층으로 올라가 집 열쇠로 문을 열었는데 방 안에서 며느리가 다른 사람과 싸우는 것처럼 큰 소리로 떠드는 소리가 들렸고 소리가 점점 높아졌다. 자세히 들으니 내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닌가? “성질나 죽겠네. 나가면서 급하게 물만두를 빚었어. 그 물만두 먹기 싫어! 너무 맛없어!” 나는 속으로 매우 놀랐다. ‘그럴 리 없어! 며느리가 날 욕하진 않을 텐데!’

나는 재빨리 거실에서 방문을 열고 신분증을 찾은 후 일부로 소리를 좀 냈다. 며느리는 내가 들어오는 소리를 전혀 듣지 못하고 여전히 전화로 내가 빚은 물만두가 너무 맛이 없다고 큰 소리로 말했다. “빚지 말라고 했는데도 듣지 않아. 성질나 죽겠어……” 며느리는 화가 났고 마성이 크게 발작해 이를 악물고 나를 미워했다. 어떻게 하지? 나는 며느리가 날 보면 난처해할 것 같았지만 수련생이 나를 기다리고 있어 방에서 나올 수밖에 없었다. 며느리가 내가 돌아온 것을 보고 매우 긴장하며 말했다. “어머님, 제가 어머님 험담을 했어요.” 나는 신분증을 들고 가면서 말했다. “물만두가 그렇게 맛이 없었니? 널 그 지경으로 화나게 할 정도였니? 화내지 마라. 난 간다!” 나는 내려왔다.

수련생 구출을 위한 성 소재지까지는 고속도로로 5시간 장거리였다. 그런데 마음을 수련생 구출에 둬야 했지만, 마음에는 방금 들었던 그런 듣기 싫은 말들이 자꾸 떠올라 순간 소침해졌다. 당시 며느리와 다투고 논쟁하지 않고 겉으로는 참았지만 나중에 마음이 아팠고 매우 억울했다. ‘거의 70이 되어가는 내가 며느리가 힘들까 봐 만들어줬는데 고마워하기는커녕 그런 말을 하다니, 정말 믿을 수 없네.’ 생각을 바꿔 또 생각하니 옳지 않았다. 나는 수련인이다. 우연한 일이 발생하지 않기에 내 수련에 문제가 있을 것이다.

나는 며느리에게 어떤 부정적인 물질도 더해서는 안 된다. 수련인이 진정으로 착실하게 수련하고 사부님 말씀을 듣는다면 무조건 안으로 찾아야 한다. 여기까지 생각하니 사부님의 법리가 마음에서 끊임없이 나타났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어떠한 일도 우연한 것이 아니며, 또 우연한 일이 나타나지 않는데, 인생길의 일체는 모두 당신의 제고와 수련에 직접적 관계가 있다.”[1] 사부님의 법을 생각하니 마음이 평온해졌고 억울하지 않았다. 사부님께서 또 말씀하셨다. “이 일이 당신 탓이든 당신 탓이 아니든 관계없이 말이다. 내가 한 말을 기억하라. 이 일이 당신 탓이든 당신 탓이 아니든 당신이 모두 자신을 찾는다면 당신은 문제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만약 이 일이 절대적으로 당신과 관계없으며 당신이 마땅히 버려야 할 마음이 없다면 당신 몸에서 이 일은 아주 적게 생길 것이다.”[2] 내가 사부님 법에 대조해 나를 요구했을 때 나는 인식했다. ‘이 문제가 나타난 것은 반드시 내 집착심을 겨냥해 온 것이다. 돌아간 후 반드시 나 자신을 잘 찾아봐야겠다. 지금 수련생 구출에 어떤 영향도 끼쳐서는 안 되기에 무조건 협조인 수련생에게 협력해 가족과 연락하고 변호사를 의뢰하는 등 일을 해야 한다.’

상황이 변해 나는 하룻밤만 묵고 이튿날 집에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나는 먼저 며느리에게 전화를 걸어 몇 시쯤에 집에 도착할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알려주었다. 수련인은 일함에 다른 사람을 생각해야 한다. 집에 도착한 후 며느리가 밥을 따뜻하게 데워놓았고 우리 둘은 아무 일도 없는 듯했다. 예전처럼 세 가지 일을 잘하고 시간이 있으면 며느리를 도와 아이를 돌보고 집안일을 했다.

며칠 후 아들이 외지에서 설을 쇠러 집에 왔다. 집에 도착한 후 아들과 며느리는 내 외조카와 조카며느리를 불러 그들과 함께 음식점에서 밥을 먹자고 했다. 자리에 앉은 후 며느리는 그들 몇 사람에게 말했다. “저는 매우 난처한 일을 했어요. 제가 어머님 흉을 보고 있었는데 어머님께 들켰어요. 사실 저도 어머님을 매우 아낍니다. 거의 70이 되시는데 먼 길을 가야하고 또 위험도 감당하셔야 하며, 그곳에서 잘 드시지 못하고 잘 주무시지 못할 텐데 기어이 바쁘게 우리 모녀에게 물만두를 해주셨어요. 힘든 데다 밥도 미처 드시지 못하고 차를 타고 가셨어요. 마침 동창생의 전화가 와서 저는 전화로 화를 다 풀었어요. 큰소리로 제가 화난 일을 말하고 있는데 뜻밖에 어머니가 물건을 가지러 돌아오셨는데 듣지 못했어요. 제가 어머니가 돌아오신 걸 알았을 때 이미 늦었어요. 얼마나 난처했는지 몰라요.” 가족들은 원만하게 수습하려고 웃었다.

나중에 조카며느리가 내 여동생에게 이 일을 알려주었다. 여동생은 나를 위로하며 며느리가 평소 아주 좋은 사람이니 이 일에서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말라면서 그러면 속상해질 거라고 말했다. 나는 여동생에게 말했다. “걱정하지 마. 나는 수련인이야. 수련인은 법으로 가늠하는 거야. 대법 사부님은 말씀하셨어. ‘한 연공인(煉功人)으로서 우선 마땅히 해야 할 것은, 때려도 맞받아치지 않고 욕을 먹어도 대꾸하지 않으며, 참아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당신을 어찌 연공인이라 할 수 있겠는가?’[3] 게다가 며느리도 나에게 잘해줬고, 난 며느리에게 아무 생각도 없어. 속인이라면 이 일은 영원히 풀지 못할 껄끄러운 일이겠지만.” 여동생은 듣고 아주 감동하며 얼른 말했다. “언니네 대법제자는 역시 속인과 다르네. 경지가 높다니깐.”

마음을 조용히 하고 나는 마음의 변화를 정리했다. 우선 내가 며느리에게 욕을 듣고 당시 나에게 나온 마음은 억울함, 상처받은 마음, 며느리가 좋고 나쁨을 모른다고 원망하는 마음이었다. ‘분명히 좋은 일을 하고 널 잘 대했는데 오히려 이 일을 원망하고 미워하다니.’ 나는 강렬한 자존심이 나왔다. ‘다른 사람이 들인 노동에 감사하지 못할지언정 오히려 윗사람에게 상처를 준다’는 불평과 보답을 원하는 마음이 나왔다. 평소 며느리가 나를 매우 존중했는데 뒤에서는 완전히 달라 며느리가 앞뒤가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진실하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나에게 아직 악당문화가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마음은 표면적인 한 층일 뿐, 더 깊게 찾아보면 숨겨져 있는 명(名)을 위하고 이익을 위하고 정(情)을 위하는 마음이 있다. 명을 위하는 것은 바로 내가 이렇게 며느리를 잘 대하고, 며느리를 위해 대가를 치렀으니 며느리에게는 나의 선량함을 느끼고 나는 자비로운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한 마음이 있었다. 이익을 위한 것은 사람의 그런 물질적인 이익이 아니라 법에서 내가 얻을 수 있는 그런 이익을 얻기 위한 것이었다. 내가 법에서 안으로 찾았고 법리도 깨달았기에 나는 얻은 것이다. 며느리 때문에 수련했고 대가를 치르고 참고 선량해졌으니 며느리를 수련 제고의 디딤돌로 여겼다.

정을 위한 것은 이런 마음이었다. ‘나 이 대법제자 시어머니는 얼마나 좋은가? 다른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나는 할 수 있다. 내가 며느리를 잘 해줬으니 며느리도 날 나쁘게 대하지 않겠지. 내가 아무리 힘들더라도 이 고부 관계를 잘 유지해 서로 화목하게 지낼 수 있겠지?’ 여기에서 말하는 것은 며느리를 잘 대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잘 대하는 마음 뒤에 구하는 마음이 숨어 있다는 뜻이다.

더 찾아보니 바로 ‘유위(有爲)’였다. 여기까지 찾았을 때 한 수련생이 왔다. 나는 전체 과정을 수련생과 교류하고 법리에서 우리 두 사람은 이 일에서 모두 제고했다. 다음에 수련생이 사부님의 ‘홍음’의 시 ‘무위’를 읽었다.

“삼교(三敎) 수련은 무위를 중시하거니마음 잘못 쓰면 곧 유위로다착한 일만 한다 해도 역시 유위이거니집착심을 제거해야 참된 무위로다”[4]

우리가 열심히 깨닫고 끝까지 파보면 ‘유위’의 마음이다. 그것의 뿌리는 바로 ‘사(私)’를 위한 것이다.

사부님의 신묘한 안배에 감사드린다. 나에게 인식하게 하시고 수련생에게 있으면 안 되는 집착심을 찾아내게 하셨다.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 공(功)은 사부에게 달렸다.”[3] 모두 사부님께서 우리를 도와 해주신 것이다.

나는 또 사부님의 한 단락 법이 생각났다. “사실 당신이 문제를 인식할 수 있음을 발견하고 정말로 그런 응당 있지 말아야 할 집착심을 인식하였다면, 그 순간에 당신은 표준에 도달했다. 사부는 물론 당신한테서 표면의 물질을 없애주지만, 이것도 사부가 어떻게 한 것으로 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것은 당신 자신이 수련한 것이기 때문이다.”[5]

이 때문에 나는 속으로 며느리에게 고마웠다. 평소 며느리는 대법과 나의 수련의 일을 긍정적으로 지지했다. 며느리는 가급적 일을 많이 했고 아이를 많이 돌봐 아이가 나를 방해하지 못하게 했다. 나의 시간을 충분히 확보해 주어 발정념이나 진상을 알리는 데 시간을 방해가 되지 않도록 도왔다. 그래서 법공부, 밍후이왕에 접속해 수련생의 교류 문장을 보고, 다른 수련생을 도와 법회 교류원고를 타자할 시간이 있었다.

사실 수련은 바로 이런 것이다. 긍정적인 사유에서 바르게 깨달으면 사부님의 요구대로 하는 것이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로스앤젤레스시 법회 설법’
[2]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유럽 법회 설법’
[3]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
[4] 리훙쯔 사부님의 시: ‘홍음-무위(無爲)’
[5]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북미 제1기 법회 설법’

 

원문발표: 2019년 9월 2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9/22/39364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