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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의류공장 이야기

글/ 펑우(鳳舞)

[밍후이왕] 나는 여성 대법 수련생이고 올해 43살이다. 1998년 대학 다닐 때 운 좋게 파룬따파(法輪大法)를 만났고 지금 이미 20여 년이 지났다. 끊임없는 수련에 따라 나는 인생의 진정한 의의는 생명의 선량한 본성으로 돌아가는 반본귀진(返本歸眞)이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명리(名利)를 다투는 인간 세상 속에 빠지지 않아 생활이 홀가분하고 마음이 편안하다. 최근 몇 해 많은 것을 겪었는데 내 경험으로 파룬따파의 아름다움을 실증하려 한다.

2015년 나는 작은 의류공장에 출근했다. 경리 겸 보관을 담당했다. 공장은 개인 작업장이어서 사장과 20여 명의 직원만 있었는데 대다수가 여직원이었다. 처음에 나는 일을 잘 처리하고 내 사무실에 앉아있었다. 이후에 많은 사람이 나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들었다. “이 경리는 너무 형편없어.아무것도 하지 않고 사무실에 앉아있을 줄밖에 몰라. 이전의 ○○와 비기면 너무 형편없다. ○○는 밖에 나와 도와주기라도 하는데…….” 나는 이런 말을 들은 후 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수련인이다. 다른 사람이 나의 부족한 점을 말하면 자신을 바로 잡아야 한다. 지금부터 나도 나가서 일해야겠다.’

나는 성격이 비교적 내성적이고 의류공장의 작업 흐름에도 익숙하지 않았다. 작업장에 가서도 뭘 하면 좋을지 몰랐다. 이후에 나는 어떤 사람이 포장하고 운반하는 것을 보고 가장 투박하고 힘든 일을 하기 시작했다.

매일 힘들어 온 머리에 땀이 흘렀다. 나는 말을 별로 하지 않고 일에만 죽어라고 매진했다. 속으로 절박하게 의류공장의 작업 흐름에 익숙해지려 했지만 어디서부터 배울지 몰랐다.

내 노력을 사장과 직원들이 다 보고 있었고 자발적으로 나에게 말을 걸었으며 나에게 일부 공장의 기본 운영을 가르쳤다. 예를 들면 크기가 다른 옷을 어떻게 포장하고 상자는 어떻게 놓는지 알려줬다. 차츰 나는 직원들과 익숙해졌다.

속담에 ‘여자 셋이 모이면 접시가 깨진다’라고 했다. 의류공장은 크지 않지만 20여 명의 여성이 함께 있으니 갈등도 아주 복잡했다. 어떤 때 어떤 직원이 작은 일로 불평하면서 정말 심하게 욕을 퍼부었다. 상대방도 만만치 않아 맞서 욕을 하고는 서로 며칠간 말하지 않았다. 그러다 돌아서면 또 좋아지긴 했지만 겉으로는 좋은 것 같아도 마음은 맞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또 이익 충돌이 생기기만 하면 즉시 싸웠다.

한번은 단추를 다는 천(陳)아주머니가 작은 일로 나를 욕하기 시작했다. 이때 나는 사부님의 설법이 생각났다. “연공인(煉功人)으로서, 때려도 맞받아치지 않고 욕해도 대꾸하지 않으며, 높은 표준으로 자신에게 요구해야 한다.”[1] 나는 웃으면서 그녀를 보았고 그녀가 다 욕할 때까지 가만있었다. 전 공장 직원도 다 말하지 않았지만 모든 사람이 다 내 반응을 보고 있었다.

천 아주머니는 욕하다 지쳐서 잠깐 쉬더니 또 이어서 욕했다. 나는 멍해졌다가 여전히 말하지 않았다. 이때 사장이 내 옆에 와 나에게 낮은 소리로 말했다. “마음속에 두지 마세요. 여기는 원래 이렇습니다.” 나는 사장에게 시름 놓으라는 듯이 웃었다. 나는 정말 마음속에 두지 않을 것이다.

점심시간에 밥을 먹을 때 천 아주머니가 물을 정수기에 담으려 했지만 통이 너무 무거웠다. 다른 사람에게 도와달라고 했지만 아무도 아는 체하지 않았다. 나는 뛰어가서 말했다. “아주머니, 제가 할게요!” 나는 물통을 혼자 들어서 정수기에 꽂았다.

사실 나에게 수련 중에서, 갈등 속에서 자신을 찾고 진심으로 다른 사람을 대하는 이런 것은 모두 늘 발생하는 일이고 사부님께서 제자에게 요구하신 가장 기본적인 요구이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천 아주머니는 아주 감동했다. 그 후부터 천 아주머니는 퇴근할 때 먼저 내 사무실에 와서 나에게 인사했다. 그녀는 나를 가장 친하고 존경할만한 친구로 여긴 것이다.

공장 직원은 옷을 만들면서 늘 얘기를 나눈다. 어떤 때 그녀들은 파룬궁을 언급했는데 모두 텔레비전에서 선전한 파룬궁을 비방하는 말이었다. 아울러 중국공산당이 파룬궁 서적을 금지하고 인터넷도 차단했기에 사람들은 진상을 알 길이 없어서 중국공산당 매체에서 말한 말 외에 사실이 아닌 개인적인 추측도 있었다. 어떤 때 너 한 마디 나 한 마디 아주 들끓었는데 내 마음은 아주 괴로웠다. 그녀들은 내가 파룬궁을 수련하는 것을 모르기에 내 앞에서 완전히 거리낌 없었다. 그중에 파룬궁에 오해가 가장 깊은 사람은 장 아주머니다. 그녀는 목소리가 크고 성격도 활달하고 지기 싫어했으며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듣지 않았다. 이전에 누군가가 그녀에게 진상을 알렸지만 그녀는 전혀 믿지 않았다. 그녀에게 나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몰라 묵묵히 일만 했다.

차츰 나는 회사 직원들과 모두 익숙해졌고 의류 제조 공정도 알게 됐다. 사장은 나에게 일부 관리를 하게 했다. 나는 샘플을 보고 우리 회사에서 만든 의류에 문제 있는지 늘 보았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나는 봉제하는 기사에게 물었다. 한번은 내가 성격이 불같은 장 아주머니가 옷깃을 잘못 단 것을 보고 말했다. “장 아주머니, 이곳이 좀 잘못된 것 같은데요!” 뜻밖에 장 아주머니는 나를 한 바탕 욕했다. “갓 온 것이 뭘 안다고?! 감히 나에게 잘못했다고 하는 거야? 나는 몇십 년 일했단 말이야!” 한바탕 욕하는 그녀의 말을 듣고 나는 몸을 돌려 샘플을 보러 갔다. 뒤에서 장 아주머니가 아직도 불평하면서 나를 욕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샘플을 자세히 보았는데 여전히 문제가 있는 것 같아 속으로 생각했다. ‘어떻게 장 아주머니에게 말할까? 그녀의 성격이 그렇게 좋지 않은데…….’ 잠시 주저하다 속으로 사부님의 가르침이 생각났다. “왜냐하면, 수련하는 사람은 우선 속인에서 시작하여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무엇을 좋은 사람이라고 하는가? 그 어디에 있어도 다 좋은 사람을 말한다. 당신이 사장에게 임금을 받는데, 사장에게 일을 잘해주지 않는다면, 내가 말하건대 사람들도 당신이 좋은 사람이라고 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은 남의 돈을 공짜로 가진 것이 아닌가. 다시 말해 우리는 잘해야 한다. 어디에 있든 사람들이 모두 당신을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도록 해야 한다.”[2] 나는 용기를 내어 또 샘플을 가지고 장 아주머니 앞에 가 말했다. “아주머니, 나는 옷 만드는 것을 잘 모르기에 아주머니에게 가르침을 받으려 합니다. 아주머니가 한 것과 샘플이 달라 보입니다. 문제가 있는 거죠?” 장 아주머니는 샘플을 한 번 보더니 말하지 않았다. 장 아주머니 표정을 보니 그녀는 본인이 잘못한 것을 안 것 같았다. 그때 나는 그녀가 성질은 불같아도 이치가 통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의식했다.

공장은 이전에 관리를 잘하지 않아 줄곧 손해를 보았다. 매달 1만 위안의 손해를 보아 사장은 감당하기 어려워했다. 이때 나는 차츰 의류 공정을 알았고 관리에도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자발적으로 일부 일에 개입했다. 작업 기일을 통제했고 매 공정의 품질을 검사했으며 앞 공정이 끝나면 옷을 다음 공정에 넘겨주었다. 직원이 일하기만 하면 나는 끊임없이 옷을 날랐다. 일은 정말 더럽고 힘들었지만 전체 속도는 적지 않게 향상됐고 아주머니들도 아주 수월해졌다. 그녀들은 다 나에게 감격했다. 이후 내가 품질에 문제가 있어 다시 만들라고 하면 아주머니들도 반감을 갖지 않고 모두 묵묵히 협조했다. 이렇게 제품의 품질이 점점 좋아졌고 속도도 빨라졌다.

회사의 일부 작은 갈등도 나는 도와서 해결했다. 예를 들면 매번 월급을 계산할 때 직원은 분배가 공평하지 않다고 사장과 마찰이 생기는데 이때 나는 사장과 직원을 조율해줬다. 많은 아주머니는 불만이 있으면 나에게 말하기 좋아했다. 나는 매 사람을 이해했기에 일을 공평하게 처리할 수 있었다. 어떤 때 한 직원이 사장을 원망해 공장에 일하러 나오지 않았다. 그러면 내가 전화해 사장을 대신해 사과했다. 많은 직원이 말했다. “오늘 경리가 전화해서 날 불렀으니 망정이지 사장님이 전화했으면 나오지 않았을 겁니다.”

어떤 때 공장에 사람이 부족하면 나는 사장을 도와 인터넷에 채용광고를 냈다. 이렇게 나는 수련인의 표준으로 자신을 요구했고 진심으로 매 직원을 대했으며 아울러 부지런하게 일을 잘했다. 많은 직원이 내가 아주 고생하는 것을 보고 사장에게 가서 나에게 봉급을 올려주라고 했지만 나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사부님께 우리에게 명리를 내려놓고 다른 사람을 생각하라고 요구하셨기 때문이다.

이렇게 내가 관리를 맡은 후 공장은 더는 손해를 보지 않았고 이윤을 냈다. 다른 회사 직원이 우리 공장에 왔을 때 내가 안팎으로 바삐 보내는 것을 보고 말했다. “경리가 사실 공장장 역할을 하고 있네요. 내가 공장을 운영하면 나는 저 경리에게 공장장을 시킬 겁니다.” 회사 동료도 나에 대해 말했다. “경리는 가장 좋은 사람입니다. 경리보다 더 좋은 사람은 없을 겁니다.” 사실 파룬따파가 가장 좋은 것이지 내가 가장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안다.

하루는 회사 사모의 어머니가 공장에 와서 내가 고생이나 억울함도 마다하지 않고 개인 이익을 마음에 두지 않고 일하는 것을 보고 나에게 물었다. “당신은 왜 그렇게 마음씨가 좋아요?” 나는 말했다. “저는 파룬궁을 수련합니다.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높은 표준으로 자기를 요구하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내가 처음으로 회사에서 내 파룬궁 수련생 신분을 공개한 것이다.

이리하여 회사 직원들은 심리적 충격이 아주 컸다. 내 행위가 텔레비전에서 모함 선전한 것과 그녀들이 짐작한 것과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그 후부터 공장에서 다시는 파룬궁에 대해 왜곡하는 말은 없었다. 많은 사람이 파룬따파(法輪大法)가 좋다는 진상을 알고 삼퇴(가입했던 공산당, 공청단, 소선대 조직을 탈퇴) 했다. 오해가 가장 깊었던 장 아주머니도 삼퇴했다. 중풍에 걸린 아주머니는 나를 따라 연공 동작도 배웠다.

사장도 내가 파룬궁을 연마한다는 것을 알았다. 하루는 그가 혼잣말로 말했다. “보아하니 파룬궁은 정말 좋은가 봐! 텔레비전에서 파룬궁이 좋지 않다고 말했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텔레비전에서 한 말이 옳은지 생각해봤어. 우리 여기에 있던 남자는 예전에 늘 아내를 때렸는데 파룬궁을 연마하면서부터 때리지 않았어. 그의 일은 텔레비전에서 한 말과 모순되지. 지금 경리를 보고 나는 철저하게 파룬궁이 좋다는 것을 알았어!” 내가 사장에게 삼퇴하면 평안을 보존할 수 있다고 말하자 사장은 통쾌하게 탈퇴했고 사모도 탈퇴했다.

이후에 어느 날, 사장의 형이 공장에 와서 내 맞은편 책상에서 인터넷에 접속했다. 나는 그에게 파룬궁 진상을 말했다. 그는 나에게 그의 근무 경험을 말해줬는데 파룬궁 수련생과 관계있었다. 그는 국영기업의 고위 관리자로 그들 기업의 일부 상품을 감옥과 노동교화소에서 죄수를 이용해 가공했다. 그는 나에게 말했다. “불법적으로 수감된 파룬궁 수련생은 모두 박해를 저지하고 노역을 거절합니다.” 그는 중국공산당의 사악한 수단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한번은 그들 CEO가 봉급을 올려주겠다는 미끼로 그에게 부당한 수단으로 이윤을 얻으려 했는데 그는 거절했다고 한다. 그는 말했다. “공산당은 사람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다 이용하고 조사를 받으면 나에게 덤터기를 씌우려는 거죠. 난 절대 하지 않을 겁니다! 마지막에 그들은 나를 파면하고 한가한 곳으로 보냈어요.”

나는 말했다. “선생님은 정말 지혜롭고 눈앞의 이익도 내려놓을 줄 아시네요. 지금 선생님과 같은 분이 많지 않습니다. 중국공산당은 지금도 승진시켜준다는 말과 봉급을 올려주겠다는 등을 미끼로 공검법(공안, 검찰원, 법원) 관계자를 이용해 파룬궁을 박해하고 있습니다. 붉은색이 찍힌 공문도 없이 모두 구두로 통지합니다. 사실 중국공산당의 파룬궁 박해는 문화대혁명과 같은 한 차례 정치 운동입니다. 정치 운동은 끝날 날이 있습니다. 그때면 또 덤터기를 씌울 사람을 찾을 겁니다. 그때면 공검법 관계자는 중국공산당의 희생양이 되지 않겠습니까? 지금 집권자는 ‘사건처리 종신 책임제’를 내놓지 않았습니까? 바로 이 일이 지난 후에 처벌하려고 준비한 거죠.” 그는 내 말을 인정했다. 당시 그는 공산당, 공청단, 소선대 조직에 가입했었는데 인터넷봉쇄돌파 소프트웨어로 ‘9평 공산당’을 받아서 보았다.

이후에 공장에 주문량이 많지 않아 장기간 휴업해 나는 사직했다. 사장은 주문을 받아 일을 시작한 후 다른 사람을 청해 관리했다. 공장은 또 손해를 보기 시작해 사장과 사모는 나에게 공장을 관리해줄 것을 바랐지만 나는 외지에 가서 그들을 도와줄 수 없었다.

나는 20여 년을 수련하면서 파룬따파에서 건강한 몸을 얻었고 심성이 승화됐으며 사람이 왜 사는지 알았다. 중국공산당의 박해로 떠돌이 생활을 하고 경제적으로 매우 가난하지만 생명의 본질적인 승화는 돈과 지위로 바꿀 수 없다. 나는 점점 편안하게 살고 있다.

주:
[1]리훙쯔(李洪志)사부님의 저작: ‘전법륜’
[2]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유럽법회 설법’

 

원문발표: 2019년 9월 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9/6/39234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