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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외우는 중에서 깊이 숨은 사람 마음을 찾아내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오늘 나는 ‘전법륜’을 외우다가 제4강 네 번째 단락을 외울 때 갑자기 덮어 감춰진 색욕지심을 발견했으며 이어서 한 개 또 한 개 완고하고 제거되기 힘든 집착심의 배후가 바로 색욕지심이었음을 발견했다. 이 색욕지심을 깊이 파보니 ‘자아’의 뿌리에 있었고 이 ‘자아’는 자라 나온 가지들에 의해 포위되었는데 큰 한 무더기는 이미 아주 두터워졌다. 이 사상 속에서 반영되어 나온 정경을 생각해보니 갑자기 마음이 한 번 움직이더니 눈물이 단번에 올라왔고. 목 놓아 울고 말았다. 이 감수(感受)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나온 것이었고 그 당시의 마음을 말로 표현할 수 없었고 사부님의 홍대한 자비를 깊이깊이 느꼈다. 사부님께서 제자를 위해 마음을 쓰고 계셨다!

나는 이십몇 년을 수련했고 수련 초기에 마땅히 내려놓아야 할 사람 마음이 지금까지 깨끗하게 닦지 못하고 있는데 진짜로 은사님께 죄송했다! 늘 자신이 색욕지심에 대해 일찍이 닦아 없앴다고 여겼고 꿈속에서 몇 차례 관을 모두 넘고 꿈속에서도 자신이 수련인임을 알았으며 아주 잘 파악했었다. 내심에서 사람의 욕망을 배척했다. 남녀 사이에 사람이 아름답다고 여기는 것을 마음속으로 배척하고 저급하여 좋지 못한 것, 싫어하는 것으로 여겼다.

사실 이것으로는 부족하고 아주 많은 사람 마음은 서로 간에 연결 통제되어 당신이 의식하지 못할 때 그것은 당신의 공간장에서 생존하고 틈만 있으면 뛰쳐나오기에 자신이 어디가 잘 수련되었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했다. 대법의 요구와는 실로 아주 멀리 아주 멀리 떨어져 있다.

이 법은 너무나 크고 저층차에서 인식한 그렇게 간단하고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러한 복잡한 요소와 거대한 난, 거대한 관을 사부님께서 모두 우리에게 해결해 주셨고 우리를 위해 헌신하시고 감당하고 계셨다. 우리는 단지 인간 세상의 아주 작고 작은 것을 감당했을 뿐이고 그것도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해주신 것이다. 이때 또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과시하는데 사람 마음은 진짜로 더러웠다.

오늘 법을 외운 후 비로소 나는 청성하게 깨닫게 되었다. 아주 많은 사람 마음은 모두 근원이 있었던 것이고 특히 일부 집착심은 어떻게 제거하려고 해도 제거되지 않았던 것은 파생되어 나온 집착심이었기 때문이었다.

법공부 속에서 우리는 구세력이 우리의 수련을 파괴하기 위해 사부님의 배치도 마다하고 우리에게 그것들의 그 한 세트를 강제로 배치하고 우리에게 부면적인 것을 강제로 가하고 우리의 공간장에 쓰레기를 던지는 것을 알았다. 우리가 정, 색, 욕에 떨어져 스스로 헤어 나오지 못하게 하려고 했고 나는 사부님의 법을 배우는 중에 구세력의 함정을 보았다. 색욕이 자신의 것이 아님을 분간하지 못했을 때 색욕의 집착을 크게 하고 안일심이 수시로 틈을 타게 하여 먹고 잠자는 것을 탐하게 만든다. 모두 우리의 보귀한 시간을 소모하는 것이고 우리의 정진하는 의지를 없애는 것이다. 동시에 자아의 존재에 강력하게 집착하게 만들어 이로써 수련생들 사이에 심지어 속인 사이에서도 이기려고 하고 자신의 우세를 과시하려 하고 자신을 꾸미게 한다. 이로써 질투가 생기게 하는데 강렬한 질투는 사람을 악한 말로 다치게 하고 심지어 가장 친한 가족도 다치게 하고 남을 깔보게 만들고 남을 배척하게 하고 타인을 공격하게 한다. 남에게 화내고 성질을 부리고 입을 닦지 않는다. 이때 어떠한 집착심도 모두 색욕심에서 생긴 것이고 색욕심은 또 다른 마음들에 의해 덮어졌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색(色)에 집착함은, 악한 자와 구별이 없으며 입으로는 경문을 읽으면서도 음흉한 눈길을 마주치니 도(道)와는 너무나 먼 것이라, 이는 사악한 속인이다.”[1] “무엇이 사람인고 온몸에 정욕이로다”[2]

대법에서는 ‘진선인’을 수련하고, 수련인이 사심을 닦지 못하면 사람에서 걸어 나올 수 없다. 나는 대법 수련인으로서 타인을 위한 생명으로 수련되어야 함을 느꼈다. 그것은 누구에 대해서도 모두 좋아야 하고 무사무사(無私無我) 선타후아(先他後我)의 정각을 닦아내는 것이다. 이런 것은 사부님께서 법 속에서 일찍이 말씀하셨던 것이고 비록 매일 모두 법공부하지만 진정으로 자신을 대조하지 못했고 자신을 실질적으로 닦지 못했다. 이는 어디 진수(眞修)라고 할 수 있는가? 만약 누구를 보아도 모두 눈에 거슬리고 사람에 대해 물건에 대해 모두 선심이 없으면 또 어찌 타인을 위하는 생명이 될 수 있는가? 어떻게 해야 사람에게서 뛰쳐나와 신을 향해 걸어 나갈 수 있는가?

사부님께서는 석가모니 제자는 물건을 함부로 버리지 않았다는 법을 말씀하셨고 자신도 조금씩 그 속의 내포를 깨닫게 되었다. 자신이 이 방면에서 사부님의 요구에 따라 행하지 않았음을 느꼈다. 스스로 품위가 있고 일을 함에 있어 완벽하다고 여겼는데 이 완벽함은 집착이고 강대한 집착인바 남에 대해 생트집 잡고, 까탈 부리기 좋아하고, 이것저것이 눈에 거슬리고, 특히 물건에 대한 집착에서 이것이 보기 좋고 저것이 보기 좋지 않고 이것을 좋아하고 저것을 좋아하지 않고 낡은 것을 싫어하고 새것을 좋아하고 싫은 것을 함부로 버리는데 자신은 이익에 대한 마음을 내려놓았다고 여겼다.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고 춥고 뜨겁고 모두 원한의 마음에서 생긴다. 자신의 관념에 부합되지 않으면 반감이 생기는데 이런 것들은 모두 악에 속한 것이고 모두 색욕지심이 생존하는 토양이 되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에게는 정이 있기 때문인데, 화를 냄도 정이요, 기뻐함도 정이요, 사랑함도 정이요, 증오함 역시 정이요, 일하기 좋아함도 정이요, 일하기 싫어함 역시 정이며, 누가 좋고 누가 나쁘게 보이며, 무엇을 하기 좋아하고 무엇을 하기 싫어하는 일체가 다 정이라, 속인은 바로 정을 위해 산다. 그렇다면 한 연공인(煉功人)으로서, 한 초상(超常)적인 사람으로서는 이런 이치로 가늠할 수 없으며 이런 것을 돌파해야 한다. 그러므로 정(情) 중에서 파생되어 나온 많은 집착심을 우리는 그것을 담담히 보아야 하며 최후에는 완전히 내려놓아야 한다. 욕(慾)과 색(色), 이런 것은 모두 사람의 집착심에 속하기에 이런 것들을 마땅히 모두 제거해야 한다.”[3]

내가 일체를 선하게 대하고 자신을 잘 닦으려고 생각했을 때 사부님께서는 나에게 각종 집착심에 덮어 감춰진 더러운 색욕지심을 펼쳐 보여주셨고 아울러 사(私)의 근본 집착도 보여주셨고 그것을 똑똑히 알고 그것의 뿌리를 파내어 그것을 닦아서 없애버리게 하셨다. 생명이 진정으로 대법 속에서 승화하게 하여 사존의 자비로우신 구도를 저버리지 말아야 한다.

개인의 최근 약간의 체험이고 적절치 못한 곳은 시정해주기 바란다.

은사님께 감사드립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수련자 금기’
[2] 리훙쯔 사부님 시사: ‘홍음-사람과 각자의 구별’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

 

원문발표: 2019년 9월 1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9/11/39271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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