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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신법으로 한 고비 또 한 고비를 넘다

글/ 랴오닝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1997년 2월에 수련을 시작했다. 수련 중의 시고 달고 쓰고 매운 것 중에는 사부님의 보호와 자비가 스며들지 않은 적이 없으며, 한 고비 또 한 고비를 지나왔다.

1. 가정의 관을 넘다

그해 26살이었던 나는 결혼한 상태였다. 나는 남편과 사흘이 멀다고 싸웠다. 남편은 성질이 난폭하고 소양이 없는 사람이었으며 주먹질과 발길질을 했다. 당시 1살배기 아이가 있었던 나는 이 생활이 언제 끝날 것인지를 생각하다가 결국 이혼하려고 마음먹었다. 나는 친정의 올케 집에 갔다. 올케에게는 ‘전법륜(轉法輪)’이라는 새 서적이 있었다. 올케는 수련하는 책이라고 했다. 나는 집으로 갖고 와서 읽기 시작했다. 책을 처음 볼 때 파룬(轉法)이 집의 전등 위에서 도는 것을 보았다. 당시 수련생들은 나의 근기가 좋다고 했다. 나는 그때부터 수련을 선택하고 이혼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남편은 늘 나를 가로막고 수련하지 못하게 했다. 사부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그러나 흑색물질이 많은 사람은 마치 공장에서 제품을 생산하는 것과도 같이 절차가 하나 더 많아진다. 다른 사람은 모두 이미 만들어진 재료지만, 그는 반제품이므로 새로 한 번 더 가공해야 하는 이런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러므로 그는 우선 고생을 겪어 그의 업력을 아래로 없애고, 백색물질로 전화해 德(더)란 이런 물질을 형성한 후에야 그는 비로소 공이 높게 자랄 수 있다.”[1] 나는 자신이 사부님께서 말씀하시는 반제품이며, 남편이 때리고 욕해도 수련하겠다고 생각했다.

남편은 장사하는 사람이다. 그는 한번 나가면 보름 동안 집으로 오지 않는다. 그가 집에 없으면 나는 대량으로 법공부했다. 가장 즐거운 시간이었다. 그러나 점점 강한 두려움이 생기면서 그가 대법책을 찢을까 봐 두려웠다. 나는 집에서 공개적으로 법공부 하지 못했다. 악당이 박해하자 남편은 수련을 지지하지 않았다. 나는 몇 년 동안 점심때 낮잠을 잔 적이 없다. 남편이 연공하지 못하게 했기에 점심때 5장 공법을 했고, 남편이 집으로 오면 마당에서 풀을 뽑았으며, 남편이 가면 책을 보았다. 내게는 일분일초도 아주 소중했다.

나는 법 공부하면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그러나 우리는 연공인(煉功人)으로서, 때려도 맞받아치지 않고 욕해도 대꾸하지 않으며, 높은 표준으로 자신에게 요구해야 한다고 했다.”[1]를 해냈다. 남편에게 여러 번 맞고 욕을 먹어도 심성을 제고하고 소업하는 것이라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사회적 압력에 의하여 남편과 시부모는 내게 가정과 대법 중에서 선택하라고 했다. 수련하지 않겠다면 시댁에 남고 수련하려면 친정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나는 대법을 선택했다. 아버지는 마을에서 말을 가장 잘하는 사람을 불러와 내가 수련을 포기하도록 설득하게 했다. 나는 “사람은 신앙이 있으면 좋고 마음이 선량합니다. 이 불법(佛法)을 나는 꼭 수련할 것입니다.”라고 했다. 아버지는 나를 시댁에 보내면서 도망가겠다면 시댁에서 도망가라고 했다. 아버지도 나를 버렸다. 저녁에 남편은 또 나를 때리면서 수련하지 못하게 했다. 나는 이 집을 떠나더라도 수련하겠다고 했다. 결국, 남편은 풀이 죽어서는 수련하라고 했다.

이렇게 해서 나는 집에서 정정당당하게 수련하게 되었다. 새벽 3시 50분에 전 세계 대법제자와 동시에 연공할 수 있게 되었고 집에 법 공부팀을 만들었다.

남편이 아무리 단단한 돌이라도 불법(佛法)에 용해되었다. 나는 사부님의 말씀을 깨달았다. “하나의 부동(不動)이 만(萬) 가지 움직임을 제약하는 것이다!”[2]

2. 병업관을 넘다

우리 집 친척은 공사하는 사람이고 남편도 공사한다. 나는 남편을 도와 인부들의 밥을 짓고 작업량을 기록하고 노임을 주었다.

2008년 몸 아래 부위에 콩알만 한 뾰루지가 생겼다. 이 뾰루지는 점점 부풀더니 매우 아팠고 매일 바늘로 찌르는 듯했으며 반년이 지나자 오리 알만큼 커졌다. 나는 마음 쓰지 않았고 아무리 아파도 세 가지 일을 하는 것을 지체하지 않았다. ‘몇 년간의 가정관도 다 넘었는데 이까짓 병업이 무슨 대수란 말인가? 사부님께서 소업해주시고 신체를 정화해주시는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서서히 이 뾰루지에 작은 자주색 물집이 생겼다. 바늘로 물집을 찌르니 자주색 피가 가득 나와 화장지를 한 무더기 써서 닦아냈다. 남편도 내가 병업관을 넘고 있으며 약을 먹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나의 선택을 존중했다. 다음 해 그곳에 또 뾰루지가 생기더니 이전처럼 반년이 넘자 오리 알만큼 커졌고 위에 또 작은 물집이 생겼다. 바늘로 찌르자 이번에는 황색 물이 나왔다.

그날 밤 꿈을 꾸었다. 어떤 목소리가 내게 두 차례 관을 어떻게 넘었는지 물었다. 나는 모두 바늘로 찔렀다고 했다. 이 목소리는 아직도 관을 넘어야 하며 바늘로 찌르면 안 된다고 했다. 나는 나의 업력이면 내가 감당하고 아니면 절대로 구세력의 박해를 인정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3년이 되던 해 그 뾰루지가 생긴 곳에 또 뾰루지가 생기더니 반년 후 오리 알만큼 커졌다. 남편은 이번에는 기어코 나를 병원에 데려가려고 했다. 나는 강력한 발정념했다. 이튿날 그는 이 일을 잊어버렸다.

사부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이때 단지 두 가지 선택이 있다. 혹은 병원에 가서 고비를 넘는 것을 포기하거나 혹은 마음을 끝까지 내려놓고 당당한 대법 제자처럼 바라는 것도 없고 집착도 없이 떠나든 남든 사부의 배치에 따르는 것인데, 이 한 점을 해낼 수 있다면 바로 신이다.”[3] ‘제자는 사부님의 말씀을 듣고 생명을 사부님께 맡기겠습니다.’ 이 일념에 밤에 화장실 갈 겨를도 없이 뾰루지가 저절로 열리더니 검고 끈적끈적하며 마른 깨알 같은 것이 나왔다.

4년째 되던 해 그곳에 또 뾰루지가 생겼고 반년 후 또 오리 알만큼 커졌다. 그다음에 자동으로 터지면서 솜바지가 다 젖었다. 그 후 완전히 좋아졌다. 제자의 신체를 정화해주신 은사님께 더없이 감사드립니다.

3. 정(情)의 관을 넘다

환경이 좋아지면서 남편도 변했다. 주변 사람이 내게 “형수님, 형을 좀 지키세요. 지금 돈이 있으면 누가 변하지 않겠어요?”라고 했다. 나는 남편에 대해 의심이 생겼다. 어느 날 저녁, 남편과 함께 거실에 있는데 휴대전화가 울렸다. 그는 받지 않고 고장이 났다고 했다. 나는 사부님의 말씀을 깨달았다. “우리 정말로 어리석은 이 바보를 말해 보자. 이 이치는 고층차에서는 전부 다 반대로 된다. 바보는 속인 중에서 크게 나쁜 일을 하기가 불가능하고, 개인의 이익을 위해 다투고 싸우는 것이 불가능하며, 명예를 구하지 않아, 그는 德(더)를 잃지 않을 것이다.”[1] 당시 나는 자신이 바보라고 생각하고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 화를 내지 않았다. 일은 이렇게 지나갔다. 남편은 한 달에 집에서 다섯 끼를 먹지 않으며 거의 밤 12시, 새벽 2시에 돌아온다. 늦게 들어오면 원망하는 마음이 올라왔다.

어느 날 아들은 남편과 한 여자가 식사하는 것을 보았다. 그 여자는 겨우 20여 살이었다. 아들은 남편에게 전화했다. “아버지가 한 여자와 식사하는 것을 보았어요.” 남편은 전화를 받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들은 남편 앞에서 내게 그 여자는 아버지의 애인이라고 했다. 남편은 아무 말도 못 하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 여자와 통화했다. 그녀는 남편과 알고 지낸 지 3년이 되었는데 그렇게 해서는 안 되며 자신이 잘못했다고 했다. 남편도 내게 잘못을 인정했다. 나는 더는 남편의 부족함을 주시하지 않았고 저녁에 언제 돌아와도 그를 맞이했다. 나는 남편이 돌아오면 좋고 집에 있으면 좋다고 했다. 나는 자신을 찾아보았다. 남편을 의심하고 원망하고 깔보았으며, 그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질투심, 쟁투심, 이익심, 색욕심 등 찾으니 너무 많았다. 모두 마땅히 닦아야 할 마음이다. 남편의 존재는 나의 제고를 위한 것이자 성취를 위한 것이다. 그는 고생을 많이 했으므로 나는 그에게 감사해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사심이 없는 생명이 되고 타인을 생각하라고 하셨다. 지금 나는 선한 마음과 자비심으로 누구나 다 잘 대해준다. 자신에게 잘못된 염두가 있으면 무슨 마음이 나왔는지 보고는 그것을 없애버린다.

어느 날 남편은 온몸에서 술 냄새를 풍기며 아들에게 내 신분증으로 대출을 해오라고 했다. 아들은 “돈이 있으면 많이 쓰고 없으면 적게 쓰세요.”라고 했다. 나도 두어 마디 했고 대출받는 것에 동의하지 않았다. 남편은 나를 향해 달려왔다. 그는 나보다 키가 커서 내 얼굴에 코를 풀었다. 나는 웃으며 “오늘 많이 힘드셨지요. 쉬세요.”라고 했다. 그는 침대에 누웠다. 내가 그의 옷을 벗겨주자 그는 웃으며 이불을 안고 거실에 자러 갔다. 나는 거울을 보며 콧물을 닦으면서 “수련은 정말 좋다. 사부님이 계시니 정말 좋다.”라고 했다.

남편은 변했다. 휴대전화를 더는 무음으로 조정해놓지 않았고, 집에 돌아와 식사하는 횟수도 많아졌으며, 더는 사람을 많이 욕하지 않았다. 나는 아이 앞에서는 남편이 좋은 사람이라고 하고 남편 앞에서는 아이가 좋은 사람이라고 했다. 이렇게 하자 부자간도 화목해졌다.

4. 진상을 알리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다

나 자신이 진상이며 대법은 내게 많은 것을 주었다. 나는 진상을 알리기 시작하면서 일하거나 장을 보거나 일을 처리할 때 사람을 만나면 진상을 알렸다. 내가 먼저 인사하고 파룬따파(法輪大法)가 좋다고 했다. 진상 자료가 왔을 때 다른 수련생이 시간이 없어 배포하지 못하면 내가 농촌에 가서 배포하고 한 집도 빠뜨리지 않았다. 어느 날 처음으로 한 마을에 갔다. 나는 멀리 떨어진 곳에 불이 켜진 한 집이 있는 것을 보았다. 개가 멍멍 짖고 있었다. 마당에서 짖는 것 같았다. 나는 마음속으로 ‘개야, 내가 여기에 온 것은 너의 주인을 구하기 위해서이며 너도 구원받기를 바란다.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기억하라.’라고 했다. 그러자 그 개는 더는 짖지 않았다. 나는 등불을 향해 걸어서 집 문 앞까지 갔다. 개는 머리와 꼬리를 흔들며 나를 맞이했다. 작은 개가 아니라 큰 개였다. 나는 사부님의 보호와 가지(加持) 그리고 법의 초상함을 느꼈다.

우리는 천천히 진상을 분명하게 알리며 ‘삼퇴(三退)’를 권했다. 나는 우리 마을 집집이 다니며 삼퇴를 권했고 다음은 큰 시장에 가서 낯선 사람에게 삼퇴를 권했다. 수련하기 전에 말하기를 좋아했던 나는 이러한 장점을 이용해 사람을 만나기만 하면 몇 마디 말로 바로 주제에 들어갈 수 있다. 파룬궁이 무엇이며 중국공산당이 왜 파룬궁을 박해하는지, ‘천안문 분신자살’ 사건은 조작한 것이며 대법은 세계 100여 개 나라와 지역에 널리 전해지고 있다는 사실 등을 말한다.

시어머니는 내가 시장에 다니면서 파룬궁을 말하고 사람들에게 삼퇴를 권한다고 남편에게 말했다. 남편은 “말하고 싶으면 말하라지요.”라고 했다. 우리는 공사를 하기에 나는 현장에서 각 공정의 사장에게 대법 진상을 알렸다. 그다음에는 인부들에게 진상을 알렸다. 내가 진상을 알린 사람의 80%는 삼퇴했다. 특별히 고집이 센 사람도 포기하지 않고 매번 기회를 주었다. 현장에서 진상을 다 알리자 공정도 완공되었다. 사부님께서는 또 내게 현장을 바꾸어 주셨다. 나는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사부님, 감사합니다. 저는 해야 할 일을 했습니다.’라고 했다.

훗날 나는 대도시에 정착하여 길에서 얼굴을 마주하고 진상을 알리기 시작했다. 오전에는 법 공부하고 오후에는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했다. 현재 나는 진상을 알릴 때 질을 중시하기에 한 사람에게 알리면 그가 명백히 알게 한다. 이렇게 진심으로 삼퇴해야만 그 사람은 구원될 수 있다.

나는 하루하루를 알차게 보낸다. 매일 즐겁고 스트레스가 없으며 힘이 남아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轉法輪)’
[2]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미국중부법회설법’
[3]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로스앤젤레스시 법회 설법’

 

원문발표: 2019년 6월 3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6/30/38934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