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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수련생: 야외연공에 관한 약간의 체험

글/ 일본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일본에 오기 전, 중국 다롄(大連)에서 살았는데 당시에는 아침저녁으로 공원, 광장 등 곳곳에 파룬궁을 연마하는 사람이 있었다. 어디를 가든지 많은 연공장이 보였으므로 그들 속에 들어가 연공하는 것이 보편적이었고 아주 편리했다.

일본에 온 후, 그런 환경이 아주 적어졌지만 그래도 카메이도 츄오 공원 같은 곳도 있었다. 내가 막 일본에 왔을 때는 그곳에서 연공했지만 이사한 후에는 주로 집에서 연공했다.

나는 작년 여름쯤 야외연공을 시작했다. 나는 우연한 기회에 우리 연공장의 어떤 수련생으로부터 토요일과 일요일 아침에 연공한다는 말을 듣고 그럼 나도 가겠다고 했다. 나중에 우리가 법공부를 하러 갔다가 사람들에게 옥외 연공장에 와달라고 호소하니 단번에 사람이 많아졌다. 당시에 어떤 수련생은 평일에도 나가서 연공하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평일에도 나가서 연공했다.

아침에 공원에서 연공하는 사람이 아주 많아져서 우리는 깃발도 만들어 걸었는데, 간혹 일본인도 우리를 따라 동작을 했다.

밍후이왕에서 사부님의 새로운 연공 음악을 발표했는데, 제2장 공법 음악이 한 시간짜리 버전이 나왔다. 연공 전에 수련생들이 한 시간짜리로 할 것인지, 반 시간짜리로 할 것인지를 물었다. 나는 그 공원에 가려면 전철로 두 정거장을 가야 했고, 두 시간 연공한 다음에 출근하면 시간이 딱 맞았기 때문에 원래대로 하자고 했다.

하지만 연공할 때는 머릿속으로 생각했다. ‘왜 사부님의 요구를 따르지 않는가? 사실 반 시간 일찍 일어나 반 시간 일찍 오면 되지 않나?’ 나는 연공을 마치고 수련생에게 앞으로 새로운 음악에 따라 2장 공법을 한 시간 하자고 말했다. 우리는 그때부터 제2장 공법을 한 시간 동안 연마한다.

밖에서 연공하는 느낌

우리 집에서 정거장까지는 대략 13분이 걸리고, 강을 하나 건너는데 강이 도쿄만과 연결되는 하구이기에 바닷물이 만조가 되면 강도 만조가 되고, 바닷물이 간조가 되면 강도 간조가 된다. 내가 막 연공하러 나가기 시작했을 때, 다리 위를 걷는데 갑자기 물고기 여러 마리가 수면 위로 뛰어올랐다. 나는 기분이 좋아서였는지 머릿속으로 ‘해활빙어약(海闊憑魚躍, 바다가 광활해 물고기 뛰어노네)’이라는 시구가 떠올랐다. 연공을 마치고 돌아올 때는 그 다리에서 갑자기 물새가 머리 위로 날아갔고, 머릿속으로 다시 ‘천고임조비(天高任鳥飛, 하늘이 높아 새들이 날아오르네)’라는 시구가 떠올랐는데, 아무튼 당시에 기분이 매우 좋았다.

우리 집에서 정거장까지 대략 13분이 걸렸기 때문에 나는 반드시 첫차를 타야만 연공 시간에 맞출 수 있었다. 그러나 가끔 늦게 일어나면 걸어갈 시간이 몇 분밖에 남지 않았는데, 내가 정거장으로 뛰어가면서 속으로 ‘축지법’, ‘축지법’이라고 생각하면 매번 전철을 잡을 수 있었다. 정말 거리가 단축됐는지는 나도 모르지만, 어쨌든 매번 일찍 정거장에 도착해 몇십 초 후에 오는 전차를 탈 수 있었다.

연공하지 않았을 때는 꿈속에서 지갑을 잃거나, 등산하는데 위로 올라갈 수 없는 등등의 꿈을 꾸었다.

나중에 늦가을에서 겨울로 접어들 때가 되자 날씨가 점점 추워지고 나와서 연공하는 수련생도 점점 적어졌다. 하루는 내가 다른 수련생에게 사람들이 나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비록 말 자체에는 아무것도 없었지만 원망하는 말투였다. 수련생은 나에게 자신을 수련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수련을 상관하느냐고 말했다. 나는 곧 생각했다. ‘맞아. 내가 수련하고 싶어 나왔는데, 다른 사람이 안 나온다고 내가 안 나와서 되겠어?’ 그때 이후로 수련생들은 더 잘 나왔고 나오지 않아도 나 혼자 연공했다.

날씨는 더 추워졌고 점점 혼자 연공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어느 날, 내가 가부좌하고 있는데, 주위에 사람들이 온 것이 느껴졌다. 나는 파룬따파의 깃발을 가지고 왔더라면 더 좋았겠다고 생각했다. 연공을 마치고 보니 중국인들이 보였고, 그들은 내가 연공하는 것을 보고 있었다. 나는 깃발을 걸지 않은 것을 더욱 후회했다.

그 깃발은 인근에 사는 수련생이 갖고 있는데, 그들이 오지 않으니 깃발도 걸 수 없었다. 나는 연공을 마치고 바로 출근했으므로 늘 그 깃발을 가져올 수 없었다. 나중에 나는 깃발을 가져오게 했고, 나가서 연공할 때마다 깃발을 걸었다.

나는 우리의 깃발 자체가 위력을 갖고 있어서 가부좌할 때 태양이 천천히 떠오르는 것을 느낀다. 특히 첫 번째 빛줄기가 금색으로 빛나면 금색 햇빛이 금색 깃발에 뿌려지고, 금색 광채가 똑바로 나에게 반사되는데, 특히 겨울에는 정말 따스함이 느껴지고 강한 에너지를 느낄 수 있다.

환경의 변화

날씨가 갈수록 추워졌고 거의 나 혼자 버텼다. 애초에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밖에서 연공하라고 하셨기에 나는 점점 이 연공장을 지키는 것이 나의 사명이며, 특히 오는 사람이 없을 때 굳게 지키는 동력이 더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러자 내 마음도 아주 편안해지고 환경도 변화되는 것을 느껴졌다.

예를 들어, 나는 까마귀를 본 적이 없는 것 같고 간혹 있어도 아주 멀리에 있었다. 까마귀 대신에 온갖 새들이 왔는데, 바로 내 뒤의 나무에서 그야말로 백 가지 새가 일제히 울면 대단히 듣기가 좋다. 처음에는 듣기도 좋고 아주 즐거웠다. 그러나 연공은 입정해야 하기에 나는 차츰 조금 시끄럽다고 느꼈다. 한번은 마음속으로 그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말했는데 그때 이후로 주변 새들이 아주 적어졌고 우는 소리도 작아졌다.

한번은 비가 왔는데 나는 연공하면서 비를 관장하는 신을 향해 공간을 엇갈리게 하거나, 내가 연공하는 장소를 피하거나, 시간을 엇갈리게 하거나, 연공을 마친 후에 내리게 해달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하늘은 항상 나를 도와 간혹 조금씩 내리던 이슬비까지 멈췄다.

우리가 연공하는 곳은 주차장과 공원 사이의 작은 광장이다. 어느 날 내가 연공하는데 TV 촬영팀이 온 것 같았다. 그들은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작은 광장으로 우르르 몰려와 잡담했다. 당시 나는 광장 한복판에 앉아 있었는데, 그들은 바로 내 옆에서 재잘재잘 이야기했다. 내가 마음속으로 그들에게 ‘조용히!’라고 하자 그들은 단번에 조용해졌다.

잠시 후, 천천히 한 사람이 말을 시작하자 그들은 다시 수다스러워졌다. 내가 다시 마음속으로 ‘조용히!’라고 말하자 그들은 다시 조용해졌다. 하지만 잠시 후 다시 말하기 시작했고, 나는 광장의 땅이 나를 도와줄 수 있을지 생각했다. 이후 주차장에서 온 사람이 그들에게 ‘이동!’이라고 말하자 그들은 우르르 떠났다.

환희심을 없애고 평정심을 유지하다

어느덧 신년이 됐을 때 많은 외국 수련생이 눈밭에서 가부좌하는 사진이 인터넷에 올라왔다. 나는 그 사진을 보니 정말 좋았다. 왜냐하면 나도 꾸준히 야외연공을 하고 있는데, 만약 눈이 내린다면 눈밭에서 가부좌하는 것을 몹시 기대했기 때문이었다. 아마 환희심이 올라왔는지 눈이 내린 그 날, 나는 오히려 일어나지 못했고 연공을 나가지도 못했다.

환희심을 의식했다면 곧 버릴 수 있으며, 원래 기뻐할 만한 것이 없다. 이번 일을 통해 아주 많은 작은 일 중에서 각종 집착심이 나올 수 있음을 체험할 수 있었다. 의식했다면 평상심을 최대한 유지할 수 있는데, 가능한 한 잘해야 한다.

사부님의 격려

날씨가 점점 따뜻해지면서 아침에 연공하러 오는 수련생도 많아졌다.

올해 봄 어느 날 나는 꿈을 꾸었다. 내가 어느 산의 중턱까지 올랐는데, 등산하는 길이 산허리까지만 있었고 절 같은 곳이 있었다. 내가 절 마당에서 산봉우리를 바라보니 꿈속의 그 산은 산중의 최고봉인 에베레스트산이었다. 다시 올라가니 등산로가 없었고 하늘에서 눈발이 흩날렸다. 나는 어떻게 올라갈지를 살폈다. 왜냐하면 곳곳이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었고 아주 위험했기 때문이었다.

순간 마당 가운데에 갑자기 산꼭대기로 통하는 작은 길이 나타났다. 비록 굽이굽이 몹시 걷기 어려웠지만, 드디어 산꼭대기로 갈 수 있는 길이 생긴 것이었다. 그때 나는 깨어났고 연공하러 가야 할 시간이었다. 나는 이 꿈을 사부님께서 나를 격려하신 것으로 생각했다.

야외연공 환경을 바꾸면 환경 덕을 볼 수 있다

일본에서 야외연공은 자유다. 환경을 보면 중국과 마찬가지이지만, 중국처럼 곳곳에 연공장이 있는 환경이 형성되기는 매우 어려운데, 당연히 각양각색의 조건과 이유가 있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우리가 극복할 수 없는 원인이 확실히 있는지 가슴에 손을 얹고 자신에게 물어봐야 할 것 같다. 또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요구를 우리가 온갖 핑계를 대며 스스로와 타협하고 있지 않은가?

나의 체험을 말하자면, 한 곳에 고정적인 연공장이 만들어진 후, 그곳의 미시적인 환경이 바뀌었는데 이것은 내가 직접 체험한 것이다. 이 환경은 역으로 우리의 수련, 우리의 홍법에 큰 작용을 일으켰다. 만약 도쿄에서 모두가 야외연공을 하면서 대법의 깃발을 높이 세운다면 아마 우리 도쿄 환경에 변화가 발생할 것이며, 천천히 애초의 중국처럼 파룬궁 연공장이 곳곳에 꽃을 피울 것이다. 와서 파룬궁을 접하는 사람이 많아질 것이며, 전체 환경의 변화는 아마 우리의 법 실증 항목들에 큰 작용을 일으킬 것이다.

야외연공은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요구다. 사부님의 요구에 무조건 따르는 것이야말로 우리 수련의 가장 빠른 지름길이며, 조사정법(助師正法)의 가장 빠른 지름길이다.

이것은 나의 작은 체험이니 부적절한 곳은 수련생들의 자비로운 지적을 바란다.

 

원문발표: 2019년 9월 2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심성제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9/21/39356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