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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임수에 빠졌지만 정신을 차리고 마침내 파룬따파 수련에 들어서다

글/ 허베이성 대법제자 둥위완

[밍후이왕] 나는 올해 81살이다. 어릴 때부터 신체가 허약해 자주 병에 걸렸다. 선천성 심장병이 있었고 11~12살 때 신경성 두통에 걸려 아프면 두 손으로 머리를 붙잡고 감히 움직이지 못했다. 움직이기만 하면 머리가 터질 것 같았고 뇌가 뛰어나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1965년 한번은 아플 때 아무것도 몰랐다. 어머니와 딸이 나를 불러 깨웠을 때 내 입은 비뚤어졌고 물을 마시면 입가로 흘러나왔다. 40살도 되지 않았을 때 천장관절이 습관적으로 삐었다. 삐기만 하면 침대에 누워 꼼짝도 할 수 없었고 스스로 생활할 수 없었다. 가죽 허리보호대(안에 스테인리스 받침대가 있었음)를 18년 착용했지만 낫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점점 빈번하게 삐었고 점점 심하게 삐었다. 전문가 진단을 받았더니 “뼈가 이미 심하게 변형돼 보호대를 계속 착용하면 완전히 마비될 겁니다.”라고 말했다. 장기간 침대에 누워있었고 대소변도 스스로 볼 수 없어서 정상적으로 먹을 수 없었기에 결국 소화기에도 문제가 생겼다. 십이지장궤양, 담도염, 쓸개염, 횡행 결장 염증 등, 전반 소화기 계통이 위에서 아래까지 모두 문제가 있었다. 정말 너무도 슬픈 나머지 몇 번이나 죽을 생각을 했다.

1995년 말, 딸이 부인병으로 대수술을 하고 몸이 줄곧 잘 회복되지 않아 허리를 곧게 펼 수 없었으며 늘 배가 아파했고 매우 고통스러워했다. 1999년 3월, 딸은 다른 사람의 소개로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했는데 한 달도 되지 않아 온몸의 병이 다 나았다. 그러나 딸이 한 달도 수련하지 않았는데 전 세계를 놀라게 하는 ‘4.25’가 발생했다. 잇따라 중국공산당 장쩌민 집단은 광적으로 파룬궁을 박해했다. 딸은 여러 번 납치됐고 공직에서 해임됐다. 마지막 한 번은 노동교화소에서 18일간 단식했다가 야만적인 음식물 주입으로 몸에 아주 큰 상처를 입고 병원에 실려 가 응급치료를 했다. 병원에서는 딸이 죽을 것 같으니 받지 않았다. 경찰은 어쩔 수 없이 딸을 집에 돌려보냈다. 집에 돌아온 후 딸은 법공부, 연공을 통해 아주 빨리 건강을 회복했다.

이 대법이 보여준 신기함과 초범성을 나도 봤지만, 마음에 담아두지 않고 오히려 악당 매체에서 파룬궁을 모함하고 비방한 것만 믿었다.

2001년 나는 남방의 성(省) 소재지 도시에 이사를 가 생활했으며 오랫동안 딸의 소식을 듣지 못해 걱정했다. 그러다 2004년, 딸이 나에게 장문의 편지를 썼다. 대법 진상을 알렸고 자신이 박해받은 상황을 말했다. 나는 매번 편지를 보면서 울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악당의 본성을 분명히 보아내지 못하고 파룬궁이 내 딸을 해쳤다고 여기고 파룬궁을 욕했으며 사부님께 불경한 말을 했다. 정말 너무 깊게 중독됐고 오성이 너무 나빴다.

2005년 외손자가 대학에 입학한 후 그들 모자가 나를 보러왔다. 딸이 또 나에게 대법 진상과 중국공산당이 대법을 잔혹하게 박해한 사실을 말해서야 나는 악당의 사악한 본질을 인식했고 대법이 좋다는 것을 알았지만 사상을 즉시 바꿀 수 없었다. 딸은 갈 때 나에게 ‘전법륜(轉法輪)’과 ‘대원만법’ 한 권을 주었지만, 나는 책장에 넣어두고 한 번도 보지 않았다.

2006년 12월 11일 나는 요도 감염에 걸려 사흘 동안 링거를 맞고 20여 일 약을 먹었더니 위장에서 피가 나와 약을 끊었다. 결국, 한 달이 넘어서야 나았다. 정확히 1년 후인 2007년 12월 11일 저녁, 또 요도 감염이 걸렸는데 이전보다 더 심했다. 오줌이 전부 피였다. 남편도 아주 걱정하며 말했다. “한밤중에 약을 살 곳도 없어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나는 “참아야지요.”라고 말했다. ‘인(忍: 참다)’자가 나오자 갑자기 딸이 나에게 알려준 말이 생각났다. “어머니, 이후에 무슨 난이 있으면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 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외우세요. 진심으로 외워야 합니다.” 당시 나는 도저히 참을 수 없어 딸의 말대로 외워봤다. 5~6번 외우자 잠이 들었다. 당시 많이 생각하지 않았다. 이튿날 며느리가 자신이 입원해야 한다면서 나에게 시중을 들어달라고 했다. 가기 전에 남편이 말했다. “가면 먼저 당신이나 치료해.” 병원에 간 후 나는 이미 내 증상을 잊어버렸다.

저녁에 집에 돌아오자 남편이 물었다. “당신 치료했어? 주사 맞았어? 약 먹었어?” 남편이 연이어 묻는 말에 나는 어제저녁에 발생했던 일이 생각났다. 나는 곰곰이 생각하고 아주 신기하게 느껴져 자신에게 물었다. ‘내가 나은 건가? 어떻게 나은 거지?’ 그제야 문뜩 깨달았다. ‘아! 정말 그 몇 글자를 외워 나은 거구나. 너무 신기하다! 너무 신기해! 그러니깐 그렇게 많은 대법제자가 아무리 박해를 받아도 이 공법을 포기하지 않고 수련을 포기하지 않는구나.’

나는 즉시 ‘전법륜’을 찾아서 봤다. 한번 다 보고 몸이 아주 편안한 감을 느꼈다. 그러나 사부님께서 내 신체를 정화해주셨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또 ‘대원만법’을 찾아 거울을 보면서 동작을 해봤다. 다섯 가지 공법을 다 배우지 않았고 동작도 정확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3개월이 지나자 내 온몸의 병이 전부 나았다. ‘나는 법을 얻었다!’ 그 격동된 마음은 인간의 말로 형용할 수 없었다. 사부님께 감사드리고 대법에 감사하고 자신을 잘 수련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법을 얻은 후 나는 현지에서 수련생을 찾지 못하고 자신도 수련할 줄 몰랐다. 무엇이 수련인지도 전혀 몰랐지만 나는 사부님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修在自己), 공은 사부에게 달렸다(功在師父).”[1] 사부님을 믿고 법을 믿겠다는 이 일념에 사부님께서 내 신체를 정화해주셔서 수년간의 고질병이 전부 없어졌다. 특히 나를 괴롭혔던 신경성 두통과 습관적으로 천장관절이 삐던 증세가 수련을 시작한 후 아주 빨리 나았다. 다른 병도 잇따라 없어져 진정하게 온몸에 병이 없이 가벼운 상태에 도달했다. 걸음을 조금 빨리 걸으면 발이 땅에 닿지 않은 것처럼 아주 미묘했다.

사존께서 나를 격려하시고 가지(加持) 해주셔서 이런 상태에 도달한 것임을 알지만 사부님께서 날 위해 얼마나 감당하셨는지는 모른다.

수련한 후 돌이켜봤다. 왜 2006년, 2007년 12월 11일 같은 날에 이 병에 걸렸을까? 우연이 아니다. 사부님께서 나에게 법을 얻으라고 의도적으로 안배하신 것이다. 사부님, 사부님께서는 제자를 위해 고심하셨습니다! 제자는 보답할 길이 없어 자기를 잘 수련해 사부님의 은혜에 감사드리겠습니다.

2008년 나는 딸 집에 가서 겨울을 보냈다. 딸은 나를 도와 법리에서 법을 인식하도록 도와줬고 내 동작을 고쳐주었다. 나는 목마른 사람이 물 마시듯 대량으로 밍후이왕에 발표한 수련생의 교류문장과 수련 심득 체험을 보았다. 그동안 나는 제고된 것 같았다.

내가 법을 얻은 후 가족도 대법의 혜택을 보았다. 2009년 남편이 갑자기 뇌출혈이 생겼다. 의사는 검사한 후 즉시 위독 통지를 내리고 두개골을 열어 수술해야 한다고 했다. 이때 딸이 왔다. 병실에 들어간 후 첫 번째 일이 바로 아버지에게 사부님 설법 녹음을 듣게 하고 ‘보도(普度)’와 ‘제세(濟世)’ 음악을 들려준 것이다. 남편은 아주 빨리 깨어나 수술하지 않았는데 또 한 번 대법의 신기함이 나타났다. 이후에 매번 당시 위기를 언급할 때마다 남편은 말했다. “딸이 나에게 대법과 대법 음악을 들려준 덕분입니다.”

대법의 신기함을 말하면 내 경험은 이루다 헤아릴 수 없다. 여기에서 두 가지 예만 들겠다.

북방에서 설을 쇨 때면 고기를 소금에 절인다. 찐빵만 한 고깃덩이를 80% 정도 익힌 후 기름에 튀겨 수분을 없앤 후 봉한다. 그날 내가 고기를 튀길 때 갑자기 고기 한 덩어리가 터지면서 뜨거운 기름이 내 오른손 팔뚝 전체로 튀었다. 나는 큰소리로 외쳤다. “사부님!” 당시 사부님께서는 바로 내 옆에 계시는 것 같았고 손이 즉시 아프지 않았다. 나는 손으로 팔뚝에 있는 기름을 아래로 훑어 내렸다. 사부님께서 보호하지 않았다면 내 전체 손과 팔뚝 피부는 기름을 훑어 내릴 때 떨어졌을 것이고 그 결과는 상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물집도 생기지 않았다.

2016년 10월 12일, 나는 의자에서 넘어져 허리를 침대 모서리에 박고 왼쪽 골반을 침대 머리 뾰족한 곳에 부딪혔다. 두 발은 아직 의자에 걸려있어 내려오지도 못하고 올라가지도 못했으며 허리는 접혀 있었다. 나는 사부님에게 말씀드렸다. “사부님 저는 아무 일 없습니다. 일어나면 연공 하겠습니다.” 이때 ‘쾅’하는 소리와 함께 떨어졌다. 나는 천천히 기어 일어나면서 사부님께 말씀드렸다. “사부님, 절대 아들이 보게 해서는 안 됩니다. 아들이 알면 저를 병원으로 데려가 일을 망칠 겁니다. 저는 어디도 가지 않겠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관계하시기에 아주 빨리 나을 겁니다.” 일어나자마자 나는 네 가지 공법을 다 연마했다. 나는 또 사부님께 말씀드렸다. “사부님, 저는 나가서 선을 권하는 편지를 복사해야 합니다.” 나갈 때 걷기가 아주 어려웠다. 복사하는 곳을 세 곳을 찾아갔지만 모두 복사해주지 않았다. 마지막 한 곳에서 나에게 위에서 파룬궁 자료를 복사하지 못하게 하고 보면 신고하라고 했다고 알려줬다.

저녁에 나는 결가부좌를 하고 정공을 연마했다. 이튿날 아침에 나는 단번에 다섯 가지 공법을 다 연마했다. 그러나 허리가 매우 아파 참기 어려웠다. 이때 사부님의 법이 생각났다. “나는 신체적인 고통은 감당하기가 가장 쉬우며 이를 악물기만 하면 넘길 수 있다고 말한다.”[1] ‘사부님께서는 이를 악물기만 하면 넘길 수 있다고 하셨으니 나는 꼭 넘을 수 있다.’ 오후에 나는 또 사부님께 말씀드렸다. “저는 찐빵을 사러 가야 합니다. 속인의 생활도 해야지요!” 나는 몹시 어렵게 아파트단지에서 나와 속으로 사부님의 설법을 생각했다. “참기 어려운 것도 참을 수 있고, 행하기 어려운 것도 행할 수 있다(難忍能忍, 難行能行).”[1] 이 생각이 나오자마자 받힌 왼쪽 엉덩이뼈가 삐걱삐걱하는 소리가 났다. 손에 작은 돌을 쥐었다 놓는 소리가 났다. 나는 그곳이 분쇄성 골절이 됐는데 사부님께서 조절해주시는 것임을 알았다. 나는 즉시 연속 세 번 “사부님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이 상태가 거의 1분간 지속했다. 움직이지 않고 소리가 나지 않았을 때 그다지 아프지 않았고 길을 걸어도 많이 편안해졌다. 그 후부터 늘 잠을 자기만 했는데 누가 부르지 않으면 깨어나기 어려웠다. 이것은 사부님께서 제자에게 몸을 조절해주실 때 제자가 감당하기 어려워 마취 상태에 들어가게 한 것이다.

나는 줄곧 18일을 잔 후 더 자고 싶지 않았다. 활기찼고 아프지 않았으며 또 나가서 사람을 구할 수 있게 됐다! 11월 10일 딸, 사위가 차를 몰고 나를 그들 집에 데려갔다. 연속 11시간 차를 타고 집에 오자마자 청소했지만, 전혀 힘들지 않았다. 속인은 근육과 뼈를 다치면 백일이 지나야 낫는다고 했지만 나는 28일 만에 다 나았다. 이번에 대법의 초범성, 신기함과 사부님의 자비와 위대함을 실증했다.

이 만고에 만나기 어려운 대법이 세상에 널리 알려졌는데 세인이 모두 대법 진상을 알고 구원을 받길 진심으로 바란다. 그럼 나는 아무리 고달프고 힘들어도 보람이 있다고 생각한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

 

원문발표: 2019년 9월 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9/9/39239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