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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생을 돕는 과정에서 자기를 착실히 수련하다

글/ 산둥 대법제자 쉐롄(雪蓮)

[밍후이왕] 나는 ‘7.20’ 전에 대법수련에 들어선 노년 제자이다. 20년 동안 수련하면서 사부님과 대법에 대한 확고한 믿음으로 줄곧 걸어왔다. 아래에 수련 중에서의 일부 경험을 써내 수련생들과 교류하려고 한다. 적절치 못한 곳은 수련생들께서 자비롭게 지적해주시기 바란다.

1. 사오(邪悟)한 자가 다시 수련의 길로 되돌아서게 도와주다

2017년, 내가 다니는 법공부 소조에 난법(亂法)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사부님의 정법 구결을 전부 고쳐서 따로 한 세트 만들어 대대적으로 전했다. 그리고는 수련생들에게 밍후이왕을 보지 말고, 밤새 자지 않고 가부좌를 해야 한다면서 지금은 다른 공간의 부정적인 생명을 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결과 많은 수련생이 그에게 미혹되어 따라 했다.

이 상황을 보고, 억만년을 기다린 정법이 마지막 단계에 이르렀는데 많은 수련생이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것을 보니 마음이 몹시 초조했다. 특히 어떤 법공부 소조는 원래 수련생이 얼마 되지 않는데 만약 사오하면 이 법공부 소조는 더는 유지되기 어렵게 되고, 또 이런 수련생을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구하지 않을 수도 있다.

나는 즉시 책임자와 몇 명의 수련생들을 찾아 사오한 자를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를 논의했는데 마지막에 내가 앞장서서 이 일을 하기로 했다. 두 구역이 관련되어 있는데 내가 있는 구역은 시(市)와 구(區)의 당정(黨政) 2급 행정과 2급 공검법(公檢法) 조직의 주둔지이며 또 다른 공간의 사악이 집중된 곳이다. 우리 구역 법공부 소조의 몇 사람도 연관되어 있어 압력이 크고 상황이 급했다. 그날로 각 법공부 소조의 책임자를 소집해서 법회를 열고 교류했다. 우리는 사악이 여기에서 절대 목적을 달성하게 해서는 안 되며, 반드시 사오한 자를 되돌려 세워야 한다.

인식을 같이한 후 거의 두 달 동안 나와 몇 명의 수련생들은 사오한 자를 되돌려 세우는 힘든 수련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 일은 두 가지 어려움이 있다. 하나는 버스노선이 긴 것이다. 두 구역을 벗어나 어떤 수련생은 산속에 살고 있어 차에서 내리면 2~3리를 걸어가야 했다. 두 번째는 사람 수가 많은 것인데 50여 명이 관련되어 있다. 우리는 먼저 이런 사람들의 연락 전화를 낱낱이 파악한 후 일일이 방문하기 시작했다. 방문 중에 길이 멀고 교통이 불편해 우리는 아침을 먹지 않고 길을 떠나곤 했다. 어떤 때에는 사오한 수련생이 집을 나서기 전에 서둘러 도착하기 위해 점심도 못 먹고, 이 집에서 나오면 바로 다음 집으로 가곤 했다. 그러나 우리를 대하는 사오한 자들의 태도는 한심했다. 만나기를 거부하는 사람도 있고, 아예 우리에게 화를 내는 사람도 있고, 숨어서 보이지 않는 사람도 있고, 우리를 바로 쫓아내는 사람도 있었다. 또 겉으로는 대응하지만 사실 마음속으로는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사오한 자를 되돌려 세우겠다는 우리의 결심을 동요시키지는 못했다.

수련생을 책임지고, 특히 사부님의 자비한 고도(苦度)에 부응하기 위해 우리는 어려움을 무릅쓰고 숨어있는 수련생을 거듭 찾아갔는데, 찾지 못하면 찾을 때까지 그 집에 7~8차례나 간 적도 있었다. 인정하지 않는 사오한 자에 대해 우리는 줄곧 평온한 마음으로 그들과 함께 법에서 서로 교류하면서 그들이 법리에서 깨닫도록 도와주었다.

그때 구세력도 내 몸에 대한 박해를 심화시켜, 내가 수련생을 구하지 못하게 발목을 잡았다. 그동안에 내가 수련생을 찾으러 간다는 말만 하면 바로 나의 머리 부위는 마치 손오공 머리에 금테를 조여 꼼짝 못 하게 만드는 주문에 걸린 듯 머리가 납작하게 눌러 진 느낌이어서 사고하기가 매우 어려웠고 몸이 불편했다. 이 두 달 동안 나는 계속 기침을 했는데 목에 어떤 것이 자꾸 걸려서 밥도 먹지 못했다. 또 매일 아침 기침을 하면 피가 나오고 목이 쉬어 말도 하지 못했다. 때로는 피곤하고 힘들어 포기하고 싶었지만, 사부님께서 원하시는 것이라면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견지해서 꼭 해냈다. 그리고 나의 생명이 사부님께서 주신 거로 생각하면 내가 내려놓지 못할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나는 구세력의 배치를 승인하지 않고, 사부님께서 한 명의 수련생이라도 빠뜨리면 안 된다고 말씀하셨기에 나도 한 명도 빠뜨리지 않았다.

나는 사부님께 가지(加持)해 주실 것을 부탁했다. 중생을 구하는 대법제자의 중대한 사명을 생각하자 한 명의 수련생을 잃어버리면 얼마나 큰 손실일까? 특히 우리 수련생들이 수련 중에서 이미 법을 실증하는 일을 그렇게 많이 했고, 그렇게 많은 관을 넘겼는데 수련생의 공든 탑이 무너지는 것을 지켜볼 수 있는가? 우리는 절대로 한 명의 수련생도 포기할 수 없다.

그동안 나는 날마다 기침을 하면서 말을 했다. 나와 다른 수련생들은 사오한 수련생들과 항상 늦게까지 교류했는데 밤 10시가 넘어서 집에 오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사오한 수련생들을 돌려세우는 일을 하는 동시에, 우리는 사오한 자들과 시간을 다투어 난법하는 자들의 세력이 확장되는 것을 철저히 막았다. 난법을 하려면 사람을 끌어야 하기에 그들은 차를 몰고 적극적으로 사방에서 활동하며 수련생들과 연락했다. 그들은 사오한 자료를 확산시켜 수련생들을 그릇된 길로 인도했기에 우리는 미리 각 법공부 소조에 가서 알렸다. 경각심을 높이고, 사오한 자를 믿지 말고, 사오한 자들을 끌어들이지 말고, 속지 말고, 그들에게 시장을 주지 말라고 했다. 사오한 자료를 받은 많은 수련생은 전하지도 보지도 받지도 않아 사오한 자들이 전파한 시장을 효과적으로 근절시켰다. 마침내 우리의 노력으로 L구역의 사오한 수련생 50여 명은 상당수가 되돌아섰다.

이어서 나와 책임자는 다시 소조 협조인을 지정하여, 법공부 소조는 신속하게 법공부를 회복했고, 자료점도 제대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수련생들이 다시 정법의 노정을 따라가기 시작했고, 중생을 구하는 각 항목의 일을 정상적으로 전개했다. 이와 동시에 내가 있는 구역에 사오 중에서 방금 되돌아온 독신 수련생이 새로 이사 왔다. 이 수련생의 병업상태는 매우 심각했는데 정신적으로 매우 우울했고 속으로 자살을 생각하기도 했다. 한 수련생이 직접 그를 우리집에 데려왔는데 당시 우리의 많은 수련생은 법공부를 하고 있었다. 한 수련생은 그를 데리고 온 수련생에게 안전에 주의하지 않고 아무 사람이나 여기에 데려온다고 바로 나무랐다.

나는 사부님께서 스파이마저 구할 수 있다고 하신 말씀을 굳게 믿는데 무엇을 고려할 것인가? 나는 열정적으로 이 수련생을 받아들이고 그의 신심을 증가시켜 주었다. 그의 병업에 대해 나는 수련생들을 조직해서 그의 집에 가서 발정념을 해주었다. 수련생들은 모두 적극적으로 서로 도와주었고, 또 그를 도와 수련생 친구도 찾아주어 그와 함께 식사하면서 함께 지내도록 했다. 나는 또 그를 위해 법공부 소조를 따로 배치해 그가 단체 법공부에 참석하도록 했다. 그리하여 이 수련생은 정신과 몸 상태가 갈수록 좋아져 아주 빨리 세 가지 일에 투입되었다. 신체 변화도 매우 커서, 이 수련생은 후에 “사오하면 죽음의 길밖에 없고, 대법으로 돌아오면 새 생명을 다시 얻습니다.”라고 말했다.

법에서 수련생의 인식을 제고시키기 위해 우리는 또 새로 되돌아선 수련생들을 조직해서 한 차례 교류회를 개최했다. 교류 중에서 그들은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면서 모두 사오한 것을 본 후 몸에 비정상 현상이 나타났다고 말했다. 그들 중에 배와 머리가 아프고, 숨이 막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또 흔들거리며 공중에 뜨는 감각 같은 각종 비정상 상태가 나타나는 사람도 있었다. 난법하는 사람들은 그들에게 이것은 고층차로 제고된 표현이라고 말했는데 이런 비정상 상태로 가면 얼마나 위험한가. 반성하는 가운데 그들은 통곡하며, 구세력에게 끌려가 굽은 길을 걸은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심각하게 인식했다. 그런 후 그들은 모두 ‘엄정성명’을 쓰고 다시 수련의 길로 되돌아섰다.

사오한 자를 도와주는 동시에 나는 한 차례의 시련을 겪었다. 한 사오한 자는 속인의 교활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이전에 이미 한 번 사오한 적이 있었는데, 작은 변화가 있자 또 사오했다, 이번에 또 히죽거리면서 무엇이든 다 응대하는데 사실 마음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말끝마다 사부님을 따라간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했다. 사부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셨고, 어떻게 하면 잘못 깨닫게 되는지를 말하기만 하면 그는 교활하게 변명을 늘어놓으면서 무슨 말을 해도 다 같다는 등 말을 했다. 어찌 다 같을 수 있는가?

그의 이런 모습을 보고 그날 저녁 나는 괴로워 온밤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나를 피하고, 욕할 수 있고, 나와 논의할 수도 있지만 이런 교활하고 터무니없는 변명은 나를 힘 빠지게 하여 도저히 그와 교류할 수 없게 된다. 당시 나는 마음속에 원망심, 서둘러 성공을 바라는 마음, 귀찮아하는 마음, 평형되지 않는 마음, 심지어 다시는 그를 보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모두 나왔다. 하지만 사부님의 감당을 생각하자 나는 이러한 마음을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는 것을 의식했다. 나는 사부님께 나를 도와 이런 마음을 제거해주실 것을 부탁하고, 나도 발정념으로 제거했다. 이렇게 하여 사오한 자를 돌려세우는 과정에서 나는 끊임없이 자신을 닦았다. 사오한 자들이 다시 되돌아온 후 어느 날 아침, 나는 심한 기침을 하면서 썩은 고기 같은 핏덩어리를 토했는데 몸이 갑자기 홀가분해졌다. 나는 한 개의 관을 넘었다는 것을 알았다.

2. 수련생을 위해 입장을 바꿔서 생각하다

병업관을 넘는 수련생을 우리집에 데려와 도와주는 것은 나에 대해 말하면 늘 있던 일이다. C수련생이 병업관을 넘을 때 배가 너무 아파 며칠 동안 밥도 먹지 못하고 잠도 자지 못하고 침대에서 마구 뒹굴었다. 나는 이 수련생을 우리집에 데려와 묵게 하고, 다른 수련생들을 조직해서 그가 병업관을 넘을 때까지 연속 며칠 동안 그를 도와 발정념을 해주고 또 그를 도와 안에서 집착심을 찾아주었다.

D수련생이 병업관을 넘을 때는 입가에 침을 흘리고, 한쪽 다리를 잘 쓰지 못하고 또 바지에 늘 소변이 새서 혼자 생활할 수가 없었다. 내가 낮에 일이 많아 집에 있지 않기 때문에 나는 낮에 그를 다른 수련생 집에 데려가고, 저녁이면 다시 우리집에 데려왔는데 바지에 소변을 봐서 나는 그를 도와 씻어주었다. 10여 명의 수련생이 함께 그에게 발정념을 해주고, 저녁에는 그와 함께 연공도 했는데 수련생 몇 명이 그를 일으켜 세우고 그가 연공하도록 부축해주었다. 사람이 많아 잠잘 곳이 없으면 밤에 우리는 바닥에서 잠을 잤다. 그와 법에서 교류하고, 법공부하고, 그가 안을 향해 찾도록 하면서 철저하게 구세력의 배치를 부정하고, 사부님께 가지해 주실 것을 부탁했다. 십여 일 동안 이렇게 하자 그는 병업관을 넘었고, 또 중생을 구하는 행렬에 들어섰다.

병업관을 넘는 수련생이 있기만 하면 나는 수련생들을 조직해서 함께 발정념을 해주었는데 효과적으로 사악을 질식시키고, 수련생의 정념을 강화시켜 많은 수련생이 법업관을 넘도록 도와주었다. 수련생이 끊임없이 안으로 찾는 과정은 끊임없이 수련 층차가 제고되는 과정이기에 우리는 하나의 정체를 이루어 신사신법하고, 함께 정진했다.

이 과정에서 나는 심성관을 넘는 일을 많이 겪었다. 어떤 수련생이 여러 번 병업관을 넘을 때마다 나는 수련생들을 조직해서 그를 도와 발정념을 해주었지만 병업은 계속 반복되었다. 한번은 수련생 가족이 또 나를 불러 도와달라고 했는데 그때 마침 불법적으로 감금된 한 수련생의 재판이 있어 나는 수련생들을 조직해서 현장에 가서 근거리 발정념을 하면서 법정에서 불법 심문을 당하는 수련생을 가지해주었다. 때문에 제때에 사람을 조직해서 병업관을 넘는 수련생에게 가지 못했는데 결과 이 수련생의 가족은 기분이 좋지 않아서 나에게 화를 내며 “당신들은 오지 않아도 돼요.”라고 말했다. 이렇게 심한 말을 들으니 나는 좀 견딜 수가 없었다.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예전에는 일이 있어 부르기만 하면 바로 왔는데, 지금 이렇게 바쁜데다가 또 이렇게 큰일이 있어 처음으로 이렇게 늦게 왔는데 이렇게 화를 내다니?” 하지만 나는 어떤 일에 부딪히면 반드시 안을 향해 찾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자신의 마음을 깊이 파헤쳐 보았다. 나에게 다른 사람이 말 못하게 하는 마음이 있었고, 또 수련생 가족의 처지에서 생각하는 마음이 없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수련생의 병업이 심하고, 신체적, 정신적으로도 분명 상태가 좋지 않은데, 내가 어찌 수련생의 가족들에게 상냥한 표정을 지으라고 할 수 있겠는가? 이 마음을 찾자 나는 바로 제거했다. 이렇게 끊임없이 자신을 닦으면서 제고해 올라왔다.

3. 착실하게 수련하면서 가정에서 관(關)을 잘 넘다

오랫동안 대법의 일에 바삐 보내다 보니 생활상에서 아이에게 관심이 너무 적었다. 집에서 나는 자녀들에 대해 줄곧 권위적 태도와 유세, 자아를 지니고 있었다는 것을 줄곧 의식하지 못했다. 아이가 나를 도와 대법의 일을 하게 시킬 뿐 아이를 배려하는 마음이 없었다. 작년에 나는 아들에게 결혼할 집을 인테리어하라고 했는데 아들은 인테리어 중에 내게 어떻게 되고 있는지 봐 달라고 거듭 말했다. 나는 정말 시간을 낼 수가 없어서 “아들아. 엄마가 비용을 대주면 인테리어를 잘 하면 되잖니.”라고 대충 말했다. 그러자 아들은 “어머니, 저는 아버지도 없는데요. 비용을 대달라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께 보여드리고 싶은 거예요.”라고 말했다. 나는 아들이 엄마가 관심 가져주기를 갈망하고 있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그러나 정말로 시간을 낼 수가 없었다.

하루는 내가 또 아들에게 차로 ‘병업’관을 넘는 수련생의 집에 데려달라고 했다. 아들은 항상 나를 도와 대법의 일을 하곤 했다. 길에서 나는 또 아들에게 어떻게 가라고 지휘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아들은 며칠 동안 쌓였던 불만이 단번에 폭발해서 나에게 “수련생이 어머니의 부모예요? 어머니는 그들에게 모두 좋게 대하는데 나와 누나에게는 그렇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그런데 나는 깨닫지 못하고 화가 나서 두 번이나 아들을 때렸다. 아들은 이 일로 인해 나에 대한 원망이 쌓여 갔다. 일이 발생한 후 나는 이전부터 집에서 수련인 다운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고, 가정이라는 이 수련환경을 포기한 것이 얼마나 큰 누락인지를 깨달았다. 그리하여 나는 아들에게 “아들아. 어머니가 나빴다. 미안해. 어제는 내가 잘못했다.”라고 사과했다. 그러자 아들은 화를 가라앉히고 “어머니, 대법의 일을 하느라 너무 바삐 보내시는데 제가 어머니와 말다툼을 해서는 안 되지요.”라고 말하면서 “어머니. 대법은 좋은데 어머니가 잘하지 못해서 그래요,”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듣고 나는 아이의 문제에 대해 여태껏 법으로 가늠하지 않고, 아이는 내 것이니까 내 말만 들으면 된다고 생각했고, 또 지금까지 아이들을 중생으로 대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아이에게 사과한 것은 이번에 관을 넘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여전히 건성으로 대하는 마음이 있었다.

어느 날 수련생이 일이 있어 나를 찾아왔다. 내가 문을 나서자마자 아들은 “어머니, 저 발이 또 아프기 시작해요.”라고 말했다. 나는 바로 귀찮다는 듯이 “벌써 몇 년이나 너보고 법공부를 하라고 했잖아! 법공부를 하라고 해도 듣지 않더니! 일찍 수련했다면 이런 일이 어디 있겠니?”라고 말하고는 아들과 다투기 시작했다. 이때 딸이 다가오면서 “어머니, 어머니가 만약 동료 수련생에 대한 인내심의 절반이라도 우리에게 보여주면 어머니는 좋은 어머니라고 할 수 있어요.”라고 말했다. 이 몇 마디 말은 정말로 나를 자극하여 깨닫게 했다. 맞다. 솔직히 나는 아직도 아이들에게 시키는 것에 익숙해졌고, 거칠게 이렇게 저렇게 하기를 요구하면서 마음을 가라앉히지 않고, 아이들과 잘 소통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수련하지 않는 것은 도대체 어디에 장애가 있어 그런지 보게 됐다. 나는 자신이 손아랫사람을 능가해야 한다는 마음, 아이를 얕잡아보는 마음을 찾았다. 아이들은 대법을 지지하고, 도와주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해서 아이들의 수련 기회를 등한시하였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나는 매우 죄책감을 느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내가 법을 전할 때가 되어서는, 그 신들이 마치 눈꽃처럼 내려왔다. 바로 그렇게 많았다. 내가 이 나이를 계산해 보니, 내가 법을 전할 때부터 현재까지, 25세 전후의 이런 젊은이들인데, 정말 아직도 많은 사람이 구도 받지 못했다. 모두 신이 온 것이다.”[1]

나의 이 두 아이는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그런 아이들이 아닌가? 나는 완전히 충격을 받고 깨닫게 되어 식은땀을 흘렸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자신을 찾았다. 나는 온종일 대법의 일과 사람 구하기에 바삐 보내면서 식구들이 나의 시간을 조금이나마 차지할까 봐 밤에도 밖에서 자료를 배포했다. 내가 잘하고, 협조를 잘하고, 수련을 잘하는 것은 전부 ‘나’를 위해서였다. 하지만 아이가 나의 중생이 아니고, 법을 얻어야 할 생명이 아니란 말인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았다. 내가 진정으로 수련하는 것인가 아니면 거짓으로 수련하는 것인가, 이렇게 오랫동안 아이들을 등한시하여 두 아이는 점차 대법 속으로 들어올 수 없게 되었다. 모두 나의 이기적인 사람 마음 때문에 아이들이 나의 곁에서, 수련 후의 나의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게 가로막고 있었다. 구 우주의 이치가 바로 위사위아(爲私爲我)인 것이다. 날마다 구세력을 부정한다면서 이렇게 하면 구세력의 길을 가는 것이 아닌가. 진정으로 의식해야 가정을 잘 원용하고, 위사위아의 마음을 제거하고, 구세력의 배치를 부정하고, 사부님이 배치한 길을 갈 수 있다. 아이들과 어울릴 시간을 합리적으로 배치해서 내가 잘해야 한다. 나는 아이들을 위해 집안일을 분담하고 밥을 하기 시작했다. 예전처럼 자신은 손도 꼼짝하지 않고 아이들에게만 시키는 어머니가 되지 않았다. 자신을 닦기 시작하면서 다시 대법의 일을 할 때 나는 적은 노력으로 큰 성과를 내는 효과를 발견했다. 따라서 두 아이도 잇따라 대법 속으로 들어왔다.

내가 대법 중에서 한 발짝씩 오늘까지 걸어올 수 있었던 것은 완전히 제자에 대한 사부님의 가지와 보호에 의지했기 때문이다. 제자는 사부님의 무한한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을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오직 정법이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더욱 잘해, 더욱 많은 사람을 구해서 사부님의 자비하신 고도(苦度)를 저버리지 않겠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경문: ‘2016년 뉴욕법회 설법’

 

원문발표: 2019년 8월 2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심성제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8/27/375862.html